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화 〉 #52. 또? (4)
* * *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겨볼 생각이야.”
얼마나 숨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작정하고 숨긴다면 누가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그리고 말이야.”
“잠깐만! 나 무서워. 네가 무슨 말 할지.”
주아 누나가 말하려는 나를 황급히 만류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심호흡을 한 후에야 나에게 말해도 된다는 표시를 했다.
“내 능력에 대해서 말했어.”
“…그걸? 믿어주긴 해?”
“단 번에 믿지는 않지. 보여줬어.”
“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늘었네.”
“그렇게 막 말해도 괜찮은 거니?”
주아 누나와 정화씨는 내 비밀을 많은 사람들이 아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내 여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괜찮아요. 아이템 관리만 잘 하면 믿어줄 사람 없을 걸요?”
“엄마, 얘 단속 좀 다시 해야 될 것 같아. 솔직히 너 아이템 관리도 못하잖아. 우리한테 맨날 퍼주면서.”
“그래서 꼭 필요한 것들만 주는 걸로 줄였잖아.”
매달 들어가는 코인의 양과 누나들에게 주는 코인의 양을 엇비슷하게 맞춰놓은 상태이다.
그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용에 관련 된 것들이 컸고, 그 다음은 건강과 편의용품이었다.
혹시 미래에 알지 못하는 일로 코인이 반드시 필요할 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지출을 최소화 하고 꾸준히 미션을 해주면서 코인이 계속 마이너스 되지 않도록 조절을 했다.
그리고 나름 저금도 했는데, 이 저금은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은 아니어도 내 필요에 의해 필요해진 아이템을 구매하는 게 쓰였다.
내 여자들도 특별한 물건들을 공짜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걸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일단 믿어는 볼게. 될 수 있으면 일회용 위주로 아이템을 주고, 계속 쓸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은 절대 주지 마. 알겠지? 조폭 집안이라며. 그쪽 사람들한테 네 아이템이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지? 이건 우리 가족들 안전을 위해서 하는 소리야.”
“응, 알았어.”
“나도 집안이 조폭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게 내키진 않아. 하지만 너한테는 약점이 너무 많잖아. 태양이도 있고, 곧 태어 날 아기도 있어.”
“잘 할게.”
그들이 내 능력을 알게 됐을 때, 내 가족에게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뒤통수가 쌔했다.
내가 너무 경솔하게 말을 했나 싶다가도, 연주 누님을 믿기에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연주 누님한테는 다시 한 번 말을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주아 누나에게 물었다.
“근데 정말 불러와?”
“어?”
“연주누님 말이야. 만나도 괜찮겠냐고.”
“…….”
그녀를 불러 오는 건 상관없다.
이미 연주 누님에게 숨겨둔 여자들에 대한 얘기를 한 상태였고, 내 능력도 전부 알려놨으니 말이다.
오히려 연주 누님 쪽에서 주아 누나를 보고 싶어 하는 중이었다.
내 아이를 가장 먼저 낳은 여자이지 않은가?
“그, 그래도 만나는 봐야지. 어떤 여자인지 확인해야 하잖아.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나도 꿀리지 않을 거야.”
주아 누나도 허니 엔터의 연습생이었기에 연주 누님에 대한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연주 누님, 만난 적 있어?”
“아예 없지는 않아. 예전에 허니 엔터 들어오려고 오디션 봤을 때 심사하고 계셨거든. 이후로도 연습생 평가 때 심사 하러 오신 적 있었지. 근데 몇 번 그러고 해외에 쭉 계셔서 몇 번이 전부야.”
“그럼 누나를 알아 볼 수도 있겠네?”
연주 누님은 내게 여자가 있다는 것만 알뿐, 누구인지 자세히는 몰랐다.
내가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말한 거 아니지? 절대 말하지 마! 그 사람이 먼저 알아보면 어쩔 수 없겠지만, 시작부터 꿀리고 싶지 않단 말이야.”
“알았어.”
사실 주아 누나가 허니 엔터에서 나가 배우로 전향하여 잘 됐다는 걸 모으는 업계 사람이 없기는 하다.
“근데 너 그 사람도 집에 들어오라고 할 생각은 아니지? 나 숨 막혀서 못 살 것 같은데.”
“나보고 차별하라고? 말은 해볼 거야. 근데 아마 안 들어오겠다고 하지 않을까?”
연주 누님의 성격 상 수락을 할 확률은 매우 낮았다.
주아 누나는 내 말에 안도가 됐는지 한숨을 쉬었다.
“넌 왜 만나는 사람마다 날 경악하게 만드는 거니?”
누나가 가장 대하기 편해 하는 사람은 아현이었다.
민영 누나는 같은 업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살짝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
복순 누나는 뭐 말 할 것도 없이 주아 누나가 ‘서열 문제’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복순 누나로도 부족해서 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연주 누님을 더해놨으니….
“미안해~!”
집에 도착하면 메이드인 멜리사와 비앙카를 보게 될 텐데, 그건 또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이었다.
? ? ?
쾅!
“언니!!!”
“시끄럽게 굴기는.”
칸나가 방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벌컥 열린 방문의 주인은 칸나의 언니였다.
두 자매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지만,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칸나에 비해 언니 쪽은 성숙한 몸매에 키도 컸다.
누가 봐도 칸나의 언니가 그녀의 상위호환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라면 언니에게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못할 칸나가 거침없이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제발 그만 좀 해. 나도 인내심이라는 게 있다고!!”
칸나는 진해솔의 용서를 받은 걸로 모든 일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언니의 명령을 듣고 나타난 고용인들이 칸나를 끌고 갔고, 본가로 데려와서 그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바깥에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했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려 노력해서 그때까진 문제가 없었다.
일이 잘 해결됐다고 해서 그녀의 잘못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반성 많이 했단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시간이 지나도 감시자를 떼주지 않았다.
언니의 고용인들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대놓고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뭘 그만하라는 거야. 내가 뭘 했는데?”
“감시인들!! 그년들이 화장실까지 쫓아 올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다고!”
“네가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내가 왜 그딴 것들한테 감시를 당해야 하는 건데? 잘못한 건 맞지만, 이건 사생활 침해야!”
“그런 사고를 쳐놓고, 사생활 침해를 운운한다?”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야? 그 부분은 내가 끝난 일이잖아. 내가 직접 가서 무릎 꿇고 빌었다고.”
벌써 몇 달째 감시인들에게 시달리는지 모르겠다.
“그 일로 네가 사업에 끼친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말해줄까? 사업은 시간이 돈 그 자체야. 그런데 너 때문에 관련 일이 전부 스톱 됐지. 네 무릎이 손해를 메꿔줄 만큼의 값어치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니?”
“…….”
자존심을 짓뭉개는 언니의 냉정한 독설에 칸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가 끼친 피해에 비해 너는 아무 책임도지지 않았어. 내가 밖을 못 다니게 했니,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했니? 놀 거 다 놀면서 돌아다니고, 만날 사람들 전부 만나고 다니잖아. 그저 네가 또 피해 끼치지 않게 감시만 하겠다는 거야.”
“이게 어떻게 마음대로 다 하는 거야? 그 지긋지긋한 것들이 날 얼마나 고깝게 보는지 알아?”
“거짓말 하지 마. 통할 거라고 생각해?”
언니는 자기 사람들이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굳건한 믿음을 보이는 게 칸나의 속을 더 뒤틀리게 만들었다.
실제로 칸나는 거짓말을 한 게 맞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칸나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 뿐 말을 걸거나 무언가를 강제한 적은 없었다.
“안전을 위해서 붙여준 거기도 하니까 앞으로 없는 취급 하면서 다녀.”
입 안에 비릿한 피맛이 났다.
기어코 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흐른 것이다.
칸나는 자신의 모든 것이 언니에게 보고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싫고, 혐오스러웠다.
“결국 감시하는 년들 안 치우겠다는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도?”
“그게 부탁하는 태도였니? 난 협박하러 온 줄 알았는데.”
“언니!!!!”
“버릇없이 어디서 소리를 질러. 오냐오냐 봐주니까 내가 우스워 보이디?”
“!!”
언니가 목소리를 크게 높인 것도 아닌데 칸나는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절망적인 상황에 칸나가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대들었는데, 뒤늦게 정신이 조금 들면서 선을 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칸나는 필사적으로 언니에게 매달릴 필요가 있었다.
언니가 감시자들을 떼어놓지 않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 정말 싫어…. 이러지 마, 언니. 우리 사이 나쁘지 않았잖아, 응?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딱 한 번 저지른 실수였어!”
“그 실수가 너무 컸잖니. 그 손해를 메꿀 필요가 있을 뿐이야.”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어!!!!”
“계속 만나보면 나쁘지 않을 수 있어. 결혼이 별 거니? 돈 하나는 많은 집안이니까 지금보다 더 많은 걸 할 수도 있을 거야. 감시하던 사람도 사라질 거고, 나도 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거란다. 네가 바라는 모든 게 이뤄지는 거야. 결혼만 하면.”
그렇다.
언니는 지금 칸나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정략결혼이다.
재벌 출신의 남자는 굉장히 희귀한 존재였다.
그 남자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칸나가 감히 넘보지 못했을 존재일 정도로 말이다.
칸나는 언니의 요구에 비명을 내질렀다.
“싫어!!!!!! 할아버지랑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칸나가 질색하며 싫어하는 이유는 여럿 있었다.
일단 남자의 나이가 칸나에 비해 너무 많았다.
“할아버지라니, 실례잖아. 이제 겨우 오십인데. 그리고 나이 차이가 좀 난다고 결혼 생활이 불행한 건 아니란다. 전혀 문제 될 거 없어.”
언니는 그게 뭐가 문제냐며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렇게 괜찮으면 언니가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되잖아!”
“애석하지만 우리 가문의 안주인으로 삼기엔 내 가치가 너무 높단다. 너한테는 과분한 자리겠지만 말이야.”
어처구니가 없다.
“나한테 과분한 자리라고? 결혼한 여자는 스물이 넘고, 애는 서른 명이 넘는 남자가? 그 자식 딸이 나랑 동갑인 건 알고 있니?!”
“그래도 재벌 가문 출신 남자잖니? 그리고 여자가 많긴 해도 다 첩이야. 첩들이 마음에 안 들면 치워버려.”
조강지처 자리는 비워져 있다는 게 대단히 위로가 되는 말인 줄 아는 언니였다.
더군다나 첩이라 해도 다들 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다.
굴러들어 온 돌인 칸나를 반겨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녀가 아무리 정실이라 해도 박혀 있는 돌을 치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정실 자리도 아니잖아! 처음부터 없었던 자리가 아니라 죽어서 자리가 비워진 건데! 차라리 평범한 남자한테 갈래. 나 그 사람은 정말 싫어어~!”
“평범한 남자랑 결혼 할 생각을 하다니, 철이 없어도 너무 없구나. 투정 부리지 마렴. 너도 이제 성인이잖니? 네 결혼은 가문에 도움이 되어야 해. 큰 손해를 끼쳤으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렴. 네가 여태까지 누린 것들이 공짜인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잖니.”
눈물까지 맺힌 채로 애원하는 칸나의 뺨에 언니가 손을 가져다댔다.
칸나의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엔 자애와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언니가 하는 말은 결코 다정하지 않았다.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참 기품 있고 다정한 분이었어. 언니도 깜짝 놀랐단다. 그분이 널 마음에 들어 할 줄 몰랐거든. 네 부족한 외형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고,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아아아…!!”
언니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칸나에게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칸나의 앞날에 절망이 깃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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