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66화 (366/849)

〈 366화 〉 #55. 조폭 장모님 (5)

* * *

최관은 설레임으로 거칠게 뛰는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그동안 최관은 보스에게 많은 시험을 받아야 했다.

그녀의 곁에 있으려면 변하지 않을 충성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인가? 보스의 진심을 알 수 있게 된 기회가.’

최관은 오랜 세월 동안 충성을 증명했고, 덕분에 항상 보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었다.

보스의 옆자리를 노리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최관은 항상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했다.

언제 그녀의 뒤에 칼을 놓을 것들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보스께선 슬퍼해주실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도 사람인지라 자신이 평생 바쳐온 충성이 보답 받길 원했다.

다만 보스에 한해서는 한없이 물러지는 그녀는 인정을 받는 문제를 질질 끌고만 있었다.

굳이 내색을 하지 않으셔도 자신을 신뢰하고 계신다고 자위한 것이다.

사소한 바램조차 보스에게 요구하지 못했던 최관은 정작 돗자리가 깔리게 되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대모 자리가 욕심나진 않아.’

그녀가 바보도 아니고, 대모가 되어달라고 한 남자의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겠다는 거였다.

평소라면 남자의 건방진 행동에 난리가 나도 났을 것이다.

그러나 최관은 이번 일을 그냥 묻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에 안 들긴 해도 보스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됐으니까.’

최관은 진심으로 보스를 친어머니보다 더 각별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보스께서 자신의 진심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거다.

‘이기심일까.’

일평생 그녀를 존경하고 따라왔던 최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만약 보스께서 진정으로 그녀를 인정해주신다면.

‘목숨을 다 해서라도 믿음에 보답하겠다.’

다들 인간이라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자리라 말하지만, 그녀에게 보스 자리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녀가 일평생 바래왔던 것은 ‘보스’였다.

길거리 바닥에서 잠을 자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굶주린 배를 채우던 자신을 구해주셨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신 분.

‘보스께서 날 주워서 살리셨을 때, 내 목숨은 보스께 바쳤었다. 보스께서 바라신다면 둘째한테도 충성을 다 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무려 자신이 대모가 되어 직접 후계자를 가르칠 수 있는 상황까지 됐다.

최관은 자신이 이용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남자도 그걸 알고 제안한 거겠지.’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보답 받게 되리라.

보스께서 자신을 구해줬을 때 마치 새끼 새가 눈을 처음 뜨고 본 자를 부모라 생각하듯.

그녀에게 보스는 그런 존재였기에, 그분을 실망시킬 생각이 없었다.

똑똑똑­

“음?”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어느새 바깥은 어둑해져 있었다.

“들어와라.”

“보스께서 부르십니다.”

“나를? 알았다.”

야밤에 자신을 부르다니.

분명 오후에 있었던 일로 자신을 부르는 게 틀림없었다.

최관은 흐트러지려는 표정을 수습하며 보스의 방으로 움직였다.

똑똑똑­

“보스, 부르셔서 왔습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보스께서 가벼운 차림새로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혼자서 드시고 계셨습니까? 진작 저를 부르지 않으시고요.”

“”

은근히 외로움이 많으신 보스는 혼자 자작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기에 최관이 당황하며 황급히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받아들었다.

쪼르륵­

최관이 보스의 잔에 익숙하게 술을 채워 넣는다.

보스는 말없이 최관이 채워준 술을 단숨에 삼켜냈다.

“도련님은 주무십니까?”

“그래, 자는 애를 데리고 있기 뭐해서 애들한테 보냈다.”

“피곤하시겠습니다.”

“피곤하기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보는 건데 피곤할 리가. 늙어서 하는 일 없이 집에 있기 뭐했는데, 손주 녀석 데리고 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이고 좋은 거 보여주면서 소일 거리하면 얼마나 좋겠냔 말이다.”

보스께서는 매정한 첫째 아가씨의 욕을 시작하셨다.

최관은 이럴 때 보스의 말을 맞장구 치면서도 적당한 선을 넘지 않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보스께서 따님을 흉본다고 거기에 대고 맞는 말이라면서 맞장구치면 오히려 보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수 있었다.

아가씨들이 보스를 싫어하고, 보스도 따님을 마음에 안 들어 해도 그들은 보스와 핏줄을 나눈 존재였다.

우리 같은 년들에게 씹힐 대상이 아닌 것이다.

“오늘 네 형부, 처음 본 건데 인상이 어떻더냐.”

“그렇게 잘 생긴 남자는 처음 봤습니다.”

조직의 큰 돈줄에 해당하는 클럽과 술집.

그곳엔 여자도 많지만, 남자도 많았다.

남자가 부족한 세상이고 범죄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곳에 왜 남자가 오냐고?

오히려 조직이 운영하는 가게이기에 오는 거다.

조직에서 책임지고 클럽이나 술집 내 범죄를 막아주기 때문에.

위험하니 조신하게 다니라 한들 젊은 남자의 놀고 싶은 마음을 막기란 쉽지 않은 법이었다.

최관은 그런 남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조직이 운영하는 클럽과 술집에서 범죄 행위를 철저하게 근절시키며 가게를 부흥시켰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가게 관리를 하느라 클럽과 술집을 자주 드나들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제법 잘 생긴 남자를 많이 본 사람에 속했다.

“네가 보기에도 잘 났더냐?”

“예. 아무나 연예인을 하는 게 아닌 것 같더군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흥, 연예인 아무나 하는 거 맞다. 그 중에 사위만큼 진짜인 놈은 몇 없는 거고.”

맞는 말이었기에 최관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흐흐, 솔직히 난 생긴 건 마음에 안 들어. 잘 생긴 놈들은 얼굴값을 한단 말이지. 그래도 요즘 남자답지 않게 가볍지 않고 묵직한 맛이 있더군. 머리도 쌩쌩하니 잘 돌아가는 것 같고 말이야.”

“마음에 드시나봅니다.”

“걔는 날 싫어하면서도 제일 많이 닮았어. 절대 허투루 사람을 고르지 않지. 지금도 봐라. 널 현오 대모로 삼겠다는 말을 하지 않니? 현오를 손에 넣어보려고 아등바등 하는 나한테 제대로 주먹을 날린 게야. 덕분에 나는 고 이쁜 녀석 손아귀에 들어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고. 참으로 영악하지 않으냐? 하하하!”

사위에게 당하는 게 뭐가 그리 기분 좋다고 껄껄 웃음을 숨기지 않으신다.

최관은 보스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을 보며 역시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어도 결코 소인배처럼 행동하지 않으신다.

상대가 잘 한 것은 잘 한다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너도 한 잔 받아라.”

보스의 말에 냉큼 잔을 잡아 들었다.

쪼로록­

잔이 넘칠 정도로 가득 술이 채워지고.

최관은 단숨에 술을 원샷했다.

“대모 자리, 갖고 싶으냐?”

“…보스께서 바라지 않으신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우리끼리 있는 자리다.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보자. 너도 욕심날 수밖에 없는 자리지?”

“아닙니다. 욕심나지 않습니다.”

대모 자리가 욕심납니다.

“끝까지 아닌 척 할 게냐? 내가 너를 몰라?”

“…진심입니다. 보스.”

그 자리가 줄 수 있는 권력, 명예, 재물이 탐나서가 아닙니다.

인정받고 싶습니다, 보스.

제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받고 싶습니다.

“내가 너를 모를까.”

“아닙니다, 보스. 정말 괜찮습니다.”

최관은 자신이 지금 표정 관리를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단 걱정이 들었다.

이런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

역시 이번이 마지막일 거다.

“서운할 텐데? 내가 널 못 믿어서 거절한 거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사실 그게 오해인 것도 아니다.”

“!!”

최관은 보스의 솔직한 말에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의 너는 믿는다. 지금의 너는 네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를 지킬 아이야. 내가 걱정하는 건 죽은 이후의 일이다. 나는 네가 가엽다. 평생 내 뒤만 졸졸 쫓아다니던 녀석이 아니냐.”

“보스…!!”

“내 죽음이 널 성장시켜서 진정으로 독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런데 널 현오 대모로 삼으면 다음은 현오를 부여잡고 살겠구나.”

“아, 아닙니다. 보스! 저는…!”

최관은 날벼락 맞은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가 퍼드득 정신을 차리며 몸을 떨었다.

보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내가 너를 일부러 독하게 키웠다. 하지만 넌 여전히 착하고 순하더구나. 목숨 한 번 구해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네 인생을 늙은 노인네한테 다 바치니 말이다. 그래서 널 대모로 삼는 걸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구나. 내가 아는 너라면 내 빈자리를 현오로 채워 살아갈 테니 말이다.”

“…….”

“너는 언제 클 거니? 자식을 품에 가두고 사는 게 외롭지 않아 좋지만, 그건 늙은이 욕심일 뿐이지 않으냐? 너는 아직 젊다. 뭐든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야.”

“저는, 저는 보스를 모시는 일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말을 하려는데 자꾸 목이 막혀왔다.

최관의 손을 보스가 부드럽게 잡더니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늙은이 때문에 청춘을 다 쓰는 자식을 보는 어미 마음이 어떻게 좋을 수 있겠니.”

“보, 보스으….”

기어코 최관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평소 성격을 아는 사람이 보았다면 놀라서 기겁을 했을 순간이었다.

하지만 보스 앞에서만은 순한 양이 되는 최관은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보, 보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줄 몰랐습니다.”

“네가 진짜 바라는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내가 무식해서 한 명은 나한테 학을 떼고 도망쳤고, 한 명은 내 아래에서 피만 빨아먹고 사는 애가 됐다. 네가 유일하게 내 곁에 남아줘서, 독립시켜야 하는 걸 알면서도 내가 좋아 내버려뒀다.”

그녀 외에도 다양한 조직원들이 보스에게 수양딸처럼 키워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최관이 유일하다.

다른 경쟁자들을 최관이 쳐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보스로부터 한 몫 챙겨서 독립을 위해 나간 경우도 있었다.

보스는 독립해서 나가는 사람에게 항상 넘칠 정도의 재산을 챙겨주는 편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보스….”

“그래, 내가 표현을 잘 안 하다 보니 네가 속을 많이 썩힌 걸 안다. 그래도 언제나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줘서 참 고마워.”

결국 눈물을 터트린 최관이 고개를 푹 숙였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최관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다.

이제 더는 원이 없을 정도다.

최관은 눈물을 흘리며 격해졌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보스께서 보여주신 진심에 이제 최관이 답을 해야 할 때였다.

“보스.”

최관이 눈물을 슥­ 손등으로 닦아내고 무릎을 꿇었다.

무릎 위에 주먹 쥔 손을 올린 그녀가 보스를 향해 의지를 담은 눈빛을 쏘아보이며 말했다.

“저를 믿고 대모 자리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그 자리가 갖고 싶은 게냐?”

“솔직히 지금까지는 저를 위해 대모 자리가 탐이 났습니다. 하지만 보스의 진심을 듣고 나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아니라고 해놓고선 욕심에 눈이 멀었던 겁니다. 보스의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 자리가 보스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가 될 줄 알았던 겁니다.”

“그때랑 지금은 다르다는 거냐?”

“예, 다릅니다. 지금 저는 보스를 위해 대모 자리를 갖겠다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라….”

“지금 이대로라면 아가씨 때문에 제대로 도련님을 만나실 수 없으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대모가 된다면 명분이 생깁니다. 도련님을 뵐 명분이요. 아가씨는 점점 보스께 현오 도련님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실 겁니다.”

보스는 씁쓸한 현실에 한숨을 쉬며 술을 마셨다.

손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이 많은 자신의 처지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후회가 많이 됐다.

“그렇겠지. 절대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니까. 진작 그 아이와 풀어볼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서로 자존심이 워낙 강한 탓에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아무 자격이 없어서 보스를 못 도왔지만, 제가 대모 자격을 얻게 된다면 말이 달라집니다.”

“…그렇지.”

최관이 솔깃한 말을 했는지 보스의 눈이 번뜩인다.

“보스를 위해 제가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생각을 좀 해보자꾸나. 어떤 선택이 모두를 위해 좋을지.”

최관은 보스의 말에 순종하며 고개를 숙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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