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36화 (336/849)

〈 336화 〉 #51. 훈훈한 미담 (2)

* * *

[신스틸러 범인역 배우는 누구?]

[무서워서 식은땀을 흘렸다! 악역 등장에 시청률 순황 중.]

[아동 납치 범죄사건, 단순히 드라마의 얘기가 아니다? 납치 범죄율이 점점 상승하고 있음 드러나….]

[맑은 면만 보여주던 희성의 숨겨진 과거에 시청자들 충격.]

[애처로운 눈물에 희성맘들 철렁~! 오늘도 얼굴 맛집! 시청률 껑충!]

[무명배우 백강이 관심 집중! “도대체 누군데 이렇게 연기를 잘해?”]

드라마 내용상으로 관심을 받은 것도 있지만, 범인 역할을 맡은 백강이 배우의 압도적인 악인 포스에 사람들이 스토리에 깊게 몰입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희성이 처음으로 웃는 얼굴이 아닌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게 했다.

백강이 선배님이 나왔을 때부터 다소 지지부진해지던 시청률이 무려 3%가 껑충 상승했으니 오죽할까.

마침 현실에서도 아동 납치 사건이 심각하다는 게 맞물려서 드라마 홍보가 저절로 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 좋아라 하는데 더 출연시켜야지.”

희성을 구하러 온 강민아(한민영)와 남소라(진주아)에게 제대로 당하고 퇴장했어야 하는 게 백강이가 맡은 캐릭터였다.

경찰에 잡혀서 다시 감옥에 들어가는, 일회성 악역 말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에게 너무 강렬하게 눈도장이 찍히다 보니 본래의 계획대로 캐릭터를 퇴장시킬 수가 없어졌다.

이렇게까지 눈도장을 찍어놓고 허무하게 퇴장시키면 시청자들이 납득해 하지 못할 게 뻔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못 잡는 걸로 가야 하지 않겠어?”

“그럼 드라마가 고구마가 되진 않을까요? 그거 작가님 스타일 아니잖아요.”

사전제작이지만 전부 다 찍은 완전한 사전제작이 아니라 반 사전제작이었기에 드라마 내용을 바꾸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일단 계획대로 퇴장하는 척하고 나중에 다시 나오게 해야지. 마지막에 화끈하게 터트리는 메인 빌런으로 가자고.”

작가님이 시원하게 결정을 내렸고, 곧장 대본이 새롭게 뽑아져 나왔다.

추가 촬영을 해야 하긴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작가님이 능력껏 찍어놓은 분량을 많이 버리지 않고 백강이씨를 다시 등장하게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편, 백강이 배우는 당연히 분량이 늘어났다는 것에 감사하며 촬영장에 나타났다.

메인 빌런으로 역할이 상승했기에 퇴장 장면을 다시 재촬영해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촬영장에 등장해서도 한참동안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대로 냅뒀다간 촬영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 달랠 필요가 있어보였다.

“선배님.”

“아! 해, 해솔씨.”

“잘 지내셨어요? 축하드려요.”

“으응…아니야. 나는 아직 이게 무슨 일인가 싶네.”

아직까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나보다.

저번에 촬영을 할 땐 백강이 선배님이 인사를 해도 제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 촬영장에 도착하니 스태프들이 살갑게 인사도 받아주고 축하한다는 인사까지 받으니 얼떨떨하긴 할 거다.

“사실 선배님이랑 찍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연기가 정말 대단했거든요. 역시 시청자들도 다 알아봐줬네요.”

“…정…말요? 나는 그냥 평소랑 똑같이 한 건데.”

백강이 선배님은 갑자기 쏟아지는 주변의 관심과 환대에 적응이 되지 않는 눈치셨다.

여태까지 연기를 해도 남들의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하루아침 사이에 주변이 180도 바뀌니 황망하긴 할 것이다.

‘내가 그 기분 잘 알지.’

평범하게 회사원으로 살아가다가 난데없이 남녀역전 세계로 떨어진 나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다만 계속 어리둥절해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좋지 않았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고, 백강이 선배님은 명품 배우가 될 실력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아무튼 전 조금이라도 더 같이 호흡을 맞춰볼 수 있게 돼서 기쁘네요.”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너무 관심을 주시니까 뭐지뭐지 하다가 촬영장까지 오게 됐거든요.”

“당황스럽긴 하겠지만, 나쁜 일 아니니까 즐기세요. 무서워하지 마시고요.”

“…그러기가 어려워요. 성격이 이렇다보니.”

갑작스러운 인기에 취하는 건 좋지 않지만, 즐기는 건 괜찮다고 본다.

쉽게 오지 않은 기회이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인생에서 몇 없는 순간이지 않은가?

“그래도 좋지는 않으세요?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

TV에 나오는 게 좋아서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무서워하기보단 좋아해야 하는 정상이었다.

“어…조, 좋은가? 으음…아직은 그냥 무섭기만 해요. 특히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오더라고요.”

“전화요?”

“으음, 배역 맡아줄 수 있냐고….”

“와~ 그거 좋은 일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항상 단역이라도 맡으려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캐스팅 하고 싶다고 전화가 왔단다.

물론 대단한 작품은 아닐 거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있어도 일거리가 들어오는 건 선배님 입장에서 천지가 개벽할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고 한다.

“그, 그래서 다 받아버렸어요. 어쩌죠? 촬영이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는데….”

“엑? 그걸 다 받겠다고 했어요?”

내가 깜짝 놀라니 백강이 선배님이 허둥지둥댄다.

정말 연기할 때와 평소 모습이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은 처음이다.

“저는 그냥, 일거리 준다니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다 받지는 말아요. 이곳저곳에서 얼굴 보이는 건 좋지만 아깝잖아요. 엄청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시간이 안 돼서 거절해야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그렇게 대단한 작품에서 저를요…?”

백강이 선배님 표정이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길 리 없잖아?’ 라고 생각하는 게 보였다.

꽤 오랫동안 무명 배우로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바닥 룰은 잘 모르나 보다.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에 한 발 걸쳐서 뼛속까지 쪽쪽 빨아 먹고 싶어 하는 하이에나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뭐, 제가 선배님이었다면 신중하게 결정했을 것 같다는 거죠. 너무 크게 생각하진 마세요.”

“으음…네에.”

“말은 여전히 안 놓으시네요. 다음에 볼 땐 꼭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읏! 네, 네.”

긴장이 풀린 것 같았기에 더 이상 대화를 잇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우리 스태프가 있는 곳으로 오니 매니저 누나가 말했다.

“또 저 사람 신경 쓰네?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나 순간 네 취향이 저런 쪽인가 의심까지 했다니까?”

“선배님이 뭐 어때서? 물론 이성으로 본다는 건 아니지만.”

민영 누나가 생각나서 그랬다는 걸 말할 순 없었다.

이번에 작품을 같이 하는 상대 배우가 워낙 예쁘다 보니 매니저 누나가 나를 관리하는데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따로 친분이 있는 사이이지 않은가?

“연기를 정말 잘해서라고 할까? 아깝잖아. 저렇게 잘하는데 무명인 게. 그리고 잠깐 시간 내서 도움을 준 걸로 좋은 인맥 하나 구했으니 좋지 않아? 이쪽 업계 선배님들한테 잘 보이라면서. 인맥 중요하다고.”

“그건 그렇지. 근데 저 사람이 잘 될지 안 될지는 아직 모르는 거야.”

“연기 봤잖아. 엄청 잘 한다니까?”

백강이 선배님에게 필요한 건 기회였다.

그리고 이번 드라마로 기회를 붙잡았으니 백강이 선배님은 흐름을 타기만 하면 됐다.

? ? ?

“민영 언니가 생각나서 잘 해준 거라고? 차라리 고양이한테 쥐를 맡기지.”

“왜 그래, 진짜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백강이 선배님과 도움을 주는 걸 알고 있는 주아 누나는 새로운 여자를 만드려는 거 아닌가 의심을 했고, 민영 누나는 내 말에 홍조를 띄우며 수줍어했다.

“나는 그 기분 잘 알아. 해솔이가 나한테 손을 내밀어줬을 때, 세상이 변했거든.”

민영 누나는 그때를 떠올리는지 몽롱한 표정으로 황홀해 했다.

“그때 난 해솔이를 질투했어. 처음에는 아이돌이니까 연기를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작품을 망칠까봐 싫어했고, 연기를 잘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땐 너무 잘나서 질투심 때문에 싫었거든.”

“진짜?”

“응, 지금은 엄청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어. 근데 치졸하고 못된 나를 해솔이가 오히려 따듯하게 감싸주더라. 다들 날 무시하는 촬영 현장에서 유일하게 웃으면서 반겨 준 게 해솔이었어. 그땐 해솔이가 천사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을 거야.”

주아 누나가 의외라는 듯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든다.

“쓰읍, 근데 이걸 좋아해야 하는 게 맞나 싶네. 나는 내 여자한테만 착한 남자가 좋단 말이야. 다 흘리고 다니는 거 안 좋아. 가뜩이나 얜 여자 좋아하잖아.”

“아니, 왜 선배님을 여자로 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건 그냥 인성이라니까, 인성?”

“그걸 다른 사람이 해도 얘가 혹시 나를? 이라는 착각을 할 텐데, 네가 그런 행동을 하면 답이 없다고. 이미 그 여자는 상상 속에서 너랑 할 거 다 하고 임신해서 결혼 할 생각에 빠져 있을 걸.”

“그 선배님은 그런 생각 안 하셔. 같이 촬영 해봤잖아.”

백강이 선배님의 생김새는 누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원한다면 민영 누나처럼 얼마든지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네가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은 네 마음이랑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나이 차이가 있는데….”

물론 연주 누님과 관계를 맺는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

“어머? 너 몰랐어?”

“내가 뭘 몰라?”

주아 누나가 주변 사람들 눈치를 슬쩍 보더니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왜 저러나 싶었으나 순순히 귀를 가져다 대니 주아 누나가 말했다.

“피부도 좀 까무잡잡하고 얼굴이 나이가 있게 생기셔서 오해한 것 같은데, 저 사람 나이라고 해봤자 28살밖에 안 됐어.”

“…스물여덟이라고?”

주아 누나의 말을 들으니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린다.

애초에 그런 쪽으로 관심이 없으니 동요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사십은 된 줄 알았는데….

‘도대체 무슨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겁니까, 선배님.’

민영 누나도 나이 부분은 몰랐는지 꽤나 놀란 표정이다.

“정말이야?”

“어. 나도 엄청 놀랐어. 티 안 낸다고 고생 좀 했지.”

“네가 왜 이렇게 걱정하나 했는데, 스물여덟이면 확실히 가능성 있을 것 같아.”

“…….”

민영 누나도 슬슬 위기감을 느꼈는지 눈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혹시 나 질렸어? 내가 잘할게!”

“아니야, 진짜 아니니까 이제부터 이런 얘기 하지 마. 선배님한테도 실례야. 알았지?”

“치잇, 알았어. 나도 우리끼리 있으니까 한 소리야.”

주아 누나가 나한테 심술을 부려도 직접적으로 대상에게 못된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다.

민영 누나도 급발진 하지 않도록 단속을 했다.

“혹시 몰라서 묻는 건데, 민영 누나도 마찬가지야.”

“응응. 빨아줄까?”

“헉! 까, 깜짝이야.지금?!”

저번에 촬영장에서 몰래 했던 거에 재미가 붙었는지 틈만 나면 내게 달라붙었다.

문제는 내가 민영 누나의 유혹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우리 세 사람이 다 함께 촬영을 할 때는 좀 자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둘이서 촬영을 하면 대기 시간에 몰래 사라져서 아슬아슬하게 즐기는 것에 ‘재미’가 붙었다.

누나들이야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고 있지만, 나는 평소에 사둔 아이템으로 주변 사람들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를 해놨다.

우리 세 사람이 스캔들 터지면 진짜 난리가 난다는 걸 알기에 굳이 아이템을 두고 무리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헤헤, 나 목 말라.”

해맑게 웃는 민영 누나를 보고 있으니 아랫도리가 뻐근해진다.

내가 오늘 아이템을 챙겨왔던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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