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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74화 (374/849)

〈 374화 〉 #56. 호랑이 굴에 들어 온 호랑이 (6)

* * *

데이트 날.

나는 안경과 모자를 착용한 채로 가볍게 바깥에 나갈 준비를 끝냈다.

칸나는 현오가 오랜만에 바깥에 나가는데 자신이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예쁘게 꾸며주겠다며 의욕에 불타올랐다.

“역시 여자애처럼 꾸미는 게 낫겠죠?”

“응.”

아직 애가 어려서 여자아이로 꾸며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최관씨가 있다고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범죄에 노출 시키지 않는 게 최고의 선택이 아니겠나.

그렇게 예쁜 분홍색 치마를 입은 현오를 품에 안고 집 밖으로 나갔다.

아래에는 차 본네트에 팔짱을 낀 채로 최관씨가 서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최관씨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평소 봐왔던 이미지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관이씨?”

“어서 오세요. 형부.”

나는 처음 보는 최관씨의 모습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장 놀라웠던 건 그녀가 검정색 옷을 입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무려 흰색 티에 청바지를 입었어?!’

최관씨는 매일 옷이 바뀌었지만 항상 색깔은 검정으로 통일 되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전부!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온 것이다.

옷 색깔을 바꾸었을 뿐인데 최관씨의 이미지가 확 달라보였다.

“오늘 너무 예쁘신데요?”

“…조카님이 저를 무서워하셔서 이미지를 바꿔봤습니다.”

“와~ 정말 이미지가 확 달라진 것 같아요. 보다시피 현오한테도 효과가 있고요.”

내 품에 있던 현오가 최관씨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최관씨를 처음 보는 게 아닌데,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낯설어 하는 눈치다.

평소에는 최관씨를 좀 무서워하는 편이었으니 차라리 지금처럼 낯설어하며 신기해 하는 게 훨씬 나은 반응이다.

“현오야, 관이씨한테 가볼래?”

“으으웅!”

현오가 흔쾌히 내 말에 긍정을 표했다.

물론 현오가 나랑 진짜 의사소통이 되는 건 아니지만, 움직임만 봐도 최관씨에게 관심이 있는 게 분명했다.

최관씨는 현오가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오려는 것이 처음인지라 밝아진 표정으로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아우웅!! 꺄!!”

최관씨의 품에 안긴 현오가 꺄르륵 웃는다.

“색을 바꿔봤을 뿐인데, 이렇게 좋아해주실 줄 몰랐습니다.”

“잘 어울려요. 평소에도 미인이신 걸 알고는 있었는데, 꾸미니까 다르네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빈말 아니라 진심이에요.”

최관씨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내 칭찬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덤덤하게 대응하던 그녀인지라 최관씨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도 멋쩍어졌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분위기가 묘해졌네.’

일단 차에 타는 게 나을 것 같아 말했다.

“차에 탈까요?”

“예, 그러시죠.”

최관씨가 능숙하게 차문을 열어주었다.

“현오 것도 준비해주셨네요.”

센스 있게도 차에는 현오가 앉을 카시트도 준비 되어 있는 상태였다.

최관씨는 그곳에 현오를 앉히고 운전석에 앉았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오늘 봄꽃 축제 하는 곳이 있어요. 거기로 가면 될 것 같아요.”

길을 알려주니 최관씨가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그렇죠?”

추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햇볕은 따듯해지고, 사방에는 벚꽃과 봄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현오가 카시트에 타고 발을 동동 굴리면서 꺄르륵꺄르륵 웃고 있었다.

밖을 나온 게 그저 좋은 것 같다.

그 모습을 본 최관씨가 흐뭇해 했다.

“조카님께서 즐거워하고 계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최관씨의 말을 들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지금까진 거리감 때문에 미뤄둔 말이지만, 이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관이씨.”

“예.”

“하루 종일 현오를 조카님이라고 부를 거에요?”

“예?”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현오 대모인 관이씨가 조카님이라고 부르면 거리감이 느껴질 것 같아요.”

“…그럼 도련님이라고 부를까요?”

“그러지 말고 현오라고 편하게 불러줘요.”

“아가씨 아드님이신데, 제가 그렇게 부를 순 없습니다.”

최관씨는 나를 형부라고 부르고, 연주 누님은 아가씨로, 현오는 조카님이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정리 되지 않은 호칭부터 확실하게 해야 어떤 관계든 시작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는 형부라고 부르고, 누님은 아가씨라고 부르고. 대모가 조카한테 조카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어딨어요?”

“하지만….”

“가족이잖아요.”

“!!”

“어떤 가족이 그렇게 서로를 불러요?”

내가 언급한 가족이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흔들리는지 최관씨가 반박의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현오라고 부를 거죠?”

“…예. 그러겠습니다.”

최관씨의 약점 하나를 더 알게 되는 큰 수확을 얻으며 차는 시원시원하게 목적지를 향해 뻗어나갔다.

? ? ?

“와~ 사람 엄청 많네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따듯한 날씨와 봄꽃 축제라는 특수한 이벤트를 찾은 연인, 가족, 친구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길거리에서 보기 힘든 남자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날이 좋아진 게 큰 효과를 본 듯했다.

최관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을 줄 몰랐는지 입구에서부터 난색을 표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 볼 텐데 그 부분을 신경 쓰지 못했어요.”

경호원으로 내 스케줄을 따라다니면서 에어플레인이 얼마나 많은 인기를 누르고 있는지 몸소 알게 된 그녀이다.

“괜찮아요. 안경도 썼고, 모자도 썼으니까 못 알아 볼 거에요.”

“형부는 분위기가 특별해서 사람들이 못 알아 볼 리 없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봐서 알아요. 사람들은 의외로 남한테 굉장히 무신경해요. 자기 일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이런 곳에 연예인이 나타날 거라는 상상도 못하고요.”

사실은 안경 덕분이 컸지만, 설득하지 않으면 이대로 데이트는커녕 현오 산책도 못 시킬 것 같아 막 우겨버렸다.

“만약 누가 에어플레인 진해솔 아니냐고 물어도 상관없어요. 관이씨는 공적으로 제 경호원이잖아요? 경호하려고 따라왔다고 하면 되는 거에요. 현오는 조카라고 속이면 되고요.”

저렇게 좋아하는데 이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한 일 아니냐며 설득하니 최관씨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럼 옷을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이런 차림새로는 변명이 먹히지 않을 겁니다.”

“설마 평소에 입던 검은색 옷 입으려고요?”

“예, 그 옷을 입으면 들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만류했다.

기껏 예쁘게 차려 입었는데 다시 평소처럼 되돌아간다니!

절대 안 될 말이다.

“그런 복장을 하면 오히려 더 눈에 띌 거에요. 그리고 날도 더워지는데 검정 옷 입으면 더워서 안 돼요.”

나는 그녀가 곧장 움직일까 싶어 손목을 잡아버렸다.

내 스킨십이 갑작스러웠는지 최관씨가 몸을 크게 움찔거리더니 말했다.

“위험합니다.”

“네?”

“이렇게 갑자기 잡아채시면 굉장히 위험합니다.”

“…미안해요. 불쾌해 할 줄 몰랐어요. 조심할게요.”

“불쾌한 게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조절하지 않았으면 무의식적으로 공격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공격이요?”

“그렇습니다. 뒤에서 접근하거나 누군가가 예고 없이 접근하면….”

끝까지 말을 잇지 않았지만 뭘 말하려고 한 건지 이해가 됐다.

그런 험한(?) 일을 하다보면 좋지 못한 접근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갑자기 손을 잡았음에도 아무런 보복이 없었던 건 최관씨가 나를 크게 배려한 게 맞았다.

“아아~ 이해했어요. 조심할게요.”

스킨십조차도 조심해야 한다니!!

나름 용기내서 해본 스킨십이었는데 시작부터 이런 말을 들으니 식은땀이 다 난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는 여자는 처음인 것 같다.

시작이 삐걱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봄꽃 축제를 즐기러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이 찾은 만큼 구경할 것도 굉장히 많았다.

“사진 찍을까요?”

연주 누님 집에 찾아갔을 때 조폭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을 때도 헤실헤실 신나 웃던 현오다.

귀엽게 차려 입은 현오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돌리면서 사람 구경, 꽃구경에 난리가 났다.

“아이고, 그렇게 좋아? 침 흘리면서 난리 났네.”

“후후후.”

현오의 그런 귀여운 모습 덕분에 딱딱할 줄 알았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렸다.

만약 현오가 내 안경 효과를 받지 않았다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다 현오에게로 몰렸을 것이다.

이 깜찍함과 귀여움에 녹아내리지 않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관씨는 현오에게 완전히 홀려 있어서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현오와 함께라면 최관씨도 사진을 찍는 걸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현오와 둘이서 찍기도 하고, 세 명이 함께 활짝 핀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축제를 완벽하게 즐겼다.

특히 현오 사진은 실시간으로 연주 누님에게 보내는 중이었다.

“엇?”

문제는 오전을 지나 오후가 되자 축제를 즐기러 온 인파가 처음 봤던 인파의 몇 배로 불어났다는 점이다.

“이런!”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 익숙한 최관씨였으나 숫자에 답 없다고, 이 정도 되는 인파 속에서 나와 현오를 완벽하게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 지킴 받는 것보단 지켜주는 게 더 익숙한지라 당황하는 최관씨의 몸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댔다.

물론 그 전에.

“괜찮을까요?”

미리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한 번 경고를 받았는데 같은 실수를 해선 안 되지 않은가?

“저야말로 실례하겠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한참동안 인파의 파도 속에서 버티며 휩쓸려가길 몇 분.

겨우 정신이 들었을 때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에게 딱 달라붙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최관씨는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있었고, 나 또한 그녀의 허리를 팔로 단단하게 묶어 둔 상태였던 것이다.

“……!”

“크흠. 실례했습니다.”

포즈를 자각한 우리는 후다닥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나는 일단 품에 안겨 있는 현오부터 챙겼다.

“괜찮아, 현오야? 안 놀랐어?”

“헤헤.”

“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웃네요. 아까 그렇게 휩쓸렸던 것도 재밌었나봐요.”

“조카…아니, 현오 성격이 참 강직한 것 같습니다.”

보통의 아기였다면 한참 전에 울음을 터트렸을 환경이었는데, 웃기는커녕 오히려 재밌어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연주 누님의 아들이 맞긴 한 것 같다.

“사람이 좀 없는 곳으로 돌아다닐까요?”

“예, 그러시죠.”

같은 일을 당했을 때, 현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다양하게 구경할 것들이 많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와~ 생각보다 구경할 게 많네요. 한 바퀴밖에 안 돌았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요. 다리 아프시죠?”

“전 괜찮습니다. 다만 조…아니, 현오가 배고파하는 것 같으니 앉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 배고프니? 그러고 보니 기저귀도 갈 때가 됐네.”

아기와 움직이려면 일단 짐이 한 가득 필요하다.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공갈젖꼭지나 기저귀, 손수건 등이 필수이고, 언제든 배고파 할 때 먹일 분유도 챙기지 않을 수 없는 필수 물품이었다.

신나게 놀았던 만큼 현오를 챙기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최관씨가 도와준 덕분에 그녀가 기저귀를 가는 사이, 나는 현오 밥을 제조하는 식으로 손을 합쳤음에도 불구하고 앉은 자리에서 4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나저나 기저귀 가는 걸 어떻게 이렇게 척척 잘해요? 기저귀 갈아 본 적 있어요?”

“…미리 연습해왔습니다. 현오랑 친해지기 위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 거였으니까요.”

“이야~ 현오가 나중에 크면 꼭 말해줘야겠네요. 관이씨가 현오를 위해 이렇게까지 했다고요.”

“대모인데 이 정도도 모르면 안 될 것 같아서 미리 학습했을 뿐입니다.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감동인 거죠. 현오를 위해 노력해준 거잖아요.”

직접 기저귀를 갈아보고 싶다고 하는 걸 곧바로 넘겨주길 잘했다 싶다.

따로 연습까지 한 것 같은데, 안 넘겨 줬으면 속으로 아쉬워 했을 게 아닌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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