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4화 〉 #52. 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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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아 누나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하고 며칠 후.
나는 연주 누님을 다시 만났다.
누님이 내 능력이 많이 궁금했는지 자꾸 만나자며 재촉을 했기 때문이다.
연주 누님이 이런 식으로 만남을 재촉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인지라 제법 귀여웠다.
사람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오피스텔로 나를 부른 그녀는 내 능력부터 자세히 설명해주길 바랐다.
어떤 능력부터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내가 평소 자주 쓰던 물건들을 설명했다.
누님은 쉬이 믿기 힘들어 했으나 몇 가지 물건들을 직접 사용해보고, 또 효과를 직접 체험하면서 점차 믿음을 쌓아갔다.
연주 누님이 가장 깜짝 놀라 하는 아이템은 다름 아닌 '안경'이었다.
“정말 이게 된다고? 연예인이라면 이 안경에 환장할 거야. 아마 효과만 확실하다면 몇 십 억을 줘도 구매할 사람들이 넘쳐날 걸?”
대단한 걸 보여준 건 아니지만 내가 갖고 있는 아이템 자체가 하나같이 실용적이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연주 누님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내 설명이 이어질수록 연주 누님은 이 물건들로 뭘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쓰일 수 있는지 캐물었다.
“그래서 제가 병원에 따라가겠다고 한 거에요. 안경을 끼면 저인 걸 절대 못 알아보니까요.”
누님은 내게서 안경을 가져가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익숙한 걸 보니데이트 할 때 항상 끼던 그 안경이었네.”
“네.”
“이게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일반 시중에 판매하는 안경이랑 다른 게 없잖아. 다른 건 또 뭐가 있니? 더 보여줘.”
연주 누님의 궁금증은 몇 시간이 지나도 다 채워지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정말 내 밑천이 탈탈 털릴 것 같아 이 정도면 됐다 싶었을 때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계속 제 능력만 물어보시네요. 다른 건 안 궁금하세요?”
아이까지 낳았다는 주아 누나와 복순 누나에 대한 말은 이미 저번에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 만난 연주 누님은 내 능력에 대해 궁금해 할 뿐, 내 여자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없어보였다.
“다른 거? 네 능력보다 궁금한 건 딱히 없다만.”
“정말 안 궁금해요? 다른 여자가 있다고 했었잖아요. 그 얘기는 어째 한 번을 안 물어요.”
연주 누님에게 다른 여자들처럼 질투를 바란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무덤덤해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너무 대수롭지 않아 하니 자존심이 상할 지경이었다.
누님에게 내가 고작 이 정도 존재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가졌는데 여자가 안 붙을 리가 없지. 다른 여자에 대한 건 앞으로도상관하지 않을 거다.지금처럼 철저하게 숨기기만 하면 돼. 능력이 있는데 뭐가 문제겠니.멤버들이 여자를 만나는 게 곤란했던 건 들킬 가능성이 높아서였을 뿐이야.”
“만약 능력이 없었으면 정리하라고 하셨을 거에요?”
“아이까지 있다는데 정리가 되겠니? 인기 멤버인 너를 탈퇴시킬 수도 없으니 최선을 다해서 관계를 숨기는데 도움을 줬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야.”
누님이 말하는 '수단과 방법'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살벌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질투를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이렇게까지 덤덤해 하실 줄은 몰랐네요.”
“서운하니?”
“서운하죠.”
“그래도 널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그런 쪽으로는 영 관심이 없을 뿐이야.”
“관심이 없다는 건아예 만날 생각도 없다는 뜻인가요?”
주아 누나는 당연히 연주 누님을 ‘관리’해야 할 여자들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연주 누님 쪽에서 아예 그런 것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어버리니 상황이 난감했다.
“굳이 만날 필요가 있을까? 나랑 네 여녀들 관계가 너랑 내 사이에 영향이 미치는 거니?”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그런 거면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내가 거기까지 신경 쓰기엔 너무 바쁜 사람이라서.”
연주 누님은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한 로망이나 희망을 갖고 있는 게 없다고 부연설명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키우는데 무관심 할 거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이가 교류하는 건 상관 안 해. 물론 그쪽에서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전제로.”
“무슨 뜻인지알겠어요.”
“마음에 안 들지?”
“처음 만나기로 했을 때부터 저한테 말했던 내용이잖아요. 누님한테는 일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고요. 지금 이 문제도 그때 했던 말이랑 연관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일방적으로 누님에게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요."
만나기 싫다는 사람한테 만남을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잘 만나고 있잖아요? 다만 누님에게 한 번 정도는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사람은 저마다 각자가 바라는 바램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내 여자들이 끈끈한 가족애를 갖고 함께 추억을 공유하길 바란다면, 주아 누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현이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구체적인 가족 관계를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고, 복순 누나는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시골에서 살면서 못 받았던 교육을 아이가 바란다면 해주고 싶다면서 말이다.
나는 내 여자들과 내가 꿈꾸는 미래가 너무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이 강요 되는 건 절대 안 돼.’
주아 누나가 바라는 꿈을 위해 그런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싫어하는 연주 누님에게 강요를 할 순 없었다.
그런 식으로 관계를 다진다면 연주 누님은 결국 나를 떠나갈 것이다.
아쉬울 것이 없는 여자이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네 능력 말이야. 사람들한테 들킬까봐 여태까지 숨겨두고 있었던 거니?”
“소소하게 쓰긴 했어요. 애들 체력이 부족할 때 회복시켜준다던가 그런 식으로요.”
연주 누님은 내 말의 핵심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단순히 운 좋게 천재들로만 멤버가 구성 된 게 아니라 네가 천재가 되도록 만들었던 거였구나.”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연습을 무리하게 하다보면 목에 큰 문제가 생긴다.
춤도 마찬가지로 너무 과하게 연습을 하다보면 연골이 다 갈려서 나중에 병원 약을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우리 몸은 쓰면 쓸수록 닳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문제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져나갈 수 없는 딜레마.
하지만 우리 그룹은 이런 사정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목이 아프면 아이템으로 회복시켜 쌩쌩해지고, 근육통이 오거나 몸에 무리가 생기면 아이템으로 회복시켜줬다.
“애들이 연습벌레에요. 그렇게 도움을 줘도 연습을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그런데 걔들은 독하게 연습을 하더라고요.”
그러니 걔네들 실력이 쭉쭉 늘어나는 것이 모두 내 덕인 것은 아닌 거다.
각자 그만큼 노력을 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래, 너도 기특하고 애들도 기특해. 그런데 말이야….”
“네.”
“그 능력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써볼 생각은 없는 거니?”
드디어 예상하고 있던 말이 나왔다.
“네가 여태까지 능력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던 건 들킬까봐 걱정이 돼서 그런 거잖니. 날 믿고, 네 물건을 맡겨줬으면 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아깝지 않니?”
연주 누님은 자신에게 맡긴다면 철저하게 보안을 지켜가며 아이템을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며 나를 설득했다.
코인이라는 것으로 값을 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코인 값에 아깝지 않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일 욕심이 강한 연주 누님에게 내가 가진 능력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지 알고 있었다.
나는 활활 타오르고 있는 누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누님, 잠깐 얘기 좀 할까요?”
“…그래. 내가 너무 흥분했네. 부담 됐다면 사과할게.”
내 말에 흥분이 좀 수그러들었는지 깔끔하게 사과를 해온다.
진정이 된 듯 보이지만 아마 연주 누님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할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니 내 능력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생각나겠는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이 능력을 제 여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 쓸 생각이 없어요.”
“어째서? 대단한 걸 달라는 게 아니야. 네가 가진 건강식품이나 미용에 관련 된 것들만 있어도 엄청난 걸 받아낼 수 있어.”
“누님은 제가 가진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고 계세요.”
연주 누님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정보를 풀 필요가 있다.
“위험한 능력이에요. 누님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더 어마어마한 것들을 할 수 있어요. 저한테 이 능력을 준 존재는 제가 이 능력으로 뭘 해도 상관하지 않거든요.”
내가 날뛰려면 코인이 필요하고, 코인을 구할 곳은 섹스를 하는 것이다.
미션이라는 수단이 있기도 하지만 그곳조차도 보상 코인을 많이 주는 건 ‘성’과 관련 된 미션이 대부분.
그러니 내가 날뛰기 위해 코인이 필요해서 무분별하게 여자들과 잠자리를 갖게 되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이 세상에 내 씨를 많이 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지 않는 거니?”
“저는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아니라 아이돌이니까요.”
남녀 비율이 무너지는 걸 나 혼자서 해결하라는데 솔직히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란나씨를 임신 시키면 내게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왜 그런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어차피 술 먹고 날치기로 맺게 된 불공정한 계약이다.
내가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나름 벌써 셋째잖아.’
내 여자가 된 란나씨가 임신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벌어질 일.
그 외에도 벌써 3명이나 되는 자식이 생겼으니 이 세계를 위해 할 일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피임에 예민하게 굴지 않은 것까지 합친다면 더더욱
그들에게 협조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내 자식들에게 멸망한 미래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
“혹시 아이돌로 제가 부족했던 적이 있었나요?”
“…아니. 너희는 실망시킨 적 없어.”
“지금 연주 누님이 하려는 건 반칙이에요. 저는 반칙을 해야 할 만큼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능력을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누님은 우리가 굉장히 빠르게 유명해지고 있다고 말했었잖아요.”
“네 능력이 썩히고 있다는 게 아까워서 그런 거야. 그리고 이 바닥에서 반칙은 흔하고 당연한 일이야.”
“제가 쓰는 반칙은 완전히 치트키 수준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결과를 얻어 봐야 허무할 뿐이에요.”
재미도 없고 뿌듯함도 없을 거다.
돈이 남지 않냐고?
재벌인 비앙카와 멜리사가 내 메이드다.
두 사람이 서로를 견제하며 내 돈을 불려주고 있는 중이라 지금도 부족하지가 않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면 됐고, 사지 않아도 협찬으로 들어오는 각종 물건들이 내 선택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아쉬움이 조금도 없는 거야?”
“네, 실력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우리 멤버들 믿어요. 결국 시간문제에 불과한 일일 거에요. 앞으로도 계속 멋진 모습을 보여줄 자신 있어요.”
아이템으로 로비를 해봤자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를 좀 더 받는 것밖에 안 된다.
얼굴을 자주 내보이면 인기는 빠르게 오르겠지만….
‘고작 그 정도가 코인의 값어치 이상이 될 수 있을까?’
한 번 아이템으로 로비를 하기 시작하면 점점 배꼽이 배보다 커지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코인의 가치는 절대 낮지 않다.
억만금을 줘도 코인은 1도 얻지 못한다는 걸 알지 않는가?
연주 누님에겐 남이 가진 권력이 대단해보일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권력보단 코인이 훨씬 귀중하고 값진 재화였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워하는 눈치네.’
나는 코인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려주기로 했다.
“누님,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세요. 코인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뭐든.”
“…뭐든?”
내 말을 들은 연주 누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고작 돈 몇 푼에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인기 얻자고 이런 혜택을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베푼다고요? 그 사람이 우리한테 줄 수 있는 대가가 코인의 값어치만큼 한다고 생각하세요?”
“!!”
내가 자세히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으니 연주 누님이 계산을 잘못한 게 당연하다.
지금도 살짝 힌트만 줬을 뿐인데 금방 내 말의 저의를 눈치 채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얘기였구나.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한 거야. 창피하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마음만 급해져서는….”
연주 누님은 진심으로 창피했는지 얼굴이 빨개져선 마른 세수를 했다.
“제가 제대로 말하지 않은 탓도 있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네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자마자 생각해낸 게 말도 안 되는 멍청한 방법이었어. 자책을 안 할 수가 없다고.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생각보다 누님의 자책이 과하다.
애초에 이쪽 세계의 능력이 아니지 않은가?
코인이라는 걸 사용해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이라니?
내가 말해 놓고도 쉽사리 짐작이 가지 않는 황당한 능력이었다.
나는 창피해 하는 누님을 부드럽게 품에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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