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8화 〉 #48. 아가씨들의 남자 (7)
* * *
내가 말한 게 엉망이 된 현장을 가장 깔끔하게 해결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말을 들은 촬영장이 순간 조용해졌다.
감독님은 설마 이걸 들을까 하는 눈초리로 극성팬 일행을 바라봤고, 극성팬 일행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 사람이 진해솔입니까?
사진으로 봤던 그 얼굴 그대로네요. 어…사진보다 더 잘 생겼나?
비켜, 멍청이들아!
그리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한참 뒤에 빠져 있었던 여자가 내 앞으로 나섰다.
드디어 이 얼굴을 보네요. 결국 이렇게 될 거 왜 나를 화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진작 순순히 말을 들었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그 여성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아주 작다는 거였다.
그녀는 키도 작고 체구도 작고 손도 작고 가슴도 작았다!
나는 저러한 여성을 어떻게 일컫는지 알고 있었다.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여자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기도 했다.
‘로리?!’
아현이도 체구가 작은 편에 속하는데, 이 여자는 그녀보다 키가 훨씬 더 작고, 체구도 어린아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설마 이런 식을 저질러놓고 알고 보니 미성년자인 건 아니겠지?
체구는 작아도 얼굴에는 어느 정도 성숙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외국인이라서 성숙한 걸지도 모르니까.’
극성팬 일행의 행동을 보아하니 이 체구 작은 여자가 난리를 피운 주범인 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확실히 가늠이 되지 않아 뭐라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더군다나 저 여자인지 소녀인지 모를 극성팬은 순간 인형인가 오해를 할 만큼 예쁘게 생겼다.
‘진짜 인형은 비앙카인데, 쟤가 더 인형 같네. 성인 맞겠지? 화부터 낼 생각이었는데, 난감하네. 저렇게 어려보이면 화를 못 내겠잖아.’
미성년자를 상대로 화내는 것도 껄끄럽지만, 알려지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다.
얘가 미성년자인지 성인인지부터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차림을 살펴봤다.
일단 귀하게 자란 부잣집 철없는 망나니인 것은 확실하다.
입고 있는 옷부터가 귀티가 좔좔 흘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밥 차 3대를 끌고 오고, 겁도 없이 1억을 현금으로 가져오는 짓을 한 거보면 예사 집안은 아니었다.
‘얘가 멜리사보다 더 심한 편이긴 해.’
멜리사는 투자를 하면서 나와의 끈을 이어가려고 했고, 저 소녀는 민폐를 끼치면서 돌격해왔다.
각자 다른 스타일이니 그에 따라서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게 옳았다.
돈 많은 팬이 날 귀찮게 구는 게 처음이 아닌 만큼, 대처하기 어려울 것도 없었다.
‘비앙카가 날 지켜주기로 했으니 더더욱 그렇고.’
세상에,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실제로 보니까 더 반짝거리잖아.
극성팬 소녀는 나를 구경하며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내가 미술품도 아니고….’
사람 면전에 대고 아무렇지도 않게 구경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확실히 안하무인이 맞는 것 같다.
인형 같이 예쁜 외형과 전혀 그렇지 않은 성격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으~ 이러면 안 되는데. 직접 보니까 더 갖고 싶어지잖아.
나 잘 생긴 건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느끼는 바인지라 그녀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겠다.
갖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극성팬 소녀 뿐만 아니라 같이 온 일행들도 나를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츄릅!
어우, 실물 미쳤네요.
살짝 침도 흘리는 것 같고 말이다.
“해솔아, 뒤로 물러나! 위험하다고 했잖아, 여길 오면 어떡해!
매니저 누나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혹시 모를 육탄 공격에 대비했다.
극성팬들이 급발진 하는 걸 한두 번 보는 게 아닌 지라 매니저 누나의 걱정은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이 극성팬들이 그런 짓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정확히는 한다고 해도 별로 위협적이지 않을 것 같다고 할까.’
더군다나 그런 짓을 하기엔 저 소녀는 너무 귀티가 흘렀다.
마치 귀족을 연상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물론 여태까지 진상을 부린 걸 보면 사람을 외형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다.
비앙카도 인형인데 성격이 파탄 나 있는 것처럼, 인형처럼 생긴 예쁜 소녀의 성격이 파탄 나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인형들 성격은 전부 이런가?’
인형처럼 생긴 사람과 사람이 된 인형 사이에서 비슷한 면을 찾을 수 있다니 놀랍다.
당신을 만나겠다고 내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안다면 깜짝 놀랄 거에요. 너무 애태워서 화가 좀 났는데, 특별히 용서해줄게요. 당신 얼굴을 직접 보니까 화가 다 녹아내리네요.
“…….”
내 이름은 칸나에요. 당신을 만나러 이곳까지 왔죠. 당신은 특별하니까 이름으로 부르는 걸 허락할게요.
자신을 칸나라고 소개한 소녀 극성팬.
당연하지만 이름을 부르라고 해서 진짜 불러 줄 생각은 절대 없다.
‘평생 기억 남지 못할 바에야 돌을 던져서라도 기억 되고 싶어 하는 팬들이 있으니까.’
저런 극성팬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건 포상이다.
절대 해주지 않을 거다.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에요? 영어 할 줄 알잖아요. 어메이징 스타에서 영어 잘 했던 거 알아요. 아! 혹시 주변 사람들이 쳐다봐서 그런 건가요?
극성팬 소녀는 알아듣지 못하는 척 하는 내 행동의 원인을 주변 사람들에게 돌려버렸다.
내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극성팬 소녀가 우릴 바라보고 있는 주변 구경꾼들을 훑은 뒤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보이며 자기 일행에게 말했다.
너는 뭐하고 있는 거야? 여기 주변에 있는 떨거지들 좀 치워! 다 쳐다보고 있잖아.
저 사람들을 다요? 어떻게요?
그걸 내가 알려줘야 해?! 네가 알아서 치워! 내가 이런 곳에서 얘기 나누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줄 알아?
지금 이 자리에서 꺼져야 할 사람은 스태프가 아니라 본인인데, 그걸 끝까지 모르는 척 한다.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가?
‘알아도 상관을 안 하는 거겠지.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를 끼쳐도 상관없어 하는 눈치야.’
아마 자주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다녔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쩔쩔매는 걸 보면 그런 버릇을 들이는데 협조해줬을 것이고 말이다.
어…그럼…으음….
극성팬 소녀의 황당한 명령을 어떻게든 수행하려고 하는 걸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저 여자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기 전에 행동하는 게 나았다.
“나가주시죠. 당신이 바란 대로 제 얼굴 봤으니 된 거 아닙니까?”
어? 말했다. 뭐라고 했어? 왜 영어로 안 하는 거지? 통역사!! 빨리 통역해!!
어…그게….
어서!!!
나,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얼굴 봤으니 된 거 아니냐고요.
여기서 나가자고? 장소를 아예 옮기자는 건가?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 이런 곳은 우리 첫 만남에 어울리지 않는 곳이야.
통역사가 일부러 오해하게 이상한 통역을 한 게 아니다.
옆에 있던 성인 여자는 정확히 해석하고 표정을 찌푸렸다.
하지만 극성팬 소녀는 내가 한 말을 의도적으로 바꿔 해석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해를 해냈다.
아니면 그녀의 머릿속에서 내가 거절하는 모습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걸 수도 있다.
“이상하게 이해를 하는군요. 다시 제대로 통역하세요. 내 촬영장에서 당장 나가라고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면 대단하다고 모셔주기라도 할 줄 알았습니까?”
“해솔아, 네가 직접 나서면…!”
매니저 누나가 말을 세게 하는 날 만류한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단호하게 나서는 게 맞다고 봤기에 누나에게 말했다.
“아니, 누나. 말리지 마. 이 정도 말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거면 차라리 연예인 안 하고 말아. 지금 이 사람들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입었어? 나랑 상관없는 사람도 아니고, 나 보겠다면서 밀고 들어왔잖아. 여기서 내가 쏙 빠진 채로 남한테 일을 미루는 게 더 나쁜 거야.”
“내가 있잖아. 너 대신 내가 하면 돼.”
“누나 말에 설득 될 사람이 아니니까 이러는 거잖아. 그래서 여태까지 해결 못하고 여기 있는 거고.”
“…….”
“지금은 내가 할게. 그게 맞아. 어서 통역해주세요.”
“정말 그대로 통역합니까?”
통역사로 보이는 여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 할 줄 아시잖아요.”
“난 저 사람이랑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습니다.”
“와…괜찮겠어요? 저쪽 가문 좀 대단한데.”
“상관없습니다.”
내 단호한 태도에 통역사가 극성팬 소녀에게 통역을 시작했다.
통역이 전달되기 시작하자 극성팬 소녀의 얼굴이 시시각각 바뀌어가고 있었다.
통역사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적당히 순화를 해서 전달을 해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극성팬의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인상을 와락 찌푸린 소녀가 통역사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통역을 했기에 해솔이가 나한테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제대로 통역해!
뭘 어떻게요?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 줄 알고 놀란 거잖아. 나는 그럴 생각 없으니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 순수한 의도로 온 거라고 말이야.
나쁜 의도로 접근한 게 아니다?
그럼 뭐하겠다고 이 난리를 쳤던 걸까?
“도대체 당신 고용인은 여기에 온 이유가 뭡니까?”
통역사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극성팬 소녀에게 물었다.
만나고 싶어 하셨던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온 이유요.
선물해주려고 온 거지. 그리고 같이 밥 먹으려고.
네? 식사요? 그게 전부라고요?
통역사도, 듣고 있던 나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식사 같이 하자고 이 난리를 친 거라고??
그럼 그게 아니고 뭐가 있는데. 푸드 트럭 보낸 거 보면 대충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니야? 누가 봐도 같이 밥 먹자고 온 거잖아.
…….
“…….”
극성팬 소녀는 역반하장으로 이걸 왜 모르냐며 통역사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녀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모든 사람들의 힘을 쭉 빠지게 만드는 말이라는 걸 모르는 눈치다.
화를 내기 전에 체크할 건 미리 체크해둬야겠다는 생각으로 물었다.
“저 사람, 미성년자는 아니죠?”
“어…네. 당연히 아니죠. 물론 좀 오해할 수 있는 체구이긴 하지만요. 그나저나 식사 하셨습니까?”
통역사는 극성팬 소녀가 바라는 걸 해주고 싶었는지 슬쩍 식사 얘기를 해왔다.
나는 까칠하게 대답했다.
“누구 때문에 못 먹고 있네요. 촬영도 못하고 있고요.”
“크흠. 죄송합니다. 저희도 노력을 안 한 건 아니거든요. 소속사에 전화해서 양해도 구하고 제작진한테 말도 해보고 그랬어요. 근데 전부 거절당해서….”
“거절을 당했으면 포기를 했었어야죠.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 올 게 아니라.”
둘이 무슨 얘기 하는 거야? 나랑 대화하고 있는 거잖아. 왜 네가 마음대로 해솔이랑 대화하는 건데!
오해세요. 지금 같이 식사하자고 제안하고 있었어요.
거짓말 아니겠지?
그럼요.
내가 저 소녀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기로 한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
통역사와 나누는 잠깐의 대화에 발을 동동 구르며 노골적으로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나와 만났는데, 정작 내가 자기한테 신경을 쓰지 않고 엉뚱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니 애가 탈 것이다.
“어차피 식사 못하셨는데, 같이 하는 게 어떨까요? 바라는 걸 이루면 얌전히 돌아갈 겁니다.”
“이런 짓을 해놓고 식사를 하자? 저 아가씨한테 좋은 감정이 하나도 없는데 그런 걸 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가씨가 바라는 걸 해주지 않으면 더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냥 눈 딱 감고 해주고 보내세요. 밥 먹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그냥 돌려보내면 오늘보다 더 귀찮은 일이 생길 겁니다.”
‘먹고 떨어져라!’ 라는 느낌으로 밥 한 번 같이 먹어주고 떨어트리는 게 여러모로 나은 선택인 것은 맞다.
돈이 많은 사람이 귀찮게 굴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바라는 걸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망나니한테는 참교육이 답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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