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화 〉 #55. 조폭 장모님 (2)
* * *
“일단 얘기하기 전에 말해두는데 이건 받아도 되는 거다.”
“네? 이걸 받으라고요?”
“그 사람한테는 별 거 아닌 수준의 선물이야. 아니, 오히려 네가 부담스러워하는 걸 보면서 좋아하겠지.”
“…….”
“그러니까 이런 걸로 놀라거나 부담 돼서 곤란해 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마. 그걸 이용해서 파고들려고 할 테니까.”
원하지도 않았던 부담스러운 선물을 잔뜩 선심 쓰듯이 안겨주고서 나중에 그걸 핑계로 무언가를 요구할 거라는 게 누님의 말이었다.
“그럼 이 선물을 받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받으라고 준 걸 안 받겠다고 한들 그 사람이 알겠다고 순순하게 넘어갈 리 없지. 아마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냐고 하면서 더 큰 걸 주려고 할 거다. 네가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단위는 더 커질 거고.”
“제가 부담 돼서 거절한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첫 사위에게 주는 선물인데 부담스러워 할 필요 없다고 할 거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쪽에서 변명할 건 얼마든지 많아. 설득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사람이거든. 그저 자기 생각을 강요할 뿐.”
“…….”
누님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그녀의 집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왜 그곳에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결심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어야 했는지 등을 말이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다소 흥분해 있는 게 보이는 그녀가 걱정 됐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억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사람이야. 네가 거절하면 오히려 더 귀찮게 굴 거다. 그러니 깔끔하게 받아들이는 게 나아.”
“…누님, 괜찮으세요?”
“하아~ 아직은 괜찮아.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닥치고 보니 당황했나봐. 나도 모르게 흥분했어. 널 먼저 건드릴 줄은 몰랐거든.”
연주 누님은 내가 장모님에게 무슨 해코지라도 당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다.
내 능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재차 경고를 해올 정도였으니, 그쪽 사람들에게 시달렸던 기억이 굉장히 좋지 않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으세요? 누님이 바라시는 대로 할게요.”
“내 바람대로 하겠다고?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애석하게도 누님은 아마 그러지 못할 거라며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말이라도 해주세요.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지. 누님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돼. 내가 지켜줄 거다.”
“그래도요! 저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잖아요.”
내가 재차 누님을 닦달하자 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는지 누님이 입을 여셨다.
“만약 그 사람이 찾아와서 잠깐 만나자고 하면 어떡할래?”
“어…만나봐야겠죠?”
“내가 바라는 건 싫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거야. 할 수 있겠니?”
만나자고 직접 찾아왔는데도 거절한다?
딸과 결혼한 사위가?
아무리 누님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었던 내가 그런 짓을 하긴 어려웠다.
“직접 찾아오시면 거부 못하긴 할 것 같네요.”
“맞아. 넌 못할 거야. 네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까.”
결국 연주 누님이 나한테 바라는 건 장모님을 모질게 대해달라는 거였다.
그녀가 어떤 짓으로 나를 홀려서 현오를 데려가려 할지 모르니 말이다.
“걱정 하지 마. 내가 지켜줄 테니까.”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런 접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간 네가 더 큰 피해를 입을 테니 직접 찾아가서 단판을 지을 거다. 그런다고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경고를 해두는 게 맞아.”
“그럼 이렇게 해요. 저도 거기 따라갈게요.”
모든 부담을 연주 누님 혼자서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연주 누님만 현오의 엄마가 아니지 않은가?
나도 현오의 아빠였다.
“거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따라오려고 해!”
“저도 현오 아빠잖아요. 현오를 지키는 건데 제가 가만히 있는 게 맞는 거에요? 그리고 장모님께서 저한테 자꾸 접근하실 거라고 하셨잖아요. 누님을 따라가서 제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면 장모님께서도 주춤하시지 않겠어요?”
“…….”
“연주 누님이 혼자 가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저 혼자서 장모님이랑 만나서 얘기를 꺼내는 것보단 누님이 옆에 계실 때 말을 하는 게 더 마음 편하기도 하고요.”
내 말이 제법 설득력 있었는지 연주 누님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될 수 있으면 그 사람이랑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만나서 얽혀봤자 좋을 거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평생 얼굴 한 번 안 보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문제가 일어날 걸 기다리고 있기보단 아예 일어나지 않게 준비하고 해결해놓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럴까? 그런다고 그 사람이 욕심을 버릴 리 없을 텐데….”
“해보고 생각해요. 안 되면 그때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죠. 지레 겁먹고 안 된다는 생각에 해보지도 않는 것보단 해보고 실패하는 게 더 후련할 거에요.”
실패한다 해도 뭔가 해보려 했던 것 자체만으로도 값어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도대체 얼마나 고집이 세기에 연주 누님이 저렇게까지 말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여태까지 장모님을 뵀던 건 딱 한 번이었는데, 그때 뵀을 땐 연주 누님이 말하는 것처럼 못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사실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기엔 부족한 시간이긴 해서 연주 누님의 말이 맞겠거니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났을 때 누님이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아서 더 알 수 없어졌지.’
그때 만난 것도 현오가 태어나 손주 좀 보자는 장모님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딱 한 번 보여줬던 거였다.
처음 뵀던 장모님은 연주 누님에게 들었던 이미지와 달리 굉장히 멋진 여성이었다.
희게 센 머리를 정갈하게 묶은 채로 정장을 입고 계셨는데, 주먹질 하는 세계에 살아서 그런지 굉장히 탄탄한 몸매를 갖고 계셨다.
특히 숨길 수 없는 카리스마와 포스가 대단하셨는데 직업을 알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쪽 세계 사람이라는 게 단숨에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누님이 말할 정도로 막무가내로 나가는 분은 아닌 것 같았는데.’
연주 누님이 말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으면 장모님은 무식하고 폭력적인데다 안하무인이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팔이 안으로 굽어서 누님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장모님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괜찮겠니? 그런 험악한 곳에 널 데려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안 좋은데.”
연주 누님이 내 뺨에 손을 얹으며 걱정을 내보인다.
“사실 좀 무섭긴 해요. 좀 독특한 직업을 갖고 계신 분이잖아요. 근데 누님이 옆에 계신다고 하니까 용기내본 거에요.”
“현오한테 그런 일을 물려주지 않을 거야. 설득이라는 게 안 통하는 사람이지만, 네가 해보고 싶다고 하니 말리지 않을게. 뭐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전부 해도 돼. 뒤처리는 내게 맡기렴.”
남자면서 이래도 되나 싶긴 한데, 든든하게 연주 누님이 버티고 있으니 마음이 웅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연주 누님은 결단을 내린 이상 오래 끌 필요 없다며 장모님 쪽 사람과 연락을 해서 빠르게 약속을 정해버렸다.
그리고 그쪽도 지금까지 쥐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아주 빠르게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나는 불과 이틀 만에 장모님의 집으로 초대 된 것이다.
? ? ?
장모님의 집을 처음 봤을 때, 처음엔 압도적인 크기에 놀랐고 요즘엔 보기 힘든 기와집이라서 놀랐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기와집은 옛 정취를 느끼게 만들면서도 그 안에는 현대의 편리함을 섞어뒀기에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놀랐던 것은.
‘우와, 진짜 검은 정장이잖아.’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정장의 여성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가벼운 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조차도 색깔은 무조건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몸에는 하나같이 화려한 문신이 가득했다.
호랑이도 있고, 용도 있고, 돼지도 있고, 주작도 있고….
옷 안에 가려져서 전부를 볼 순 없었지만 어떤 동물을 그려놨는지는 쉽게 유추가 가능했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까, 깜짝이야.
우렁차게 고개를 90도로 깍듯이 숙이는 조폭들의 인사에 나도 모르게 주춤 뒷걸음질을 했다.
‘아가씨’라고 불린 연주 누님이 주변을 휙 둘러보더니 왈칵 짜증을 냈다.
“지금 해보자는 거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다 불러 모아서 뭔 짓을 하려고.”
“아닙니다, 아가씨! 보스께서 시키신 게 아니라 아가 도련님께서 오신다는 말에 다들 보고 싶다고 이렇게 모여 버렸습니다.”
실제로 내 품에 안겨 있는 현오를 주변에 있는 조폭들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현오는 집에 오는 사이에 품에서 색색 잠이 들어 있는 상태였다.
“너희들이 내 아들을 왜 보는데. 무슨 상관이라고.”
““죄송합니다!””
흐엥!
우렁찬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서 그런지 결국 현오가 잠에서 깨어났다.
잠투정을 부리는 현오를 달래고 있는데 소란을 들었는지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한 젊은 여자와 머리가 희게 센 카리스마 있는 여성, 그러니까 장모님이었다.
““나오셨습니까, 보스!””
으애애앵!
“허허! 고놈 참 울음소리 우렁차구나.”
“사람을 불러놓고 이런 꼴을 자랑 거리처럼 늘어놓으시네요. 다 내보내세요. 저 사람들 구경하라고 데려온 거 아닙니다.”
“애가 보고 싶어서 몰려들었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너 어릴 적에도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애들이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돌려보내세요. 아니면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저런…쯧쯧! 까다롭기는. 애 한 번 보여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에잉, 다들 돌아가라! 나중에 다시 와!”
““예, 보스!””
보스의 명령을 들은 조폭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던 속도처럼 아주 빠르게 사라졌다.
검은색으로 꽉 찼던 마당이 순식간에 텅 비었고, 현오는 그 엄청난 광경을 눈이 휘둥그레져서 지켜봤다.
칭얼대던 것도 잊은 채 말이다.
울기는커녕 현오의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항상 집에 있다가 오랜만에 낯선 곳에 온 것이니 신기해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크흠, 어서오게.”
연주 누님과 신경전을 벌리던 장모님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먼저 아는 척을 해오셨다.
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장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오느라 고생 많았네. 늙은이가 무슨 일이 있어봤자 뭐가 있겠나. 하루종일 하는 일 없이 적적하게 지낼 뿐이지.”
“계속 그렇게 지내시지 그러셨습니까. 새삼 늙어서 뭘 더 해보시겠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아직 날이 쌀쌀하네. 어서 들어오게. 감기 들라.”
연주 누님의 말을 태연하게 무시하시곤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표현하신 뒤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나를 걱정한다기보단 현오가 걱정 되시는 모양이었다.
“우리도 들어가죠.”
“현오를 데려 온 게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탐욕을 부리고 있는 게 보여서 거북해.”
“직접 말씀하신 게 아니잖아요. 지레 짐작하지 말죠. 그리고 현오는 여기 놀러 온 게 좋은가봐요.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눈이 똘망똘망해요. 오랜만에 바깥에 나와서 좋은가 봐요.”
“…어서 해외지사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와야겠어.”
연주 누님이 현오가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웃음을 지으셨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예상하지 못한 조폭들의 등장에 잔뜩 긴장했는데, 누님이 웃는 걸 보니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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