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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59화 (359/849)

〈 359화 〉 #54. 2년 (3)

* * *

칸나와의 일은 필연적으로 비앙카와의 상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비앙카가 칸나의 가문을 장악하기 위해서 들인 노력이 꽤 컸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칸나에게 그녀의 가문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처럼 굴었던 비앙카도 진짜 말처럼은 안 되는지 사전작업을 하느라 한동안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칸나도 육아는커녕 바쁘게 비앙카를 따라다녀야했지만.

‘무식한 게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비앙카가 칸나를 버렸다.

칸나가 상상 이상으로 무능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없는 게 편하고, 옆에 있으면 사고를 쳐대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단다.

‘쟤는 안 타는 쓰레기에요. 그래서 재활용도 안 돼죠!’

짧은 지식은 도저히 커버 불가능한 수준이고, 배움의 의지도 금방 식어버리는 의지박약을 데리고 다닐 만큼 비앙카는 자비가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칸나에게도 있었다.

비앙카의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가스라이팅에 묵묵하게 수궁하며 낮은 자존감을 고칠 생각을 안 했다.

학창 시절에도 공부를 못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 리 없다는 체념의 태도.

열심히 노력해도 부족할 판에 배우려는 의지 없이 체념만 하고 있으니….

재차 복수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 해도 태도가 3일 이상을 가질 않았다.

‘덕분에 모처럼 흥미 있는 일을 찾은 게 더 기뻤던 거겠지.’

결국 무의미한 시간만 흘렀고, 비앙카는 아이템으로 저 멍청한 년 좀 똑똑하게 만들어주면 안 되냐고 부탁을 하다가 이내 포기해버렸다.

‘그냥 제가 좀 더 시간을 쓸게요. 그런 걸로 똑똑해진 거 보는 게 더 짜증날 것 같거든요.’

결국 비앙카는 칸나를 완전히 포기했고, 칸나도 스스로를 포기한 눈치였다.

그렇게 칸나가 방치되길 몇 개월.

나로 인해 아기라는 낯선 존재를 만났고, 드디어 제 적성을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었다.

무기력해 하던 칸나에게 ‘육아’는 기적과도 같은 만남이었을 것이다.

‘나한테도 좋은 일이었고.’

현오 뿐만 아니라 지현이까지 맡아주니 복순 누나와 연주 누님이 부담을 굉장히 덜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도 칸나의 역할이 욕심나기 시작했다.

괜히 언니한테 복수하겠다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칸나가 자기 적성에 맞는 일에 집중했으면 한 것이다.

‘솔직히 비앙카한테 전부 맡긴 채로 복수하는 게 의미 있는지도 모르겠고. 괜히 진창에 빠져서 흙만 잔뜩 묻히게 될 수도 있잖아.’

하지만 이 또한 내 이기적인 바램일 뿐이니 당사자인 칸나와 확실하게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아이를 재우고 난 이후.

연주 누님이 아이 곁을 지키는 사이, 나는 칸나를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

“좀 어때? 힘들거나 필요한 건 없고?”

“없어요. 그리고 매번 필요한 게 생기면 바로바로 사다주셔서 필요한 것도 없고요.”

그녀와 마주 앉은 나는 긴장하고 있는 칸나를 달래기 위해 가벼운 걸로 대화를 시작했다.

“육아가 엄청 힘들다는 거 잘 알아. 아무리 적성에 맞는다지만, 그게 힘들지 않다는 말은 아니잖아.”

“물론 안 힘들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지금 힘든 것 자체가 좋은 거거든요. 나도 뭔가 할 수 있고,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뿌듯해요.”

여태까지 하는 일마다 무능해서 안 된다는 소리만 들어왔던 칸나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와 연주 누님, 그리고 복순 누나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러니 칸나가 이 일을 좋아하는 거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인데다 칭찬까지 받으니까.

“사실 오늘 따로 부르려서 제가 뭐 잘못한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어요.”

“그럴 리가. 앞으로도 우리 지현이랑 현오 잘 부탁해. 꼼꼼하게 일을 잘해줘서 누나들이 다 너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헤헤헤. 네에!”

내 칭찬에 기분이 나아졌는지 칸나가 헤실헤실 웃는다.

나는 기뻐하는 칸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뗐다.

“오늘 널 따로 부른 건, 사실 네 가문 일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야.”

“아…가문일이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생겼나요?”

칸나는 남의 일을 말하는 것 마냥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다지 관여하고 싶지 않은 티가 팍팍 났다.

그게 내 기분 탓만은 아닌 것이, 실제로 칸나가 후계자 자리를 빼앗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그녀가 하는 일이 있다면 비앙카가 필요하다는 파티장에 가서 얼굴마담으로 사람들과 인맥을 다지는 것이었다.

“아니, 비앙카한테 들었는데 곧 본격적으로 계획한 걸 실행할 생각이래.”

“아! 드디어요?”

칸나가 기대하고 있던 일이라는 듯 반색을 했다.

“비앙카가 많은 일을 해주고 있지만, 결국 네 일이라서 네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길 거야.”

“네? 제가요?”

“그럼 누가 해. 네 일인데.”

“어…저는 현오 돌보는 일 하는 거 아니었어요?”

“하하, 그럴 리가. 곧 비앙카가 여기저기 널 데리고 다닐 거야. 그땐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야지.”

결국 그렇게 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정화씨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것이다.

태양이가 제법 크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맡기기 미안한 점도 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녀석을 데리고 걷지도 못하는 아기 육아라니…. 진짜 몹쓸 짓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현오는 남자 아이.

보호를 위해서라도 믿고 맡길 사람은 가족밖에 없었다.

칸나는 미처 생각 못했다는 듯 걱정이 가득해져선 고민에 빠졌다.

“굳이 그래야 하나요? 지금까지 혼자서 잘 하셨잖아요. 저한테 시켜봤자 제가 대단한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괜히 나대다가 문제나 만들고, 사고를 칠거라며 칸나는 앞으로도 계속 현오를 봐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칭얼댔다.

“비앙카는 제3자잖아. 네가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려면 네가 직접 뭔가를 해내는 걸 보여줘야 해.”

정확히 말해서 하는 ‘시늉’을 하라는 뜻이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비앙카씨가 다 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참 해맑고 책임감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비앙카도 책임이 있는 부분이라서 칸나에게 뭐라고 할 순 없었다.

‘너무 멍청하고 민폐라면서 칸나를 포기한 비앙카나 자신 역시 재능이 없다고 못하겠다고 쉽게 포기한 칸나나. 둘 다 문제가 있지.’

비앙카도 처음에는 칸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가르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칸나는 비앙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아는 게 없었다.

평생 일하지 않고 놀고먹기만 하다보니 일을 배우는 것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남에게 시키면 되는 걸 왜 자신이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키니까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보긴 했지만….

‘저렇게 멍청한 애는 생전 처음 봤어요. 더하기 빼기도 제대로 못해서 실수를 해요. 자기가 잘못해놓고 남탓은 또 얼마나 해대는지. 한심해서 같이 말 섞기가 싫더라고요.’

비앙카가 몇 달 데리고 다니더니 학을 떼더라.

덕분에 칸나는 비앙카를 더 무서워하게 됐고, 비앙카는 칸나를 더 경멸하게 됐다.

‘그나마 파티장에라도 참석 시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던데….’

칸나를 얼굴마담으로 삼는 사이, 비앙카는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해냈다.

일단 가문을 피해 다니는 칸나를 다시 사교계에 데뷔시켰다.

비앙카 가문과 합작 회사를 세웠다는 명분을 들고서.

덕분에 가출을 한 칸나에게 이를 갈고 있었던 언니는 그녀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리고 돈을 쏟아 부으면서 회사를 키웠지.’

놀랍게도 비앙카는 회사의 덩치를 키우면서도 결코 손해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 칸나의 이름을 끼워넣으며 명예를 높이는 작업을 했다.

‘가문 안에서 아군이 없으면 후계자 자리를 빼앗는 건 불가능해요. 그러니 저 한심한 계집애 이미지부터 바꿀 필요가 있어요.’

칸나의 언니가 제대로 된 후계자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도 가문 안에서 파벌이 심하게 갈리고 있어서라고 한다.

때문에 비앙카는 칸나에게 실적을 몰아주며 그녀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비앙카는 철저히 그림자로 숨었다.

자신이 한 일을 남에게 넘겨야 함에도 비앙카는 비선실세 같다며 오히려 좋아하더라.

하지만.

‘아무리 비앙카가 비선실세 노릇을 좋아한다지만, 진짜 다 혼자 하게 할 순 없잖아.’

그랬다간 후계자 자리를 빼앗고 난 후, 칸나의 가문을 비앙카가 먹어버릴 지도 모른다.

모든 일을 비앙카가 했으니 칸나에겐 막을 명분이 없었다.

“제가 신경을 쓴다고 비앙카씨한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거든요. 저는 그냥 잘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복수의 전부를 비앙카한테 맡겨버려도 괜찮겠어?”

“상관없어요. 저는 그냥 언니가 망해버리는 것만 보면 되거든요.”

“…….”

이렇게까지 아무 의욕도 안 보일 줄은 몰랐는데….

비앙카가 너무 유능한 탓에 상대적으로 칸나의 행동이 소극적으로 바뀐 모양이다.

자기가 뭔가 하지 않아도 복수를 이룰 수 있을 거란 계산이 섰으니 굳이 뭔가 하려고 하질 않는 거다.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어떡하려고. 설마 그때도 육아하고 있을 거야? 아니잖아. 후계자가 되고 나선 비앙카도 손을 뗄 텐데 그땐 어떻게 하려고.”

“모르겠어요. 후계자 자리도 언니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었다면 관심 가지지 않았을 거에요. 옛날에는 후계자 자리를 포기했던 게 많이 아쉽기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거든요. 비앙카씨 따라다니면서 일을 해보고, 저랑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돼서 그런가 봐요.”

“그럼 후계자 자리를 빼앗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설마 저 때문에 가문이 망하기라도 하겠어요? 정 안 되겠으면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는 것도 방법이고요.”

“…….”

정말 언니에 대한 복수심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모양이다.

가출하고 난 이후 경험했던 게 칸나에겐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정이 안 들긴 해. 가출한 칸나를 걱정하면서 찾으려고 한 가족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녀가 합작 회사를 세워서 파티장에 나타나니 그제야 뒤늦게 연락을 해오던 가족도 있더라.

“역시 전 그냥 얼굴마담이나 할래요. 그래도 배웠던 게 아예 쓸모가 없는 건 아닌지 시키는 건 잘 할 수 있게 됐거든요. 그 자리도 비앙카씨가 얻은 거나 다름없을 테니까, 계속 비앙카씨가 맡아서 뽑아 먹으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비앙카이니 회사 몇 개 더 추가 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 없지 않겠냐는 거다.

비앙카가 무서운 짓을 시작하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알면서도 가문을 비앙카의 손아귀에 쥐어주겠다는 건 망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가문에 대한 미련이 한 톨도 없나보네.’

아직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물밑에서 진행 되고 있는 계획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 계획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오면 비앙카의 마수에 걸린 칸나의 언니는 큰 함정에 빠질 것이고, 회사에 커다란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가문을 비앙카한테 넘겨도 좋을 정도로 복수하고 싶다는데 내가 뭐라고 그걸 막겠어. 다만 이 일로 너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복수라고 해도 썩 좋은 경험은 아닐 거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복수하는데 한 것도 없는 주제에 바라기만 잔뜩 바라네요. 다만 제 복수 때문에 현오 도련님을 돌보는 걸 소홀히 하진 않을 게요. 복수도 중요하지만, 저한테는 현오 도련님도 그만큼 소중하거든요.”

생각보다 칸나는 언니에 대한 원망이 짙고 강했던 것 같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언니’라는 존재를 언급하니 눈빛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

“제가 바라는 건 언니가 후계자 자리에 밀려나서 나락에 떨어지는 것 뿐이에요. 그 앞에서 한껏 비웃어주고 싶어요. 제가 경험했던 굴욕감, 비참함을 몇 배 더해서 되돌려주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라면 매국노가 되어도 좋아요. 가문을 비앙카씨한테 전부 바치는 꼴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고요.”

“여전히 언니가 많이 밉나보구나.”

“네. 단순히 결혼 일만으로 싫어하는 게 아니거든요. 자라오면서 언니한테 당했던 일들이 많아요. 말하려면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요.”

남의 능력을 빌려서라도 복수에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칸나.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칸나는 나쁜 여자다.

소설 속에서 나올 법한 재벌가문 망나니 악역.

딱 그런 캐릭터인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어.’

새삼 나쁜 여자라는 걸 깨닫게 됐지만, 상관없다.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여자이니 말이다.

더불어 이곳은 현실.

소설에서처럼 주인공에 의해 그녀가 퇴치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역으로 승승장구 하게 될 터다.

자격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한 그녀가 그럴 수 있는 이유.

세상은 불공평하고, 그런 점에서 내 여자가 된 칸나는 승리 할 이유가 충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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