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21화 (321/849)

〈 321화 〉 #48. 아가씨들의 남자 (10)

* * *

난데없는 극성팬의 등장은 굉장히 짜증나고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손해를 본 건 없었다.

내 사비로 충당하려고 했던 기부금 1억 중에 절반을 소속사에서 부담해주었고, 소식을 들은 멤버들도 십시일반 사비를 보태어 어느덧 기부금은 2억을 넘어 2억5천만 원이라는 놀라운 금액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 금액을 에어플레인이나 소속사의 이름으로 내지 않고 우리 팬들의 이름으로 기부를 했다.

비행기라는 뜻을 가진 우리 그룹의 이름에 맞춰 팬들은 날개를 뜻하는 wing을 팬명으로 정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해준 팬들에게 사소하게나마 우리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됐으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시작은 좋지 않았어도 끝맺음이 훈훈하게 끝났기에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는 촬영장에까지 미쳤다.

‘홍보 효과도 엄청 많이 봤고.’

우리 팬이 아니고서야 내 소식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진해솔이 연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극성팬이 촬영장에서 사고를 친 덕분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풀리게 될 줄은 몰랐어요.”

“호사다마라고 하잖아. 좋은 일에는 방해 되는 일이 많은 법! 우리 드라마가 잘 되려고 이러는구나 생각하자고.”

“예, 선배님.”

“민영씨도 힘내고요.”

“네!”

선배님이 자리를 피해주시니 나와 민영 누나만이 남았다.

주아 누나와 촬영을 할 때도 그렇지만 민영 누나와도 촬영장에서는 적당한 거리감을 두는 편이었다.

조금씩 여지를 주고 지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영 누나는 주변에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쭉 훑어보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띠링­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메시지가 왔거든.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약쟁이 눈나 : 분위기가 좋기는 한데, 그래도 당분간 인터넷은 하지 마.]

[나 : 욕하는 사람들 많지?]

[약쟁이 눈나 : 많지는 않은데, 아예 없지는 않네….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잘했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그리고 악플은 PDF 따서 소속사에 보낼 거야. 전부 고소하자!]

[나 : 머리 아플 정도로 신경 쓰지는 마.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악플은 크게 신경 안 써. 누나들만 나 사랑해주면 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쓰는 악플에 일희일비하기에는 내가 너무 잘났다.

이 세상 사람들 중 누구도 얻지 못할 특별한 힘과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욕한들 우스워 보일 뿐이었다.

‘나 같은 놈은 좀 욕을 먹을 수밖에 없어. 어디 한 구석 부족한 게 없잖아.’

아마 과거의 나였어도 욕을 좀 했을 거다.

질투심과 부러움 때문에라도 말이다.

얼굴도 잘생긴 놈이 가수로서 재능도 넘치는데 다재다능하기까지 하다.

인기는 넘쳐나고, 주변에 아름다운 여자들이 나를 사랑해주는데다가 남들은 쓰지 못할 특별한 아이템들을 이용해서 편하게 살고 있었다.

‘몸무게 조절할 필요 없이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되고, 건강 걱정 할 필요도 없잖아. 거기다가 돈도 잘 벌고 있고.’

초반에 부담을 크게 느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바뀐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삶이 EZ해졌다 보니 여유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욕을 좀 먹어도 사람이 너그러워지게 된다.

물론 선 넘는 추악한 악플을 보면 열이 받기는 하지만 말이다.

[약쟁이 눈나 : 악플보다 선플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한데, 악플 단 사람들이 하는 말 수위가 너무 세졌어. :( ]

[나 : 이번 일이 좀 자극적이긴 했으니까.]

[약쟁이 눈나 : 이럴 거면 그냥 경찰을 부르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어.]

[나 : 경찰을 안 불러서 더 이상 안 얽힐 수 있었던 거잖아. 경찰이 끼어들었으면 지금처럼 깔끔하게 끝내지 못했을 걸?]

[약쟁이 눈나 : 극성팬이 따로 연락 오진 않는다고 했지?]

[나 : 응. 그날 이후로 소식 없어.]

시무룩해져서 돌아갔던 소녀가 새삼 다시 떠오른다.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인형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예뻤던 아가씨.

그 아가씨는 이번 일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중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신상이 퍼져나가지 않고 있는데, 아마 가문이 손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것도 오래 가진 못할 거다.

└해외에서 대박이 났다더니 결국 돌아 왔네 ㅋㅋ 국뽕 기사로 오지게 빨더니 이럴 줄 알았다.

└극성팬 신상 아직도 안 나옴? 배경 ㅈㄴ 빠방 하나 보네.

└면상 찍힌 건 있던데 아는 사람 아무도 없음?

└돈 주면 밥 먹어주는 아이돌이라니? 이거 귀한데…?

└1억이면 식사 해주는 남자 진해솔 ㅋㅋ 껌 값이네. 가서 몸은 얼마에 대주냐고 물어봐라.

└지랄을 한다. PDF 땄으니까 경찰서에 출석이나 해라 ^^

└외국인이라서 신상 파는 게 좀 늦는 듯. 밥 먹자고 1억 쓰는 집 자식이라서 아무도 기사 안 쓰는 것도 있고 ㅋㅋ

└저년 내가 반드시 신상 파고 만다. 시발. 그딴 짓을 했으면서 익명으로 끝낸다고? 절대 안 되지 ㅋㅋ

우리 팬들이 극성팬의 신상을 찾겠다고 두 눈 벌겋게 되어 수사망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살벌하네.’

얘기가 나온 김에 신상이 까발려졌는지 인터넷을 잠깐 들어가봤다.

그런데 여전히 신상은 까발려지지 않았고, 악플로 혼란이 가득하기만 했다.

‘재벌이 이 정도로 대단한가?’

지구에서는 재벌들이라 해도 여론의 표적이 되면 가루가 되도록 까이곤 했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재벌의 힘이 좀 더 강했던 모양이다.

며칠 째 신상이 까발려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기자들이 이번 일에 관련 된 기사를 올리는 빈도수가 적어지고 있었다.

어그로를 끌고 싶어 하는 기사는 극성팬에 주목하기 보다는 내 ‘영웅적인’ 혹은 ‘용감한’ 행동에 대한 칭찬을 중심으로 기사를 쓰고 있었다.

‘기자들은 보통 남의 선행보단 불행을 더 좋아하기 마련인데 말이지.’

누군가가 손을 쓴 티가 난다.

“촬영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기사에 집중하는 것도 잠시였다.

마침 홍보도 잘 됐으니, 이제부터는 드라마 촬영에 집중해야 했다.

? ? ?

민영 누나가 연기하는 강민아는 해맑은 희성을 너무 좋아해서 다소 집착하고, 구속하려는 행동을 보이곤 하는 캐릭터였다.

희성이 잠깐 다른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싫어하고, 그가 어디서 뭘 하는지 시간 마다 체크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문제는 희성이 그런 집착과 질투를 눈치없이 다 받아준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서 강민아가 질투하는 걸 몰라준다.

때문에 가끔은 강한 현타가 그녀를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희성과 직접 만나면 화가 사르르 녹아버려서 헤어지지도 못한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연애가 지속 되었고, 눈 깜짝 할 사이에 희성과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희성과 결혼한 건 문제가 없었다.

아니, 완벽하다고 해도 좋았다.

일어나자마자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볼 수 있는 희성의 얼굴은 환상 그 자체였다.

그런 강민아의 결혼 생활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희성이 폭탄 발언을 한 이후였다.

“나 결혼 하고 싶은 여자가 있어.”

“!!!”

난데없이 떨어진 경악스럽고 끔찍한 발언.

“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결혼? 지금 결혼이라고 했어? 결혼은 나랑 했잖아.”

“응. 여보랑 결혼했지. 근데 자기가 나 결혼했다고 하니까 자기랑도 하자고 하네.”

“자, 자기?”

심장이 쪼그라들다가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고, 열기를 내뿜는다.

얼굴이 빨개지고 금방이라도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누, 누가 자기야?”

“이번에 소개시켜줄게. 내 자기♡”

강민아는 남편의 믿을 수 없는 말에 뒷목을 잡고 그대로 쓰러졌다.

한편, 희성의 ‘자기’인 남소라도 사정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잘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 희성이 뜬금없이 결혼 했다는 걸 알려온 것이다.

“어떻게 나한테 상의 한 마디 없이 결혼을 할 수가 있어?!”

“어…상의를 했어야 했던 거야?”

희성이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붕어도 아니고 입술만 벙긋거리던 남소라는 욱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폭탄 발언을 해버렸다.

“나도 결혼할래!”

“자기도?”

“설마 그 여자는 되고 나는 안 된다고 하지는 않을 거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그렇게 할까?”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자기야?”

“응. 나도 사랑해!”

다행이도 희성은 남소라와의 결혼도 흔쾌히 수락했다.

누가 감히 얌채처럼 새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희성을 빼앗길 순 없었다.

본격적으로 두 여자가 서로의 존재를 깨닫고 부딪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 ?

“솔직히 연기라고 할 것도 없는 것 같아.”

“응?”

“감정이입, 너무 잘 되거든. 언니도 그렇지?”

“나? 나는….”

민영 누나가 우물쭈물 하면서 눈치를 보다가 끝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질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해솔이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오지도 못 했는걸. 만약 내가 강민아였으면 이렇게 싸우지 못했을 거야. 받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

“언니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나만 질투 심한 나쁜 년 되잖아.”

“앗! 그,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자신감 좀 가져! 해솔이는 내 매력에 흠뻑 빠져서 만나주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란 말이야.”

주아 누나랑 첫 촬영을 했고, 다음으로는 민영 누나와 촬영을, 그리고 각자 따로 촬영을 하다가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세 명의 주연이 모두 모여서 촬영을 하게 됐다.

둘이서 있는 게 아니라 셋이 모여 있어서 평소보다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스태프들도 우리들이 따로 친분이 있다는 걸 알아서 수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나저나 누나들 괜찮겠어? 촬영이 많이 격하던데.”

나는 촬영을 하다가 쏙 빠지고 이후로부터는 꽤나 격한(?) 액션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

내 남자를 넘본 년이 누군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평소에도 몹시 싫어했던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오죽할까.

두 여자는 화려한 액션 무빙을 보여주며 격하게 싸우게 된다.

결국 나중에는 서로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구는 것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왜 직접 하겠다고 했어. 다치면 어쩌려고.”

“고작 이런 액션에 몸을 사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직접 하겠다고 했어. 그게 그림이 예쁘게 뽑히기도 하고 말이야.”

“맞아. 그런 걸로 몸 사리는 건 아니지.”

“나 촬영하는 거 보고 가도 돼?”

“그런 험한 걸 보겠다고?”

“희성이는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은데. 여기 대본에 나와 있다시피 엄청 추잡하게 싸울 거야.”

이 세계에서 여자들이 싸우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액션 영화 속에서 꽤 화려한 몸놀림으로 싸우는 건 본 적 있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이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남녀역전인 세상에서 여자들이 어떤 싸움을 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결국 이것도 드라마 촬영이라서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지만.’

처음으로 경험하는 액션씬 촬영.

흥미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주아 누나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힘이 센 편이었고, 내가 해준 건강 관리로 더 강해진 상태다.

민영 누나도 상황은 비슷했다.

나로인해 신체가 바뀌고, 또 꾸준히 관리 되면서 튼튼해지고, 건강해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들어낼 액션 합이 무척이나 기대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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