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47화 (347/849)

〈 347화 〉 #52. 또? (8)

* * *

“노출이 좀 심한 거 아니야?”

“팬들한테 보여주는 영상이잖아.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줘야지.”

“…….”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있듯, 우리 멤버들이 이 세계 남자들처럼 꺅꺅대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즘 남자애들이 하도 오냐오냐 보호 받고 애지중지하며 자라난 탓에 성격이 참….

지구의 남자를 정상적이라 생각하는 나한테는 못 봐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역겨운 면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애들은 어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며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서 그런지 일명 ‘상남자’ 같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저 정도면 상남자 맞지.’

그래도 이놈들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가끔 흠칫흠칫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는데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런 거였다.

‘래쉬 가드’라는 남자들이라면 발명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 옷이 있다.

우리 모두 래쉬가드를 입고 있는 상태였는데, 강준이 남은규에게 황당한 소릴 하고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어서 근육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노출이 심하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강준은 자신의 몸 근육이 보이는 게 부끄러웠는지 래쉬가드 위에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남은규는 자랑하려고 근육 만들었지 꽁꽁 싸매려고 키웠냐며 래쉬가드 위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로 당당하게 돌아다녔다.

그런 남은규의 당당함에 기우연이 달라붙었다.

카메라를 들고 런웨이를 걷는 것처럼 해보라고 한 것이다.

나름 연예인이라고 남은규는 빼지 않고 요염한 스탭을 보여줬다.

“신났네, 신났어.”

해변가에 리트리버처럼 날뛰는 애들이 있다면 나른하게 햇볕을 즐기고 싶은 사람도 있는 법.

경태 형과 제키 그리고 나는 해변가에 설치되어 있는 파라솔과 그 아래 의자에 앉아 칵테일을 마셨다.

“쟤네 이제 카메라가 있는데도 완전 놔버렸네.”

“이렇게 신나게 놀 기회가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그런가봐.”

“정기적으로 1년에 한 번만 이런 식으로 여행가면 안 되나?”

“휴가 잘 짜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멤버들은 며칠 남지 않은 휴가(정확히는 리얼리티 촬영)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해변가에서 수영도 즐기고 계획했던 대로 비치볼을 이용해 게임도 했다.

우리끼리 모였을 뿐인데도 너무 재밌어서 웃음이 마르질 않았다.

? ? ?

“애들 촬영은 어떻게 진행 되고 있죠?”

임신을 했다 해도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게 현재 조연주의 위치였다.

회사에서 조연주가 차지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만약 그녀가 갑자기 자리를 비운다면 회사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었다.

그녀의 빈자리는 누구도 쉽게 채울 수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조연주는 오늘도 열심히 일에 집중했다.

“생각보다 그림이 잘 나왔다고 하네요.”

“그래요?”

“애들이 거기 가서 팬들을 위해 팬송을 만들었다나 봐요. 영상 올리는 날에 팬송도 같이 내고 싶다고 해요. 그리고 이건 좀 고려해봐야 하는 계획인데, 애들이 팬들을 위해 역조공 팬미팅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역조공 팬미팅이요?”

아무래도 돈으로 돌아가는 소속사다 보니 팬미팅은 환영 하지만, 거기 앞에 역조공이 들어가니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뜩이나 시간 없는 애들인데, 이 시기에 역조공 팬미팅이라….”

조연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팬송이 어떤 퀄리티인지 확인부터 합시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퀄리티라면 한 곡 더 추가하거나 기존 음원을 어레인지 해서 리패키지 앨범으로 내는 거죠.”

“앨범은 당연히 팬미팅 앨범이고요?”

“애들이 역조공 팬미팅을 생각하고 있으니 우리 쪽에서도 내줘야 할 건 내줘야겠죠. 앨범 가격은 최소화 합시다. 그리고 그동안 애들 사진 찍은 것 중에 아쉽게 탈락했던 A컷을 쓰죠.”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요?”

“애들이 하고 싶다잖습니까. 그냥 묵살하는 건 좋지 않아요. 그동안 큰 사고 없이 잘해줬는데, 이 정도도 못해주면 애들이 우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소속사가 해줘야 하는 일을 귀찮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주지 않으면 황금 거위 배를 가르는 거나 다름없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어요.”

조연주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은 그녀도 썩 내키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에어플레인은 어느덧 데뷔 4년째가 되어가는 그룹이다.

계약기간은 7년.

남은 기간은 3년이고, 슬슬 재계약을 생각해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원들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앞날의 이익만 쫓아가고 있었다.

이러니 일을 믿고 맡기는 게 힘든 거다.

임신만 아니었다면 이번 일도 그녀가 직접 나서서 상황을 파악하고 다녔을 거다.

‘인재가 없어, 인재가.’

티나지 않게 속으로 혀를 찬 조연주가 말했다.

“3년 후면 재계약 기간입니다. 다들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주지시켜두세요.”

미리 준비해도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 키워놨는데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해 흩어지기라도 한다면 무슨 손해란 말인가?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소속사는 애들을 키우느라 들인 돈의 몇 배 이상을 뽑아내야만 했다.

남은 3년으로 벌 수 있는 수준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사님. 직원들이랑 애들이랑 사이 되게 좋거든요.”

비즈니스에 감정이 아예 안 따라올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애들한테 감정으로 호소하는 꼴은 절대 못 봐준다.

조연주가 다소 냉정하게 말했다.

“애들한테 우리 지금까지 잘 지내 왔으니 재계약하자고 하실 겁니까? 그 부분은 기본 중의 기본인 겁니다. 애들한테 감정으로 호소하지 마세요. 회사가 애들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미리 알려주시란 뜻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도 이곳보다 좋은 대우 받기 힘들다는 걸 알려주세요.”

“…네, 이사님.”

“멤버들 중에서 재계약에 관련해서 가장 까다로운 애가 누구인 것 같습니까?”

“음, 다른 애들은 아마 부모님이 영향을 많이 끼칠 것 같습니다. 미리 좋은 관계를 다져놓겠습니다. 다만 해솔이는 가족이 없다보니 미리 어필을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애들 중에 은근히 계약이나 비즈니스 쪽으로 정보가 밝은 애가 해솔이기도 하거든요.”

진해솔.

그녀의 뱃속에 아이를 임신시킨 남자.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애 티가 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조연주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해솔이는 잘난 게 정말 많은 앱니다. 재계약을 하지 않고 나가도 솔로로 지금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죠.”

오히려 그룹 활동을 하는 지금, 활동비를 6으로 나뉘어서 받고 있는 탓에 불이익을 받고 있기도 하다.

진해솔이 혼자서 활동했을 때, 고급화 이미지 메이킹을 해서 배우로 돌린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억소리 나는 돈을 만지게 될 거야.’

물론 해외에서 점점 불어나는 팬들의 숫자를 보면 에어플레인으로 활동할 때 돈을 더 많이 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불확실한 미래’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진해솔을 붙잡는 건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해솔군은 에어플레인에서 절대 빠지면 안 되는 멤버에요.”

“알죠. 다른 멤버들은 맡겨두면 걱정부터 드는데, 해솔이한테 맡기면 그래도 얘는 반은 가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진해솔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다른 멤버들 모두 진해솔에게 어느 정도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멤버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라도 진해솔은 가장 먼저 붙잡아놔야 할 구심점이었다.

잠시 후.

“마무리까지 잘 할 수 있죠?”

“네! 맡겨주세요, 이사님.”

“그래요.”

일 얘기를 나누던 직원이 나갔다.

“하아~ 피곤하군.”

이후 조연주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평소대로 했다면 쉬는 시간 없이 서류를 들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홀몸이 아니게 된 이후 그녀는 많은 생활 습관들을 고칠 필요성을 느꼈다.

‘내 부주의로 아이한테 영향이 가는 건 절대 안 되지.’

임신했을 때 부주의하게 행동하면 아기의 건강에 영향이 간다.

자신의 몸에서 영양분을 가져가 자라나야 하는 아기이다.

갑작스러운 모성애가 당황스럽긴 하지만 조연주는 이 낯선 감정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영양제 먹을 시간인가.’

꼬박꼬박 시간에 맞춰 임산부에게 필요한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 또한 조연주가 임신하면서 바꾼 행동 중 하나이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도 천천히 진행 중이었다.

자신의 일거리를 정리하며 되돌아 보는 계기도 됐다.

‘내가 왜 이걸 다 끌어 안고 있었던 걸까. 책임을 나눠준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닌데.’

출산을 위해서 적어도 몇 개월은 반드시 쉬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 공백을 채워줄 사람을 미리 키워두어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맡기지 않고 자신이 다 품고 있었던 이유도 그녀를 흡족하게 할 만큼 일을 잘 하는 부하 직원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아이가 크는 걸 곁에서 보려면 지금부터라도 키워놔야 한다.’

마음을 먹은 조연주는 각방으로 인재를 찾아보는 중이었다.

내부에서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외부에서라도 스카웃 해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소속사 직원들이 알았다면 난리가 날 내용이었으나 조연주는 아무렇지 않았다.

자신의 공백을 무난하게 넘겨 줄 존재가 필요했다.

“보고 싶어지네.”

아기 생각을 하면 자연스레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 남자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주범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괘씸하긴. 연락 한 번이 없고 말이야.”

사실 항상 기다리는 건 진해솔이 했던 거였다.

일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핸드폰에 진해솔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곤 했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챙겨 먹으라며 문자를 해줬고, 날씨가 춥거나 비가 오면 따듯하게 입으라고 하거나 우산을 챙기라며 세심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본인도 바쁘다 보니 꼬박꼬박 챙겨주진 못했으나 살면서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는 건 처음이었기에 참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멤버들과 놀러간 게 이 아이에게도 참 재밌는 일이었는지 오늘 하루종일 연락이 없었다.

띠링­

“양반은 못 될 사람이네.”

그녀가 진해솔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던 걸까?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진해솔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하남친 : 밥 챙겨 먹고 있어요? 쉬엄쉬엄 하고 있는 거 맞죠? 저랑 약속했잖아요.]

역시 이번에도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다.

“약 먹은 후로 건강해져서 이런 걱정 할 필요 없다는 걸 알 텐데….”

진해솔은 임신한 그녀를 위해 여러 가지 물건들을 챙겨왔다.

그가 가져 온 물건들을 보자마자 특별한 능력으로 얻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먹으려고 하는 영양제도 그의 능력으로 가져 온 것이다.

사실 약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와닿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직접 체감한 약의 효능은 그녀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일을 덜고 있긴 했지만, 당장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순 없었기에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진 않았던 그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평소랑 많이 달랐다.

‘일하는 내내 집중이 계속 유지됐어. 다리나 허리가 아프지도 않았고, 두통도 없었지.’

이런 몸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억만금을 아까워하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조연주는 자신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섣부르게 그의 능력을 이용하려 했던 실수가 새삼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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