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64화 (364/849)

〈 364화 〉 #55. 조폭 장모님 (3)

* * *

어머님은 우리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현오를 받아드시더니 무릎에 앉히고 예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요즘 남자애들을 노리는 범죄가 많다던데 괜찮은 게냐?”

“안 괜찮은 거 알면서 모르는 척 묻지 마십시오.”

“그만 좀 해라! 아주 어미를 잡아먹으려고 하지.”

연주 누님은 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까칠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잡아먹고 싶다고 하면 잡아 먹혀 주실 겁니까?”

“몹쓸 년. 점점 더 성질이 개가 되고 있구나. 이젠 그나마 지키던 예의도 팔아먹고 왔으니.”

“…….”

이런 살벌한 말이 오가는 상황이었다.

이 분위기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아이구, 우리 손자는 어쩜 이리 순할꼬.”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안겼는데도 눈물 하나 내보이지 않고 똘망똘망하게 눈을 뜨고 있으니, 차라리 현오가 자지러지며 우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아직 애라 보이는 게 없어서 그런 겁니다. 아이 손에 피 묻힐 생각이 가득한 사람인데 좋아할 리가 없잖습니까.”

“애 손에 피를 묻히긴 왜 묻혀! 그럴 일 없다! 넌 어미가 하는 일이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편견이 가득하구나.”

“자세히 알고 싶지 않습니다. 뻔하죠. 사람 죽이거나 패고 약 팔고 술 팔아서 돈 버는 게 조폭이지 않습니까?”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다는 게냐! 내 손에 피 묻혀서 너희들을 키웠고, 조직을 키웠다! 내가 먹여 살리는 입이 몇 명인지 아느냐?”

“쓰레기들을 모아서 사람 구실 못하는 인간 말종으로 만드셨죠. 멍청한 놈 손에 권력과 돈이 쥐어졌으니 얼마나 날뛰겠습니까? 사람 피 묻은 돈을 현오 손에 쥐어주려거든 차라리 기부하세요.”

연주 누님의 수위를 지키지 않은 뾰족한 말들이 계속해서 장모님에게 꽂혔다.

도움이 되고 싶어서 같이 오겠다고 한 건데, 연주 누님의 우려대로 살벌한 모녀 싸움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괜히 왔나 하는 후회가 들었을 때쯤.

“우으우….”

현오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라서 모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현오도 분위기를 알아서 지금처럼 즐겁지 않으면 울먹거리거나 우울해 한다.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았냐면, 멜리사와 비앙카가 자매 싸움을 하는 걸 보고 현오가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현오, 이리 주세요.”

나는 현오의 칭얼거림에 모녀 싸움이 멈추자 손을 뻗어서 현오를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장모님은 고개를 저으며 현오를 좀 더 품에 안으셨다.

“아니다. 내가 계속 데리고 있으마. 언제 또 볼지 모르는데 볼 수 있을 때 실컷 봐둬야지.”

“…….”

양심이 쿡쿡 찔리는 소리다.

장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복순 누나도 비슷하다.

그러나 지현이가 태어난 이후, 상황이 좀 달라졌다.

시골에서 나올 생각 하지 않으셨던 어머님이 올라와서 복순 누나의 산후조리를 돕기도 하고, 지현이 사진 좀 달라면서 연락도 자주 하기 시작하신 거다.

처음엔 얼떨떨해 하고 거부감을 보이던 복순 누나도 장모님의 꾸준한 관심이 마냥 싫지는 않은 듯했다.

“사진, 보내드릴까요?”

“그래 줄 수 있겠나? 우리 딸이 남자는 제대로 골랐단 말이지.”

내 말에 반색하신 장모님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연주 누님과 싸우면서 기분 나빠지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눈치다.

오히려 연주 누님만 속으로 씩씩댈 뿐.

확실히 연륜은 무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연주 누님이 누군가를 대하는데 저렇게 어려워하는 건 처음이다.

나도 바짝 긴장해야겠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현오 얼굴 계속 보고 싶으시면 헛짓거리 하지 마세요. 선물은 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너한테 줬니? 사위한테 준 선물이다.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할 게 못 돼!”

딱 잘라 호통을 친 장모님이 나를 인자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사위.”

“예, 어머님.”

“내가 준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나? 아니면 연주 저 년이 억지로 빼앗은 게야?”

“아닙니다. 선물을 주신 마음은 알겠지만 받을 수 없어서 제가 부탁드렸어요.”

“안 받고 싶어? 왜? 자네도 더러운 걸로 번 돈이라 싫은 겐가? 돈에 높낮이가 왜 있나? 그걸 산 돈을 뭐로 벌었는지 나도 모르는데 자네가 확신해?”

“이 사람한테 협박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 아니에요.”

연주 누님이 내 앞을 막아서는데, 내가 누님를 막았다.

이 정도도 제대로 처리 못해서 누님에게 기대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다.

“괜찮아요, 누님. 장모님이랑 대화 나누려고 온 건데 막지 마세요. 장모님, 하시고 싶은 말 전부 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크흠, 그래?”

연주 누님이 차마 내 말에는 반박하지 못하겠는지 못 마땅해 하면서도 한숨을 쉬고 뒤로 물러났다.

이를 본 장모님께서 헛기침을 하시더니 말씀을 시작한다.

“그럼 몇 마디 하겠네. 첫째한테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집안이 좀 복잡하네. 하지만 그래도 쟤가 내 딸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자네가 내 사위가 아닌 것도 아닐 테고.”

“예, 맞습니다.”

“내가 가진 게 많네. 남들은 못 가져서 안달이 난 것들이지. 내 딸은 질색을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우리도 제법 번듯하게 회사를 차려서 먹고 사는 입장이라는 뜻이야. 적어도 부끄럽게 만들 생각은 없네.”

장모님의 말에 의하면 음지에서만 활동하던 조폭들도 더 이상 숨어서 운영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음지에서 손을 아예 떼는 건 아니지만, 대외적으로 보여줄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10년 동안 공들여서 회사를 만들었고, 모든 걸 깔끔하게 처리해 놓았네. 더러운 일은 내가 다 끝내놨다는 뜻이야. 다음에 내 자리에 앉을 후계자는 예쁜 것만 보고 살 수 있어. 아는 놈들이야 지금은 조폭이라고 비웃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나? 내가 죽고 세대가 바뀌면 결국 남는 건 대외적인 이미지뿐이네.”

“그 말씀은, 어머님의 후계자가 돼서 현오가 후계자가 된다 해도 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거야! 내가 여태까지 죽지도 못하고 살아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힘들고 더러운 일은 내 손으로 전부 수습하고 갈 걸세. 난 손주한테 험한 일 시킬 생각 없어. 이 고운 손에 피를 묻힌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좋은 것만 누리고 살아도 부족한 인생이야.”

떳떳한 기업으로 만들어 두었고, 그걸 현오한테 주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제법 솔깃해지긴 하다.

내가 많은 걸 가졌지만, 어머님이 주시겠다고 한 회사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솔깃해 하는 내 정신을 돌린 건 연주 누님이었다.

“여전히 어머니는 거짓말을 참 잘 하시는군요. 어머니가 현오한테 물려준다고 하면 다들 그러십시오 하고 넘어간답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혼자 남은 현오가 그 험악한 인간들 사이에서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요? 그리고 회사라고 하셨나요? 뿌리가 썩어있는데 나무가 튼튼하게 자랄 리 없죠. 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연주 누님의 말은 다행이도 내 정신을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어머님의 말만 들으면 이걸 안 받으면 병신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연주 누님의 말을 들으면 ‘이걸 삼키면 배가 터져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너는 왜 자꾸 초를 치는 게냐!!”

“어머니가 해솔이한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니 지적을 안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거짓말 한 적 없다. 모두 진실이야! 내가 싫으니 하는 말이 곱게 들리지 않은 거다. 네가 문제라는 뜻이야! 내가 그 정도도 예상 못할 만큼 호락호락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한테 완벽하게 충성하는 녀석들이야. 내가 당장 죽으라고 하면, 자기 배에 칼침 놓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할 애들이라고!”

자기 식구를 의심하는 연주 누님의 말에 화가 많이 나셨는지 장모님의 얼굴이 붉어지셨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남 피와 살을 뽑아서 자기 배를 채우는 것들이 어머니한테만 세상에 둘도 없는 신하이고, 책사라는 게 말입니다. 늙어서 눈이 가려져 계신 겁니다. 옆에서 속달대는 녀석도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쟤한테 물려주세요. 둘째한테 물려주면 아마 쟤한테 멱이 따일 테니 말입니다.”

연주 누님이 장모님의 뒤에 시립해 있던 여자를 가리키며 신랄하게 말했다.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여자는 무척 흰 피부를 갖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땐 귀신인가 싶었을 정도로 말이다.

검은 눈썹도 무척이나 짙었고, 피부는 희고 창백한데다 입술은 유난히 도드라지게 붉어서 밤에 보면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 충분했다.

‘저 무표정도 은근히 무섭고.’

더욱이 관찰력이 좋은 나는 저 여자의 허리춤에 묵직한 무언가가 달려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게 총인지 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묵직한 존재감을 갖고 있어서 절로 시선을 잡아끄는 여자는 연주 누님의 말에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덤덤하게 도발을 받아 넘겼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아가씨. 의심을 거둬주십시오.”

“너도 억울하지 않아? 저 노인네 옆에서 시중들고, 자식 노릇 하고, 되도 않는 회사를 만들겠다면서 온갖 일을 다 시켜놓고 정작 핏덩어리한테 이 모든 걸 다 넘겨주겠다는데.”

“말도 안 되는 억측이십니다. 그런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진작 보스께서 절 내치셨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안 그래도 문제없었겠지. 순종하는 척 하면서 버티다 보면 결국 노친네는 죽을 거고, 둘째가 조직을 물려받으면 네 세상이 됐을 테니까. 둘째야 지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해주면 널 거스를 리 없지 않나.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구나. 둘째는 버려지고 아직 핏덩어리인 우리 애한테 조직이 넘어가게 생겼으니. 어머니가 현오한테 모든 걸 다 넘겨주게 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아이는 지켜야 하니까. 넌 나한테 충성할 수 있겠니? 내가 이 조직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서?”

“!!”

진짜 저 여자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 0%냐고 하면 아닐 거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화장실 들어갔을 때와 나갈 때조차도 마음이 달라지는 게 사람이니 말이다.

연주 누님은 가출을 할 만큼 조직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조직 일에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면, 누가 진심으로 그녀를 따를 것이고, 인정을 하려 할까?

조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연주 누님은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지금 그래서 현오를 물고 늘어지시는 거잖아요. 이대로 있으면 결국 생판 남한테 조직이 굴러 들어갈 테니까요.”

“…….”

누님의 말이 너무 정곡이었는지 장모님이 쉬이 입을 열지 못하신다.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던 여자는 누님의 말을 인정하는 듯한 장모님의 표정을 보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충격 받은 모양이네.’

적어도 한 가지는 알겠다.

저 여자가 장모님께 보이는 충성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충성이 자식에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호부밑에 견자 없다는데, 사고만 치고 돌아다니는 둘째이지 않은가?

장모님이 돌아가시면 충성심도 점점 사라지고 비어있는 곳에 욕심이 채워지리라.

“쓸데없는 분란만 만드는구나. 저 아이가 나에게 보이는 충성은 진짜다.”

“그 충성심이 둘째한테 잘 이어지던가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는 장모님과 이를 충격 받은 채 지켜보던 여자가 돌발 행동을 했다.

빠악!

서 있다가 아무 준비 없이 냅다 바닥에 무릎을 꿇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무릎 꿇을 때 난 소리가 ‘털썩’이라기보단 ‘빡’이었다는 거다.

적어도 몇 주 멍은 무조건 들었을 것 같다.

‘아니, 뼈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인가?’

그러나 여자는 아프지도 않은지, 아니면 고통이 대수롭지 않은지 장모님에게 사죄한다며 고개를 바닥에 박아버렸다.

“송구합니다. 보스! 제가 제대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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