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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60화 (360/849)

〈 360화 〉 #54. 2년 (4)

* * *

늦은 밤이 되어서야 일이 끝났는지 복순 누나가 퇴근해서 집에 왔다.

“꺄악! 우리 애기들 잘 있었니?”

“어서 오세요. 저녁 드셨어요?”

“응~ 나 먹고 왔어. 씻고 올게! 어? 해솔이도 있었네?”

“넵. 오늘 콘서트 끝났어요.”

“너무너무 고생 많았어~ 쪽쪽쪽!”

“술 마셨어요?”

“쬐끔?”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이번에 소속사에 붙었는데, 바로 데뷔조에 들어가게 돼서 기쁨에 선생님들과 회식을 했단다.

10시가 넘는 시간 거의 11시에 가까워진 시간에 집에 들어 온 이유가 있었다.

사실 지현이만 아니었어도 그녀는 새벽까지 회식을 즐기다 왔을 거다.

깨끗하게 씻고 나온 복순 누나는 지현이와 현오를 양 쪽에 끼고 예뻐하느라 난리가 났다.

“잘 시간이 지났는데….”

낮잠을 자긴 했지만, 11시에 가까워진 시간은 아기가 자야 하는 시간이었다.

똘망똘망!

“방금 깼는데 애들이 잘 리가 없잖아.”

하지만 복순 누나가 들어오면서 잠에서 깬 지현이와 현오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괜찮아! 내가 재울게!”

“취했잖아요. 그래놓고 뭘 재워요. 제가 재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놀아줘요.”

어차피 아기 숙면용 아이템인 ‘딸랑이’가 있어서 아이를 재우는 건 문제 없었다.

허락을 받은 복순 누나가 하이 텐션이 돼서 아기들과 놀아준다.

연주 누님이 슬그머니 다가와 복순 누나와 함께 아직은 어색한 손짓으로 아기들과 함께 놀았다.

‘상상도 못할 광경이란 말이지.’

회사 사람들이 저 모습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 아기가 태어나면서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내가 꿈꾸던 ‘우리 집’이 완벽하게 완성 된 건 아니지만, 바라던 광경이 바로 저 모습이었다.

내 자식들과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따듯한 집.

“역시 피곤했나보네.”

“아가들은 제가 데리고 갈게요.”

“응.”

방 안이 조용하다 싶어서 들어가니 아기들과 놀아주던 복순 누나와 연주 누님이 침대 위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오랜만에 사장으로 출근을 해서 잔뜩 긴장했을 것이고, 회사에 들려서 일이 끝나자마자 콘서트장을 찾아오느라 비행기를 타야했던 연주 누님이다.

피곤해서 잠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복순 누나도 회식을 해서 술을 먹었으니 잠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순한 모습으로 잠든 두 사람을 구경했다.

“지현이랑 현오가 큰일 했지.”

이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우리 집에 들어와 사는 여자가 될 줄 몰랐다.

집에 가장 먼저 들어 올 거라 예상했던 주아 누나나 민영 누나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이라서 함부로 집을 바꿀 수가 없었다.

우리 사이를 모르는 소속사의 매니저한테 설명하는 것도 곤란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변화가 생긴 게 칸나가 육아를 시작하면서였다.

‘여기가 넓고, 시설도 잘 되어 있어서 육아하기 딱 좋지.’

칸나가 뭔가 해보고 싶다고 했던 게 처음이었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걸 배우고 싶어 한데다 태양이를 위해 샀다가 크면서 자연스레 창고에 넣어두었던 물건들이 집에 가득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육아판이 집에 펼쳐지자 자연스레 엄마인 복순 누나와 연주 누님이 우리 집을 수시로 드나들게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그녀들의 물건이 집에 쌓이기 시작했고, 서늘한 냉기를 내뿜던 방에 훈기가 돌았다.

쪽, 쪽!

두 여자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고, 방문을 닫았다.

? ? ?

콘서트라는 큼지막한 행사를 끝낸 우리에겐 많은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고생한 멤버들에게 휴식의 시간을 준 것이다.

애들끼리 바로 국내로 돌아가지 않고, 해외에 머물면서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여행지를 구경다녔다.

특히 나는 애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다.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 특이 체질을 알기 때문이었다.

“재밌냐?”

“완전 개꿀잼에여!”

내가 곁에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특이 체질.

더 이상 파파라치가 남의 일이 아닌 우리에게 평화롭게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내 체질이 애들에게 꼭 필요했다.

남자에 대한 범죄율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여행은 쉽게 즐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남자 아이돌이 무려 6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여행을 순수하게 즐긴다?

‘내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

눈 뜨고 코 베였는데 누가 베어 간지도 모를 상황이 되는 거다.

그래서 애들이 꼭 나를 데리고 다녔다.

여행을 할 때도 옹기종기 모여서 섣불리 그룹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년간 내 체질을 이용하면서 거리에 따라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가자.”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밥은 호텔가서 먹을래? 나 따로 할 거 있는데.”

“그러지 뭐. 형 오늘 고마웠어!”

“맞아. 덕분에 진짜 편하게 즐겼어.”

내일 또 나를 끌고 다닐 걸 생각했는지 녀석들이 생각보다 쉽게 나를 놔준다.

나는 애들이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걸 확인하고 나서 아이템을 사용해서 이동했다.

“사장님!”

내가 도착한 곳은 란나의 집이었다.

“잘 지냈어요?”

“바빠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사장님은 잘 지내셨어요? 일이 엄청 바빴다면서요. 살이 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큰일 계약이 끝나서 시간이 좀 널널해졌어요. 근데 란나씨도 많이 바쁘죠? 5호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면서요.”

“네. 입지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오픈 빨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4호점 냈을 때보단 반응이 좋더라고요.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잘 되니까 기분이 엄청 좋은 거 있죠?”

.

가게 하나만이라도 자리를 잡기를 바랐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호점이 성공적으로 개업하게 됐다.

처음 2호점 낼 때만 해도 다신 하지 않겠다고 하던 그녀가 5호점을 성공시킨 걸 보니 절로 흐뭇해진다.

고작 2년밖에 안 지났는데 이렇게까지 빠른 확장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묻는다면, 란나의 수환이 대단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물론 내가 흔쾌히 투척해주는 투자금도 한 몫 했지만.’

돈이 있는데 뭔들 못 할까.

사실 돈을 무한정 투자해주고 있다고는 해도 프랜차이즈화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공은 더더욱 힘들고.’

2년 만에 5호점을 낼 수 있었던 건, 2호점을 내면서 노하우가 생긴 그녀가 3,4호점의 일을 한 번에 진행시킨 덕분이었다.

결심이 어렵지 제대로 마음을 먹으니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걸 잘하는 란나씨였다.

“그 사람은 만족하는 것 같아요?”

“만족하는 것 같긴 한데 사람 속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도 3, 4호점을 먼저 내봐서 어수룩한 모습은 안 보여줬어요.”

“내가 좀 도와줬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아니에요. 큰 계약건이 생겨서 바쁘셨잖아요. 그리고 애초에 이 일은 제가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투자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5호점의 성공이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란나가 직접 가게를 낸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프랜차이즈 창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낸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란나도 그래서 5호점이 더 신경 쓰이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5호점을 준비하면서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

뭔가 말을 하려던 찰나, 란나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요? 편하게 말해 봐요. 무슨 일 있어요?”

“어…실수를 했어요. 지금 말 할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튀어나와버렸어요.”

“어차피 나한테 하려던 말인 거 아니에요? 그냥 지금 말해줘요.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어요.”

란나에겐 쉽지 않은 말이었는지 한참동안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이런 식으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뭔가 성과를 낸 이후에 말하려고 했던 건데….”

“성과? 아~ 투자금 필요해요?”

사실 할 말이 있다고 했을 때부터 돈 문제일 거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야금야금 주었던 투자금들이 모이고 모이니 제법 큰돈이 된 상태.

2호점, 3호점, 4호점을 내는 돈이 땅 파서 나온 게 아니듯, 모두 내가 투자를 해서 시작할 수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계획하지 않았던 5호점을 갑작스럽게 준비하면서, 추가로 투자금이 들어갔다.

아직 내가 투자했던 돈이 이익으로 돌아오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또 다시 투자금 얘기를 꺼내려고 하니 면목이 없었을 거다.

“사실 5호점 이후로 몇 분께서 창업 의뢰를 넣으셨어요.”

“오! 축하해요. 잘 됐네요.”

“그 분들 창업을 도와드리려면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제가 얼핏 알아보니까 상상 이상의 돈이 들더라고요.”

“저는 찬성이에요. 2,3,4호점 성공시키는 거 보면서 란나씨가 그쪽으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돈이 있는데 재능을 썩힐 이유가 뭐가 있겠나?

더군다나 란나도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해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너무 일을 크게 만들기 무섭다며 사양하곤 했는데 먼저 투자금 얘기를 꺼낼 정도이지 않은가?

5호점을 성공시킨 이후로는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았다.

“협력 업체 사장님들도 제가 확실하게 노선을 정해줬으면 하세요.”

“해요. 안 할 이유가 없어요. 란나씨가 확실하게 결정하면 다른 분들도 사업을 확장하는 거죠?”

카페라는 게 어디 커피만 팔겠는가?

가게의 지리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디저트를 판매하느냐도 매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그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고, 그쪽 협력 업체 사장님도 슬슬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네. 아마 그렇게 될 거에요. 그분들도 의욕이 대단하세요.”

5호점이나 생기면서 돈의 맛을 봤으니 눈이 돌아갈 만 하다.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게 분명하고 말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해봐요. 뭐가 문제에요? 지금까지 계속 잘 됐잖아요. 그분들 돈 필요하다고 하면 말해줘요. 제가 투자할게요. 아무리 협력 업체라지만, 어느 정도 지분을 갖고 있는 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을 거에요.”

“…그렇게까지 해주신다고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들어가는 돈 단위가 다를 텐데.”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계속 잘 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소심하게 말하는 거에요? 당당하게 요구해도 괜찮아요.”

회사가 잘 되면 이득을 보는 건 나다.

그녀도 회사의 지분이 있지만, 투자금을 낸 내 지분이 더 많았다.

“받아가기만 하고, 제대로 돌려드린 게 없어서 면목이 없어요.”

“투자라는 게 어디 하루 이틀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건가요? 제가 그 정도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쓰는 돈 단위가 달라지는 게 무섭기도 하고요. 이렇게 일을 벌리고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와 일을 하기 전만 해도 평범한 대학생이던 란나다.

나를 만나서 너무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됐고, 그 급작스러운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란나씨는 잘 해낼 거에요. 지금도 잘 해내고 있잖아요. 그리고 만약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생기면 저한테 의지해요. 란나씨한테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지, 부담이 되려고 투자한 게 아니에요.”

“…저한테 너무 잘해주시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손을 뻗어서 란나씨를 품에 안았다.

“란나씨가 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한테는 소중하고 대단한 사람이에요.”

“연인이라는 이유로 받고만 있어서 더 그래요. 제가 투자를 받아놓고 망하면 어떡하죠? 지금까지 일이 너무 잘 되기만 하니까 더 불안해요.”

실패가 없다는 게 란나씨를 더 겁나게 만든 모양이다.

나도 그녀가 느끼는 기분이 뭔지 잘 안다.

우리 그룹은 시작부터 승승장구했고, 해외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렇듯 어떤 알 수 없는 문제로 그룹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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