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31화 (331/849)

〈 331화 〉 #50. 벌 (1)

* * *

비앙카가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읽을 수 있는 ‘불만’에 멜리사는 혀를 찼다.

“한동안 좋아서 죽으려고 하더니, 지금은 얼굴이 썩어 있네? 주인님 결정이 마음에 안 드나 봐?”

까드득­

“…그럴 리가 없잖아. 주인님이 하신 결정인 걸.”

“괜찮은 척 하지 마. 안 괜찮은 거 티 나. 어설프게 감추려는 게 더 꼴사나워 보여.”

멜리사가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닥쳐줄래? 분위기 파악 못하니?”

“분위기 파악 했으니까 이러지~ 아하하!”

메이드 교육을 핑계로 자신을 괴롭히던 비앙카다.

다행이도 과해질 때마다 주인님께서 따끔하게 혼내며 막아주셔서 ‘선’을 넘는 경우는 없었지만, 당한 것은 당한 것.

언젠가는 기세등등해 하는 비앙카 년을 바닥에 굴리고 마음껏 굴려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저년 기술 다 빨아들이고 난 이후에는 반드시…!’

이를 바드득 바드득 갈고 있는 상황에서 비앙카가 알아서 주인님께

그녀가 당하는 걸 보고 있으니 체증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너는 그게 문제야. 주인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데, 거기서 항상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하잖아.”

“한 번도 주인님한테 부탁 받아 본 적 없는 주제에 입만 살았네?”

“…이번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네가 알아서 나선 거잖아!”

“쓸모부터 증명하고 그런 소릴 하려무나.”

아직까지 멜리사는 주인님을 위해 해본 일이 없었다.

그녀가 활약할 때는 침대 위에서 구멍을 대줄 때밖에 없다.

침대에서 주인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메이드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 생각하지만, 침대가 아닌 다른 것으로도 믿음직스럽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비앙카가 해온 것이 있어서일까?

주인님은 멜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단 비앙카에게 먼저 의지하곤 하셨다.

‘예전부터 비앙카가 맡은 영역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서운해.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데!’

케이 가문의 후계자가 아님에도 멜리사는 스스로 일군 많은 것들이 있었다.

뛰어난 투자 감각으로 각종 회사에 투자 된 돈들이 가문 이외의 새로운 권력을 멜리사에게 선사해주었다.

특히 돈에 관련 된 부분은 멜리사가 가장 불만족스러워 하는 부분이었다.

투자 감각은 비앙카라 할지라도 따라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멜리사였다.

지금은 비앙카가 주인님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비앙카에게 맡겨둘 순 없었다.

‘전부 다 빼앗아줄 거야.’

주인님이 갖고 있는 비앙카에 대한 신임을 보란 듯이 빼앗을 것이다.

비앙카의 입지를 조금씩, 조금씩 빼앗아서 마침내 자신이 모두 차지하는 것.

그것이 멜리사가 갖고 있는 원대한 목표였다.

비앙카에게 쓸모나 증명하고 오라는 말로 뼈를 얻어맞은 멜리사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네가 지금처럼 계속 이기적으로 굴면 그 증명이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은데 어떻게 생각해?”

“시발년이?”

비앙카가 욱했는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멜리사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살짝 쫄았지만 멜리사는 의연하게 웃어보였다.

주인님의 노예인 자신을 비앙카가 건드릴 순 없다.

그나마 비앙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메이드 교육’ 시간 때 소소하게 괴롭히는 방법이다.

괴롭힘 당할 때는 괴롭겠지만, 흔치 않게 비앙카를 비꼴 수 있는 이 상황을 포기할 순 없었다.

“주인님 오셨다.”

두 여자들에게서 흐르는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는 주인님이 집에 도착하면서 끊어졌다.

“주인님~”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비앙카를 뒤로 하고, 멜리사는 날개라도 단 것처럼 주인님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 ? ?

“어서오세용♡”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초반 이후로는 들어올 때마다 무릎 꿇고서 날 반기는 짓은 하지 않은 멜리사다.

하지만 매번 쪼르르 달려와 극진하게 나를 모시는 것까지는 바꿀 수 없었는데, 오늘따라 멜리사의 기분이 굉장히 좋아보였다.

“주인님을 보니까 너무 반가워서요.”

누가 봐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넘어가주기로 했다.

“비앙카는 좀 어때?”

기분이 아주 안 좋을 거다.

손아귀에 쥔 장난감을 내가 빼앗아 가버렸으니 말이다.

“제대로 뿔났어요. 어찌나 까칠하던지. 저한테 막 욕도 하고 그러더라니까요? 지금도 보세요. 마중 안 나오고 있잖아요. 어처구니없어, 정말.”

“흠…생각보다 많이 서운했나보네.”

“노예 주제에 너무 건방진 것 같아요. 주인님이 하신 일인데 감히 토를 달다니.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보시는 게 어때요? 저렇게 계속 내버려두면 자기가 주인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줄 알 거에요.”

“…….”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멜리사도 비앙카처럼 악의를 담아 속닥거린다.

이번에도 사심이 듬뿍 담긴 조언이었기에 무시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번 조언에는 귀가 솔깃해진다.

‘진짜 한 번 해야 하나?’

그동안은 좀 섬뜩한 성격을 갖고 있긴 해도 ‘내 편’이라는 확신이 있는 비앙카와 굳이 대거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 그녀의 도움을 받아서 이익을 본 것들이 많아 뭐라 하기도 어려웠고 말이다.

“일단 만나보고 결정할게.”

나는 멜리사의 등을 토닥여서 다독이고 비앙카가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비앙카의 표정으로는 그녀의 상태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네.”

“주인님께서 좋아하는 걸로 잔뜩 준비했어요.”

평소보다는 목소리 톤이 좀 낮았지만, 평소의 비앙카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나에 대한 원망도, 서운함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정갈하게 차려져 있는 음식에 시선을 주기보단 비앙카에게 집중했다.

“괜찮아?”

“그럼요. 괜찮지 않을 일이 있나요, 뭐.”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 게 어찌나 천연덕스러운지.

만약 멜리사의 말을 듣지 못했으면 진짜 괜찮은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거다.

“안 괜찮다고 들어서 그래.”

“…멜리사가 이상한 소리를 했나보네요. 아까부터 절 자꾸 건드려서 걔한테 짜증을 내긴 했어요.”

즉, 자기 기분이 안 좋았던 건 멜리사 때문이지, 나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그녀의 말을 고스란히 믿을 수는 없었다.

“설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거짓말 하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 해.”

“…….”

그동안은 될 수 있으면 명령조의 대화를 지양했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비앙카가 내 명령을 듣고 원망을 담은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기분이 좋진 않아요. 그도 그럴 게 다 끝난 일이었잖아요. 걜 놔준다고 주인님께 이득이 될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놔줬죠. 제대로 된 사과도 안 받으시고 말이에요. 그 쥐새끼한테는 과분한 은혜였어요.”

“그 정도 고생했으면 됐다고 생각해서 놔준 거야. 더 이상 얽히는 것도 싫었고.”

“충분하지 않아요! 아직 더 짜낼 수 있는 게 있었어요!”

“더 짜낸다고? 뭘 짜내?”

“가령 멜리사 뒤를 이어서 새로운 메이드가 됐을 수도 있었겠죠.”

“!!”

여기서 메이드를 더 추가한다고?

근처에서 듣고 있던 멜리사도 깜짝 놀랐는지 반박을 해왔다.

“새로운 메이드? 여기서 메이드를 더 데리고 온다고?”

“주인님을 모시는 메이드를 추가하는 건 당연한 거에요. 둘만으로는 주인님을 모시기 힘들어요.”

등골이 오싹하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니 멜리사를 메이드라며 내게 보여주었던 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진짜 식겁했는데.’

이렇게 되면 칸나를 용서하고 돌려보낸 게 정말 잘한 일이 된다.

비앙카에게 맡겼으면 칸나도 멜리사처럼 개조 돼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는 노예가 됐을 것이 아닌가?

“제법 잘 따라왔을 거에요. 어쩌면 멜리사보다 더요.”

결국 비앙카의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모처럼 발견 한 인재를 놓쳤기 때문인 거다.

메이드가 두 명에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기에 황급히 말했다.

“난 여기서 메이드가 더 늘어나는 건 싫어!”

그녀라면 새로 데려온 메이드도 어떻게 해서든 내 침대에 넣을 거다.

‘멜리사 같은 일을 또 만들라고?’

책임져야 하는 인물이 여기서 더 늘어나는 건 거부하고 싶다.

“정말 저희 둘로는 부족해요. 지금도 보세요! 저희 둘로는 주인님을 완벽하게 모시지 못하고 있어요. 쟤나 저나 운영하고 있는 회사가 있으니까요. 새로운 메이드가 구해지면 좀 더 완벽하게 주인님을 모실 수 있을 거에요.”

“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았어. 메이드 필요없다고.”

“아뇨! 적어도 교대로 주인님을 모시려면 5명은 필요해요.”

비앙카는 메이드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단호했다.

더 이상 메이드를 늘리지 말라고 명령하는 게 좋을까 고민이 됐다.

“그럴 거면 그냥 사람을 고용해.”

“저랑 멜리사가 메이드인데, 고작 돈으로 고용 되는 메이드가 저희 같은 품위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5명이 필요하다는 비앙카가 여태까지 새로운 메이드를 데려오지 않은 것은 눈이 높았기 때문인 듯하다.

비앙카가 칸나를 메이드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은 최소 기준이 칸나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일 거다.

“설마 내 메이드가 되는 최소 기준이 재벌 출신이라거나 그런 거야?”

“정확히 맞추셨어요. 그 정도는 되어야 주인님을 완벽하게 모실 수 있죠.”

얘는 날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걸까?

‘골치 아프네.’

역시 멜리사의 말대로 비앙카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꾸 내 의향은 묻지 않고 자기 멋대로 일을 만드는데, 이대로 계속 내버려뒀다간 큰 사고를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칸나도 날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번 사건을 만들었는데, 비앙카라고 안 그러겠냐고.’

이번 사건으로 충분히 알지 않았는가?

좋은 의도를 담았다고 해서 그게 정말 나를 위해서인 게 아니라는 것을.

“여태까지 너한테 강하게 뭐라고 한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해. 다 나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좋게 넘어갔었지.”

“…주인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비앙카가 당황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앙카의 가까이로 다가가서 말했다.

“혼 좀 나자. 그래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

오늘, 비앙카의 눈에서 눈물을 잔뜩 뽑아낼 것이다.

뼛속까지 사디즘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비앙카에겐 인생 최악의 섹스가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 ? ?

상점에는 섹스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내가 상점에서 구매하는 성인용품 대부분이 내 여자들과 즐겁게 섹스를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거랑, 이거랑, 이것도. 아, 이것도 재밌겠네.”

나는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벌’을 주기 위해 아이템을 구매하고 있었다.

상점에 올라와 있는 물건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위험도가 상승해서 자칫 잘못 쓰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었다.

“주인님, 이거 구경해봐도 돼요?”

"응."

"세상에, 큰 것 좀 봐. 이게 들어가요?"

"글쎄, 오늘 해보면 알겠지?"

멜리사는 비앙카를 혼내겠다는 내 말에 잔뜩 신나 하더니 준비하고 있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서 살가운 애교를 보였다.

그리고 내가 도구를 하나하나씩 꺼낼 때마다 점점 더 텐션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네! 너무너무 행복해요! 그동안 저만 계속 당했잖아요. 그놈의 교육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하긴, 너도 그동안 쌓인 게 많겠구나.”

“네! 엄청요. 오늘 당하는 거 보면 속에 있는 게 좀 풀리지 않을까 싶어요.”

멜리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어찌나 예쁜지.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쪼옥!

“하응, 주인니임~”

“그러지 말고,오늘나 도와줄래?”

“제, 제가요?”

“응. 네가 도와주면 비앙카가 좋아할 것 같거든.”

비앙카를 혼내는 곳에 멜리사가 있으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

역시나 멜리사는 내 말에 큰 상을 받은 것처럼 행복해 하며 말했다.

“당연하죠!! 완전 가능해요. 꼭 끼워주세요!”

이제 준비가 끝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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