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화 〉 #48. 아가씨들의 남자 (6)
* * *
칸나는 이미 비서의 보고를 받아 트럭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나는 푸드 트럭을 돌리지 못하도록 했고, 자신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대기하게 했다.
‘얼굴 한 번 보는 게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해야 할 일이야?’
칸나는 이미 잔뜩 성이 난 상태였다.
오기와 수치심으로 열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녀는 얼굴 한 번 보기가 대단히 어려운 진해솔을 반드시 만나야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이젠 팬심보다는 ‘네가 그렇게 비싸냐? 그 비싼 얼굴 좀 한번 보자!’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칸나는 입구를 떡 하니 막고 있는 세 대의 푸드 트럭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쳤으면 가만 안 두려고 했는데, 버티고 있었나 보네.’
칸나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비서를 찌릿 째려보고 말했다.
“가서 협상하고 와. 내 통역사 붙여줄 테니까 통역사가 무능해서 못했다는 변명은 안 통하는 거 알지?”
“…네, 아가씨.”
비서가 고용했던 어설픈 통역사는 데려오지 않았다.
괜히 통역사가 긁어 부스럼이 된 말을 한 바람에 체면이 구겨졌다며 칸나가 잘라버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비서는 관광하는 칸나의 옆에서 꿀을 빨고 있던 유능한 통역사를 옆에 끼고 차에서 내렸다.
“제가 말하는 걸 잘 전달해줘야 합니다.”
“그 정도도 못했으면 아가씨 옆에서 계속 일하지 못했겠죠. 걱정하지 마시죠. 그리고 통역을 못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건 아니잖아요?”
통역사의 까칠한 대답에 비서가 시무룩해졌다.
칸나에게 하도 무시를 당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무시를 당해도 반박의 말을 하기 보단 체념을 하게 된다.
저기 저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통역사를 대동해 나타난 비서를 본 트럭 주인이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 ? ?
푸드 트럭이 촬영 현장을 처들어 오고 약 2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소식을 듣고 대기하기 시작한지는 40분 정도가 흘렀던 것 같다.
혼란스러웠던 현장 상황을 매니저 누나가 깔끔하게 정리해서 설명을 해줬는데, 이렇게까지 막무가내인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감독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 직접 거기까지 가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셨거든.”
도저히 돌아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극성팬.
스태프들이 해결을 하지 못하니 결국 현장 책임자인 감독님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스태프들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상태였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극성팬은 경찰을 부르기 전까지 갈 생각이 없는지 감독님의 등장에도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단다.
결국 열 받은 감독님이 온갖 욕을 다 뱉어내며 쫓아내려 했다.
“생긴 건 엄청 순하게 생겼는데, 성깔이 보통이 아니야. 욕을 그렇게 쏟아 부었는데, 하는 말이 난 당신네 말 모르겠고, 얼마면 되는지 말하라더라.”
“돈이 뭐 얼마나 많길래 그런 소릴 한 대? 그럼 한 1억 부르지 그랬어.”
“그렇지 않아도 감독님이 1억 부르셨지. 그랬더니 화색이 돼서 어디로 사라졌어.그래서 지금 다들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중이야.”
“...에이, 설마."
"설마가 설마로 안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해솔아."
"진짜 1억 가져올 것 같아?”
“응. 그 팬, 절대 정상 아니야.”
매니저 누나의 예감은 정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극성팬이 돈을 들고 현장을 다시 찾은 것이다.
“예? 돈을 가져왔다고요??"
나와 함께 있던 매니저 누나는 전화를 받고 또 다시 밖으로 불려 나가야 했다.
"진짜 돈 가져왔대?"
"미치겠다. 어.진짜 1억을 갖고 왔대.”
“하, 그냥 내가 나가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 팬이 당당하게 1억을 그것도 현금으로 가져왔단다.
감독님이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걸 모를 수가 없는데도, 이렇게 행동한다는 건 정말 나를 보기 전까진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거였다.
내 말을 듣자 주변 사람들이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감독님한테 말해서 오늘 촬영은 접는 걸로 하자고 할 거야. 당분간 스케줄이 좀 꼬이긴 할 텐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네가 좀 참아줘. 괜찮지?”
“이대로 촬영을 아예 접는다고?”
“잘 생각하셨어요. 저도 협조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주아 배우님.”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죠.”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절대 그 팬과 나를 만나게 할 생각이 없는지 철벽을 쳤다.
“너 차로 가있어. 혹시 모르니까.”
“제가 챙길게요.”
“감사합니다.”
매니저 누나가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러 사라졌다.
우리는 일단 안전한 벤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해 말했다.
“촬영을 접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그냥 경찰을 부르면 될 것 같은데.”
“경찰 오면 기자들이 냄새 맡아. 뭐 이미 소스가 들어갔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여기서 경찰이 출동하면 기사에 ‘그 단어’가 들어갈 거잖아.”
경찰에 출동했다고 하면 기자들이 아주 좋아할 거다.
기사 제목에 ‘경찰’이 들어간 순간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큰 범죄 사건으로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흐음, 그건 또 그러네.”
“아무튼 네가 해결하겠다면서 나서지마. 그러다가 큰일 당해. 네가 아직 스토커들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러는데, 걔네들 절대 우습게보면 안 돼.”
“당연히 잘 알지. 여태까지 우리한테 붙은 스토커만 몇 명인데.”
“뭐야, 있었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그런 소리 한 적 없잖아.”
“좋은 일 아니니까 말 안 했지. 그러고 보니 누나도 스토커 조심해야겠네.”
“네가 구해준 집이 워낙 보안에 뛰어나서 걱정 없어. 그나저나 너 괜찮은 거 맞아? 회사에서 잘 지켜주는 거 맞는 거야?”
“내 걱정 쓸데없으니까 안 해도 돼. 알잖아? 그리고 방범 시스템은 확실하게 해놨어.”
평범하게 숙소에 설치되어 있는 방범 시스템을 믿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정말 효과적이었다면 여태까지 많은 스타들이 스토커들과 무단침입을 해내는 극성팬들 때문에 고통 받을 일이 없었을 거다.
광기에 찬 팬들은 상상을 뒤집는 행동을 해내곤 하지 않은가?
적어도 우리 그룹은 숙소에서 무단침입을 당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무단침입이 절대 불가능하게 만들어 놨다.
‘입구 자체를 못 찾을 테니까.’
우리 숙소를 찾으려다가 복도와 계단, 엘리베이터만 주구장창 타다가 혼란을 느끼고 도망가게 될 것이다.
허락 받지 못한 사람은 출입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놨기에 그렇다.
‘실제로 그렇게 빙빙 돌다가 경찰에 신고 받고 잡혀간 팬들이 많지.’
경찰서에 잡혔다가 훈방 조취 된 극성팬들이 인터넷에다가 자기 경험담을 적었다가 뭇매를 맞았던 적도 있다.
팬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사생활을 캐내려는 극성팬들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리스크였다.
“혹시 네가 쓰는 그 신기한 물건들 사용한 거야?”
“응.”
“와~ 그건 진짜 잘했네. 그럼 스토커들이 있긴 해도 피해는 없었던 거야?”
“없었어.”
다만 오늘처럼 촬영장을 막무가내로 따라오거나 숙소 앞에서 대기를 타는 극성팬들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미리 대비해놔. 남자 아이돌은 극성팬들 때문에 정신병도 걸린다잖아. 건너서 들었을 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네 얘기 들으니까 덜컥 겁부터 난다. 사실 오늘 일도 나한테는 좀 충격이었거든.”
1억을 나와 만나는데 쓰겠다며 현금으로 가져오는 극성팬의 등장.
주아 누나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도 모두 헉! 하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여기에 있는 사람들 전부 그랬을 걸? 우리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팬은 거의 처음이야.”
외국인이라 이렇게 막나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
문제가 생기면 자기 나라로 도망치면 될 테니 말이다.
차에 타고 한참동안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매니저 누나가 돌아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나는 나와 함께 있어주다가 자기 스탭들이 누나를 찾으러 와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차 안에는 어느새 나 혼자만 남은 채였다.
지이잉
결국 차문을 열고 고개를 빼서 주변을 살피자 귀에 웅성대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났다.
웅성웅성
“아직도 소란스럽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촬영장에 있어야 할 스태프들이 없고 주변이 휑하다.
뭔가 일이 벌어졌구나 직감한 나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도대체 누가 이런 깽판을 부리는지 낯짝이라도 봐야겠는데.”
매니저나 주아 누나 모두 피해 있으라고 했지만, 내가 극성팬을 무서워 할 짬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극성팬이 나를 무서워해야 하는 게 맞다.
내가 괴롭히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상상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스태프들이 어느 한 곳에 뭉쳐 있었다.
덕분에 문제가 일어난 곳을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분명 돈을 주면 안으로 들여보내주겠다고 약속 했잖습니까! 약속을 지키십시오. 당신들 말만 믿고 아가씨를 데려왔는데, 이런 식으로 말을 바꾸면 곤란합니다!
“왜 말을 바꾸냐고 하네요.”
“아니, 시바! 환장하것네. 이봐요, 통역 좀 제대로 해요!! XX!! 내가 그 뜻으로 돈 가져오라고 한 거냐고! 꺼지라는 걸 돌려서 한 말이잖아!”
“전 그냥 있는 그대로를 전달한 것뿐입니다.”
“누가 봐도 비꼬는 말이었는데, 그걸 그대로 전달해놓고 잘했다는 거야 지금!?”
아가씨께서 계속 기다리고 계십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우리 아가씨가 어떤 분이신데 감히 길거리에 세워두는 겁니까!!
감독님의 걸쭉한 욕설이 쏟아진다.
외국인의 현란한 외국어도 쏟아지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약속을 지키라고 하소연하고 있었고, 비꼰 거를 그대로 통역해버린 통역사를 원망하는 감독과 자기 일만 묵묵히 하고 있을 뿐인 통역사의 환상 콜라보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면, 단연코 바닥에 활짝 펼쳐져 있는 검은색 가방이었다.
가방 안에는 묶여있는 오만원권이 바람에 유유히 휘날리고 있는 중이었다.
‘저게 감독님이 말한 1억인가?’
저게 가짜 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고개를 움직여 내 극성팬이라는 사람을 확인했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긴 여자들이다.
나는 상황파악을 위해 옆에 있던 스태프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이 극성팬이에요?”
“그렇죠, 한 명은 통역사고…헉! 해, 해솔씨?! 여기 오시면 어떡합니까? 당장 돌아가세요. 위험해요!”
“계속 기다렸는데 상황이 풀릴 것 같지 않아서요. 거기다가 와보니까 가만히 있다고 해결 될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감독님이 1억 가져오면 허락하겠다고 홧김에 말하는 바람에 일이 좀 꼬이긴 했죠.”
그건 확실히 감독님이 잘못한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말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통역사의 잘못도 있고.
‘물론 돈 주고 날 만나겠다고 떼쓰는 극성팬도 문제가 많긴 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었다.
“극성팬이 원하는 게 뭐에요?”
“밥차는 이제 뒷전이 됐고, 해솔씨랑 만나고 싶다네요.”
“이런 분위기에서 절 만나면 제가 환영이라도 할 줄 아나보네요. 머리가 꽃밭인가?”
나도 사람인지라 촬영을 망치게 만드는 극성팬이 달가울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지금은 화가 살짝 나 있는 상태였다.
“감독님도 해결을 못하시는 것 같으니까 제가 나설게요.”
“안 됩니다! 저쪽은 해솔씨 얼굴 보겠다고 접근했는데, 해솔씨가 나서버리면 원하는 걸 들어주는 게 됩니다.”
스태프는 끝까지 나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스태프의 말을 듣지 않고 큰 소리를 냈다.
“잠깐만요, 저랑 대화 나누시죠.”
“해솔아!! 왜 여긴 왜 왔어!! 내가 가만히 있으랬잖아!”
매니저 누나가 식겁했고, 감독님은 뻘게져서 내뱉던 욕설을 멈췄다.
“해솔씨가 왜 여기에 와! 저것들 좋은 일 시켜주지 말고 차에 들어가 있어요. 오늘 촬영 접을 겁니다. 그리고 야! 경찰 불러!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주겠으니까.”
“감독님, 제가 얘기를 한 번 나눠보면 안 될까요? 촬영이 좀 늦춰지긴 했어도 이런 경우는 심심치 않게 있는 일이잖아요.”
날씨가 예정과 달라져서 촬영 진행이 안 돼서 계속 대기를 타야 할 때도 있고, 계속 NG가 나서 촬영 시간이 세 네 시간 늘어나는 경우도있는 게 바로 현장이다.
현금 1억이라는 자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상황이니 기사가 뜨는 건 99%.
‘이 환장 할 사건에 경찰까지 추가 시키는 건 절대 싫어.’
모두가 반대하는 일이지만, 이건 내가 나서는 게 가장 깔끔하게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생각을 끝낸 내가 스태프들 사이를 가르고 앞으로 나서자 극성팬 일행이 나를 부릅뜬 눈으로 바라봤다.
자, 일단 대화 나누기 전에 교통정리 좀 합시다. 돈 주고저랑 만나고 싶다고 했죠? 이렇게 만났으니까 이제부터이 돈 제 겁니다.
나는 일단 바닥에 외롭게 버려져 있는 검은색 가방을 주웠다.
매니저 누나가 와락 표정을 구기며 나를 막으려고 했지만, 나는 몸을 잽싸게 빼내서 검은색 돈가방을 품에 안았다.
“야, 그걸 왜 챙겨?!”
“돈에는 죄가 없잖아요. 이 돈,고아원에 기부할 거에요. 얼굴 보여주고 받은 돈으로애들이 배부르고 등 따시게 지낼 수 있게 된 거면 의미 있지 않겠어요?그리고 푸드 트럭도 저한테 온 거니까 제 마음대로 쓰겠습니다. 밥차 아주머니, 아는 고아원 있으면 그쪽에다 베풀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깔끔하잖아요. 밥이 많이 식긴 하겠지만요.”
"!!"
우리 쪽에서 저 밥차를 받아들이는 건 절대 안 된다.
날 보는 대가로 가져 온 것이니 야무지게 챙겨서 좋은 일에 쓸 생각이었다.
‘그래야 부정적인 기사가 조금이라도 물 타기 될 테니까.’
나를 엿 먹였으니 자기 돈으로 이 정도 에프터 서비스는 해줘도 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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