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79화 (379/849)

〈 379화 〉 #57.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방법 (3)

* * *

여태까지 집중이 되지 않았던 건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집중이 잘 됐다.

소스가 좋은 중심 멜로디가 있으니 살을 붙이는 과정은 쉽게 됐던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집중하지 못하고 딴 짓만 주구장창 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아현이의 머릿속엔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이 멜로디를 어떻게 완성하면 좋을지 머릿속에서 쫙~ 펼쳐지고 있었다.

진도가 술술 나가다 보니 아현도 재미가 붙었고, 그로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곡에 집중을 한 것이다.

머릿속에 담겨 있는 멜로디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이게 정말 내가 만든 곡이야?”

그렇게 1시간 후.

믿을 수 없다고 곡이 뚝딱 완성 됐다.

사실 곡은 예전에 다 완성 됐는데 믿을 수가 없어서 계속 이상한 부분을 찾는다고 시간을 보내 1시간이나 흐른 거였다.

이렇게 편하게 곡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지라 더 그랬다.

“평소에 만들어 본 적 없는 분위기네.”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을 뛰게 만드는 멜로디다.

어쩐지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심장도 쿵쾅쿵쾅 뛴다.

이 곡을 어떤 생각을 하며 만들었는지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리듬이었다.

이 멜로디를 더 화려하게 꾸며주고 싶었지만, 그 부분은 그녀가 건드릴 부분이 아니다.

‘어차피 내가 편곡해놔도 회사에서 다시 편곡을 할 테니까.’

아쉽지만 작곡가인 그녀가 이 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새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이 딱 지금 자신의 모습이리라.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현이 의자에서 일어나 엉기적엉기적 소파를 향해 움직였다.

풀썩~!

피로가 깃든 그녀의 몸을 푹신한 소파가 부드럽게 감싸준다.

“하아으으~ 해냈다…!!”

절로 튀어나오는 신음.

한참 소파에 엎드려 휴식을 취하던 아현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발을 허공에 동동 굴렸다.

오늘 일이 특별한 것은 새로운 발견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아마 허니엔터가 이 곡을 들으면 깜짝 놀라면서 물을 것이다.

‘아현이 너 이런 곡도 쓸 줄 알았어?’

히죽­

벌써부터 허니 엔터 직원의 반응이 상상 되어 웃음이 비죽비죽 흘러 나왔다.

그녀의 어깨와 기분이 천장에 닿기 직전.

아현이 문득 떠오른 불길한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뽀록이면 어쩌지?”

이 곡을 만든 건 우연의 산물이고, 자신은 여전히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면?

다시는 지금과 같은 느낌으로 작업이 되지 않는다면, 지금 곡 하나 만들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닌 것이다.

너무 뜬금없이 완성 된, 어떻게 만들었는지 과정도 잘 생각 안 나는 곡이다.

이게 정말 내 자식이 맞아?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하나 더 만들어볼까?”

이미 바깥의 해가 다 지고 어둑어둑한 밤이 내려앉은 상황이지만, 아현이의 작곡에 대한 열정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늘 밤을 세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지금의 방법을 확실하게 새겨야 했다.

아현이 다시 프로그램을 켰다.

그녀의 의지는 쉽게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아현이 상태는 좀 어때요? 괜찮아 보여요?”

­뭘 걱정해. 네가 잘 해결한 것 같던데.

“정말 괜찮았어요?”

­응. 오늘 곡 하나 뚝딱 만들었더라고. 걔는 스스로가 둔재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야. 아직 요령을 못 찾아서 그렇지 감을 한 번 잡기 시작하면 무섭게 실력이 늘 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현이 정말 재능 있거든요. 근데 본인은 그걸 모르더라고요.”

­네가 있어서 그런 거잖아. 괴물 같이 못하는 게 없으니까!

나 때문이라고?

“제가 잘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 거 알잖아요. 순수한 실력이 아닌데….”

그걸로 괴물 취급은 너무하지.

­아무튼 엄청 뜨거운 밤을 보낸 모양이던데 그게 제대로 먹혔어. 나중에 나도 슬럼프 오면 부탁할게. 네 몸으로 보신하면 나도 다시 쌩쌩해질 테니까.

여기서 복순 누나가 말한 보신(??)은 지금 생각하는 그게 맞다.

보약이나 영양식을 먹어서 몸의 영양을 보충하는 것을 뜻하는 보신.

“예예, 얼마든지요. 제가 위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합니다.”

이 한 몸으로 누나의 몸 건강과 정신 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하리라.

아현이가 괜찮아졌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져서 누나와 농담을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곡 만드는데 성공했으니까 슬럼프는 탈출한 게 맞겠죠?”

­내가 보기에 그런 것 같은데 모르겠어. 걔 땅 파는 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작곡 시작한 이후로 애가 좀 변했어. 마냥 밝던 애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짜증을 낼 것이지 착해 빠져가지고 자기 자존감을 깎아대고 있으니까.

아현이는 순하고 착하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남에게 화내는 걸로 풀지 않고 본인 스스로를 파괴한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후회하고, 자신을 욕하면서 말이다.

“저한테는 왜 그런 말을 한 마디도 안했을까요? 알았으면 진작 찾아가서 위로해줬을 텐데.

­네 앞에서야 당연히 티 안 내지. 남자 앞에서 여자가 약한 소리를 어떻게 하니?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건가?

내 입장에선 아현이의 고민을 듣고 상담도 해주면서 든든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번에 정말 고마웠어요. 누나 아니었으면 한참동안 몰랐을 거에요.”

­고마우면서 말로만 입 닦을 건 아니지?

나로 몸보신 한다더니 그걸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나보다.

여태까지 바라는 게 있으면 안 해준 적 없는 것 같은데, 바라는 게 있다고 하니 궁금해졌다.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요?”

­응. 있어.

“뭔데요?”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넌 일단 시간이나 내줘.

“누구 말씀이신데 당연히 그래야죠.”

복순 누나가 나한테 바라는 게 과연 뭘까?

끝까지 말해주지 않아서 궁금증을 남긴 채 전화가 끊겼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아현이에게 문자를 넣었다.

복순 누나가 슬럼프에서 벗어난 것 같다는 걸 알려주긴 했어도 직접 괜찮은지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자는 건지 곧바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제 곡을 만들었다고 했으니 피곤하긴 할 거다.

‘역시 아이템 효과는 명불허전이라니까.’

다행히 복순 누나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정말 나와의 섹스가 보신(??) 인 것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섹스를 백날 해봐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나.’

슬럼프.

나도 직장 다니면서 자주 경험하며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일을 해도 집중이 되지 않고,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이 들어서 당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기억.

슬럼프가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고 있기에 아현이가 슬럼프로 고통 받고 있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가 없었다.

‘슬럼프는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지.’

창작을 해야 하는 작곡이니 슬럼프가 찾아오는 횟수도 더 많고 괴로울 터다.

실제로 유명 작곡가인 X­Monster도 슬럼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현이도 지금 슬럼프를 넘긴다 해도 또 다시 비슷한 슬럼프로 고통 받을 수 있었다.

‘아예 근본적인 원인을 뿌리 뽑아야 돼.’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하나.

압도적인 ‘재능’이었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도 ‘재능’을 구매해서 선물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기꺼이 아현이를 위해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매했다.

그리고 아현이와 만났을 때 몰래 적용시켰고.

아이템을 쓴 걸 숨긴 이유는 괜히 아현이가 엉뚱한 오해를 할까봐서다.

‘재능 있는 게 맞는데 본인 스스로는 잘 믿지 않잖아.’

그런데 내가 아이템으로 도움을 줬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이후로 자기가 만드는 곡 전부를 내 덕으로 생각할 거다.

자기 능력으로 해낸 일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괜히 나 없을 때 땅굴을 파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말하지 않고 몰래 아이템을 적용시켰다.

그래야 내가 바랐던 것처럼 아현이와 작곡과 관련 된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이번 아이템도 코인값은 하나 보네.’

내가 아현이에게 적용시킨 아이템은 설명이 굉장히 간단했다.

[재능 캡슐(예술계no.1)]

­사용자의 창의력과 손재주를 크게 상승시킨다.

[재능 캡슐(예술계no.2)

­사용자의 분석력, 이해력을 크게 상승시킨다]

창의력과 손재주, 분석력, 이해력.

저 능력치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아현이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이런 것들인 것 같아서 선택했다.

‘예술 재능 자체를 올려주는 건 있긴 한데 너무 포괄적인 느낌이 강했어.’

괜히 비싼 값을 주고 필요 없는 부분까지 재능을 올리는 것보단 필요한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재능을 올려주는 게 훨씬 낫다고 봤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아이템을 적용시키자마자 효과를 제대로 받았던 모양이다.

“어떤 곡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네.”

나중에 꼭 들려달라고 해야겠다.

“형~! 이제 형 차례에요!”

“어, 알았어.”

본인에게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현이에 대한 걱정을 접고 촬영에 집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촬영은 꽤 반가운 인연과 함께 하는 일이었다.

오래 전 나의 연인이었던 메이 린.

그녀와 다시 재회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 ? ?

메이 린.

한때 화보 촬영을 하며 인연이 됐고, 조안나와 친분이 있어 연인 관계로 사이가 깊어지기까지 했던 인연이다.

유명 포토그래퍼인 메이 린과 유명 명품 브랜드 수석 디자이너였던 조안나 그리고 남자 아이돌로 데뷔하여 한참 활동을 하고 있는 나까지.

서로 일하고 있는 생활권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우리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감정싸움을 하고 헤어진 게 아니라서 나중에 연이 닿는다면 좋은 인연으로 결실을 맺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조안나랑 다시 재회했지.’

조안나와는 우연히 파티장에서 만났고, 그날 그녀아 회포를 풀고 다시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메이 린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조안나와는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듯 했으나 나는 따로 메이 린에게 연락을 넣지는 않았다.

조안나처럼 우연히 닿게 된다면 몰라도 억지로 연을 잇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조안나가 해준 말에 따르면 메이 린도 나와 의견이 같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메이 린과 연이 닿았다.

사실 동양의 미(美)를 집요할 정도로 파고들어 최고의 동양 전문 포토그래퍼가 된 메이 린과의 작업은 필연적인 일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그룹이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화보 촬영을 요청하는 곳이 많았다.

광고와 화보를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 여태까지 메이 린과 작업을 하지 못했던 게 특이한 거였다.

메이크 업을 받고 있는 사이, 메이 린이 도착을 했는지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로 왔다.

“안녕하세요?”

“어! 작가님! 오랜만이세요! 와~ 근데 우리나라 말 할 줄 아시는 거에요?”

그녀는 어색하지만 우리나라 말로 인사를 했고, 기우연이 눈이 동그래져서 와다다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사실 여러분들이랑 오랜만에 재회하는 거라 급하게 인사만 배웠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초짜 신인이었을 때 그녀와 작업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앗! 영어다.”

해외 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영어를 배우고 있긴 했지만, 유창한 영어를 단숨에 알아듣는 건 어려웠던 우연이 울상을 지었다.

제키가 난감해 하는 우연에게 도움을 줬다.

“통역해줄까?”

“네! 해주세요.”

“인삿말만 급하게 배우신 거래. 우리랑 다시 만난 거 반가워서.”

“우왕! 감동이에요!”

­우리말로 인사해주실 줄 몰랐어요. 우연이가 무척 감동이라고 하네요. 오랜만에 봬서 엄청 반가운가 봐요.

제키의 매끄러운 통역에 메이 린 작가와의 재회 인사는 무척이나 훈훈했다.

멤버들과 모두 재회 인사를 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메이 린이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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