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45화 (345/849)

〈 345화 〉 #52. 또? (6)

* * *

[날아오르다, 에어플레인]

타자 소리와 함께 검은색 화면에 글자가 띄어진다.

[여행 준비 시작]

글자가 사라지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을 때,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잠시 숨을 멈췄다.

화면에 빛이 들어오며 한 남자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에어플레인 해솔입니다.

자고 일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머리가 부스스하다.

옷도 초록색의 귀여운 잠옷을 입고 있었다.

졸음기가 묻어나오는 얼굴에 참을 수 없었던 팬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해솔이 귀여워!”

­멤버들끼리 가는 첫 여행이에요. 해외는 자주 나가긴 했지만, 일하러 가는 거랑 여행가는 거는 느낌이 다르잖아요?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하니 잠기운이 사라졌는지 해솔이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눈이 어쩜 저렇게 예쁘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해솔이만의 특별한 종족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얼굴이 붓지도 않았고, 부스스한 모습조차도 귀여울 뿐 굴욕적인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눈만 예쁘냐? 마음씨도 비단결인데.”

“하,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남자가 있을 수 있지? 진짜 미치겠다.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어.”

주연배우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진해솔 덕분에 팬들의 어깨가 으쓱여지고 있는 가운데, 터진 진해솔의 미담.

팬들은 우리 애기 착해요! 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인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관계자들로부터 직접 진해솔이 얼마나 착한지 ‘증명’을 받게 됐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뿐인가?

일도 잘한다.

배우 진해솔이 아니라 에어플레인의 진해솔을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 리얼리티 촬영을 해준 것이다.

멤버들이 개인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룹이 뭉쳐서 활동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지라 그들의 리얼리티 촬영은 많은 환영을 받았다.

리얼리티 촬영 소식이 들려오고 언제쯤 방영이 될까 기대가 한 가득인 가운데.

팬들을 위한 리얼리티 예고편이 방영 된 것이다.

각 멤버들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편집한 영상이었다.

­저희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보고 싶다고 어필했어요. 친구들끼리 여행 가는 기분으로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거에요.

진해솔은 제법 능숙하게 이것저것 물건들을 챙겨 넣었다.

“꼼꼼하기도 해라.”

진해솔이 코를 파도 귀엽다고 할 팬들이었다.

그런 팬들의 주책을 모르는 화면 속의 진해솔이 세면도구를 챙기고, 입을 옷과 속옷을 챙겨 넣는 것을 시작으로 여행 숙소에서 소소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건 여행 숙소에서 애들이랑 심심할 때 하려고 이번에 구매했어요. 애들이랑 같이 이런 보드 게임을 해본 적 없거든요. 재밌을 것 같아요. 이건 애들 잘 때 얼굴에 낙서하려고 준비한 팬이에요.

예고편에서 진해솔은 또래 청년들처럼 장난기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평범한 청년들이 또래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어하는 모습과 같았던 것이다.

­짜잔~ 단체복을 준비했어요. 이거 입고 애들이랑 같이 놀면 재밌겠죠?

진해솔이 활짝 미소를 짓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의 분량이 끝났다.

마지막 미소를 보고 그로기가 온 팬은 입을 떡 벌린 채 흘러나오는 광고를 멍하니 바라봤다.

꿀꺽­

“다, 다시 한 번 볼까?”

“그, 그러자.”

“한 번만 더 보고 움짤 짜자.”

“오키오키.”

딱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따악 한 번만 더!!

영상 전체에서 버릴 곳이 없었다.

그녀들은 한 번만 보겠다는 걸 몇 시간 내내 계속 돌려보며 영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진해솔 이외에 다른 멤버들도 차례대로 영상이 올라왔다.

멤버들마다 여행을 기대하는 저마다의 방법을 보여주는 영상은 굉장한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그들이 가는 여행의 장소를 궁금해 했고, 해외 팬들은 자신의 나라로 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소속사는 이러한 팬들의 반응을 보며 걱정을 드러냈다.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좋아서 큰일이네.”

“이번 활동으로 개인 팬이 많아지면서 그룹 전체 팬도 확 늘었어요.”

이렇게 기대가 잔뜩 올라간 상황에서 정작 본편의 퀄리티가 심하게 떨어진다면?

“지금이라도 구성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애들 부르자. 이대로 애들한테 다 맡겨놨다간 큰일 나겠어.”

티저의 반응이 적당했다면 소속사도 편하게 애들에게 맡겼을 것이다.

소속사에서 비상이 걸릴 만큼 팬들이 에어플레인의 리얼리티가 큰 화제를 모았기에 다시 한 번 프로그램 구성을 짤 필요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진해솔은 소속사의 걱정을 단칼에 거절했다.

“저희가 알아서 해볼게요. 팬들한테 좋은 영상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리얼리티는 그걸 목적으로 제작하는 게 아니잖아요. 반응이 좋다고 해서 갑자기 목적을 바꾸는 건 안 되죠.”

우리가 알아서 잘 찍어볼 테니 편집만 좀 잘해달라는 게 진해솔의 단호한 의견이었다.

애초에 이번 리얼리티 제작은 진해솔이 먼저 제안했고, 기획한 것이었다.

결국 바뀌는 것 없이 시간이 흘러 에어플레인 멤버들이 다 함께 출국을 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비앙카의 개인 별장인 섬이었다.

? ? ?

‘도착하면 제가 준비한 선물을 볼 수 있을 거에요.’

나는 비앙카의 의미심장한 말을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우와아아~”

“정말 여기야?”

“미쳤다, 형! 어떻게 이런 곳을 구했대?”

“지인 찬스랄까.”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잔뜩 신난 멤버들이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음식이 꽉 차 있어!”

별장은 비앙카가 미리 준비를 해놨는지 우리가 즐길 수 있게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음식이면 음식, 게임기면 게임기, 술이면 술.

“보드 게임은 괜히 챙겨왔네.”

여기에 있는 게 더 퀄리티가 좋고 다양했다.

“수영장!!!!! 우와악! 당장 들어가고 싶어요!”

“그럼 짐 풀고 개인 시간 좀 갖자.”

“네네네네! 형! 가자가자가자!”

“아니, 잠깐만! 수영복 있어?”

“저쪽에 탈의실에 있는 거 봤어요!”

“오오! 가자!”

은규와 우연이는 수영장에 뛰어들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고 제키와 경태 형은 음식부터 주섬주섬 꺼내더니 입에 넣었다.

“오, 맛있는데?”

“이것도 맛있어.”

이번 촬영 때 소속사랑 단판을 져서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기에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나 이 앞에 앉아 있을게.”

“어~ 알았어. 카메라 가져가지?”

“응.

강준은 별장 앞에 있는 해변가에 홀린 상태다.

해변가를 구경할 수 있게 고즈넉한 그네와 벤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곳에 앉더니 사진도 찍고 카메라에 대고 말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마 영상을 볼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내 몫의 카메라를 잠시 끄고 비앙카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나 : 별장 좋더라.]

[메이드 1호 : 후후후! 제 선물은 마음에 드셨나요?]

[나 : 마음에 안 들 수가 없던 걸?]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주변에 우리 이외의 사람이 없다는 거다.

개인 소유의 별장인데다 이 근처가 전부 비앙카 소유의 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메이드 1호 : 필요한 거 생기면 말씀해주시면 가져다드릴 거에요.]

[나 : 이미 넘칠 정도로 준비해놔서 필요한 게 없을 것 같던데? 마당에 있는 건 밤에 캠프파이어 하라고 만들어놓은 거지?]

[메이드 1호 : 네, 악기도 있으니까 사용하시면 돼요.]

[나 : 신경 써줘서 고맙다.]

비앙카의 배려 덕분에 촬영을 가장한 휴가를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동안 별장을 둘러보고 개인 시간을 보낸 이후.

신나게 논 멤버들이 다시 모였다.

“우리 이제 뭐해?”

“너무 격하게 놀았나 봐요. 힘이 다 빠져버렸어.”

“안 돼. 리얼리티 촬영 온 거잖아. 분량 만들어야지.”

신나게 놀았으니 분량도 생각해야 할 때였다.

“구체적으로 결정 된 일정은 없어. 그냥 각자 편하게 즐기고 놀면 돼. 저녁을 먹은 이후에 캠프파이어를 할 건데, 그때나 좀 진지하게 촬영하자.”

“그럼 정말 계속 놀아도 되는 거에요?”

아까까지만 해도 힘이 빠졌다며 툴툴대던 녀석이 더 놀아도 된다고 하자 눈이 다시 초롱초롱해졌다.

개인적으로 지금 저 모습은 꼭 방영 됐으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뭐든 카메라에 다 담아야 돼.”

“으~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죠! 형형형! 우리 게임하러 가요! 아까 보니까 게임방이 있더라고요.”

“그래?? 당장 가자!”

“잠깐잠깐, 놀 땐 놀더라도 밥은 먹어야지.”

“아, 맞네.”

게임을 좋아하는 녀석들인지라 게임방이 있다는 말에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는 수준이었다.

참 신기한 건 숙소라고 해서 게임기가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평소에는 시간이 나면 게임을 하기보단 연습실에 가서 연습을 하는 편이었다.

밥을 다 먹고 이번에는 멤버들 전부 모여서 게임방으로 갔다.

각종 오락시설이 준비 되어 있었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면 됐다.

“농구 할 줄 알아?”

“어. 옛날에 자주 했었어.”

학창시절 때 친구들이랑 체육시간에 자유 시간을 받으면 항상 모여서 농구를 했던 것 같다.

“내기할래?”

농구에 관심을 보이는 경태 형에게 은근슬쩍 내기를 제안해봤다.

경태 형은 빼지 않고 내 도발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5분 안에 농구 골대에 몇 개의 공을 골인시키는지 내기를 했다.

정신없이 놀다 보니 하루의 시간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밤이 되어 제작진이 준비해준 캠프파이어에 옹기종기 모였다.

“여기 악기도 있었어?”

비앙카에게 들었던 위치에서 악기를 꺼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캠프파이어로 오니 제키 형이 눈을 반짝였다.

“기타 받을래?”

“어, 좋지.”

♬~♩♪~♬~♪

제키가 기타를 받자마자 손을 움직여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맞춰서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니 멤버들이 박수를 짝짝 치면서 감탄했다.

“분위기 미쳤네요.”

“진짜 좋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소리가 기타음에 더해지니 분위기는 굳이 뭔가를 할 필요도 없이 완벽해졌다.

“오늘 어땠어?”

“엄청 좋았어요! 맛있는 음식에, 수영장에, 게임기까지! 여기서 평생 살고 싶을 정도에요.”

기우연이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리얼리티 찍으러 온 건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하더라.”

오늘 한참동안 해변가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강준도 우연이의 말에 이어서 소감을 말했다.

“나는 좀 걱정 되던데. 리얼리티는 핑계고 우리끼리 놀려고 온 건 아닌가 싶어서.”

“그게 컨셉이라니까. 걱정하지 말고 즐겨~”

“너 믿고 진짜 편하게 논다?”

“잠깐만, 캠프파이어 하면서 촬영 분량 찍는다고 하지 않았어?”

멤버들 모두 내 호언장담에 안도하는 가운데, 경태 형이 물었다.

“아예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고 리얼리티 올라가면 기념으로 팬들한테 선물을 주면 어떨까 싶어서. 캠프파이어 하면서 다 같이 생각해보자.”

“팬들한테 선물?”

“좋은 생각 같아요! 이게 그거죠? 역조공!”

“근데 선물을 뭐로 주지?”

“역조공이 뭐가 있더라….”

멤버들도 팬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내 말을 굉장히 좋아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 의견들 중 괜찮다 싶은 의견 몇 가지가 나왔다.

물론 그 와중에 말도 안 되는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깔깔 웃으면서 넘어갔다.

“팬미팅에 팬송이라….”

“팬송은 우리가 직접 노래부터 시작해서 가사까지 다 만들어야 돼.”

“리얼리티 하는 동안 만들어서 영상 올린 날 발표까지 동시에 하는 거야.”

“해솔이 형이랑 제키 형 있으니까 든든하구만!”

“공짜 팬미팅도 아이디어는 좋아.”

“근데 팬미팅을 할 시간이 날까?”

팬미팅은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역조공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태까지 받기만 했던 팬들에게 제대로 역조공을 하려면 팬미팅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팬미팅은 할 수만 있으면 진짜 좋을 것 같은데….”

“아직 휴가 많이 남았으니까 좀 더 생각해보자. 지금은 팬송부터 만들고.”

“저 방금 생각난 음이 있는데 들어주세요!”

우연이가 아이디어가 있었는지 적극적으로 나왔다.

“대충이라도 불러봐.”

제키가 도와주겠다는 듯 기타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캠프파이어에 해변까지 있으니까 악상이 절로 떠오르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작곡 재능이 있을 지도 몰라요.”

설레발을 떨며 우연이가 떠오른 음을 알려주었다.

“음음음~ 으으으음~ 라랄라라라~”

우연이가 생각났다는 팬송의 음을 들은 제키가 피식 웃더니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내뱉던 기우연의 음과 달리 제키가 치고 있는 기타의 음은 완벽하게 완성 되어 있는 음률이었다.

“어어?!”

“네가 생각났다는 곡, 이거 맞지?”

“아, 뭐야. 이 노래 랩소디잖아!”

“아~ 맞네, 어쩐지~ 자꾸 귓가에 맴돌더라고요. 헤헤.”

많은 작곡가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였다.

“결국 기우연은 작곡 재능이 없었던 걸로.”

다시 시작 된 팬송 작곡 캠프파이어.

처음에는 낯설어 보였던 음도 결국 끝에선 어딘가 들어본 적 있는 음이 돼서 결국 제키와 내가 노래의 뼈대인 멜로디를 만들어주고 멤버들에게 살을 붙이게 하기로 했다.

우연이가 말했던 것처럼 주변 환경이 좋아서 일까?

오랜만에 악상이 튀어나왔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