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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39화 (339/849)

〈 339화 〉 #51. 훈훈한 미담 (5)

* * *

“리얼리티 촬영을 하겠다고 했다면서?”

본격적인 얘기는 멤버들이 모두 모였을 때 진행이 됐다.

“뭐야, 언제 왔어?”

“제키 형!”

제키 빼고 모든 멤버가 오랜만에 모였는데 놀랍게도 귀신처럼 제키가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우리들에게 제키가 시크하게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오늘 아침에 왔어. 와야 할 것 같다면서 부르더라고. 슬슬 한 번 들어가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

“나는 아예 이민 간 줄 알았잖아. 하도 연락이 없어서.”

“작곡에 집중하느라 연락 할 정신이 없더라고.”

제키의 얼굴이 유난히 초췌한 걸 보면 작곡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는 말은 아예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설마 진짜 작곡만 하다 온 건가?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기엔 살이 너무 빠졌잖아.’

정말 그런 거라면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내주리라.

같이 작곡을 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닿고, 몸이 비벼지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

나중에 둘만 있을 때 은근히 찔러보기로 하고, 오랜만에 만난 애들과 해후를 나누기로 했다.

“그나저나 다들 그룹 활동 때보다 얼굴이 좋아졌는데?”

제키 빼고.

“에이, 일하는 게 뭐가 좋아. 혼자서 다니면 얼마나 외로운데.”

“거짓말 하지 마. 넌 유닛 활동하면서. 외로움을 왜 타냐?”

“네가 없으니까 놀려 먹을 사람이 없잖아.”

“와~ 너…!”

남은규의 외로웠다는 말에 강준이 반박을 했다가 은규에게 놀림을 받았다.

만나기만 하면 싸워대던 녀석들은 오랜만에 만나서도 앙칼지게 싸워댔다.

경태 형과 막내인 우연이 사이에 끼여있다보면 중간 포지션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은규가 그 상황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이니까 좋다.”

“제키 형은 얼굴 잊어버릴 뻔했어요. 거기에 꿀 발라져 있다는 건 알지만, 좀 서운하다구여!”

“흠흠, 우리 앨범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얼굴 반쪽 된 것 같으니까 인정해줄게요.”

“맞아, 제키 형은 살 엄청 빠졌어.”

제키의 작곡을 위한 폐관 수련은 빠르게 멤버들에게 인정을 받고 넘어가기로 했다.

“너희 유닛 활동은 좀 어때? 잘 됐다고는 들었는데. 연기 쪽으로도 다들 호평 받았다며.”

해외에 있느라 유닛 활동이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 제키가 멤버들의 근황을 물었다.

“우린 완전 짱이죠! 이곳저곳에서 하도 불러 대서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녔다고요.”

“그것도 그건데, 유닛 활동을 하니까 개인팬이 엄청 생겼어.”

“얘네 선물로 소속사 창고가 터질 뻔했었어.”

콧대 세우며 말하는 우연이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훗! 훗!”

우리를 좋아하는 팬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그룹 전체를 좋아하는 팬이 있고, 멤버 몇몇 혹은 한 명을 좋아하는 팬이 있으며, 좋아함을 넘어 과하게 집착을 하는 사생팬까지 팬의 종류는 다양했다.

그 중 개인팬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아이돌은 역시 외모가 크단 말이지.’

비주얼은 아이돌이 갖춰야 할 스탯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한다.

그렇다 보니 어쩔 때는 실력보다는 비주얼이 팬들에게 더 크게 어필 되는 경우가 있었다.

모두가 인기를 누리면 좋겠지만, 멤버들간의 인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아무리 팬이 많이 생겨도 해솔이 형을 따라갈 순 없지.”

“준이도 드라마 잘 됐어. 나보다는 준이가 이번에 엄청 잘 됐잖아.”

준이가 출연한 작품은 나처럼 시청률이 많이 나온 건 아니어도 매니아들 사이에서 명품 드라마로 칭찬을 받고 있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준이가 연기력으로 큰 칭찬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연기를 얼마나 잘했냐면, 시청자들이 준이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렸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즉, 나는 시청률을 통해 이름값을 올리고, 준이는 연기력을 통해 이름값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간 서로 그루밍 하는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다시 본론에 들어갔다.

“그래서 리얼리티 얘기는 갑자기 왜 나온 거야? 해솔이 형이 건의했다면서.”

상황을 모르는 제키에게 현재 나한테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설명해주었다.

“이해는 되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굳이 그렇게까지 조심해야 돼? 형보다 더 인성 안 좋은 놈들도 밝혀지지 않고 잘만 활동하고 사는데.”

제키는 내가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것 아니냐며 괜한 짓 한다고 말했으나 다행이 다른 멤버들이 내 편을 들어줬다.

“나는 미리 조심하는 게 나쁠 것 없다고 봐.”

“나도 해솔이가 생각 잘했다고 봐. 연예인들 사소한 일로 나락가는 거 많이 봤잖아.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나중에 아니었다는 게 밝혀져도 이미 이미지 손해를 봐서 수습이 안 된다.

그러니 이 부분은 대비를 하고 또 해도 부족하다.

“내 일로만 리얼리티를 결정한 게 아니야. 우리가 개인 활동을 하게 되면서 팬들이 그룹 활동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리얼리티로 달래겠다는 거야?”

“응.”

“제키 형은 오히려 찬성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키 형 팬들이 형 엄청 보고 싶어 하던데.”

“어차피 너희들 활동 끝나면 바로 앨범 준비 들어갈 예정이잖아. 나는 앨범 준비를 좀 미리 하는 거야.”

“팬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다 개인 활동 하는데 형만 잠잠하니까 걱정하고 있을 걸요?”

우연이의 말대로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 제키 때문에 팬들이 그룹 활동을 유난히 그리워하고 있다.

소속사에서 그가 작곡 활동에 집념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이 개인 활동으로 심상치 않은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최애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네 말대로 몇 주 후면 앨범 준비 들어갈 테지만, 그때까지 팬들한테 마냥 기다리라고 하기 미안하지 않아?”

“…그래서 리얼리티로 그걸 달래자고?”

제키도 팬들에게 미안해졌는지 솔깃해한다.

“응. 우리 모습을 유티비 채널에 올려서 우리 근황을 알려주면 우리 그룹 활동을 바라는 팬들한테 위안이 될 거 아냐.”

우리가 어메이징 스타에 출연하면서 해외 팬들이 많이 생겼고, 유티비 구독자 수가 껑충 늘었었다.

즉, 내가 염두하고 있는 팬은 국내 팬뿐만 아니라 해외 팬까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아마 유티비에 자체 컨텐츠를 올리면 많은 팬들이 즐겁게 봐줄 거다.

“나쁘지 않긴 한데…. 그걸 찍을 시간이 돼?”

“바빠 죽겠는데 리얼리티를 거창하게 할 리 없잖아. 시간 많이 들일 생각 없어, 개인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컨셉이 있는데 우리끼리 여행을 하는 거야. 무조건 이걸 하자는 건 아니고, 따로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도 돼. 아직 리얼리티에 대해서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거든.”

“원래 그런 건 유티비 전담팀이 만들어주는 거 아니야?”

“여행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도 여행 좋아요!”

“여행…나쁘지 않을지도.”

20대라면 성별에 상관없이 여행이라는 거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

“휴양지 같은 곳. 별장으로.”

“헉! 별장을?!”

“우와! 수영도 할 수 있어?”

“물론이지, 간다고 결정 되면 무조건 바다 있는 곳으로 갈 거니까.”

참고로 별장은 멜리사가 갖고 있는 별장 중 하나이다.

개인 별장이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걱정할 필요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터다.

“여행 테마는 힐링이거든? 보통 힐링이라고 해놓고 하루 종일 걷고 그런 게 아니라 별장에 도착하면 거기서 여행 내내 있을 거야. 유명한 곳 구경 다닐 생각 없어.”

“별장에서 노는 걸로 리얼리티를 꽉 채우겠다고?”

“유티비에 올릴 만한 분량이 나올까?”

“팬들한테 보여주는 거잖아. 방송 예능 찍는 것도 아닌데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내가 계획한 건 우리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야. 데뷔하기 전부터 데뷔한 이후까지 우리가 제대로 쉰 적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

“…….”

당연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소속사에서 가끔 휴식을 주긴 했지만 바깥에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한 휴식시간이었다.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함부로 밖을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집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심심한 휴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제대로 된 ‘힐링’이라 할 수 없다.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당장 하러 가자고 말하고 싶잖아.”

“촬영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떠나고 싶어졌어.”

“우리가 진짜 열심히 달려오긴 했어요. 쉴 자격 있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어?”

“완전 좋은 생각인 듯.”

별장에 바다라는 임팩트가 강했는지 멤버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하다.

리얼리티를 표방한 휴식을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멤버들의 협조를 받아냈으니, 이제 설득할 사람은 회사 사람이었다.

시간 끌 이유가 없었기에 멤버들의 의견이 모이자마자 회사 쪽으로 찾아갔다.

“너희가 알아서 계획하겠다고? 우리한테 도움 안 받고?”

처음에 내 생각을 말했을 땐 철없는 아들 녀석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는 눈빛으로 보더라.

하지만 내가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하니 점점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전문가 손이 닿지 않아서 엉성하긴 하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팬들이나 저희들한테 좋은 추억이 될 거에요. 아직 저희 팬이 된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면 리얼리티를 통해 우리에 대해서 깊게 알게 되는 기회가 되겠죠.”

그 뿐만이 아니다.

제대로 쉬어 본 적 없는 멤버들에겐 재충전의 시간이 될 것이다.

내 말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한 전담팀은 점차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는지 심각하던 표정을 풀기 시작했다.

다만 우리가 모든 걸 다 하겠다는 말에는 끝까지 난색을 표했다.

우리들이 모든 걸 다 하기에는 문제가 될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예 우리 손을 떼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너희들 그걸 어떻게 다 준비하려고. 그럴 시간이 되겠어?”

“제작비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들어간 돈을 뽑으려고 하실 거잖아요. 그리고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들 손을 타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능이 아니니까 준비할 것도 없어요. 그냥 저희가 있고, 찍을 카메라랑 장소만 있으면 되는 거거든요.”

내 말도 명분이 있었지만, 전담팀도 만만치가 않았다.

“너희들이 출연하는 건데 설마 본전 생각하고 투자할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그렇게 간단하게 되는 게 아니야. 너희들 한 번 움직이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는지 알고 있어? 촬영도 그래, 단순히 카메라만 덜렁 가져간다고 좋은 그림 건질 수 있을 것 같아? 촬영 장소 결정하고, 사전 답사도 한 번 해야 하고, 풍경 따려고 촬영 드론도 빌려야 돼. 너희 안전도 중요하니까 그 부분도 신경 써야 하고…….”

전담팀의 입이 한 번 터지기 시작하니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우리는 20대 평범한 남자들이 여행을 떠나듯이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지시킨 것이다.

잔소리는 한동안 계속 되어 예상하지 못한 부분까지 지적이 들어오니 나도 주춤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부담 돼서 싫은 것도 있어요. 막 엄청 대단한 걸 찍는 게 아니라 팬들이랑 저희를 위한 촬영이거든요. 리얼리티 찍는 걸 핑계로 저희가 좀 쉬고 싶은 것도 있어요.”

“후후, 우리가 그 정도를 모를까. 우리한테 맡겨줘. 뭘하고 싶든 참견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해줄게.”

전담팀과의 싸움은 멤버들을 설득할 때보다 힘겨웠다.

결국 서로 반반 물러나는 조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근데 리얼리티로 이미지는 어떻게 바꾼다는 거야?”

멤버들도 그걸 궁금해 했는데, 내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건 보시면 알 거에요.”

리얼리티의 진정한 목적은 스타 에어플레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20대 청춘을 보내고 있는 에어플레인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니 리얼리티가 내 계획대로 진행 된다면 지금처럼 과하게 치솟아 있는 이미지는 자연스레 사그라질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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