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81화 (381/849)

〈 381화 〉 #57.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방법 (5)

* * *

“오늘 불미스러운 일로 작가님이 스탭 한 명 해고하신 거 알고 있지?”

“아! 그 사람 정말 해고 된 거에요?”

“응. 그렇다더라. 짐싸서 바로 나갔대. 울면서.”

“그냥 그렇게 보내도 돼요?”

“작가님께서 아예 해고를 해버리셔서 우리가 또 나서기가 좀 뭐해. 해솔이도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고.”

“정말이야, 형? 괜찮은 거 맞아?”

촬영이 끝나고 정리를 할 무렵.

매니저 누나가 와서 스태프 한 명이 잘린 얘기를 꺼냈다.

멤버들도 그 일을 듣고 와서 한동안 잔소리를 했기에 나는 괜찮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괜찮아. 그리고 소심하게 훔쳐 본 정도였어. 그보다 더 불쾌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잖아.”

“형이 불쾌했으면 범죄야.”

“심각하지 않았다니까. 그래서 그건 왜요, 누나.”

“응, 내가 생각해봤는데 대처를 잘 해줘서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따로 인연도 있었고 말이야.”

“그건 그렇죠.”

“깔끔하게 회식을 하는 건 어때요?”

“회식? 오! 그거 좋다.”

“회식 좋아! 찬성찬성!”

남은규의 제안에 다들 화색이 돌았다.

어릴 적엔 관계자들과 회식을 해도 영 적응을 못하더니, 이제 제법 컸다고 회식을 어떻게 해야 즐길 수 있는지 알게 된 그들이다.

나야 뭐 회식이면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해본 것이니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따로 메이 린에게 연락을 넣으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된 일이다.

회식 자리가 만들어지면 좀 더 편하게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매니저 누나는 메이 린과 얘기를 나누고 오겠다며 사라졌다.

기대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금방 매니저 누나가 돌아왔다.

“가자!”

““오오!””

저쪽에서도 흔쾌히 회식을 허락해 곧바로 자리가 만들어졌다.

“메뉴는 뭐에요?”

“말해 뭐해? 당연히 고기지.”

“우리나라 회식 문화를 제대로 보여드리자!”

“노래방도 가는 거에요?”

“야. 너희 연예인이야. 우리끼리 놀 때처럼 놀려는 건 아니지?”

“앗! 맞다.”

호들갑을 떠는 애들과 함께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메이 린과 그 스태프들도 비슷한 시간에 우르르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스탭과 우리 스탭이 다 합쳐지니 어느새 가게 자리가 반이나 찼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메이 린이 자기 스태프들에게 말을 했다.

­다들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놀아. 우리가 사과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그쪽에서 감사하다고 이 자리를 만들어준 거야.

­네, 작가님!

­각자 숙소도 못 찾아 갈 바보는 여기에 없겠지?

­당연하죠. 저희가 어디 한두 번 출장 다녔나요.

세계 이곳저곳에서 그녀의 실력을 필요하다며 불러 대서 그녀의 팀원들은 낯선 나라에서 몸을 사리면서 노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치안이 굉장히 좋긴 합니다만,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보니 조심할 필요가 있죠. 숙소로 돌아가시려는 분이 계시면 저분한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택시를 불러주신다고 하네요.

그리고 회사에서는 메이 린과 좋은 인연을 맺고 싶었는지 숙소로 가는 것까지 확실하게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

매니저 누나의 요청으로 통역가가 말을 전달해줬다.

메이 린과 그녀의 스태프들은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대접을 해주는 회사의 방침에 매우 흡족해 하며 본격적으로 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실 알게 모르게 스태프들 사이에서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직접 희롱을 한 것도 아니고 시선일 뿐인데 해고를 해버리는 건 너무하지 않나 하는 의견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제대로 대접을 받다보니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해고당한 스태프가 안타깝긴 하지만 이런 쪽 일을 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실수를 저지른 이라면 오늘이 아니어도 나중에 사고를 쳤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메이 린도 허니 엔터의 배려에 고마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제 체면이 살았네요.

­오히려 저희가 감사해야죠. 그냥 모르는 척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먼저 나서서 막아주셨잖아요.

사실 이런 일이 생기면 대부분 자기 식구부터 챙기는 게 대부분이다.

더욱이 외국에서 온 팀이지 않은가?

막말로 한 번 보고 더 이상 안 보면 되는 사람들과의 일인데, 한 번만 눈 딱 감고 넘긴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팀에서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누가 봐도 노골적인 눈빛이었어요. 기분 나빴을 텐데 해솔씨가 티를 안내서 깜짝 놀랐죠. 무슨 생각으로 그걸 내버려둔 거에요?

메이 린이 아직도 화가 난다며 찌릿하고 나를 째려봤다.

­하하.

여기서 ‘그 정도는 일상이다.’ 라는 말을 할 순 없었다.

메이 린이 일상인 일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자기 팀원을 해고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멋쩍은 웃음으로 예민한 질문을 넘긴 나는 다시 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또 손님에게 대접을 소홀하게 하는 문화가 아니지 않은가?

매니저 누나가 급하게 섭외한 집은 아주 맛집이었다.

우리 직원들이 넉살 좋게 고기로 어떻게 쌈을 싸먹으면 맛있는지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해외 활동을 하면서 직원들도 웬만한 영어는 할 줄 알게 됐다.

스스로 공부한 것도 있고, 사람을 구할 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구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잘 생기셨어요.

­사실 제가 에어플레인 팬이거든요. 팬클럽에도 가입했을 정도로요!

회식이 무르익고, 술이 좀 들어가자 직원들 사이에서 팬밍아웃이 터져 나왔다.

­정말요? 우리 팬이에요?

­네!! 그래서 이번에 작업한다는 소리 듣고 엄청 기대했어요.

­싸인이라도 해드릴까요?

­꺅! 정말요?

­저, 저도 싸인 좀….

한동안 우르르 몰려든 직원들을 상대하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워낙 분위기가 좋았기에 멤버들 모두 기분 좋게 팬서비스를 해줬다.

사진도 찍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

스윽­

우리들에게 사람이 몰려들던 것도 잠시.

각자 회식을 즐기느라 우리에 대한 관심이 천천히 줄기 시작했다.

멤버들끼리도 흩어져서 회식을 즐겼기에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메이 린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어느새 내 얼굴에는 안경이 착용 되어 있었다.

나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안경 효과는 먹히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잠깐이라도 나를 망각하고 다른 곳에 신경을 쓴다면 안경 효과가 먹힐 것이고, 희미해진 존재감 덕분에 이곳을 보는 사람이 사라질 것이다.

­건배 할까요?

­그러죠.

이제부턴 그녀와 편하게 대화를 나눠도 된다는 뜻이었다.

내가 내민 술잔을 본 메이 린도 피식 웃으며 술잔을 맞부딪쳤다.

쨍~!

경쾌하고 맑은 소리가 울린다.

오늘따라 달게 느껴지는 술을 단숨에 삼킨다.

그러면서도 내 시선은 메이 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조안나와 메이 린 둘이서 자주 만나서 시간을 보냈지만, 내 마음 속에서 조안나와 메이 린은 같지 않았다.

조안나는 연인 쪽으로 감정이 더 깊었다면, 메이 린은 흔히 말하는 섹파 느낌이 더 강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시작 된 건 조안나가 나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와 작업을 해보고 메이 린은 조안나에게 부탁해 나와 섹스를 했다.

‘심지어 메이 린은 섹스하는 걸 사진으로 찍기까지 했지. 그날 찍었던 사진들은 내 손으로 지워버렸고.’

유출이 되면 너무 위험하기에 어쩔 수 없이 삭제해야만 했던 사진들.

짧게 존재했다가 사라지기엔 너무 아쉬웠던 걸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 린은 자기 사진이 삭제되는 것을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진이 세상에 사라지는 걸 좋아하더라.

‘삭제하는 내가 오히려 더 아까워 했었지…. 예술가의 마음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니까.’

내가 그녀를 뚫어 쳐라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긴 것이 메이 린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그녀가 나른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촬영을 하느라 쌓인 피로와 술이 들어가면서 생긴 나른한 눈빛일 것이다.

하지만 피로가 묻어 나오는 나른한 메이 린의 눈빛이 내 아랫도리를 자극했다.

­당신 생각이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오랜만에 그녀와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메이 린과 나에겐 꽤 짜릿한 자극이었다.

나는 옷에 가려진 그녀의 속살이 어떻게 색을 갖고 있는지, 그걸 만졌을 때 느껴지는 감촉이 어떤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짐작하고 있었어요. 당신 눈빛이 날 홀딱 벗겨먹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당신은 예전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네요.

­당신은 차가워졌나요?

나에 대한 마음을 돌려 묻어봤다.

그녀는 웃으면서 내 질문에 대답했다.

­아뇨. 저도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어요. 불길이 크게 타오르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잔불로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더군요. 다른 불길에 합쳐지지도, 잡아먹히지도 않았죠. 솔직히 어이가 없었어요. 자각하지 못하는 곳에서 내 전부를 활활 불태우고 있을 줄 몰랐거든요.

헤어지고 나서 나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컸다는 뜻이었다.

무척 기꺼운 소리다.

헤어진 여자가 날 잊지 못하고 여전히 감정이 남아 있다는 말 아닌가?

나는 흡족한 미소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좋아요?

­당연히 좋죠. 저 혼자만의 바램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정말 그래요? 조안나 얘기 들어보니까 잘 살고 있던데? 지금의 당신이라면 나 같은 여자는 수두룩하게 만날 수 있잖아요.

그녀의 말이 맞기는 하다.

­그 여자들 중에 메이 린이라는 여자는 없잖아요. 오직 당신 한 사람 뿐이죠.

­로맨틱한 말이네요. 여자라면 넘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넘어왔어요?

­이미 오래 전부터 당신한테 사로잡힌 상태에요. 넘어갈 곳은 없어요.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으니까요.

­예상했던 대로 쿨하게 헤어져서 당신이 이런 예쁜 말을 해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원래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잖아요. 어떤 사진을 찍어도 당신을 찍을 때보다 짜릿하고 행복하지 않더군요. 그걸 한참 후에야 깨달았어요. 그래도 나쁜 경험은 아니었죠. 덕분에 또 다른 목표를 갖게 됐으니까요.

목표?

내가 의아해져 말없이 가만히 쳐다보니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을 찍는 거에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삶을요.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게 될 내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는 것.

그것이 메이 린의 새로운 목표가 됐다는 것.

굉장히 영광스럽고 감사한 말이었다.

그녀의 카메라에 담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지금도 수두룩한 상황하다.

그런 대단한 여자가 자발적으로 내 인생을 사진에 담고 싶다고 고백한 것이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메이 린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상 아래로 내렸다.

­뭐하는 거야? 위험하게.

­나갈까요?

­둘이서?

­몰래 나가면 되죠. 지금 우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럴 리가. 아마 네가 모르게 몰래 우릴 쳐다 보고 있을 거야. 술을 마셔서 나도 깜빡했어. 좀 떨어져 앉자. 이러다가 스캔들 나면 곤란하잖아?

메이 린은 내 말에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 가까이에서 떨어지지 않고 능글 맞게 웃기만 하자 메이 린의 눈썹이 꿈틀댔다.

­왜 이래? 정말 위험할 수 있다니까?

­못 믿겠으면 직접 주변을 살펴봐요. 정말 아무도 우리 안 보고 있다니까요?

메이 린이 내 말을 여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정말 주변에서 우릴 쳐다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혼란스러워 했다.

­다들 술 마시고 노느라 정신이 없는 거죠. 당연한 일이에요.

­쟤들이 예쁜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봐봐! 네 멤버들한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잖아.

실제로 멤버들은 회식 장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중심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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