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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48화 (348/849)

〈 348화 〉 #53. 도움 요청 (1)

* * *

자기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지만, 일은 그녀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일을 처리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일이 그녀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연주는 자신의 맡은 바 일을 모두 끝내놓고 퇴근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남은 일 없이 집에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조연주를 만족하게 했다.

“…피곤하지가 않네.”

집으로 돌아 온 그녀는 몸 상태를 확인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꽤 많은 일을 했음에도 피로하지가 않았다.

물론 눈이 조금 뻑뻑하긴 했으나 평소 이 정도 일을 했을 때 오는 피로감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변화였다.

아직 남아 있는 피로를 완전히 풀기 위해, 그녀는 반신욕을 준비했다.

뜨거운 물을 받고, 욕조 안에는 진해솔이 챙겨 준 입욕제를 집어 넣었다.

“아껴 썼는데도 벌써 반이나 썼네.”

조연주는 입욕제의 양이 줄어드는 걸 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해솔이 특별히 그녀에게 선물한 입욕제였기에 매우 귀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스아아아­

보글보글 거품이 일어나고 청량한 향기가 욕실 안을 가득 채운다.

이 물건이 예사의 것이 아니라는 건 직접 경험해보면 알 수 있다.

몸을 담군지 얼마 되지 않아 전신 마사지 코스를 받은 것처럼 근육에서 시원한 자극이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효능을 다 하는 시간인 30분이 지나면 욕조 안에 있던 거품이 사라지고 맑은 물만 남게 된다.

오염까지도 완벽하게 고려해서 만들어진 특별한 물건.

“후우.”

조연주는 나른함에 절로 나오는 신음을 굳이 참지 않았다.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기에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더군다나 오늘은 휴식을 앞둔 금요일.

아무리 일을 좋아하는 그녀라 해도 금요일 밤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입욕제가 함께라면 더더욱.’

야근을 하고 나서 입욕제를 넣고 반신욕 시간을 가지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입욕제는 임신한 상태로 야근을 해야 하는 그녀를 위해 진해솔이 특별히 구매해준 사치품.

‘지금쯤 뭘하고 있으려나.’

자연스레 한 남자가 조연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남자를 떠올리면 이상한 감정이 뒤따라온다.

생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

지금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욕심과 바람이 절로 생기는 것이다.

‘해외에 있는 사람한테 바랄 걸 바라야지.’

혼자 있는 집이 유난히 크고 텅 비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 이후 10년이 넘게 혼자서만 살아왔던 그녀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어이가 없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던 그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로 작은 단칸방에서 삶을 시작했다.

모든 혜택들을 누리다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건 각오했던 것보다 더 끔직한 일이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별 거 아닌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됐던 것 같다.

‘후회하진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연을 끊을 생각을 했던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의 간섭 없이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에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머니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왔다면 지금과 같은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임신을 해서 이러는 걸까? 쓸데없이 감성적이게 됐어.”

심한 감정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듣긴 했지만, 몸소 경험해보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나 자신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변화였다.

‘아니면 진해솔, 그 아이를 만나면서 변한 걸 수도 있지.’

만나기 전만 해도 진해솔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삶에 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연주라는 여자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어머니와의 있었던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나쁘지가 않아….’

이유는 명백하다.

그가 그녀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분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이기 때문이었다.

‘젊음을 되찾아 주고 있는데, 마음에 안 들 리가 없잖아.’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녀의 몸도 세월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젊었을 땐 몸 관리도 철저하게 하면서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일에 집중하면서 몸 관리는 뒷전이 되어 버렸다.

젊었을 때 누렸던 것들이 점차 더뎌지고 그 변화에 수긍하길 몇 년.

‘하루하루 변하는 게 보여.’

해솔이가 주는 것을 먹으면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던 세월이 그녀를 피해가기 시작했다.

아니, 피해가는 게 아니라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조금씩 쳐지고 있던 가슴에 탄력이 생기고, 관리를 해도 푸석푸석해지던 피부에는 윤기가 돌았으며, 주름이 팽팽해지고, 재생력이 어찌나 좋은지 오랜 흉터까지 사라질 정도였다.

그뿐이랴?

아무리 운동을 해도 나잇살이라는 게 있는데, 그 살마저도 사라지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두드러진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먹는 영양분의 대다수는 아기를 위해 쓰이고 있었다.

불룩하게 튀어나온 아랫배를 조연주가 어색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좋은 걸 먹고 자라고 있으니 건강하게 태어나렴.”

해솔에게 다른 여자들이 많다.

그들과 경쟁 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신경을 안 쓸 순 없는 법.

‘아이가 두 명 있다고 했지.’

대단한 아버지를 가진 아이들이다.

적어도 자신이 키운 아이가 그들과 비교했을 때 많이 빠지지 않은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녀를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강요하고 집착하던 어머니의 행동.

그 이해할 수 없던 행동의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머니를 이해 할 수 있게 됐지만,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어머니는 방법이 잘못 됐다.

‘보란 듯이 잘 키울 겁니다. 당신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죠.’

해솔의 능력과 이어지며 아이에 대한 생각에 잠시 빠졌던 조연주는 정신을 차리고 가운을 입었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 중 유일하게 쓰임이 있는 것이 있다면 나약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법일 것이다.

잠시 흔들렸던 나약한 마음을 다시 깊은 곳으로 묻어 둔 그녀가 피로가 싹 가신 몸 상태에 흡족해 하며 욕실을 나섰다.

“반신욕 했어요?”

“?!”

조연주는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촬영 중이잖아.”

“몰래 왔죠.”

국내 촬영도 아니고, 무려 해외 촬영이었다.

“지금 몰래 오는 게 문제야?”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조연주는 자연스럽게 그의 능력에 생각이 닿았다.

“이것도 네 능력인 거니?”

“네.”

“정말 양파 같이 계속 나오는구나.”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고 했잖아요. 못 하는 게 없어요. 비싸서 그렇지.”

코인이라는 화폐 단위를 구해서 물건을 구할 수 있는데, 그 값이 굉장히 비싸다고 알고 있다.

만약 이곳의 화폐로 ‘코인’이라는 것을 구할 수 있다면 전재산을 바꿔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촬영 잘 하고 있다고 소식은 들었는데, 웬일로 말도 없이 온 거니?”

“항상 옆에 있어줄 순 없지만 최대한 시간 내서 자주 들릴 게요.”

“그럴 필요 없어.”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우리 아이잖아요. 아이가 잘 자라는지 곁에서 지켜보고 싶어요.”

“…….”

진해솔이 아이를 이유로 들자 오지 말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옷 갈아입고 와요. 춥겠다.”

가운만 입고 있는지라 조연주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주방으로 가니 맛있는 음식이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모두 그녀가 선호하는 음식들이었다.

‘주책이야.’

조연주는 설레는 마음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 나이를 먹고 이런 거에 감동 받은 티를 내기엔 창피했기 때문이다.

진해솔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안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더니 입술에 키스를 했다.

쪽­

“잘 지냈어요? 몸은 좀 어때요? 영양제는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는 거죠?”

“…흠흠, 아이한테 영향을 미친다는데 안 먹을 리가.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렴.”

“일은 좀 줄였어요?”

“그건….”

일이 줄었냐고 질문을 받으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맡고 있었던 일과 현재 그녀가 맡고 있는 일의 양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은 안 될 것 같아.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

“마음에 안 들어도 꾹 참고 가르치기로 했잖아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내가 맡은 일들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워낙 중요한 일들이 많아서 잘못 인수인계하면 큰일 날 수 있어. 당장 너희들도 영향이 갈 텐데,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일이야.”

“음, 알겠어요. 대신 다른 사람한테 넘길 생각 안 하고 혼자 다 하지 않기로 약속해줘요.”

“!!”

조연주는 순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정곡을 찔린 표정이 나왔다.

“설마 진짜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요?”

“…잠깐 한 거야. 잠깐.”

솔직히 못 믿을 사람에게 넘길 바에야 차라리 그녀가 회사에 나올 수 있을 때까지 싹 다 처리해놓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봐라.

평소라면 주말에도 일거리를 집에 가져왔을 텐데, 진해솔이 영양제를 챙겨 준 덕분에 평소보다 빠르게 일을 전부 처리하지 않았나?

이 상태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진해솔이 저렇게 우려를 표하는 걸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를 위한 영양분인데, 그런 식으로 쓸 순 없지.”

“아기도 잘 자라야 하는 건 맞는데, 제가 걱정하는 건 누님 몸이에요. 임신이 얼마나 큰일인지 아시죠?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아니까 막을 수가 없어서 곤란하다고요. 마음 같아서는 옆에 졸졸 따라다니면서 챙기고 싶은데….”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여자에게 큰 무리가 가는 일은 맞다.

그래서 오랜 과거에는 여자가 집안일을 하고, 남자가 사회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정을 책임지기엔 남자의 존재가 너무 귀해져버렸고, 여자가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게 당연해졌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자신을 챙기다니….

“넌 여자가 많을 수밖에 없겠구나.”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어떤 여자가 이렇게 배려해주는데 안 넘어가고 베기겠니.”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자신조차도 이 남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버리지 않았는가?

아이가 벌써 2명이 있고, 여자는 다섯이 넘어간다는 진해솔의 솔직한 고백을 쉽게 믿은 것도 그가 매력 있는 남자임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이게요?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요즘 남자들은 안 이래. 네가 특이한 거야.”

“싫은 건 아니죠?”

“싫을 리가. 챙김 받는 게 익숙하진 않지만 나쁘지 않아. 아니, 이 정도면 좋다고 하는 게 맞겠지.”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더 많이 챙겨드릴 테니까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세요.”

진해솔이 해맑게 웃었다.

조연주는 무언가가 자신의 마음을 간질이는 것 같은 기분에 주먹을 꽉 힘주어 잡았다.

낯간지러워서 가슴을 벅벅 긁고 싶은 심정이다.

“제가 직접 만든 거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은 안 나서요. 누님이 좋아하는 것들로 임산부 몸에도 좋을 만한 음식들이에요. 꼭꼭 씹어 먹어요.”

“그래.”

조연주는 입덧이 없어서 임신 사실을 더 늦게 알았던 거였다.

그녀가 선호하는 음식들로 차려져 있으니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 ? ?

리얼리티 촬영을 무사히 끝마치고 국내로 귀국했다.

신나게 놀면서 찍었던 리얼리티는 편집에 들어갔고, 그 사이에 드라마 촬영을 완벽하게 마무리 했다.

참고로 ‘아가씨들의 남자’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희성을 노리는 스토커가 완벽하게 퇴장하고, 세 사람은 서로 한 집에서 살기로 한다.

다만 마지막 장면으로 희성이 누군가의 초음파 사진을 발견하면서 끝나게 되는데, 두 주연 중 누가 임신을 했는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내 예상으로는 아직 임신하지 않은 누군가도 희성을 쥐어짜서 어떻게 해서든 따라 임신하지 않을까 싶다.

함께 희성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치며 친해졌지만, 여전히 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제키는 이미 우리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고, 다음으로 내 개인 활동이 끝나 앨범 작업에 합류했다.

뒤를 이어서 유닛 활동을 했던 3명의 멤버들이 활동을 끝냈고, 강준이 가장 마지막으로 드라마 촬영을 마무리 하면서 다음 앨범 작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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