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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52화 (352/849)

〈 352화 〉 #53. 도움 요청 (5)

* * *

갑자기 일상에 끼어든 칸나씨의 일은 일이고, 나는 내 생활을 그대로 지킬 필요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곡이 나와 컴백 앨범 작업이 시작 된 상태였다.

컨셉 의상, 무대 구성, 뮤직비디오, 앨범 녹음 등등.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이다.

칸나씨를 혼자서 감당하는 건 불가능한 일.

결국 누군가에게 칸나씨를 부탁해야 했다.

이런 부탁을 하기 가장 편한 사람은 아무래도 비앙카와 멜리사 두 사람 뿐이었다.

그녀들을 바깥으로 불러서 사정을 털어놨다.

“그래서 지금 칸나씨가 내 집에 있거든? 너희들이 도와줬으면 좋겠어.”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

멜리사는 단숨에 알겠다고 대답한 반면, 비앙카는 얼굴을 구기며 말이 없었다.

원래 그녀였다면 비아냥대는 말부터 내뱉었을 게 분명하다.

기껏 용서까지 해주면서 돌려보냈는데, 당사자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괜히 먼 길 돌아 온 꼴이 아닌가?

하지만 저번에 호되게 혼을 냈던 게 효과가 있는지 비앙카는 욕을 하기 보단 말을 줄이는 것을 선택했다.

물론 말이 없다 해도 고스란히 표정으로 드러나지만 말이다.

“언니는 또 왜 그래? 주인님이 명령하셨는데 뭐가 문제야?”

“누가 뭐래니? 나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얘가 생사람 잡네.”

“주인님께서 받아주겠다고 하셨으니 우린 그냥 따르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당연하다는 사람치고 말에 뾰족함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앙카의 변한 태도에 만족한다.

지금처럼 본래의 성격이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누그러진 태도였기 때문이다.

‘성격을 아예 바꿀 순 없으니까. 이 정도만 얌전해줘도 훨씬 편하지.’

진작 한 번 날잡고 혼낼 걸 그랬다.

내가 제대로 ‘주인’ 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에 비앙카가 그렇게 날뛰었구나 하는 반성의 시간도 됐고 말이다.

“주인님, 그 여자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하게 맡아서 관리할게요.”

반면 귀엽게도 멜리사는 요즘 기세가 제법 등등하다.

비앙카가 혼날 때 나를 도와주게 되면서 서열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아직까진 선을 넘는 수준의 도발은 아닌지라 비앙카가 봐주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 두 사람의 사이가 역전 될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오래 지속 되진 않을 거야. 지금도 봐주고 있으니까.’

그래도 언니라고, 동생을 귀엽게 봐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비앙카는 멜리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척 하며 기가 죽은 ‘척’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멜리사를 이용하는 건가?’

나에게 혼이 났으니, 그만큼 반성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걸 멜리사에게 괴롭힘 당하는 걸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과하게 풀 죽은 척 할 필요는 없는데.’

내가 그녀에게 바란 것은 지금과 같은 상식적인 ‘최소한의 배려’였고, 이런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굳이 비앙카를 더 혼낼 생각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태다.

‘조금만 더 믿음을 줘봐, 비앙카.’

워낙 드센 성격을 가졌기에 비앙카는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었다.

“칸나씨 언니한테 들키지 않아야 해. 할 수 있겠어?”

“물론이죠. 차라리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건 어떠세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있어요.”

“흠, 이 집에 계속 두는 건 무리인가? 예전에 비앙카가 말한 적 있거든. 칸나씨를 메이드로 만들고 싶다고.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고, 집을 관리해주는 정도의 가벼운 일을 맡기는 건 어떨까 싶어.”

아직 내 여자가 아니니 메이드로 만드는 건 섣부르다.

“이 집을요? 저희가 잘 관리 하고 있는데요.”

“항시 상주해서 집을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고 했잖아. 칸나씨가 계속 집에서 노는 건 부담스럽다고 뭔가 시켜주길 바라고 있어서 맡겨보면 어떨까 했던 거야.”

칸나씨가 얼마나 오랫동안 숨어 지낼지는 잘 모르겠다.

내 집에서 몸을 숨긴지 이제 겨우 이틀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나씨는 뭔가 시킬 만한 게 없냐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 했으면 숙박비라도 내게 해달라고 했을까.’

칸나씨가 좌불안석으로 집에 있는 걸 바라지 않으므로, 나는 그녀가 불안하지 않을 무언가를 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가장 쉬운 게 집 관리를 대신 맡기는 것이었고, 칸나씨라면 그거라도 감지덕지하며 받아들일 것 같았다.

“아니면 다른 의견을 줘봐. 칸나씨한테 시킬 만한 일이 있어?”

“으음~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칸나씨에게 맡길 일.

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각자 시간을 조금 가진 후 각자 스타일에 맞는 방법을 제시했다.

“전 주인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몸을 숨겨야 하는 처지잖아요.”

멜리사는 내가 바란 대로 집을 관리하는 걸 칸나에게 맡기자고 했다.

어차피 언니로부터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하니 그게 가장 손쉽고 편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시시하기는. 피할 게 아니라 뒤집어서 먹어야죠.”

반면 비앙카는 좀 더 기발하면서도 어려운 길을 제시했다.

“먹는다고? 뭘 먹어?”

“후계자 자리 말이야.”

“??”

바로 칸나씨가 포기하고 도망쳐 나온 가문에 대한 얘기였다.

도망을 쳐야 할 만큼 사이가 좋지 않은 자매 사이이니, 칸나씨도 얘기를 들으면 솔깃해 할 것 같긴 했다.

“그 여자, 가진 게 하나도 없다잖아. 그 자릴 어떻게 먹어.”

“우리가 있잖아.”

“…우리?”

비앙카와 멜리사가 돕는다면 맨땅에 헤딩하는 거라 해도 가능성이 있단다.

“주인님께서 거두실 생각이라면 저는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쫓겨난 똥개를 거둬봤자 뭐하겠어요? 똥밖에 먹을 줄 모르는 개한테 똥은 먹으면 안 되는 거라고 따끔하게 가르쳐서 제대로 된 혈통 견으로 만들어야죠. 똥을 먹긴 해도 타고 난 혈통은 좋잖아요.”

지금은 똥개라도 겉을 번드르르하게 만들어놓으면 거두는 게 아예 손해를 보는 일은 아니다.

비앙카는 칸나에게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그 여자를 완벽하게 주인님의 여자로 만드셔야 해요. 혈통이 좋은 똥개라니, 완벽한 쓰레기잖아요.”

칸나씨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녀에게 피해를 입었던 적 있지 않은가?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마음이 다른 법이었고, 죽 쒀서 개 주는 것만큼 허탈한 게 없는 법이었다.

“이건 내가 선택할 게 아닌 것 같다.”

당사자의 미래를 얘기하는 건데, 정작 당사자가 없는 건 안 될 일이었다.

나는 그녀들과 함께 집으로 움직였다.

우리가 집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칸나씨는 소파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내가 시간을 보내라고 가져다 준 사과패드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어서오…히익!!”

내가 오는 소리를 듣고 강아지처럼 신나서 달려 온 칸나씨는 인사를 하려다가 비앙카를 보고 기겁을 했다.

“어, 어떻게 여기에…! 아, 안 돼요! 언니한테만은 제발!”

“진정해요. 칸나씨 도와주려고 온 거에요.”

저러다가 또 울겠다 싶어 황급히 말했다.

멜리사도 상냥하게 웃으며 칸나 씨에게 상황설명을 해줬다.

“맞아요. 도와주려고 온 거에요.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세요.”

“…누, 누구세요?”

멜리사와는 처음 보는 지라 칸나씨가 경계심을 가득 담아 그녀를 바라봤다.

멜리사는 싱긋 웃으며 자기 소개를 해줬다.

“일단 칸나씨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라고만 아시면 될 거에요. 제대로 된 소개는 천천히 하자고요. 많이 놀란 것 같은데 다들 차 한 잔씩 마실까요?”

멜리사가 주방으로 가서 따듯한 차를 타왔다.

비앙카가 앉은 자리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를 잡은 칸나씨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괜찮아졌어요?"

"네에...죄송해요."

"아닙니다. 미리 말하고 데려올 걸 그랬네요. 도와주려고 부른 건데, 이렇게 놀랄 줄 몰랐어요."

슬슬 칸나 씨에게 그녀들이 온 이유를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칸나씨가 뭔가 일을 하길 바라고 있잖아요. 저도 사실 혼자 집에 내버려두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요."

"네에."

"그래서 우리끼리 상의를 했어요. 칸나씨한테 알맞은 일이 있을까 하는."

"!!"

칸나 씨가 꽤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제가 할 일이 있을까요?"

“확실히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일단 나는 비앙카가 제시한 말보다 멜리사와 합의했던 내용을 말했다.

칸나 씨는 순순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청소도 직접 해야 하고, 정원 관리도 해야 할 텐데 괜찮겠어요? 이런 일 해본 적 없잖아요.”

“새로운 취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되죠. 일을 시작하면 바빠질 테니까 혼자서 우울한 생각만 하고 있진 않을 거 아니에요.”

칸나씨는 하루 종일 하는 거 없이 집에 갇혀 지내면서 우울증에 걸리기 직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너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이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고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떵떵 거리며 살았던 재벌 딸이다.

고작 집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을 리 없다.

다만 여러 일을 겪으면서 자존감이 낮아졌고, 내가 베풀어 준 호의가 부담으로 더해지다 보니 뭐가 됐든 다 받아들이겠다는 것 같았다.

“이 집을 맡기는 게 첫 번째 제안이고, 두 번째 제안도 있습니다.”

“두 번째 제안이요?”

“첫 번째 제안을 받으면 아마 편하게 지낼 순 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바깥에 마음껏 다닐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도 두 번째 제안을 해주시겠다는 거죠?”

“네. 참고로 비앙카가 제안한 의견이에요.”

꿀꺽­

아까부터 비앙카를 무서워한 탓에 그녀가 언급한 제안이라고 하자 칸나 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비앙카는 칸나씨가 언니를 피해서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하네요. 그리고 당신이 가질 수도 있었던 모든 걸 빼앗았으면 하나 봐요.”

“!!!”

칸나 씨 입이 쩍 벌어진다.

“아, 멍청한 모습. 킥킥!”

비앙카는 칸나 씨의 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칸나 씨는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상상도 못해봤던 말을 들은 탓이었다.

“충격 받았어요?”

“상상도 못해본 일이에요. 불가능한 일이고요. 하고 싶어도 못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요. 언니는 이미 후계자로 인정받은 상태에요!”

칸나씨는 고민 끝에 불가능한 일이라 결론을 내렸는지 고개를 저었다.

비앙카는 쯧! 하고 혀를 한 번 차더니 끼어들어서 말했다.

“이제부턴 제가 말해도 될까요?”

“그럴래?”

이제부터는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비앙카가 말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제안한 것이니 구체적인 계획도 갖고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비앙카가 하는 말은 엉뚱한 것들이었다.

“넌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니? 얼마나 멍청하면 이걸 거절하는 거지? 역시 너 같은 패배자를 주인님 옆에 두기엔 너무 아까워. 그나마 혈통 하나는 괜찮아서 판을 깔아주려니까...쯧쯧!”

“네, 네?”

“내참 기가 차서. 불가능하다고? 뺏는 게 가능할 리 없다고? 너한테야 네 언니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대단해 보이겠지! 근데 나한테는 별 거 아닌 자리거든.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깽판 칠 수 있을 정도니까. 애초에 네 언니가 그리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고.”

칸나 씨는 언니의 자리가 확고하다 생각하고 있지만, 비앙카의 아는 바에 따르면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후계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들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몇몇 떨거지들은 용케 처리한 모양인데, 정작 위협을 주는 인물은 멀쩡하게 세를 키우고 있다고.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위태로운 자리야.”

즉, 칸나씨의 언니는 뭔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실속은 없는 스타일인 것이다.

비앙카가 아플 정도로 상황을 꼬집으니 칸나씨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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