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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40화 (340/849)

〈 340화 〉 #52. 또? (1)

* * *

조연주가 화장실을 나왔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작고 길쭉한 ‘그것’을 들어 올려 확인했다.

“시발.”

빼도 박도 못하게 진하게 그어져 있는 두 개의 선.

꼼짝 없이 임신이었다.

‘잘 관리하고 있었는데…. 역시 질내 사정은 못하게 했어야 했나.’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던 건 꽤 오래 전이다.

하지만 항상 바쁘게 돌아다니는 그녀인지라 늘상 그렇듯 피로가 쌓여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리 불균형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뚝 끊긴 생리와 이상해진 몸 상태에 결국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나온 끔찍한 결과.

­아무래도 산부인과로 가보셔야겠습니다.

그렇다.

조연주는 방금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떠올랐다.

일과 결혼을 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녀에게 갑자기 생긴 남자친구.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임신 소식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아이의 아빠가 자신이 관리하던 남자 아이돌이라는 점, 한참 해외 쪽으로 영향력을 뻗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공백이 큰 아쉬움으로 남을 거라는 점 때문이다.

“아가씨,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키는 170cm를 훌쩍 넘고, 어깨에 근육질로 가득한 떡대 큰 여자가 그녀를 반겼다.

사실 이렇게 집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신뢰 관계가 매우 깊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조연주 앞에 있는 장춘 이모는 나이 15살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의 곁에서 경호를 해준 사람이다.

조연주가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았다가 무의식적으로 커피를 들어올렸다.

아침은 항상 간단하게 커피와 샌드위치로 끝내는 그녀였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항상 같았던 식단이 바뀔 수밖에 없어졌다.

황당하게도 자신의 처지가 이제야 현실적으로 와 닿은 연주는 커피를 다시 식탁에 내려놓았다.

임신했을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커피가 좋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었다.

“다시 내릴까요?”

가정부가 걱정하는 눈치로 묻는다.

커피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 마시지 않으니 커피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을 터다.

“아니, 그보다 앞으로 아침 식단은 영양식 위주로 바꿨으면 해.”

“영양식이요?”

“어, 든든하게 영양을 가득 담아서.”

“어디 몸이 많이 안 좋은 겁니까? 보스한테 말씀하셨어요?”

장춘 이모가 아침 식단이 바뀐다는 말에 곧장 반응을 했다.

항상 호들갑 떨며 그녀를 걱정하곤 했던 이모이기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조연주가 대답을 하기 전 깊게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임신을 해서 그래.”

“역시 병원에 가야…예?”

“에?”

가정부와 장춘 이모가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 잠시 후.

조연주에게서 나온 폭탄 발언에 대한 화끈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

“아악!! 아가씨가아!!! 이, 이, 이, 임신…보, 보, 보스으!!! 보스!!!!!!!!”

오류라도 난 것처럼 삐걱 거리던 두 사람이 별 희한한 짓을 하며 경악을 표현한다.

그리고 조연주의 임신 사실은 순식간에 집 전체에 퍼짐과 동시에 그녀의 친모이자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가고 있는 흑곰파 보스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다.

? ? ?

딱. 딱. 딱. 딱. 딱.

일정한 속도로 곰방대를 바닥에 부딪치며 침묵이 맴도는 방안에 유일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임신 소식이 어머니에게 닿자 곧장 본가로 소환이 되었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놀라진 않았지만, 조연주는 오랜만에 느끼는 본가의 공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여전히 우중충하군. 마음에 안 들어.’

문신을 한 떡대 좋은 조폭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집안을 활보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당연한 줄 알았지만,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자신의 집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그녀다.

조연주는 자신의 앞에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 있는 어머니를 응시했다.

“정정하시군요.”

“내가 죽었으면 하니?”

“저번에 배에 칼침 맞으셨다고 들어서요.”

“흥, 그 정도쯤이야 끄떡도 없다.”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정정하기 그지없는 어머니다.

그녀는 일에만 전념하던 딸의 난데없는 임신 소식에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언제까지 말 안 하고 계속 그러고 계실 겁니까. 바쁜 사람 억지로 불러 놓고.”

강한 포스를 가진 조연주의 어머니가 심기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다 보니 주변 공기가 퍽퍽했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연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덤덤했다.

이런 삭막한 분위기야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하게 겪어왔던 일이다.

“임신했으면 건강 관리 할 생각부터 해야지, 아직도 일이 중요한 거냐?”

“맡은 일은 해야죠. 어른이지 않습니까.”

“임신했으니 슬슬 그만둬라.”

“어머니가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매정한 년. 몇 주나 됐니? 이것도 물어보지 말라고 하진 않겠지?”

어머니의 부리부리한 눈빛이 강해지자 조연주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아마 3개월 쯤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꽤나 오래 숨겼구나. 왜 진작 말하지 않은 거냐? 내가 해코지라도 할까봐서냐?”

“그럴 리가요. 어머니가 뭐라고 숨깁니까? 저도 어제 알았습니다. 요새 몸이 좀 이상해서 병원에 가니 산부인과를 가보라고 하더군요. 오늘 예약을 해둬서 나가봐야 합니다. 지금은 임신 테스트기로 임신 여부만 알아둔 겁니다.”

“한심하구나.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도 모르고 있고.”

“어머니가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이 바빠서 임신 사실을 몰랐던 조연주나 그녀의 동생을 임신한 상태로 칼 들고 전쟁을 했던 어머니나.

도긴개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었다.

“애 아빠가 누군지는 아는 거냐?”

“설마 모를까요. 난잡하게 놀지 않습니다.”

“흥, 언놈인지 데려와 봐라. 제대로 된 놈이면 안주인으로 앉혀 놓고, 덜 된 놈이면 가르쳐서 안주인으로 만들어야지.”

어머니가 이렇게 나올 걸 알았던 조연주는 가당 찮은 소릴 들었다는 듯 픽 하고 웃었다.

조연주 어머니가 그걸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버릇 없이 뭐 하는 짓이냐. 바깥에 나돌더니 기껏 가르쳤던 예의를 전부 잊어버렸구나.”

“기가 차서 그렇습니다. 제 남자를 왜 안주인으로 앉힙니까? 제가 집안을 이을 것도 아닌데요.”

가업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취직하기 전.

어머니와는 이미 정리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가업을 잇지 않는 대가로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아무런 유산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임신했다는 말에 어머니가 ‘안주인’ 얘기를 꺼낸 것이다.

“네 동생은 아직 남자가 없지 않으냐.”

“솔직히 말씀하십시오. 남자가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남자를 안 만나는 거잖습니까?”

동생이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험한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걸까?

생명을 잉태하고 있으면서도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고 사람의 목숨을 수확했던 업보가 동생에게 가기라도 했는지, 머리털이 좀 자랐다 싶을 때부터 갖은 사고를 쳐대기 시작했다.

여자들과는 온갖 인성질로 사건 사고를 만들고, 남자와는 더 복잡하게 사고를 쳐댄 것이다.

“어릴 때는 남자한테 당해서 호구처럼 돈을 쏟아 붓다가 차여서 울더니, 요즘에는 남자한테 성희롱으로 고소를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여전히 제 동생님은 어리숙하고 형편없더군요.”

“…네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후계자로 삼는 게 어떨지 생각 중이다.”

“그래도 싸움은 잘 해서 마음에 들어 하시더니, 그 멍청함은 고치지 못했나 봅니다.”

동생을 제대로 된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어머니는 꽤 많은 시간 공을 들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어머니의 상상을 뛰어 넘는 쓰레기가 되었고, 인성은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가 먼저 포기하게 될 정도가 된 것이다.

자신은 지긋지긋해서 도망치듯 나왔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동생 녀석은조폭 두목으론 참 잘 어울리는 년이라 생각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미래를 벌써부터 결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 권리도 없으시고요. 아시지 않습니까?”

권리를 포기한 만큼 자유도 얻는 법이다.

“너한테는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 아이는 네가 아니니 다를 수도 있지 않겠나. 설마 네 자식이 갖고 싶다고 했는데도 반대할 거냐?”

“…….”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미련 없는 척, 아쉽지 않은 척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하는 귀신같은 사람이었다.

“대답 없는 걸 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군. 좋아, 지금은 그걸로 됐다. 하지만 안주인 얘기는 쉽게 끝낼 수 없겠구나. 일단 얼굴이라도 좀 보자. 네가 안 보여준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

조연주가 나서서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직접 나서서 진해솔을 찾아 갈 사람이 어머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견은 아랑곳 하지 않을 거다.

‘어머니가 나섰다가 사람들 시선이 모이기라도 하면?’

조폭과 어울리는 건 진해솔에게 커다란 스캔들이 될 것이다.

차라리 직접 그녀가 나서서 자리를 마련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시간?”

“제가 임신했다는 걸 그 아이는 모릅니다. 그러니 사실을 알리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상황은 뻔해서 듣기 지루하구나. 진지하게 만날 생각이 없는 사이였겠지. 그런데 덜컥 애가 생겼으니 관계가 복잡해져버린 거고.”

“…….”

어머니는 자신을 아주 잘 안다면서 거리낌 없이 추측을 사실인 마냥 내뱉는다.

조연주는 그런 어머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다시 한 번 한 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어릴 때는 정말 어머니가 모르는 게 없는 엄청난 사람인 줄 알았다.

확실히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보스이니 어린 계집아이 심리를 꿰뚫는 게 어렵진 않았을 터다.

하지만 자신은 변했다.

그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던 어리숙한 10대 소녀가 아닌 것이다.

“아닙니다.”

“뭐?”

“가볍게 만나던 상대가 아니라고요.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진지한 관계죠.”

“…네가 그런 사람을 만들었다고?”

“애초에 사람을 만나는 건 일하는데 방해가 돼서 지양하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게 된 남자입니다.”

당황스러운 임신 소식에 동요하다가도 금세 여유를 되찾았던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세워두었던 계획이 엉망이 되었으니 복잡하긴 할 거다.

“그러니 괜히 그 사람한테 수작 부리지 마십시오. 흔들려고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제 아이 교육을 어머니에게 맡길 생각 없습니다.”

아마 어머니는 조연주와 진해솔의 관계가 가벼울 거라 생각했을 거다.

임신은 그녀도 뜻한 바가 없던 일이지 않은가?

더욱이 어머니가 알고 있는 자신이라면 아이 아버지라 해도 새삼스럽게 관계가 달라지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 안주인으로 만들겠다는 걸 핑계로 데려다 놓을 생각부터 한 것일 테고 말이다.

‘아이 아빠를 이용해서 아기를 자기가 바라는 대로 키우고 싶었겠지. 너무 뻔한 수작질이라 짜증나는군.’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어머니가 수작질을 부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막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천상천하 유하독존 그 자체인 어머니이다.

자식 농사를 거하게 실패한 바람에 골치가 많이 아팠을 어머니.

그런데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오죽 좋았을까.

하지만 조연주는 어머니에게 아기의 교육을 맡길 생각이 없었다.

어머니의 자식 교육을 그녀가 몸소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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