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화 〉 #47. 망나니 재벌들 (10)
* * *
돈을 조건으로 내거니 지들끼리 신나서 놀아댄다.
보상으로 쿨하게 스테이지에 돈을 뿌린 칸나는 자기 할 일을 끝냈다는 듯 다시 자리로 돌아와 술을 홀짝였다.
적당히 자리를 지키다가 나갈 생각으로 말이다.
“괜찮아? 미안, 알아보니까 오늘이 처음이었다네?”
“신경 안 써.”
“걔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됐다니까.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칸나는 친구에게 선을 그었다.
“그럼 뭐가 상관있는데?”
“응?”
“요즘 넋을 빼놓고 다니잖아. 왜 그러는지 알려줘.”
칸나는 친구의 참견에 짜증이 팍 올라왔다.
“굳이? 너야 말로 왜 이래? 내 사정을 왜 자꾸 알고 싶어 하는 거야.”
“친구니까 그렇지!”
친구라서 궁금하다고?
칸나는 말이 안 되는 핑계라고 생각했다.
사실 얘가 유난히 자신에게 치대는 편이긴 했다.
그냥 성격이 그런 거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내가 싫다잖아.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어?”
“야, 말이 좀 심하다? 나 서운해지려고 그래.”
유난히 저자세로 나오는 게 슬슬 거슬릴 정도였다.
설마 얘…?
“너 우리 언니랑 따로 만나?”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하, 됐다. 솔직하게 털어놓을 리가 없는데. 나 이제 가도 되지? 충분히 친구로서 자리 지킨 거야.”
“자, 잠깐만! 칸나! 오늘 부른 남자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거면 나랑 나가는 건 어때?”
“…너랑 나가자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굳이 왜 그래야 하지?
의심스럽다 싶더니 점점 더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다.
“너랑 나가서 뭘 하는데?”
“응? 뭐 그냥 같이 노는 거지. 헤헤.”
멍청하게 웃는 꼴이 우스꽝스러운 광대 같다.
“넌 자존심도 없니? 싫다는데 왜 매달려?”
“여기서 자존심이 왜 나와. 그냥 놀자고 하는 건데. 내가 재밌게 해줄게. 클럽 해체 돼서 너도 심심하잖아. 걔네들이 답 없는 망나니들이어도 재밌게 해주는데는 탁월했는데 말이야.”
칸나의 친구는 2티어 애들이 더럽게 노는 걸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클럽 해체로 가장 몸이 닳은 건 이 친구였을 것이다.
그러니 다들 몸 사리고 자제하고 있는 지금, 굳이 나서서 클럽에서 파티를 주최한 걸 테고 말이다.
“더럽게 노는 거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너야 재밌었겠지. 나는 그때도 별로 재미없었어. 네가 말하는 재밌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난 빼고 해.”
칸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는 마음이 다급해졌는지 나가려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더러운 거 보여주려고 한 거 아니야! 뭐랄까,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거라고 해야 할까? 참 좋은 건데, 이게 설명하기가 차암~ 어렵네. 그래도 지금처럼 남자 데리고 노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질 수 있어. 그건 장담해!! 내가 여러 번 해보고 노하우 배워왔거든?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
필요없다.
기분 좋아지는 거라면 약밖에 더 있겠나.
얘가 갈 때까지 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나 슬슬 짜증나려고 해. 뭐가 됐든 관심 없어. 집에 갈 거야. 그러니까 놔.”
붙잡힌 손목을 툭툭 치면서 친구를 째려봤다.
칸나의 매서운 눈빛에 움찔 몸을 떤 친구가 애절하게 말했다.
“지금 가버리면 또 언제 얼굴 볼 수 있는데!”
“새삼 내 얼굴은 왜 보려고?”
“아지트에서 매일 만나서 같이 놀았잖아. 너는 안 서운해?”
여태까진 별다른 일이 없을 때마다 클럽 아지트로 가서 놀았다.
생각해보니 그녀 인생이 특별할 게 없는 생활이었던지라 거의 매일 아지트에 가서 놀았던 것 같다.
거길 가면 적어도 시간은 잘 갔기에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클럽이 해체 되면서 아지트가 전부 뒤집혔다.
이제 그곳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아지트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랑 꼭 매일 만나야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
칸나는 곧 상황파악을 끝내고 친구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다.
‘저 말 뜻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 언니한테 갖다 바쳤다는 거잖아?’
괘씸하다.
그래도 나름 친구라는 카테고리에는 넣어뒀었는데!
“너랑 이제 친구 안 해. 그럼 네가 서운해 해야 할 이유도 없고, 날 신경 쓸 이유도 없어진 거 맞지?”
“카, 칸나?!”
칸나가 매섭게 친구의 애처로운 부름을 한 귀로 흘려버린 칸나가 클럽을 나가버렸다.
자신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모른 채로 말이다.
? ? ?
안녕.
만나서 반갑습니다.
악수 하지 마!
이걸 견제한다고? 너무 빡세게 관리하는 거 아니냐?
녹음 스케줄이 끝나고 나선 뮤비 촬영에 며칠을 보냈다.
덕분에 XMonster와의 약속은 계속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뮤비 촬영을 전부 하고 나서야 엑몬과 구체적으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 약속 장소에 따라오겠다고 장담했던 셰인이 함께였다.
멤버들 모두가 온 건 아니었고, 깔끔하게 제키와 나 둘이서 엑몬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갔다.
편하게 로잘린이라고 불러. 그게 내 본명이거든.
XMonster, 그러니까 로잘린은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겼다.
그녀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문신이었다.
온 몸에 문신을 하고, 몸매 자체가 근육질이기까지 했다.
그뿐인가?
타고 오신 게 바이크인 거죠?
그녀는 등장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응, 내 애인이야. 섹시하지?
엄청 멋있네요.
바이크에 관심이 없었는데 로잘린이 타고 온 바이크가 워낙 멋있어서 시선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물론 바이크만 시선을 끈 건 아니다.
남자는 바이크에 별로 관심 없던데, 의외네. 한 번 태워줄까?
그래도 초면인데, 괜찮을까요?
괜찮고말고. 너 같은 미인 뒤에 태우고 타면 어깨가 으쓱해지거든.
가슴골이 전부 드러나는 푹 파인 나시에 검은색 가죽 자켓을 입고 있었고, 하의도 착 달라붙어서 그녀의 탄탄한 허벅지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과 골반이 유난히 컸고, 허리는 굉장히 잘록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누나, 쟤를 왜 태워! 태우지 마!
아유, 우리 왕자님 또 질투야? 귀엽기는.
로잘린은 셰인이 질투를 하자 익숙하다는 듯 깔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나시 티에서 두 개의 툭 튀어나온 굴곡을 목격할 수 있었다.
‘속옷을 안 입었네.’
딱 봐도 그런 자잘한 거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기에 납득이 됐다.
다만 본능적으로 저 나시 티 안에 숨어 있을 유두가 어떤 색깔일지 궁금해졌다.
퍽!
!?
그때, 셰인이 테이블 아래로 내 정강이를 가격했다.
눈빛이 불손하잖아!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
아르릉!
셰인이 내 생각을 엿들을 수 있었다면 정강이가 아니라 가운데 다리에 발을 날렸을 것이므로 폭력을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더군다나 저 모습이 제 누나를 지키려는 강아지의 하찮은 발버둥으로 보였으므로 화도 나지 않았다.
뭐한 거야? 설마 때렸어?
누난 몰라도 돼. 그리고 내가 말 했지? 바이크 아무나 뒤에 태우지 말라고.
너 몰래 남자들 자주 태우고 다니는데?
누나아아!!
셰인이 빡세게 관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썩 효과적인 관리는 아닌 것으로 보여서 짠한 마음도 들고 말이다.
너희 둘 다 작곡한다며?
네.
나한테 원하는 건 역시 곡 피드백인가?
로잘린은 익숙한 요청인 듯 덤덤해보였다.
하긴, 빌보드 작가인데 주변에서 얼마나 시달렸겠나.
작곡 지망생들은 언제나 넘쳐나고, 그 중 극소수만이 프로 작곡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프로 작곡가에게 자신의 곡을 평가받을 기회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자신의 곡이 얼마의 가치를 가졌는지 궁금하니 말이다.
아뇨, 피드백이 아니라 서로 작곡가로서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계획했던 대로 내가 셰인을 맡아서 정신을 쏙 빼놓는 사이에 제키가 로잘린과 친분을 쌓기로 했다.
셰인은 눈을 번뜩이고 귀를 쫑긋거리며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게 보여서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발로 툭툭 녀석에게 시비를 걸었다.
‘흐즈므르.’
셰인은 아까 내 정강이를 때린 전적 때문에 내가 툭툭 건드리는 것을 꾹 눌러 참는 눈치였다.
나는 실실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나에게 온 신경을 다 썼는데, 이젠 나를 견제하느라 정신이 없다.
사실 전부터 제키보다는 나를 더 많이 경계하는 편이었던 셰인이다.
메롱.
씨이!!
너 줌베이랑 키스해봤어?
내 말에 셰인 꼬맹이의 눈이 2배가 된다.
귀가 빨개진 녀석이 더듬으며 말했다.
가, 갑자기 그런 말을 묻다니!! 천박해!
혹여나 누나가 들을까 걱정이 됐는지 힐끔 누나를 보면서 아르릉댄다.
뭐야, 아직 키스도 못해본 거야? 의외네~ 줌베이라면 사귀자마자 덮쳤을 줄 알았는데. 아니면 네가 너무 선 그은 거 아니야? 네가 화낼까봐 시도도 못해본 걸지도?
…줌베이한테 화낸 적 없어.
거짓말을 너무 태연하게 하는 거 아니야? 너 처음에 작업실 쳐들어와서 줌베이한테 화냈었어.
내가 셰인의 정신을 쏙 빼놓는 사이, 제키는 로잘린과 문제없이 대화를 나눴다.
다행이 대화가 생각보다 잘 통하는 듯했다.
꼬맹이가 중간에서 방해하지만 않으면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듯 하다.
그땐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 그리고 사과도 했고!
반성하는 모습, 매우 좋아.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왜 아직도 키스를 못했는데?
그, 그건….
형이 연애에 좀 탁월한 편이거든? 나 같은 사람한테 상담 받는 기회, 흔치 않다?
네가 그렇게 연애를 많이 해봤어?
이 질문에는 굳이 입 아프게 긴 말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 얼굴 안 보여?
깜빡깜빡
보란 듯이 생글 웃으면서 눈을 깜빡여주니 그걸 본 셰인이 잠깐 넋을 놓는다.
남자라 해도 이 얼굴의 위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뒤늦게 정신이 든 셰인은 내게 홀렸다는 걸 한껏 분해하더니 말했다.
그래서 뭐 어떻게 조언해줄 건데?
제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누나의 눈치를 힐끔 보며 한층 목소리를 더 낮춘다.
누나에게 자기 연애 얘기를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정이었다.
줌베이랑 키스하고, 그보다 더한 것도 해보고 싶지 않아?
내가 여자도 아니고! 그런 생각 안 해!
와~ 줌베이가 왜 아무것도 못했나 했더니 역시 너 때문이었구나? 너 평생 동정으로 살 거야? 남들은 키스에 섹스까지 다 해봤을 텐데?
아예 안 한 다는 말은 아니잖아. 너처럼 천박한 생각은 안 한다는 뜻이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될 거라고.
쯧쯧, 역시 아직 어리네.
셰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는 한껏 여유 있는 표정으로 셰인을 놀렸다.
작곡 지망생이라며. 연애가 작곡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되는데 그걸 감나무 아래에서 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냐?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나보고 줌베이한테 키스하라는 뜻이야?
아마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걸? 네가 뭘 상상하든 그것보다 실제로 해보는 게 훨씬 더 좋을 거야. 그리고 좋은 남자가 되려면 여자를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여줘.
이곳 여자들은 성욕이 강하다.
셰인은 별 생각이 없어도 줌베이는 그렇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 부분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는지 셰인이 깜짝 놀란다.
정말 줌베이가 너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자들은 다 그래.
지구 출신인 나는 안다.
단순히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해한다고 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줌베이는 한창 때 나이다.
아마 상상 속에선 셰인과 이런 짓, 저런 짓 다 했을 터.
네가 그런 행위에 거부감을 보이면 아마 줌베이는 시도도 못할 거야. 너도 키스가 역겨울 정도로 싫은 게 아니라면 좀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줘. 보통 여자들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고.
신호라고? 무슨 신호?
그건 네가 생각해봐야지. 정말 줌베이가 신호를 보낸 적이 한 번도 없어?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게 줌베이한테는 엄청 용기내서 한 행동일지도 몰라.
!!
셰인이 심각해져서 생각에 잠긴다.
한창 때인 줌베이와 연애를 했는데 여태까지 키스를 못해봤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
분명 셰인이 신호를 못 알아차리고 쳐냈을 게 분명했다.
셰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기억을 뒤져보니 혹시?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설마 그게 신호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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