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 #52. 또? (7)
* * *
“설마 또 터졌진 거에요?”
“그런 것 같은데.”
떠오른 악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제키에게 기타를 받아들었다.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었기에 녹화는 할 필요 없었다.
♬~♪♬~♩♬♩~~♪
“오~ 좋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니까.”
내가 갑자기 곡을 만들어내는 건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닌지라 멤버들 모두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뚝딱 멜로디를 쳐내고 제키를 바라봤다.
“어땠어?”
여기서 내가 묻는 ‘어땠어’는 노래가 좋은지를 묻는 것보단 아는 노래인지에 대한 확인 절차였다.
제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어.”
“여기에 살 좀 붙여보자.”
내가 만든 멜로디는 자장가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여기서 좀 톡톡 튀는 음을 넣으면 좋을 것 같아. 랄랄랄랄랄랄~ 이런 느낌?”
“톡톡 튀는 음이면 나나나나~나나 이건 어때?”
“오, 그것도 좋네. 거기에 두둥 두두둥 두둥 두둥 추가해서 합치면…이렇게?”
비앙카가 준비해둔 악기는 기타 뿐이 아니었기에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스케치는 충분히 가능했다.
특히 제키 녀석이 로잘린에게서 작곡을 많이 배우고 와서 그런지 내는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신선했다.
점점 곡이 완성 되어 가는 것을 본 멤버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와~ 둘이 뭐야? 왜 이렇게 잘 해?”
잘 하는 것도 잘하는 거지만, 서로 의견이 부딪치지 않는다는 점이 대단한 거다.
“원래 작곡을 이렇게 하는 거야?”
“두 사람이 너무 잘 하니까 우리가 끼어들 틈이 없는 걸?”
곡을 다 만들었을 때쯤, 멤버들이 우릴 넋을 놓고 보면서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악상이 떠오르니 너무 흥분했던 것이다.
지금 만드는 곡은 엄연히 팬송.
제키와 내가 뛰어난 곡을 만든다고 해서 곡을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었다.
뒤늦게 정신이 든 나는 손가락만 빨고 있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원래 팬송은 가사가 중요한 거야.”
“그건 맞지.”
“평소에 팬들한테 하고 싶은 말 많잖아. 너희들이 상의해서 가사 좀 써봐.”
“그럴까?”
“야야 다들 모여봐.”
제키와 내가 멜로디를 좀 더 다듬는 사이, 나머지 멤버들이 가사에 붙기로 했다.
이제 제대로 된 팬송이 만들어질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일단 다들 하고 싶은 적어보자. 그 중에 기발하고 재밌는 걸 뽑아서 가사로 쓰는 거지. 어때?”
“가사라면 내가 또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경태 형이 가사라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기우연과 은규는 경태 형에게 붙어서 작사하는데 도움을 받기 시작했고, 강준은 제법 능숙하게 가사를 적어나갔다.
멜로디는 악상이 떠올라서 30분도 안 돼서 만들어졌지만, 가사는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그런지 꽤 오랜 시간 걸렸다.
서로 깔깔 웃고, 떠들면서 가사를 완성시키는 과정 모두가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이 정도면 분량 많이 뽑았겠는데?’
그리고 마침내 완성 된 팬송!
“이거 정말 우리가 만든 거 맞죠?”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
“해솔이가 멜로디를 잘 만들어서 그래.”
“난 개인적으로 가사가 좋다.”
“빨리 녹음해보고 싶네.”
“우리 기왕 이렇게 된 거 춤까지 만들까요?”
가사를 쓸 땐 동시 짓는 것처럼 어설프던 우연이가 곡이 완성 되자마자 춤 욕심을 부렸다.
“이 곡에 춤까지?”
“해! 못할게 뭐있어? 시간도 많은데.”
“맞아. 기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자!”
팬들을 위한 곡을 만드는 게 취지였는데 어째 애들이 더 신났다.
갑자기 벌어진 춤판에 제키가 다시 기타를 들었다.
캠프파이어 하면 기타가 빠질 수 없고, 기타가 있다면 춤이 빠지면 안 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때부터 우리는 완전히 놀자 판이 돼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카메라를 신경 쓰는 멤버는 없었다.
? ? ?
팬송을 모두 끝내놓고 나서 춤판이 벌어지며 난리가 났고, 저녁 9시쯤이 되자 제작진과 함께 고기와 함께 술판이 벌어졌다.
술 먹는 걸 편집해서 팬들한테 보여주겠다는 내 말에 제작진은 거부감을 보였으나 나중에 문제 될 것 같으면 편집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홀딱 넘어갔다.
‘비앙카가 준비한 고기질이 엄청 좋아서.’
소 한 마리를 잡기라도 했는지 없는 부위가 없더라.
비싸 보이는 술까지 두둑하게 냉장고에 들어가 있다 보니 카메라는 점점 설치해놓고 방치 되다시피 했다.
아마 영상을 다시 돌려보면 카메라 안에 제작진이 불쑥불쑥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모두가 다 함께 편하게 먹고 즐기는 순간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유티비 관리해주는 분들한테 언제 한 번 대접해주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신나게 놀고 다음날 아침.
멤버들이 아직 푹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주섬주섬 챙겨 온 가방을 뒤져 몇 개의 물건을 꺼내들었다.
애들이 정신없이 자고 있는 걸 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진해솔입니다. 현재 시간은 오전 7시군요. 아침이 되었지만 어제 파티 후유증으로 일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피곤하긴 한데, 제 예술적 재능을 팬 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눈을 떴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언제 또 오겠습니까?”
카메라를 향해 익살스럽게 웃어 보인 나는 손에 든 걸 보란 듯이 보여주었다.
아무 팬으로 애들 얼굴에다 낙서를 할 순 없었기에 물에 잘 지워지는 팬을 특별히 구매했다.
색깔도 여러 개이니 화려하게 꾸밀 수 있을 것이다.
‘올려두고 못 썼던 예술 재능!’
순서는 잠귀가 밝은 녀석부터 하기로 했다.
모든 멤버들을 고루고루 예뻐(?)해주기 위함이었다.
일단 가장 잠귀가 가장 밝고 예민한 건 강준이었다.
준이의 얼굴에 어떤 걸 그려줄까 고민이 많았는데, 은근히 예쁜 걸 좋아하는 녀석을 위해 볼에다가 화려한 꽃을 그려주기로 했다.
가운데에 노란색의 원을 그리고, 원을 중심으로 화려한 여섯 개의 꽃잎이 피어오른다.
“큭큭큭!”
“으음….”
팬이 닿는 볼 부분이 간지러웠는지 꿈틀대면서 강준이 움직인다.
그로인해 꽃잎 중 하나가 삐죽하고 삐뚤어지고 말았다.
“아이고, 준아 움직이면 안 되지.”
“…네에….”
“큭큭!”
미용실이라고 생각했나?
강준이 얌전하게 대답하는 게 너무 웃겨서 웃음이 과하게 터질 뻔했다.
완성한 강준의 얼굴을 카메라에 비춰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초등학생이 그린 듯한 완벽한 동글동글한 꽃이었다.
“준이가 되게 예민하고 잠귀가 밝은 편이라서 일어날 줄 알았는데 제가 예술을 완성시킬 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네요. 아마 어제 신나게 놀았던 게 피곤했나 봐요.”
“어…? 으음, 뭐야?”
“이런, 깼네요. 미안, 다시 자.”
“으…몇 시야?”
“7시 조금 넘었어.”
“…형은 카메라 들고 뭐하는 건데?”
“아무것도 아니야. 크흠.”
어리둥절해 하는 강준의 얼굴을 충분히 찍었다 생각한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후다닥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형?”
다음 대상은 제키다.
이 녀석은 잠을 자지 않는 편이었다.
항상 새벽 늦게 잠들거나 아예 잠을 안 자고 밤새 작업을 하다가 스케줄 뛰러 가는 차 안에서 잠을 채우곤 한다.
‘한 번 잠들면 깊게 자는 편이라서 그런 식으로 자도 피로가 충분히 풀리는 스타일이야.’
마침 가는 길목에 있으니 얼굴을 만져주기로 하자.
‘얘는 수염 기르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멋진 수염 만들어줘야지.’
검은색 팬으로 멋드러진 수염을 순식간에 뚝딱 완성시킨다.
준이에게 꽃을 그려줬던 것처럼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이 아니라 예술 스탯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려봤는데, 내가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뭐야, 이렇게 그려놓으니까 멋있잖아?”
죽었나 싶을 정도로 색색 숨소리만 겨우 내는 제키는 여전히 꿈나라였고 말이다.
제키에게서 재밌는 그림을 얻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싶어 졌던 나는 흥미를 잃고 다른 대상을 찾고자 고개를 휙휙 움직였다.
준이가 비몽사몽한 얼굴로 나에게 와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뭐하는 거야, 형?”
“원래 친구들끼리 놀러 오면 이런 거 하는 거야. 나중 되면 추억이라니까?”
“설마 내 얼굴에도 저런 거 했어?”
“넌 예쁘게 꽃 그려줬지.”
“안 지워지면 어떡해?!”
“설마 그걸 생각 못했을까. 물에 잘 지워지는 팬 사온 거야.”
그제야 안도하며 강준이 후다닥 거울을 찾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뭐야, 안 예쁘잖아. 다시 그려줘! 제키 형은 수염 멋있게 그려줬으면서 나는 왜 이런데?”
씻고 나올 줄 알았더니 못 그렸다는 걸로 투덜댄다.
결국 화장실에서 나온 준이의 얼굴 그림에 수정을 해줬다.
예술적인 감각을 더해서 더 화려하고 예쁜 색감까지 더해주니 그럴 듯한 꽃이 완성 되었다.
“은근 잘 어울린다? 좀 예뻐졌어.”
“이제 좀 마음에 드네. 남은 사람은 누구누구야?”
강준이 자신도 그리겠다며 팬 하나를 가져가더니 남은규에게 달려갔다.
은규의 얼굴에 애도를 표하며 카메라 하나 가져가라고 친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남은 도화지(?)는 기우연과 경태 형, 단 둘 뿐.
얼마 남지 않은 도화지에 남은 예술혼을 모두 태우리라!
“으하하학! 쟤 뭐냐?”
“네 얼굴도 만만치 않거든?”
“야, 솔직히 내 얼굴은 해솔이 형이 예쁘게 해줘서 안 이상하거든?”
“내 얼굴도 해솔이 형이 해주지, 왜 네가 한 거야!”
잠시 후.
멤버들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
준이가 예술혼을 뽐낸 은규는 양 볼에 고양이 수염이 달렸고, 이마에는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눈썹은 짱구 눈썹을 떠오르게 하는 걸로 그려놨는데, 은규에게 은근히 어울려서 굉장히 웃겼다.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준이의 절망적인 손재주가 더해지다 보니 안 웃고는 못 베길 낙서들이었다.
얼굴 낙서의 가장 큰 피해자가 있다면 기우연이다.
깨어난 남은규와 강준이 달라붙어서 막내의 얼굴을 꾸며준 것이다.
막내이기도 하고, 이런 장난에 빼지 않는 성격이라 더 그랬다.
“으아악! 형들! 살려줘여! 악!”
기우연이 다 그리기 전에 깨어나는 바람에 잠시 격한 운동까지 하게 됐고, 마지막 타자로 나 또한 애들에게 붙잡혀 휘양찬란한 얼굴이 되어야 했다.
“이게 뭐야아~ 씻을래여!!”
“안 돼, 안 돼. 사진 찍어야 돼.”
“으아아아!!”
씻겠다고 징징대는 우연이를 달래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엉망인 얼굴이었지만, 다들 이런 장난이 재밌었는지 훈훈하게 아침 기상을 끝냈다.
“오늘은 뭐해요?”
냉큼 씻고 온 우연이가 식탁 위에 차려진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물었다.
“해변이 있는데 안 들어가 볼 순 없잖아.”
“수영!”
“비치볼 있으니까 가서 족구하자.”
“완전 좋아요!”
“오늘도 정말 이렇게 노는 거야?”
“응, 놀 거야. 그리고 오후에는 각자 사진기 하나씩 들고 사진 찍으러 갈 거야.”
“어제 생각했던 그거야?”
어제 캠프파이어를 하며 팬들을 위한 역조공 아이디어를 받았을 때 나왔던 의견 중 하나가 바로 의미 있는 사진주기였다.
멤버들끼리 사진기 하나씩 들고 멤버들의 사진을 찍어서 팬들에게 무료로 이미지를 푸는 거다.
항상 멤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 하고, 앨범에 든 포토카드도 종류별로 모으겠다고 여러 개의 앨범을 사주는 팬들이 아닌가?
그런 팬들에게 소소하게나마 선물을 해주자는 취지였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이번 여행에서 팬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다 해볼 셈이었다.
‘아침 사건으로 장난기는 보여줬고, 비치볼로 대결할 땐 승부욕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정확히는 승부욕으로 치장한 치졸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예능적으로 소화 되겠지만, 승부를 따내기 위해 다소 치사한 짓을 많이 하면서 훅 달아올랐던 내 ‘착한’ 이미지를 중화시킬 것이다.
미리 멤버들에게 승부에서 치졸하게 나갈 것임을 말해둔 상태였다.
간단하게 아침밥을 먹은 우리는 수영복을 챙겨서 해변으로 움직였다.
“너무 예쁘다.”
“물색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지?”
아침에 본 해변의 풍경은 다른 세계에 온 것 마냥 낯설은 신비감을 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