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75화 (375/849)

〈 375화 〉 #56. 호랑이 굴에 들어 온 호랑이 (7)

* * *

“…현오가 자네요.”

새근­ 새근­

현오 밥을 다 먹이고 나서야 한숨 돌리면서 우리도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있는 중이었다.

한술 뜨기 전만 해도 또랑또랑하게 눈을 뜨고 있었는데, 어느새 현오가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귀엽게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다만 밥을 먹은 이후에도 깨어나지 않는다면 더 구경하긴 어려울 듯 했다.

아이가 쉬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나.

“마저 먹고 집으로 돌아갈까요?”

“…벌써 말입니까?”

집으로 돌아갈 걸 넌지시 제안하는데, 의외로 최관씨가 아쉬워했다.

“하긴, 이대로 들어가기엔 날이 너무 좋긴 하죠?”

현오를 핑계대긴 했지만, 그녀도 나도 지금 이 순간이 데이트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현오에게 집중했으니 이젠 서로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닙니다. 돌아가시죠.”

나랑 뜻이 같아보였던 최관씨가 돌연 말을 바꿨다.

1분도 되지 않아 생긴 변심에 나는 씁쓸한 척 말했다.

“정말 돌아가요?”

내 표정을 본 최관씨가 당황하며 말했다.

“현오가 너무 오래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니 들킬 위험도 커졌을 겁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현오를 오랫동안 바깥에 두는 건 좋지 않은 일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현오가 평범한 아이였을 때나 해당하는 일.

내가 아이들에게 쓴 코인이 얼마인데 고작 이 정도로 몸에 무리가 가겠는가?

우리 애들은 아픈 곳 없이 튼튼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아마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또 씩씩하게 놀려고 할 거다.

“또 저만 아쉬운가 봐요.”

“예?”

“이대로 돌아가는 건 너무 아쉽지 않아요? 아직 해도 안 졌고, 현오 챙기느라 제대로 놀지도 못했잖아요. 아마 현오도 잠깐 자고 일어나면 또 씩식하게 놀려고 할 거에요.”

내 설득이 먹혔는지 최관씨가 입을 꾹 다물었다.

“꽃구경은 실컷 했으니까 다른 거 하러 가요.”

“다른 거라면…?”

“글쎄요. 뭐가 좋을까. 꽃구경은 현오 보여주러 온 거니까 이젠 관이씨가 하고 싶은 거 하러 가면 좋을 것 같은데.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없습니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하고 싶은 게 정말 없다고요?”

“…제가 주로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거나 수영을 하러 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수영은 현오 데리고 하긴 힘들겠네요.”

현오가 좀 더 컸으면 몰라도 지금은 수영장에 데리고 갈 순 없었다.

“그럼 현오가 잘 때까지 드라이브나 할까요? 목적지는….”

잠깐 고민하다가 아직 현오가 바다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걸 깨닫고 말했다.

“바다로요. 현오가 아직 한 번도 바다를 못 가봤거든요.”

“그럼 그쪽으로 움직이겠습니다.”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데이트다.

밥을 모두 먹고 난 이후 짐을 챙겨서 차에 타고 꽤 신나게 달렸다.

바다가 나올 때가 되자 현오도 잠에서 깨어났고, 처음 보는 바다에 신기해하는 현오를 최관씨가 담요로 꽁꽁 싸매주었다.

현오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세심하게 챙기는 거다.

아기라서 그런 건지 현오가 특별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남한테 굉장히 무심한 사람이라 현오한테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이를 챙기는 걸 보니 절로 흐뭇해진다.

오늘 현오까지 껴서 함께 했던 데이트의 효과가 눈에 보이고 있었다.

“바다 신기하지, 현오야. 어때?”

현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게 된 바다.

아직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한 현오는 바다도 신나서 구경했다.

“너무 어려서 들어가는 건 안 돼. 눈으로만 봐야해.”

“여기 조개가 있습니다.”

최관씨가 어디선가 깨지지 않은 예쁜 조개를 가져왔다.

자기 얼굴만한 조개가 보이자 현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뻗었다.

최관은 곤란하다는 듯 조개를 살짝 현오로부터 떨어트렸다.

“바닷물로 씻긴 했지만 더럽습니다. 바닥에 있던 거니까요.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보세요.”

“아우!”

현오는 계속해서 최관에게 손을 뻗었다.

‘진짜 많이 친해졌네.’

최관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젠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최관씨에게 조개를 받아들고 안고 있던 현오를 최관씨에게 넘겼다.

“바다 등지고 서 봐요. 사진 찍어 줄게요.”

최관씨가 내 제안을 마다하지 않고 현오와 함께 섰다.

때마침 해가 뉘역뉘역 지고 있어서 좋은 사진이 나왔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바닷바람을 쐬면 안 된다는 최관씨의 말에 괜찮다고 할 순 없어서 바다가 환하게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여전히 연주 누님에게 꾸준히 사진을 보내주고 있었는데, 바다 사진이 나오니 놀랐는지 연주 누님이 연락을 했다.

“예, 다녀오십시오.”

현오를 관이씨에게 맡기고 화장실로 움직였다.

“네, 누님.”

­바다를 갔어?

“네. 날이 확 풀려서 바닷가 근처도 따듯해요.”

­마음이 복잡하네. 이런 생각해본 적 없는데….

누님의 목소리가 좀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물었다.

“누님 설마 질투하세요?”

­나도 내가 이럴 거라고 생각 못해서 당황스러워.

“하하하! 세상에, 살다 보니 누님이 질투하는 모습도 보고 저 엄청 뿌듯한데요?”

­현오 바다 처음 보는 거잖아. 그 자리에 내가 아니라 걔가 있다니까 자리를 뺏긴 기분이 들어.

연주 누님은 나와 만날 때부터 쿨하게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걸 상관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이었다.

그뿐인가?

대놓고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일을 해야 해서 자주 만나지 못할 거라고 했고, 실제로도 그랬었다.

그랬던 연주 누님이 질투를 해주시다니.

현오를 낳고 많이 변했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뺏긴 게 아니라 현오를 위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 거에요. 누님이 바라시면 언제든 바다로 여행 갈 수 있고요.”

­관이 걔는 어때? 순순히 네가 하자는 대로 해?

“네. 현오를 많이 귀여워하더라고요. 둘이 많이 친해졌어요.”

­올해 내가 들은 말 중에 제일 놀랍네. 걔가 애랑 친해졌다니.

그렇게 흔치 않게 질투심을 보여주는 연주 누님을 달래고 카페로 돌아갔다.

“뭐야?”

내가 앉아 있던, 최관씨와 현오가 앉아 있을 자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꽂혀 있었다.

‘아차!’

사람들이 왜 저러나 의아하다가 뒤늦게 상황이 이해가 됐다.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안경을 낀 내가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우지 않았는가?

남겨진 최관씨와 현오가 노출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귀엽고 예쁜 현오와 최관씨의 조합이 만들어낸 위력이 카페를 점령하고 있었다.

위력의 상당부분은 당연히 현오였다.

‘이 정도로 집중 받으면 안경도 효과가 없을 텐데.’

안경 효과가 사라진 채로 사람들 사이에 뛰어든다?

곧바로 내 정체가 밝혀지고 말 것이다.

아빠 마음은 알지 못한 채 현오는 사람들의 관심이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사방에서 그 웃음에 꺄악 비명이 나오고, 아우~ 귀여워~! 라며 칭찬이 쏟아진다.

덤덤하게 주변 상황을 지켜보던 최관씨의 표정이 변한 건 그 순간이었다.

“불쾌한 시선, 돌려주십시오.”

“애기 엄마 어쩜 이렇게 예쁘게 낳았대요? 정말 부럽다.”

주변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그녀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주변 사람들이 현오를 향해 칭찬을 뱉어냈다.

“이렇게 예쁜 아가는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아이가 참 살갑네요! 귀여워라. 웃는 것 봐. 커서 연예인 시켜야겠어요.”

“하….”

주변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은 것 같지만 분명 최관씨의 인내심이 뚝하고 끊기는 소리가 내 귀에는 들렸다.

나는 모자를 좀 더 꾹 눌러썼다.

그리고 혹시 몰라 챙겨 온 마스크를 착용하고, 그녀가 표정을 험악하게 굳히고 입을 열려는 순간에 맞춰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잠깐 비켜주세요. 지나갈게요.”

“앗! 잠깐 이렇게 막 파고드시면…헉!”

“어머?!”

“흡!”

갑자기 난입한 나를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저들이 내 정체를 알아차리기 전에 자리를 피하는 게 최선이었기에 현오를 번쩍 들어 올리고 최관씨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나가죠.”

“예, 알겠습니다.”

최관씨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불쾌해 하고 있었기에 순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웅성웅성­

“설마 애 아빤가?”

“애기가 예쁘다 싶더니 애 아빠 닮아서 그런 거 였나봐.”

“연예인 아니야? 분위기가 남다른데….”

“어머, 연예인? 진짜? 누구지? 얼굴을 다 가려서 못 봤는데.”

“그나저나 갑자기 왜 나가? 설마 우리 때문인 거야?”

“여자가 몰려 있으니까 불쾌할 수도 있지 남자잖아. 그나저나 진짜 부럽네. 애기도 예쁜데 남편까지 있으니….”

딸랑­

가게 문이 열리고 바깥으로 나온 우리는 방향을 잡지 않고 일단 가게에서부터 멀어졌다.

“잠깐 자리를 비운 건데 이게 무슨 일이래요. 관이씨도 많이 당황했죠?”

“아닙니다. 오히려 자리를 비우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저런 소란이었으면 정체를 들켰을 테니까요.”

“여태까지 우리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에요?”

이유를 뻔히 알지만 모르는 척 하며 물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형부가 자리를 뜨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사람들이 현오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거기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아이가 정말 예쁘네요 라고 말하면서 그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무례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마음이 이해는 됐습니다. 그때 현오가 너무 귀엽게 웃어서 말입니다.”

“하하, 현오가 미소천사이긴 하죠.”

세상에서 가장 덤덤한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면서 내용은 팔불출이 따로 없다.

정작 아빠인 나는 할 일을 못하고 있는데, 현오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전부 다 해내버렸다.

낯설어 하던 최관씨와 부쩍 친해졌을 뿐만 아니라 아예 팔불출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확실히 효과가 있나봐요. 현오랑 정말 많이 친해졌어요.”

“…제가 말입니까?”

그동안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내 말을 듣고 최관씨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뒤늦게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

많은 의미가 내포 되어 있는 탄사였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음기 담아 말했다.

“보기 좋았어요. 현오도 관이씨가 많이 편해진 것 같더라고요. 근데 두 사람이 너무 가까워지니까 살짝 질투 나요. 저랑은 안 친해질 거에요?”

“저, 저랑 말씀이십니까?”

최관은 지금 이 만남이 정말 현오와 친하게 지내게 하기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나보다.

“현오랑 친해진 만큼 저랑도 친해져야죠.”

생글생글 웃는 내 얼굴이 부디 그녀에게 잘 먹혀들어가길 바란다.

현오가 미소로 최관씨를 홀린 선례가 있으니 내 미소도 나름 먹히지 않겠나 싶었던 거다.

그때, 최관씨가 의외의 말을 해왔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현오를 위해 뭐든 할 겁니다. 그러니 굳이 이런 노력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태도가 바뀌는 건 없을 겁니다.”

그녀가 단숨에 내 계획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뻔뻔하게 아니라고 할 순 없으니 놀라지 않은 척 태연하게 표정 관리를 하고 말했다.

“아니라곤 못 하겠네요. 현오 때문에 친해지고 싶은 거 맞으니까. 근데 관이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계산적으로 한 소리는 아니었어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음, 관이씨는제 아이를 위해 뭐든 해줄 사람이잖아요?현오가 위험하면 지켜줄 거고, 현오가 다치면 속상해 하면서 걱정도 해줄 거고요.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거에요.”

“...죄송합니다.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원래 사기는 친한 사람한테 당하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최관씨는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거에요. 내 자식 예뻐해주고, 보호해주는데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잘 보이고 싶은 거잖아요.”

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담당 반 선생님한테도 부모님은 잘 보이고 싶어 진다.

그런데 최관씨는 학교 선생님보다 더 중요한 대모이다.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내 설명을 들은 최관씨는 깊게 생각에 잠겼다.

내가 말한 걸로 설득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아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서운하게 너무 의심하지 말아줘요.고마운 사람이니까 친해지고 싶은 건 당연한 거라고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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