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화 〉 #56. 호랑이 굴에 들어 온 호랑이 (4)
* * *
나는 평소에 대화를 나누기 적합한 상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최관이라는 다소 특이한 여자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 것 같다.
‘말수가 너무 적어. 그리고 열심히 말을 걸어 봐도 오래 대화가 이어지질 않고.’
대화를 나누려면 티카타카가 필요하다.
내가 말을 했으면 다음은 상대방이, 그리고 상대방이 말을 하면 다음은 자신이.
그렇게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을 번갈아 하는 것이 대화의 기본 요체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최관씨는 대답을 할 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내가 질문을 하면 그녀는 답부터 내어놓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a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곧바로 대답을 하기 보단 a에 얽혀 있는 얘기를 시작으로 좀 더 풍부한 얘기를 전달해주며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최관씨의 입에서 나오는 건 오로지 ‘결론’이었다.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해산물 좋아합니다.’
‘해산물이면 초밥이나 회?’
‘초밥이나 회 전부 좋아합니다.’
‘저 아는 가게에 싱싱하게 회 잘 뜨는 가게 있는데 다음에 거기 가보실래요?’
‘아닙니다.’
‘…거기 정말 맛있는데 왜요?’
‘개인 시간에는 가볼 곳이 있어서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딱 잘라 거절당하거나 단 답으로 이어지는 대답에 질린 나는 슬슬 이 여자를 꼬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이 안 맞아.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내 가장 큰 장점인 미모도 최관씨에겐 썩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최관씨가 남자 외모를 보며 헤벌쭉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 되기는 했다.
지지부진한 나날들이 흐르던 어느 날.
최관씨에 대한 내 생각이 180도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은 초청을 받아 해외 큰 무대에 서게 된 날이었다.
큰 음향 실수 없이 무사히 무대를 섰고, 돌발 상황은 그때 벌어졌다.
“꺄악!”
“막, 막아!”
“어, 어어어?”
돌발 상황은 갑자기 무대 위에 난입해온 관객이었다.
덩치가 제법 우람했던 관객은 순식간에 나를 향해 돌진해왔고, 그 순간 무대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누군가가 거의 날다시피 해서 관객을 낚아챘다.
웅성웅성~!
난입한 관객의 손에 뭔가 들려 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난입한 관객을 낚아 챈 최관씨에게 엄청 고마움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런 일이 한 번 생기면 멤버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지 않은가?
내가 최대한 관리해주고 있지만 티내지 않은 속마음까지 체크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아아악!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일단 연행해서 끌고 나가겠습니다.”
최관씨는 자신의 손에 붙잡혀 비명을 지르는 난입 관객을 질질 끌고 무대 아래로 움직였다.
“형, 어떡해요?”
스태프들은 우리에게 내려오라며 손짓을 했지만, 의외로 멤버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주춤 거렸다.
우리 무대를 보고 있던 관객들이 아쉬움을 가득 담아 야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하는 야유가 아닌 것은 알지만, 미안한 마음과 무대에 대한 아쉬움이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일단 아래로 내려가서 상황을 좀 보자.”
“넵.”
당장은 무대 위도, 관객들도 소란스러워서 정리가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최 경호원님이 막아주셔서 저희는 하나도 안 다쳤어요.”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진짜 다행이에요. 들어보니까 너무 흥분하고 팬심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거였대요. 큰 걱정하지 마세요. 해코지 하려고 달려 든 게 아니라니까요.”
“네에.”
“근데 저희 무대는요?”
“이대로 끝이에요?”
우리가 무대 얘기를 꺼내자 스태프도 난감했는지 난색을 표했다.
그들도 우리를 다시 무대 위에 서게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이대로 무대를 끝내는 게 나은지 확신이 서지 않은 것 같았다.
“매니저님,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멤버들이 얼마나 놀랐는데 무대를 세웁니까? 돌발 상황을 수습한 것도 우리 직원이었습니다.”
매니저 누나는 스태프의 말에 당연히 반대부터 했다.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멤버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태도였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지 못한 무대가 너무 아쉬웠다.
“저희 충격 받은 거 없어요. 잠깐 당황한 건 맞는데 최경호원님이 미리 손 써주셔서 가까이에 오지도 않았어요.”
“설마 너희 무대 하려고?”
“하고 싶어요. 관객 분들도 너무 아쉬워하고 계시잖아요.”
멤버들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이쯤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는 생각에 말했다.
“대신 스탭 분들이 같은 일이 생기지 않게 확실히 무대 주변을 보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무, 물론이죠!”
우리가 무대를 해주는 게 스태프들 입장에선 좋은 일이었기에 내 말을 매우 흔쾌히 받아들여주었다.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스태프들을 불러서 무대 위로 올라올 수 있는 길목을 확실하게 막아 서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너희들 무리해서 그럴 필요 없어.”
“저희가 아쉬워서 그래요.”
“정말 괜찮겠어? 나중에 무서웠다고 하면 혼날 줄 알아.”
“진짜 괜찮아요. 너희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한 사람 있어?”
“아니!”
“나도 진짜 괜찮아.”
“무대 할래요! 이대로 돌아가면 찜찜해서 잠도 못 잘 거에요. 여기까지 오느라 들인 시간이 몇 시간이냐구요.”
땅덩어리가 넓은 해외인지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여기에 오기 위해 들인 시간이 있는데 이대로 무대도 못하고 불미스러운 일로 돌아간다?
우리를 보기 위해 찾아와준 팬들에게도 미안하고, 우리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할 일이었다.
결국 매니저 누나가 허락을 해주고 스태프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으며 다시 무대 위에 올라섰다.
짝짝짝짝짝짝!
우리가 다시 무대를 하기로 했다는 걸 눈치 챘는지 관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우리는 기다려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담아 90도로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다시 무대 대형으로 섰다.
우리의 음악이 다시 무대 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그날 일은 훈훈한 기사를 만들어냈다.
외국에서 온 청년들의 프로폐셔널함이라면서 칭찬하는 기사가 난 것이다.
무대 위에 난입한 관객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며 성숙한 관객 매너가 필요하다고 따끔하게 지적을 하는 것도 잊지 않은 훌륭한 기사였다.
칭찬을 들었으니 뭐라 할 순 없었는지 회사는 우리에게 적당히 무리한 일을 하려하지 말라고 걱정어린 말을 해주고 끝을 냈다.
무대에 난입한 관객한테는 제법 따끔한 법의 처벌이 있을 예정이었다.
특히 하마터면 큰 구설수에 오를 뻔한 그쪽 관계자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할 거라고 했다.
우리를 너무 좋아해서 실수를 했다고 들었기에 팬에게 생긴 안타까운 일에 동정심이 들면서도 과격한 팬은 팬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그리고.
“경호원님 덕분에 큰일 면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엄청난 순발력으로 무대를 난입한 관객을 막은 최관씨에게 큰 관심이 쏠렸다.
“순간 날은 걸로 착각했을 정도에요. 어쩜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실 수 있었던 거에요? 정말 대단하세요!”
아무리 경호원이라 해도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당황하기 마련인 게 사람이다.
경호원이 그녀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닌데, 당시 돌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며 일을 해결한 게 그녀였다.
“사장님 특별 인사라고 들었는데 정말 괜히 모셔온 게 아닌가 봐요.”
“진짜? 최경호원님이 사장님이 고용한 분이었어?”
최관씨가 연주 누님이 꽂은 사람이라는 게 새삼 화제가 되면서 다시 한 번 누님의 유능함이 뽐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이번 일 덕분에 최관씨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관심이 좀 부담스러우셨는지 사람 없는 곳으로 슬쩍 가 있었던 그녀를 내가 직접 찾아간 것이다.
“아…. 잠깐 담배 좀 피우느라.”
내 등장에 최관씨가 담배를 물고 있다가 당황하며 끄려고 했다.
“끄지 말아요. 피우셔도 돼요. 방해가 안 된다면 옆에 있어도 될까요?”
“예, 괜찮습니다. 그럼 저도 한 대만 빨리 피우겠습니다.”
의외로 쉽게 허락을 받은 나는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최관씨의 모습을 열심히 구경했다.
‘섹시하네.’
창백한 피부에 유난히 검은 머리카락, 짙은 눈썹과 붉고 도톰한 입술까지.
시선이 천천히 내려왔고, 입술 사이에 물려 있는 희고 길쭉한 담배가 내 시선을 단숨에 강탈해갔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그녀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으며 태연하게 나와 시선을 마주한 채로 여유롭게 담배를 피웠다.
“왜 그렇게 빤히 보십니까.”
담배 피우는 소리만 들리던 묘한 정적을 깬 것은 최관씨였다.
내 시선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있어서 아무 감흥도 없나보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 여기 들어 온 건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던 거에요.”
“괜찮습니다.”
최관씨 얼굴에 살짝 질린 티가 났다.
사방에서 대단하다, 감사하다 인사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구해졌는데 감사 인사는 사람 될 도리로 해야죠. 덕분에 큰일 치르지 않고 넘길 수 있었어요.”
“그만하시죠. 충분합니다.”
“네. 더 이상 말 안 할게요.”
내가 순순히 넘겨주니 만족한다는 듯 최관씨가 다시 담배를 피우는데 집중했다.
“일 끝나면 바로 사라지던데 장모님한테 가시는 거에요?”
“아닙니다.”
“그러면요?”
당연히 장모님에게 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니란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조카님 경호에 문제는 없었는지 체크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데요.”
어차피 집에 잘 나가지도 않는다.
남자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건 아이템이 있어도 위험한 일이니 말이다.
대신 집 바깥에 있는 마당에 꽃을 예쁘게 꾸며주고 있다.
가벼운 산책 정도는 가능하게 말이다.
“하루하루 체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 그거 체크하는 게 전부에요?”
그러기엔 남은 시간이 꽤 되는데.
네 계속 된 질문에 다소 난감해졌는지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보스…의 안전도 확인합니다.”
“아~ 역시 장모님 걱정 많이 되죠? 오랫동안 곁에서 떨어져 본 적 없다고 들었어요.”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보스께선 괜찮으시다고 하는데….”
“장모님이 진짜 괜찮으셔서 하신 말은 아닐 거에요. 원래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잖아요.”
최관씨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보스가 안 계시니 더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대화에서 단답을 유지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길게 말하는 모습을 본 게 바로 지금이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장모님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너무 그녀를 얕보았다고.
장모님을 향한 그녀의 애정은 예사 감정이 아니었다.
친 부모님처럼 생각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가볍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보이지 않았다.
‘뭔가 좀 집착 같은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녀에게서 유의미한 반응을 본 건 지금이 처음이었기에 좀 더 찔러보기로 했다.
“장모님이랑 어떻게 인연이 된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사실 처음 봤을 때 최관씨가 연주 누님이 말했던 동생분인 줄 알았거든요.”
“제, 제가 말입니까? 둘째 아가씨는 집에 잘 들어오시지 않으십니다.”
나는 그녀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알고 있었다.
연주 누님의 동생은 남자 문제로 큰 사고를 친 탓에 집에 쫓겨났다고 한다.
그래도 그날은 현오를 데리고 처음으로 집에 가는 날이었기에 처제가 올 만도 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처음 봤을 때 잠깐 한 오해이고, 그녀가 보여주는 태도로 처제가 아님을 빠르게 눈치채긴 했다.
‘망나니로 소문난 처제인 줄 알았다는데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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