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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82화 (382/849)

〈 382화 〉 #57.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방법 (6)

* * *

이러다간 그녀가 사람들의 이목을 주목시킬 것 같았기에 손을 움직여 어깨에 얹고 토닥였다.

­진정해요.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우리한테는 행운 아닌가요? 그리고 예전에 한 번 얘기한 적 있는데 제가 예전부터 갖고 있었던 체질이에요.

메이 린과 함께했던 시간은 짧고 굵었다.

시간이 짧았던 만큼 다른 여자들이 내 특별함을 어느 정도 눈치 챘던 것과는 달리 메이 린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녀와 길거리를 걸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차를 타고 이동했고 만나는 곳은 바깥보다는 사방이 닫혀 있는 방 안이었다.

­체질이요?

­사람들한테 잘 눈에 띄지 않는 거죠.

안경에 대한 익숙한 변명.

­말도 안 돼요. 그런 체질이 있을 리가 없…아?!

메이 린은 말을 하다가 무언가 떠오르는 일이 있었는지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랑 길거리를 다녔을 때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땐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맞아요. 그때도 분명 제 체질이 효과를 보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체질이 진짜 존재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연예인을 할 수 있는 거죠? 아니, 그 모든 걸 다 제쳐두고 이렇게 존재감이 강렬한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체질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나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으며 내 존재감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느꼈을 그녀였다.

그녀의 카메라에 찍혔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다소 격하게 부정하고 있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계속 존재감이 희미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제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거든요. 지금처럼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죠.

­정말 신기하네요. 혹시 당신 귀신도 봐요?

이곳은 마법 같은 일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다만 지구에서처럼 마법과도 같은 일을 쫓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고, 그를 동경하여 소설을 쓴다거나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귀신을 보는 ‘무당’이 있고 다른 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이능력을 쓴다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니 내 말도 안 되는 체질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애초에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힘든 현상이다.

­다행스럽게도 귀신은 못 봐요.

보려하면 볼 수 있겠지만 굳이 코인을 써서 그런 흉한 걸 보고 싶지 않다.

호기심을 드러내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계속 여기 있을 거에요?

­…나가긴 해야죠.

­여기서 계속 밍기적거리지 말고 움직이죠. 더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어서요.

­정말 이러고 간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아무도 신경 안 쓸 테니까.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벌떡 일어나는 내 대범한 행동에 깜짝 놀란 메이 린이 주변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시한다.

가게를 나가려면 사람들 사이를 대놓고 지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군가가 지나가면 자연스레 돌아보는 게 정상이니 그들의 반응은 정상이라 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 손을 잡고 가게 중앙까지 당당하게 걸었으니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 ? ?

타다닥­

­빨리 와요! 왜 이렇게 느긋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행동을 한 이후에는 메이 린이 더 적극적으로 나왔다.

느긋하게 걷고 있는 나를 다급하게 이끌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다급해진 이유가 있기는 하다.

“와~ 신기하다. 나 연예인 처음 봐.”

“다른 멤버는 어딨지? 나 진해솔 팬인데!”

“안쪽에 있나봐. 여기에선 안 보인다.”

가게 밖에 나와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에어플레인이 이 가게에서 회식을 하고 있는 게 소문이 났던 것이다.

아무래도 급하게 구한 가게이다 보니 준비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난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가게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 있었기에 나도 살짝 긴장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안경 믿지.’

그동안 이 안경 덕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사색이 된 메이 린과는 달리 나는 믿는 게 있는지라 금방 여유로움을 되찾았다.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저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확 뛰네.”

“개 잘생김. 미쳤음.”

“그룹에서 제일 잘 생긴 진해솔도 아닌데 저 정도면 진해솔은 얼마나 잘생겼다는 거야?”

“내 친구 중에 실물 본 적 있는 애가 있는데, 사람 아닌 줄 알았대.”

내 이름을 서슴없이 꺼내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저들 중 하나는 나를 알아봐야 하는 게 정상이다.

더욱이 우리는 당당하게 가게 문을 열고 나온 상태이지 않은가?

그런데 누구도 우리에게 시선을 주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가게 문이 열렸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잠깐 패닉이 온 메이 린은 그때부터 내 손을 꽉 움켜쥐고 달렸다.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아무도 안 따라와요.

­나도 알아요! 근데 하, 두 눈으로 봤지만 믿을 수가 없는 편리한 체질이네요. 가게 앞에서 사람들 몰려 있는 거 보고 꼼짝없이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좀 믿어져요?

­네. 황당하지만 믿어야죠. 제가 직접 봤는 걸요.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럼 이제 그만 뛸까요? 슬슬 힘들어보이는데.

나야 체력이 괴물이나 다름없으니 상관없지만, 메이 린은 달랐다.

­그, 그럼 그럴까요?

그녀도 그걸 느꼈는지 순순히 걸음을 멈춘다.

­이제 우리 어디로 가요? 나 여기가 어딘지 몰라요.

몇 번 방문한 나라지만, 그 나라의 지리까지 익힐 리가 없었다.

무작정 뛰었던 그녀는 뒤늦게 여기가 어딘가 싶어 붙잡은 손을 꽉 쥐었다.

­따라와요. 이제부턴 제가 안내할 게요.

­어디 갈 건데요?

­고민할 게 있나요? 당연히 아무도 없는 곳이죠! 그나저나 짐은 잘 챙겼어요? 카메라 무거우면 제가 들게요. 이리 줘요.

­여기 가방에 잘 챙겨뒀어요. 그리고 난 내 카메라 다른 사람한테 안 맡겨요. 나한테는 목숨이나 다름없거든요.

단순히 카메라의 가격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정말 그녀에게 카메라는 자기 목숨과 같을 거다.

당연하지만 목숨을 남한테 맡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메이씨가 단호하게 거절한 거절을 흔쾌히 납득했다.

­근데 갑자기 카메라는 왜 물어봐요?

­저를 찍고 싶다고 했잖아요. 얼마든지 찍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거든요. 앞으로 메이씨한테는 제 초상권을 드릴게요. 필요한 만큼 마음껏 쓰세요.

나를 찍고 싶다는 사람에게 초상권을 맡겨버리는 것만큼 감동적인 고백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메이씨가 꽤나 귀여운 반응을 보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농담한 거지? 당신 얼굴이 얼마짜린데 그걸 나한테 맡겨?

­언제까지 당신이라고 거리감 느껴지게 부를 거에요? 슬슬 예전처럼 불러줄 때도 되지 않았어요?

말도 좀 편하게 하시고.

내 말에 메이씨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나를 잊지 못했고, 내 삶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하던 사람의 마음에 어떤 망설임이 남은 것일까?

­사실 충동적으로 한 말이었어. 지금 내 상황이 예전이랑 달라지지 않았거든.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어. 나는 예전보다 더 많이 바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해.

­거리가 멀어지니 결국 헤어진 거나 다름없을 거라는 거군요.

­응. 조안나랑은 어떻게 잘 사귀고 있다는 건 알지만 나는 자신 없어.

여전히 장거리 연애는 싫다는 메이 린.

나는 그녀의 망설임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물론 이해만 한 거다.

거리가 상관없는 내가 왜 그녀를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저랑 헤어지고 나서 다른 남자랑 잔 적 있어요?

­아니. 너랑 그런 섹스를 했는데 다른 남자랑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저는 여러 여자랑 잤어요. 당신 이외에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요.

어차피 모든 걸 밝혀야 하는 일이었기에 시작부터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했다.

근사한 레스토랑도 아니고, 고작 길거리에서 하는 말이라 멋도 없지만 어쩌겠나.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상관없어. 내가 그런 거에 연연하는 사람이었으면 조안나랑 3p도 안 했을 걸? 애초에 내가 너희들 사이에 끼어든 거기도 하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쿨한 그녀.

사실 저런 쿨한 성격 때문에 오해를 하게 됐던 것 같다.

쿨하게 떠나간 만큼 나를 쉽게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라 해도 강제로 빼앗아 올 각오까지 모두 해놓은 상태였는데….

‘조안나도 그렇고 메이 린도 그렇고 날 부끄럽게 만드네.’

그녀들이 날 사랑하고 그리워한 만큼 조안나와 메이 린을 그리워했는가 고민해본다.

‘그립다기 보단 불안했지.’

잠깐 방생하긴 했어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나한테 되돌아 올 연어라고 생각했다.

다른 남자에게 내 여자를 ‘잠깐’ 뺏기는 건 기분 나쁜 일이지만, 최종적으로 내 옆에 있게 될 테니 참자고 생각했고 말이다.

‘다른 남자를 만나도 나랑 했던 섹스는 절대 못 잊었을 테니까.’

그런데 그녀들은 나를 잊기는커녕 오히려 그리워하며 다른 남자들은 만나지도 않았단다.

그녀들에게 유혹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제가 좀 못된 놈인가 봐요. 메이씨가 다른 남자를 안 만났다고 하니까 기분이 엄청 좋아졌어요. 아무튼 다른 남잘 만나고 있는 게 아니면 우리 다시 사겨요. 나도 당신도 서로를 못 잊고 있는데, 거리 따위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일 때문에 정 나랑 못 만날 것 같으면 내가 당신한테 갈게요. 메이씨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에요.

­내가 바본 줄 알아? 자기도 엄청 바쁘잖아.

헤어지고 재회한 이후, 처음으로 메이씨가 나를 ‘자기’라고 불러줬다.

예전에도 그녀는 나를 ‘뮤즈’ 혹은 ‘자기’ 같은 단어로 나를 불렀었다.

­바빠도 괜찮아요. 당신 보러 갈 시간은 있거든요.

­어련하겠어. 사실 조안나가 나한테 얘기를 많이 했어. 너랑 장거리 연애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말이야. 네가 자길 찾아 올 때마다 행복하고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라더라.

­부러웠어요?

­안 부러웠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어떻게 부럽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서로한테 부담이 되는 관계를 유지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전혀 부담 되지 않아요.

­…정말 괜찮겠어?

내가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이다 보니 그녀도 슬슬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확실하게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요.

­어, 어딜?!

­계속 길거리에 서 있을 순 없잖아요.

나는 그녀를 데리고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가 향하는 곳은 당연하지만 여기서 가장 가까운 ‘호텔’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메이가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가요.

택시에 내려서 호텔 방을 잡고 올라온다.

우리는 서로 손을 꽉 잡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가장 필요로 한 게 뭔지 알았다.

지금은 재회의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 할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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