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77화 (377/849)

〈 377화 〉 #57.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방법 (1)

* * *

“아현아 너 요즘 무슨 문제 있는 거야?”

“아니요?문제 없는데요.”

아현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갑자기 뼈를 때리는 것 마냥 치고 들어 온 질문 때문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시치미를 뗐다.

물론 그런다고 그녀가 바라는 것처럼 상황이 넘어가지는 건 아니었다.

“거짓말 하지 마.하루에 몇 번이고 한숨을 쉬고 다니면서.”

“…제가 그랬어요?”

내가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다고?

로즈 언니의 말에 아현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기분이 안 좋은 게 티가 많이 났던 모양이다.

나름 숨긴다고 한 거였는데 말이다.

비죽­ 하고 입술을 툭 튀어나왔다.

“일 문제야? 아니면 해솔이 문제?”

아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로즈 언니에겐 차마 솔직하게 말 할 수가 없었다.

“헤솔이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왜 이렇게 풀이 죽었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날이야?”

“아니에욧!”

아현은 진지한 상황에 농담을 거는 로즈 언니를 장난스레 슬쩍 째려봤다.

“그럼 너 왜 이러는 건데?”

“그냥….”

“그냥?”

“곡이 잘 안 써져서 그래요.”

아현의 어깨가 시무룩하게 내려 앉는다.

로즈 언니의 학원에 마련 된 그녀만의 작은 성.

설렘만 가득하던 작업실이었다.

처음에는 이곳이 정말 나만의 공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으으, 작업실 가기 싫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다.

그녀는 초심을 잃어버린 상태다.

해솔이가 작곡한 곡을 자신이 업그레이드 시켜 곡을 팔고, 또 자신이 직접 쓴 곡도 파는 등의 제법 작곡가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을 때만 해도 이런 모습은 상상조차 못했다.

더군다나 그렇게 팔았던 곡이 음원으로 나왔을 때밀려오던 감동은 여전히 생생했다.

‘그랬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작업실에 있으면서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고,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아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게 됐다.

그래도 작곡을 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꾸역꾸역 작곡을 했다.

억지로 한 것이었지만 나름 결과물이 나쁘지 않아서 이번에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곡을 팔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있는 음악이었지. 보내기 직전에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만약 그때 곡을 보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현은 아찔했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쿵쿵 뛰는 심장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슬럼프라는 것을 깨달았던 게 그쯤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작업실에 오는 게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갈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작곡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감사함과 행복함을 여전히 생생하게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현은 이곳에 있는 시간들이 불행했다.

“너 맨날 그 소리 했잖아. 근데 이번엔 어째 새삼스러운 소리가 아닌 것 같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원래 이런 작업 하다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일이니까요.”

“그건 나도 알지.”

허니 엔터에서 일할 때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 치는 사람을 어디 한 둘 만나봤겠나?

그렇기에 로즈는 아현이 요즘 왜 힘이 없는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곧 괜찮아질 거에요. 이겨내야죠!”

귀엽게 두 주먹을 옴팡지게 쥐어보이는 아현.

하지만 뒤를 이어서 힘을 쭉 빠지게 만드는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아현을 로즈가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아현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정작 머리를 꽉 채운 슬럼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아현은 그 사실을 몰랐지만 말이다.

? ? ?

로즈가 작업실에 자주 들락거리지만, 그녀도 할 일이 있기에 계속 작업실에 있지는 못했다.

결국 아현은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보내야 했다.

슬럼프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녀를 집중하기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아현은 익숙하게 핸드폰을 손에 들고 딴 짓을 하기 시작했다.

“얘는 바쁘겠지?”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메시지다.

그녀가 보내놨던 메시지를 3시간 후에야 답장을 해준 해솔은 이제 촬영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촬영이 시작 되면 몇 시간이 우스울 정도로 쉽게 연락을 받지 못해서 해솔이랑 노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결국 그녀가 향한 곳은 동료 작곡가들의 스터디 모임 단톡방이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나?”

각자 살기 바빴지만, 의외로 단톡방은 활발하게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때마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현은 대화에 끼어들기 전에 눈팅부터 했다.

“서현 언니가 팔았다던 곡이 음원으로 나왔구나?”

나름 회심의 역작이었다는데, 안타깝게도 음원이 나 온지 일주일이 넘어도 반응이 없다고 한다.

탑100에 올라오기는커녕 ‘한줌팬’ 사이에서도 썩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서현 : 진짜 죽고 싶어. 편곡을 어떻게 그 따위로 해놓을 수가 있지?]

[유나 : 언니 곡 잘 뽑는 거 우리가 잘 알아. 너무 속상해 하지 마. 이런 일이 뭐 한 두 번이어야지.]

[서현 : 이래서 ㅈ소랑 계약하면 안 됐는데…그 좋은 노래를 그렇게 망쳐놓을 줄이야. 너도 들어서 알잖아. 내 노래, 이렇게 묻힐 애가 아니라고.]

[아린: 힘내, 언니! 다시 기회가 올 거야.]

[유나 : 나도 그때 언니가 작곡한 거 정말 좋게 들었거든. 이건 되겠다! 이런 생각 들었을 정도니까.]

[서현 : 그래서 더 환장하겠다는 거야. 미칠 것 같아. 내가 이러려고 작곡가 됐나 싶어.]

[아린 : 아이돌 팬덤이라 그런지 악플이 너무 심하더라 ㅠㅠ 언니 한동안 보지 말고 여행이라도 다녀와. 작곡가 ㅈ자도 모르는 것들이 떠드는 거 흘려들어!]

곡을 냈는데 반응이 안 좋더라.

팬들은 아티스트를 욕하기보단 소속사를 욕하는 걸 더 편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팬들은 소속사와 곡을 한 대 묶었다.

왜 이런 컨셉의 곡을 타이틀로 컴백했냐! 우리 언니들이 못 뜨는 건 소속사 때문이다!

언제나 아티스트의 뒤편에 가려져 있는 작곡가의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악플들이었다.

‘노래가 성공하면 가수 덕분. 노래가 망하면 소속사가 컨셉을 잘못 선택한 탓이 되는 거야.’

컨셉은 결국 곡의 문제이고 그 곡을 만든 사람 입장에선 매우 아픈 질책이 된다.

아현은 곡을 파는데 회사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만약 허니 엔터와 거래하지 않았다면 해솔이와 함께 만들었던 곡도 그렇고 자신의 곡도 서현 언니처럼 묻혀버렸을 수도 있었다.

‘누구한테 곡이 가느냐가 정말 중요한 거야.’

아무리 곡이 좋아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안 되는 것.

아현은 괜히 단톡방에 올라온 글을 봤다가 마음이 더 심란해져 아무런 메시지도 치지 않고 단톡방을 닫아버렸다.

“흐아…심란해.”

차라리 허니 엔터와 계약을 해서 전속 작곡가로 들어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자유롭게 곡을 쓰지 못하는 작곡은 즐겁고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 거절했던 제안이다.

이미 자신은 허니 엔터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온 사람이 아닌가?

다시 거길 들어가는 것도 면목 없는 일이고, 버티지 못할 자신을 알기에 포기했던 일이었다.

“이대로 계속 아무 곡도 못 쓰다가 굶어죽으면 어떡하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로즈 언니에게 작업실을 빌린 세를 줘야만 했다.

여전히 해솔이가 작업실의 월세 반을 부담해주고 있는 건 아현이에게 늘 큰 짐으로 다가왔다.

‘금방 대단한 작곡가가 돼서 해솔이한테 내가 다 내겠다고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상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질 않더라.

허니 엔터에서 받은 곡 값은 새로운 장비를 맞추느라 홀딱 써버렸다.

세상에 비싸고 좋은 장비가 어찌나 많던지.

그땐 또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계획 없이 마구 질러버렸다.

덕분에 지금은 반밖에 되지 않은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말이다.

‘후회 된다. 미치도록 후회 돼.’

장비를 중고로 팔아야 할까?

그런 끔찍한 상상도 하면서 아현은 습관이 된 한숨을 다시 한 번 토해내려 했다.

“똑똑?”

누군가가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해솔아?! 네가 어떻게 여기에.”

“안녕.”

“너 촬영 들어간다고 했었잖아.”

“촬영 끝나고 달려온 거야.”

아, 맞다. 얘한테는 거리가 상관없지?

아현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혼자 있으면 우울함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라떼랑 불고기 샌드위치야.”

“고마워. 잘 먹을게.”

“흐아~ 피곤하다.”

“정말 바로 왔나보네. 화장이 짙다.”

“응. 메이크업 안 지우고 왔어. 너 보고 싶어서.”

“치이~ 거짓말.”

“어허! 거짓말이라니. 이리 와봐!”

해솔이가 아현을 꽉 끌어안고 얼굴 사방에 뽀뽀를 해준다.

아현은 해솔이의 애정을 받으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싹 흘려보냈다.

“아으~ 좋다아~”

이게 힐링이지!

해솔이를 1인 1가구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헤실헤실 웃던 아현은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매미처럼 달라붙어버렸다.

“얼레? 얼굴 안 보여줄 거야?”

“시러시러. 방해 하지 마~ 해솔테라피 중이야~”

“해솔테라피?”

“응응.”

“그럼 나도 아현테라피 해야지.”

서로 꽉 끌어안고 시간을 보낸다.

아현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역시 네가 있어야 되나봐.”

“나 보고 싶었어?”

“그건 항상 그렇고, 네가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쫙 풀려버리거든. 작업실에 계속 가둬두고 싶어.”

“어…그건 안 되는데? 내 인형이라도 놔둘까?”

“너 인형도 있어?”

“그럼~ 회사에서 굿즈로 팔고 있지.”

한정 판매인데, 항상 매진이 된단다.

“진작 알려주지! 알았으면 나도 샀을 텐데.”

“나한테 있으니까 가져다주면 되지. 그 인형 보면서 나라고 생각하고 힘내.”

“너는 요새 작곡 안 해? 여기 원래 둘이서 같이 쓰기로 한 작업실인데.”

“음…그러게. 시간이 안 나네.”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건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너 작곡 재능이 아깝긴 하다.”

그 재능이 나한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현은 해솔이 만든 곡에 자극을 받아 술술 작곡을 해나갔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네가 만든 곡을 들으면 나도 영감이 생길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들려줄까?”

“어? 내가 입으로 말했어?”

“응. 너 내 귀에다가 말했어.”

생긋 웃는 해솔이의 얼굴은 여전히 미치도록 잘 생겼다.

“그나저나 작곡을 하려면 영감을 받아야 하는데….”

“영감?”

“응. 영감을 어디서 받아야 할까?”

“그러게. 너는 영감을 어떻게 받아?”

그러고 보니 해솔이에게 영감 받는 노하우를 들어 볼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모르겠다.

작곡에 재능이 넘치는 해솔이는 단번에 영감을 받아 곡을 작곡하는 천재형 스타일이었다.

아현이 해솔이 어떤 답을 할지 잔뜩 기대했다.

“나는 보통….”

“보통?”

아현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해솔의 눈동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보고 있는 아현의 귓가에 아주 섹시한 목소리가 박혀 들어왔다.

“쾌락으로 영감을 받는 편이야.”

“!”

짐작도 못했던 영감 받는 방법에 아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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