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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41화 (341/849)

〈 341화 〉 #52. 또? (2)

* * *

“어째 한 마디도 지질 않는구나. 누구는 자식 낳아보면 엄마 마음을 안다고 하던데.”

“제가 어머니 마음을 알아봤자 뭐하겠습니까? 공감하고 싶지도 않고, 뻔한 일이라 재미없습니다.”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마렴.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거란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를 조폭으로 만들 생각에 빠져 계신 걸 보니 할머니 소리도 오래 듣진 못하시겠네요.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알다시피 병원에 가봐야해서요.”

할 말을 시원하게 다 하고 나서 조연주가 병원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저…!”

어머니가 뒤에서 화를 내는 게 들려왔으나 인사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 나와 버렸다.

달칵­

“후, 너는 벌써부터 날 귀찮게 만드는구나.”

조연주는 살짝 나와 있는 아랫배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마 지금 일은 약과일 것이다.

아이를 직접 눈에 담으면 어머니의 집착은 더 심해질 터.

때문에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기뻐할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태어난 이후에도 아기는 끊임없이 그녀를 귀찮게 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지 않다니. 내가 내 마음을 모르겠군.’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이 싫지만은 않다.

스스로도 이런 마음이 드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나 같은 여자한테도 모성애가 있었을 줄이야.’

아기를 가진 걸로 끝난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그녀는 아기와 진해솔을 위해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와 어머니를 견제해야 하는 앞날에 조연주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 ? ?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에? 갑자기요?”

“응.”

“뭐 그럴 수 있죠.”

임산을 했다는 건 정말 위대한 일이다.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것 정도는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잔뜩 투정을 부리고 뜬금없이 울다가도 먹을 걸 쥐어주면 배시시 웃는 경우(ㅈㅈㅇ)도 본 적 있기에 복순 누나의 변덕이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슬슬 병원 입원해야죠?”

“응. 근데 너 올 수나 있겠어? 촬영한다고 바쁘잖아. 이번에 리얼리티도 찍어야 하는데….”

“회사에 얘기해서 누나 예정일 있는 주는 싹 다 뺐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너 부담 될까봐 그렇지.”

“보살핌 받는 것도 괜찮다 하고, 병원 가는 것도 혼자서 가겠다고 하고. 이젠 출산까지 혼자 하려고요? 누가 보면 남편 없는 줄 알겠어요?”

“야.”

“나 그렇게 못난 놈 아닙니다. 능력 있다고요.”

복순 누나는 연예계 관계자였던 적이 있어서 그럴까?

자신의 일로 내가 피해를 입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나는 그게 ‘여자어’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진짜 누나의 말을 듣고 진짜라고 오해해서 행동해봐라.

나중에 구박을 잔뜩 받을 것이다.

‘이건 그러니까 더 관심 달라는 투정이지.’

가만히 당해주면 한도 끝도 없이 칭얼대기 때문에 지금 이럴 때 불쑥 치고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누나, 출산하고 나서 제 집에 들어올래요?”

“네 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 숙소 살잖아.”

“숙소 말고 다른 집 있어요. 주아 누나랑 정화씨한테도 말할 생각이에요. 같이 살자고요.”

“…말한 것만으로도 인원이 몇 명이 되는지는 알고 있지?”

주아 누나와 정화씨 거기에 태양이.

복순 누나와 곧 태어날 아기까지.

그렇게만 해도 벌써 5명이 훌쩍 넘고 나와 메이드까지 더하면 열 손가락이 거의 다 접힌다.

“그만한 인원이 지내도 널널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에요. 아기들 놀이방도 만들어놨고, 누나가 좋아할 운동방도 있어요. 태양이도 이제 오빠가 되는 건데 같이 자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솔직히 누나 혼자 집에 내버려두는 것도 싫고, 돈 주고 고용한 사람들한테 누나 케어를 온전히 맡기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런 사람들한테 정을 줘봤자 결국 남이잖아요.”

“…….”

복순 누나는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가 오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물론 어머니와 사이가 썩 안 좋다는 것도 거절의 이유 중 하나이긴 하겠지만, 누나의 성향 자체가 남들에게 의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그런 독립적인 성향에서 유일한 예외가 되는 대상이 있었다.

바로 나다.

“내 집에 들어올 거죠?”

“흥, 네 집에 여자들 잔뜩 데려다놓고 끼고 살겠다는 뜻이잖아. 뻔뻔하기는.”

“하하, 들켰네요. 욕심이 좀 크긴 하죠?”

“여자들끼리 싸우고 난리가 날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감당해봐야죠.”

솔직히 모두에게 외롭지 않은 사랑을 주는 것은 자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그것으로 만족을 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들 워낙 개성이 강한 여자들인지라 잘 섞일지도 알 수 없었고 말이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네.”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억지로 한 집에서 지내게 할 생각 없어요. 혼자 살고 싶을 수도 있겠죠.”

“너는 다 같이 살았으면 하는 거잖아.”

“가족이니까요. 같이 살고 싶어요.”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싫었다.

성인이 되어 고아원을 나와 혼자 살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이를 먹어 철이 든 덕도 좀 봤고.

“그렇게 말해버리니까 거절을 못하겠네.”

복순 누나가 내 말에 피식 웃더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의외의 말을 해왔다.

“웬일이에요? 거절 할 줄 알았는데.”

“그걸 알면서도 물어봤다는 건 그만큼 그러길 바란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나 혼자서 애 키우는 건 힘드니까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정 안 맞으면 애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다시 나가면 되고.”

“잘 생각했어요! 잘 해줄게요. 하하!”

가장 큰 산으로 보였던 복순 누나의 허락을 받으니 묵은 체증이 넘어가는 기분이다.

집에 들어오기로 했으니 그녀가 바라는 대로 집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었기에 복순 누나를 닦달해서 필요한 것들, 바라는 것들을 캐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지이잉­ 지이이잉­

“전화 왔는데?”

“제 전화에요.”

핸드폰을 확인하니 연주 누님에게서 온 전화였다.

“회사 일인가봐요.”

“나 졸려서 자고 있을 수도 있어.”

“네.”

쪽!

누나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 바깥으로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여보세요?”

­나야.

“네, 오랜만에 연락 주셨네요.”

그녀가 내게 연락을 주는 경우 대부분 오랜만에 시간이 났을 때다.

서로 일 때문에 바쁘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다.

때문에 우리의 데이트는 항상 그녀의 시간에 맞춰져 있었다.

­할 말이 있다. 최대한 빨리.

“할 말이요?”

일에 관련 된 것이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전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문제라는 건데, 평소 연주 누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다 보니 살짝 걱정이 됐다.

“안 좋은 일이에요? 오래 나가 있어야 해요?”

여기서 오래 나가 있어야 하는 거냐는 건 해외 출장을 말한다.

그녀는 굉장히 자주 해외로 나가서 일처리를 한다.

사실 해외 지사를 담당하고 있는 그녀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다.

에어플레인이 해외에서 잘 되지 않았다면 국내에 있을 핑계도 없었을 터다.

‘연주 누님을 밖에 나가지 않게 하려면 해외에서 잘 되어야 해.’

근데 또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잘 되면 자연스럽게 해외에 나갈 수밖에 없어진다는 거다.

­그런 일 아니야.

“어…많이 급해 보이는데 그럼 내일 회사에 갔을 때 잠깐 뵈러 갈게요.”

­회사에서 할 말도 아니라서.

회사에서도 말하기 어려운 일이라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찌됐든 조율 끝에 연주 누님과 약속을 잡았다.

? ? ?

이틀 후.

안경을 끼고 연주 누님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녀의 오피스텔에서 자주 만나 몸을 섞어 왔기에 새삼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오늘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와인 하나를 들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보고 싶었어요, 누님.”

연주 누님과 만나자마자 그녀를 품에 안았다.

얼마 만에 만난 건가 날짜를 세어보니 마지막에 만났던 게 9일이 넘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만났을 때 한참 촬영을 하고 있었던 때라 눈이 마주치자마자 침대로 골인해서 섹스를 하고 헤어져야 했다.

오늘은 좀 느긋하게 대화부터 나눠야지.

“몸은 어때요? 요즘 자주 피곤하다고 했었잖아요.”

“네가 준 걸 먹고 많이 괜찮아졌어. 효과 좋던데, 어디서 얻은 약이야?”

“어…아시는 분이 한의사세요. 그분한테 부탁해서 얻었어요.”

몸이 좋지 않다는 연주 누님을 위해 약을 구해다줬는데, 그녀라면 약의 출처를 확실하게 알아두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시중에 판매를 하는 환처럼 된 약으로 구매를 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연주 누님은 약의 출처를 물어왔다.

“그 사람한테 물어볼 게 있어.”

“뭔데요? 제가 대신 여쭤볼게요.”

“…네가 줬던 약, 임산부가 먹어도 괜찮은 건가?”

“네? 임산부요?”

“효과가 너무 좋아서 말이야. 이 정도로 효과가 좋으려면 약을 독하게 썼을 텐데 혹여나 영향이 갈까 싶어서 근래에는 먹지 않았어.”

“몸에 나쁜 영향을 주는 약은 아니에…에??”

생각 없이 대답하려던 순간, 직감적으로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누님의 말을 곰곰이 다시 떠올려봤다.

임산부에게 약이 영향이 가는지 걱정 된다.

이것만 말했다면 누님이 효과가 좋은 약을 지인에게 선의로 넘겨주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 이어서 ‘영향이 갈까 싶어서 근래에는 먹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즉, 약을 남에게 준 것이 아니라 누님이 임신을 하셔서 걱정 되는 바람에 먹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설마 지금 임신을 했다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단숨에 알아듣는구나. 맞다. 이런 식으로 놀래 키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하다. 나름 피임을 확실하게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생겨버리고 말았어.”

만약 내가 두 아이의 아빠가 아니었다면 지금 굉장히 놀랐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이미 두 번이나 이와 같은 상황을 경험해 본 적 있는 노련한 아빠다.

일단 나는 연주 누님을 조심스럽게 다시 품에 안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은 이거였다.

“고마워요.”

“!!”

안 그런 척 해도 나한테 말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를 임신해준 여자다.

감사 인사를 백 번 해도 부족한 사람인 것이다.

“며칠간 많은 상상을 했다. 내 임신 소식을 들은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상상이었어.”

“걱정 많이 했나보네요. 병원은 가보셨어요? 몸은 괜찮다고 하나요? 시간 되면 저랑도 같이 가요.”

“쓸데없는 소리. 네가 산부인과에 나타나면 난리 날 거다. 절대 그 꼴 못 봐.”

“사람들 모르게 몰래 가면 되죠.”

실제로 복순 누나와는 같이 병원을 다니기도 했다.

주아 누나 때는 내 능력을 밝힐 수 없어서 혼자 보냈지만, 복순 누나부터는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다닐 수 있었다.

문제라면 연주 누님은 아직 내 능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이다.

‘알려줄까?’

내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정화씨, 주아 누나, 복순 누나, 아현이 그리고 멜리사와 비앙카.

제법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그들 중 연주 누님은 해당 되지 못했다.

일 욕심이 가득한 누님이 내 능력을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런 걱정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능력을 숨기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너무 줄어들어.’

애초에 연주 누님에게 계속 숨기고 있을 생각도 없었다.

다만 여태까진 굳이 말할 필요성이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다.

언젠가는 말해야 하는 일이었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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