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07화 (307/849)

〈 307화 〉 #47. 망나니 재벌들 (8)

* * *

멜리사 케이가 투자를 할 때 에어플레인을 콕 짚어서 했었다.

덕분에 투자를 넘겨받은 비앙카는 회사로부터 꽤 많은 이익금을 받을 수 있었다.

에어플레인은 굉장히 빠르게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뽑아내고 있는 그룹이었다.

‘앞으로 정산금은 더더욱 두둑해질 거고.’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훌륭한 투자였다.

투자 쪽으로는 감히 따라갈 수 없어서 한 때는 동생의 재능을 질투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비앙카가 멜리사를 굳이 메이드로 만들었던 이유도 질투심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인님이 왜 멜리사를 놔주지를 못하냐고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인데….

‘이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주인님은 날 너무 서운하게 해. 멜리사 때문에 나는 인생이 바뀌었는데, 걔는 아무 변화 없이 산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지금의 자신이 싫다는 건 아니다.

비앙카의 자아 반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고, 비앙카는 이미 자신의 처지를 순응하고 받아들인 상태였다.

다만 받아들인 건 받아들인 거고.

‘날 이런 꼴로 만든 멜리사는 책임을 져야지.’

보통 아이돌에게 투자를 하면 금액을 회수하는 기간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회사에서 아이돌 그룹 하나 띄우는데 드는 돈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에어플레인은 투자하기 아깝지 않은 그룹이었다.

항상 그 이상의 결과물을 가져와주니 말이다.

“필요에 의해서라…. 일단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런 위험이 있었다는 걸 사전에 알지 못한 게 사실이라 이번 일로 경각심을 갖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다신 그런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관리할 생각이에요.”

멜리사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는 말에 조연주는 희망을 가졌는지 제법 예의 있게 설명을 해왔다.

앞으로 더 철저하게 관리해서 투자 정산금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뜻인 것이다.

이번 일을 투자자의 걱정으로 수습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바램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도움을 준 거라고 몰아가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 시시하게 끝낼 순 없지. 그럼 재미가 없잖아.’

비앙카가 씨익 웃으면서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에어플레인은 매력적인 남자들이니까요. 누구든 반짝이는 그들을 보면 소유욕을 느낄 수밖에 없죠.”

“…….”

조연주의 몸이 움찔 떨린다.

비앙카가 뭘 염두하고 말했는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비틀린 소유욕이죠. 보석은 떨어진 위치에서 지켜볼 때 가장 밝은 빛을 내는 법입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보여주는 것보단 나만 볼 수 있는 장소에서 나만을 위해 빛을 내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바로 제가 그렇죠.”

조연주 이사와 비앙카 사이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진다.

조연주는 비앙카가 더 이상 자신의 속내를 숨길 생각이 없음을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번 일을 해결한 이유가 보석을 손에 넣고 싶은 비틀린 소유욕 때문이었군요.”

“이번 일을 투자금 때문으로 몰아가는 건 너무 수가 뻔했어요. 조금 실망이네요.”

“…여태까지 비앙카씨와 저희는 좋은 파트너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 좋은 관계가 망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래요. 앞으로 더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고요.”

조연주는 비앙카의 능글맞은 태도에서 확고한 결심을 읽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붉은 앵두 입술이 흉하게 일그러진다.

“지금 하고 계신 생각을 버리신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서운하네요. 이번 일 수습한다고 들인 게 얼만데요. 걔네들이 겉으로 보기엔 한심한 망나니여도 자칫 잘못하면 얽혀있는 가문들 전부랑 척을 질 수도 있는 일이었어요. 투자 된 돈으로는 환산 할 수 없는 손해죠. 사실 특별하고 아름다운 보석을 얻는데 들이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보석의 가치가 커지는 법이니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연주 이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길 바랐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정답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비앙카는 조연주 이사가 어떻게 나올지 느긋하게 지켜봤다.

사실 비앙카는 조연주가 주인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모르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후후후, 재밌어. 난감해 하고 있네.’

앞으로 에어플레인을 자신의 보호 아래에 두기 위해서라도 조연주의 협조는 반드시 필요하다.

비앙카가 처음부터 솔직하게 진해솔과의 친분을 털어놓고 그룹을 지켜주기 위해 대외적으로 스폰서가 되어 줄 거라고 말했다면 이런 날선 대화는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거다.

‘좀 더 꿈틀거려봐. 주인님께 어울리는 여자인지 확인을 해봐야 하잖아.’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든 건 순전히 비앙카의 취향 탓이었다.

스폰 문제로 깔끔하다고 소문이 나 있는 허니 엔터의 민낯이 궁금했던 비앙카는 정말 소문대로 당차게 나오는 조연주 이사의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앞으로 비슷한 위협이 계속 될 텐데, 나 같은 권력자가 스폰을 해준다면 환영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가문의 힘까지 써서 에어플레인을 지켜냈다.

이번 일로 경고가 되긴 했지만, 꾸준히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이번처럼 또 접근하려고 간을 보는 것들이 생길 거다.

그래서 조연주 이사에게 만남을 요청한 거다.

에어플레인의 비공식적인 스폰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득과 실이 분명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연주 이사가 거절을 해대니 살짝 어처구니가 없었다.

‘주인님을 확실하게 지켜줄 생각인 건 마음에 들지만…. 저렇게 뻣뻣해서야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조연주가 아무리 비즈니스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출신의 한계는 있는 법이다.

저런 뻣뻣한 태도로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앙카는 확신했다.

‘저 여자, 뭔가 숨기는 게 있어.’

비앙카의 날카로운 촉이 예민하게 쫑긋 섰다.

? ? ?

달칵­

잠시 대화가 소강 상태에 이르렀다.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한 두 사람.

비앙카가 먼저 입을 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바라는 걸 털어놓을게요. 제가 갖길 바라는 보석은 진해솔이에요. 그 아이의 스폰이 되면 다른 멤버들도 함께 지켜주겠습니다.”

진해솔만 희생하면 다른 멤버는 안전해질 수 있다.

‘이보다 자비로운 제안은 없을 거야.’

사정을 모르는 조연주도 비앙카가 많이 양보했다고 생각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연주는 단호하게 거부를 표했다.

“저희 회사는 투자는 받아도 스폰서를 따로 두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런 의미로 투자를 하신 거라면 투자금은 회수시켜드리겠습니다.”

투자금 회수라는 꽤나 큰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선언을 하며 말이다.

“고작 돈을 되돌려 받는 걸로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스네이크 클럽을 해체시켰다는 의미를 모를 사람이 아니잖아요. 고생해서 키운 회사던데 괜찮겠어요?”

“!!”

누가 봐도 협박이었고, 그 협박을 얼마든지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비앙카였다.

조연주 이사가 아무리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가문을 등에 업고 있는 비앙카 케이의 압박을 견디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비즈니스를 하셔야죠. 남자를 돈으로 사고 싶으면 창관을 가시면 되고요.”

조연주 이사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법 당차잖아? 좀 더 긁어볼까?’

비앙카가 속으로는 사악하게 웃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티내지 않고 오히려 화가 잔뜩 났다는 듯 연기를 시작했다.

“날 모욕하는 건가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애초에 이런 협박에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 만든 회사가 허니 엔터이다.

수없이 들어오는 스폰 제안에서 회사와 소속 연예인들을 지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성미가 급한 누군가는 직접적으로 손을 써서 연예인을 납치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소속 연예인들을 지켜냈다.

그렇게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다져 온 튼튼한 인맥 덕분이 컸다.

“스네이크 클럽처럼 더러운 곳에 걸리는 것보단 제 스폰을 받는 게 훨씬 깔끔하고 안전하다는 걸 알 텐데요? 멤버들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아이들은 믿습니다. 스네이크 클럽을 해체 시켜주신 건 여전히 감사합니다만 저희 애들은 예술가이지 몸을 파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회사에 대한 위협은 저희 회사를 지켜주시는 많은 분들의 우려를 살 겁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신과 대등한 상대랑 싸우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자존심 싸움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계산이 서지 않는 대상과의 싸움은 부담이 컸다.

“아~! 들어 본 적 있어요. 스폰서 문제에 깨끗한 이유가 회사를 지켜주는 인맥이 있어서라고요. 그 사람들한테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번 일도 해결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도움을 받으면 더 편하게 해결이 되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 능력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 되네요.”

조연주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에 비앙카는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실할 수가 없었다.

“순진한 생각이네요. 아니면 뭔가 숨겨둔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요?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에요?”

아무리 회사에서 소속 연예인들을 보호해주려고 애쓰는 편이라지만, 엔터 회사가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다는 게 오히려 의심을 일으켰다.

‘여태까지 스폰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이쪽에서 구질구질하게 구는 년들이 얼마나 또라이인데.’

남자 밝히는 년이 권력까지 있으면 답이 없는 법이다.

그런 또라이들을 문제없이 상대해왔다는 게 이상한 거였다.

‘진작 의심했어야 했는데, 주인님 여자라서 너무 조심했어.’

조연주 이사를 좀 더 확실하게 조사했어야 했다.

“숨겨둔 비밀이라뇨. 정말 그런 게 있다면 좋았겠네요.”

“…알겠어요. 재밌는 대화긴 했네요. 잠깐 전화 좀 가능할까요?”

“전화를…? 하, 그러세요.”

비앙카를 바라보는 조연주 이사의 눈빛이 미묘해진다.

‘날 또라이 취급하는 눈빛이네? 흐흥, 재밌어라.’

비앙카는 희희 웃으면서 통화 연결을 했다.

몇 번의 연결 시도 끝에 이어졌다.

비앙카는 지금까지 했던 표정 관리를 풀어버리고 통화를 스피커로 바꿔버렸다.

­여보세요?

“나야.”

­어, 알아. 무슨 일이야?

조연주 이사는 통화를 스피커로 하는 비앙카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다.

‘하읏♡ 저 눈빛 너무 좋아.더 괴롭혀주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여기까지 해야지.’

멜리사 앞에서 꼴사납게 혼나는 꼴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비앙카는 속으로 아쉬움을 달래면서 말했다.

“지금 내가 누굴 만나고 있는지 알아? 맞춰볼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왜 반….

“인사해! 네 회사 조연주 이사님이야!”

­…뭐?

그렇게 비앙카에 의해 난데없는 삼자대면이 시작 되었다.

물론 한 명은 핸드폰 안이었지만 말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