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70화 (370/849)

〈 370화 〉 #56. 호랑이 굴에 들어 온 호랑이 (2)

* * *

사실 최관씨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최관씨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유혹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주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들어오겠다는 사람에게 예, 그러십시오! 라고 선뜻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왕 받아들여야 한다면 얻어낼 수 있는 건 얻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얘기 나누기 전에 한 가지 오해를 풀어드릴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해요?”

딱히 오해하고 있는 건 없는 것 같은데.

“제가 무례하게 방문한 건 맞지만, 당장 이곳에서 살겠다고 캐리어에 제 짐을 가져 온 건 아닙니다.”

“같이 살겠다고 온 게 아니라고요?”

“바로 옆에 있는 집과 계약을 끝내둔 상태입니다.”

“옆집? 설마 저쪽 집 말하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보스께서 구매하고 제게 살라고 내어주셨습니다.”

이웃 사촌이라 하기엔 서로 으리으리한 저택 같은 느낌이라 뭐하지만, 우리 집에도 옆집이 존재하기는 했다.

그리고 요즘 세태가 그러하듯 그 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했는데, 행동력 하나는 엄청나게 뛰어나신 장모님께서 옆집을 구매해버리신 듯 했다.

동네 자체가 부촌에 해당하기에 원하는 집을 구매하기 위해 프리미엄을 많이 얹어주고 거래를 했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신 것 같네요.”

“조카님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보스께서는 반대편 집도 구매하는 걸 고려하고 계십니다. 그쪽은 주인이 외국에 나가 있어서 빠르게 계약을 진행하지 못했을 뿐이죠.”

“우리 집 사방을 다 구매해서 철옹성이라도 지으시게요?”

“조카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할까요.”

덤덤하게 엄청난 소리를 늘어놓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그만두세요. 몇 번이고 말했지만 아이는 안전합니다.”

그만두라고 몇 번이고 재차 권했지만, 최관씨는 들어주지 않았다.

“이러면 아예 연주 누님이 말했던 것처럼 대모 자리에 제안했던 걸 아예 철회해야겠네요.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시작은 형부께서 하셨을지 몰라도 그만두는 건 형부께서 하지 못하십니다. 보스께선 이미 마음을 굳히셨습니다.”

“관이씨는 장모님 뜻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입장이지만, 저는 그렇지가 않아요. 아직 최관씨는 현오 대모가 아니고, 이런 식의 접근은 매우 불쾌합니다.”

“단언하는데 저에게 대모가 되어달라고 제안하신 건 잘 하신 겁니다. 보스께서 한발 물러나게 만들었으니까요. 만약 그 제안이 없었다면 보스는 이보다 더 끈질기게 참견을 시작하셨을 겁니다. 그분은 원하는 일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분이십니다.”

꽤 서늘한 협박이 이어진다.

솔직히 이젠 좀 지겨울 지경이다.

이 사람들은 대화를 나눌 때 협박을 곁들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인 것 같다.

참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녀가 하는 협박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서 뒷덜미가 서늘해지곤 한다는 점이다.

‘그냥 아이템으로 세뇌해버릴까?’

아이템으로 못할 게 없는 세상을 살다 보니 선을 정해두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 자재를 하는 편이었다.

더군다나 내 여자의 가족에게 세뇌를 쓴다?

절대 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던 일인데?

편한 길이 있다는 건 알지만, 고작 편해지기 위해 선을 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세뇌를 사용한다는 건 내 능력이 부족해서 일을 망쳤다는 걸 시인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럼 저희랑 장모님 사이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가겠네요. 안타깝지만 저는 현오랑 관련 된 일에 타협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무섭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몰라서 이러시는 겁니까?”

“네?”

“보스께서 하시려는 일이 뭔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예를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형부의 정신건강을 위해 모르셨으면 했는데, 상황 파악을 이렇게까지 못하고 계신 걸 보니 걱정이 되어서라도 몇 마디 해드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군요.”

들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조폭이 어디까지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지 듣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친절은 감사하지만,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해봤자 사람 괴롭히는 것 말고 다른 게 뭐가 있겠나?

그런 걸 듣고 싶은 생각 전혀 없다.

“…그러시군요. 저는 형부가 듣기조차도 싫을 일을 막기 위해 이곳에 온 왔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감사해야 하는 입장이시라는 겁니다.”

최관씨가 지금처럼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장모님의 돌발 행동을 자신이 억제한다는 명분.

나도 그 부분을 위해 최관씨를 이용한 것이니, 상황이 조금 뒤틀렸다고 해도 목적을 이루지 못한 건 아니었다.

언제까지 반목하고 대치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나는 슬슬 이 정도 타이밍에서 얘기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여기서 더 거부감을 보였다간 자리가 아예 파토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말은 최관씨가 우리를 지켜주겠다는 뜻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솔직히 확 와 닿는 말은 아니네요. 최관씨가 저희를 위해 일하는 분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그런가 봅니다.”

결국 장모님이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우릴 배신할 사람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최관씨도 차마 아니라는 걸 서로 잘 아는데 거짓말을 할 순 없었는지 다시 장모님의 무서움을 피력했다.

“…보스께서는 형부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냉정하고 무서우신 분입니다. 만약 제가 보스를 설득해서 대모가 되지 않았다면 납치까지도 생각하고 계셨을 겁니다. 힘으로 빼앗는 것에 익숙하신 분이니까요.”

그걸 진짜 시도할 생각이었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그런 짓을 한다고 순순히 당해줄 거라 생각하나 본데, 내가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납치는 극단적인 방법 중 가장 온건한 방법일 겁니다. 보스께서 후계자를 걱정하시는 마음이 생각보다 강하십니다.”

“납치가 온건한 방법이라고요?”

“온건하지 않은 방법은 좀 말씀드리기 추잡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가령 조카님 주변의 사람을 매수하는 게 예로 들 수 있는 일이겠지요. 그 외에는 아가씨의 일을 방해하신다거나 좀 심하면 형부의 일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최관씨의 말은 분명히 선을 넘는 발언이었다.

만약 그걸 실천으로 옮겼다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장모님은 일이 잘 안 된다 싶으면 폭압적인 방법을 쓰시는데 망설이지 않을 거라는 뜻이군요.”

“애초에 보스께선 그렇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별로 특별한 작업이 아니지요. 그리고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을 겁니다.”

“계속 같은 말 하는 것도 슬슬 질리네요. 어떻게 막아주실 건가요?”

협박당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젠 지겹고 지루하다.

“제가 조카님의 곁을 지키는 겁니다. 제안해주셨던 것처럼 대모로서 말입니다.”

“먼저 대모 자리를 제안했던 제가 갑자기 말을 바꾼 건 최관씨가 진심으로 현오의 대모가 되어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현오를 위해서가 아니라 장모님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잖아요.”

솔직히 장모님이 현오를 납치해오라고 하면 가장 먼저 손을 뻗을 게 이 사람일 거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의 맹목적인 애정이 필요한 것이다.

나를 장모님보다 더 사랑하게 만들어서 현오를 장모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제가 보스를 따르는 건 맞습니다. 조카님을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는 지금조차도 보스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두 분 사이가 틀어지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거라는 걸요.”

진정한 충신은 쓴 간언(??)을 아끼지 않는 법.

최관씨는 자신이 간신처럼 아첨하는 이가 아니라고 피력하고 있었다.

“그건 저도 우려하고 있는 일이긴 해요. 가뜩이나 비틀어져 있는 관계인데, 여기서 더 틀어지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겁니다.”

요 며칠 사이 협박을 많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연주 누님이 장모님과 화해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제가 나선 겁니다! 티 내지 않으시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아가씨를 얼마나 그리워하셨는지요. 조카님의 일로 보스께서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건너가실까 걱정이 됩니다.”

두 사람 사이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최관씨와 내 의견이 처음으로 맞아 떨어졌다.

“이제 보니 두 사람을 화해시키는 게 목적인가 보네요?”

“조카님을 지키는 것도 제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그저 의도하고 있는 목적이 하나가 아닐 뿐이라는 거다.

나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었으니 나무랄 건 없었다.

험악한 분위기에서 시작 된 대화는 의외로 술술 풀려나갈 것 같았다.

“제 입장에서 보스의 뜻을 거스르는 건 굉장히 큰 결심이었습니다. 보스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절대 생각조차 하지 않을 일탈이죠.”

“계획이 따로 있으신 건가요? 제가 협조하면 두 사람 사이가 풀릴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내가 누님만 설득한다고 해결이 되는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장모님 쪽을 설득할 수 있는 최관씨와 뜻을 합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보스께선 조카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조카님과 긍정적으로 교류를 하다 보면 아가씨도 마음을 돌려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긍정적인 교류가 어떤 의미에요?”

“제게 교육을 일임하셨으니 보스는 오로지 할머니 위치에서 조카님을 만나게 될 겁니다. 아가씨와 형부가 걱정하시는 부분이 해결 된 상태이니 믿고 맡기실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그걸 바라고 최관씨를 대모로 만든 것이고, 그녀도 그걸 알고 하는 소리 같았다.

“결국 앞으로 자주 장모님과 현오를 만나게 해달라는 뜻이네요. 문제는 제가 최관씨를 신뢰할 수 있냐 없냐에요. 만약 최관씨가 지금 하는 말이 겉만 번지르르한 거짓말이면 어떡하죠?”

이제 문제가 되는 건 내가 최관씨를 믿고 뜻을 함께 하느냐 마냐는 거다.

이 부분에선 내가 최관씨를 신뢰할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신뢰가 쌓일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옆집으로 이사를 온 거기도 하고요. 신뢰가 쌓이려면 일단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그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럼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떻게요?”

최관씨가 무표정한 얼굴에 슬쩍 입 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띠우더니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형부의 경호를 해드리겠습니다. 곁에서 절 지켜보시고 어떤 사람인지 몸소 확인해주십시오.”

내 경호를 한다고?

“최관씨는 현오 경호를 하러 여기에 오신 거 아니었어요?”

“우리 애들이 집 근처를 철통경비 할 거고, 저도 계속 신경 쓸 겁니다. 다만 신뢰를 얻기 위해 한시적으로 형부의 곁을 지키겠다는 겁니다.”

“개인 경호원을 하시겠다라….”

전국구를 다스리는 조폭 조직의 진 후계자나 다름없는 여자다.

그런 여자가 내 경호원을 한다고 하니 얼떨떨했다.

“같이 시간을 보내면 저에 대한 신뢰가 생기실 거라 자신합니다. 그리고 사실 조카님뿐만 아니라 형부도 저한테는 보호해야 할 중요한 신분이고요.”

“연주 누님이 싫어할 텐데요.”

“제가 아가씨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설득은 제 몫이 아니어야 합니다. 제가 드린 제안을 마음에 들어 하셨으니 어느 정도 협조는 가능하지 않으십니까?”

협조 가능하냐고?

당연히 가능하다.

더군다나 제 발로 굴러 들어온 기회를 낚아채지 않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그녀를 곁에 둘 필요가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 가지 거슬리는 게 있다면, 그녀의 목적이 두 개가 끝이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장모님을 위해 현오를 자주 데려올 명분도 챙기고, 누님이랑 장모님을 화해시켰으면 하는 것도 목적이 맞긴 한 것 같은데 그게 전부 인 것 같진 않단 말이지.’

저 여자가 과연 꿍꿍이를 어디까지 갖고 있는지, 숨기고 있는 또 다른 목적은 무엇인지.

그걸 파헤쳐 볼 시간이 필요했다.

“좋아요, 그 부분은 제가 설득해볼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최관씨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으니 그녀가 깔끔하게 악수를 하고 떨어졌다.

“당분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짧은 맞닿음 이었지만, 찰나에 느껴진 최관씨의 굳은살과 흉터 자국의 감촉이 유난히 깊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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