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86화 (386/849)

〈 386화 〉 #58. 기적 (1)

* * *

나는 시치미를 떼면서 아현이를 떠보기로 했다.

진심으로 아현이에게 찾아 온 재능을 원하지 않는다면 다시 되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또 올 수도 있잖아. 그때 어떻게 해? 너 무섭다며.”

“또?? 에이~ 그럴 일 없어.”

“바보야, 원래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런 경험을 또 한다고? 나 그러다가 빌보드 진출할지도 몰라!”

“뭐? 빌보드? 하하하!”

“히히히! 그니깐 그게 막 아무렇게나 오고 그런 게 아니라구. 어쩌면 평생 그런 경험을 다신 못 할지도 몰라.”

“그래서 쓰러질 정도로 무리를 한 거고.”

“윽! 헤헤.”

내 지적에 아현이가 귀엽게 혀를 내빼며 애교를 부린다.

그래도 아현이 말을 들으니 줬던 것을 굳이 다시 가져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무서웠다고 말했던 게 감각 그 자체를 말한 게 아니라….

‘재능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했다는 거잖아.’

이 사단이 난 원인도 그것에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없어질 문제였다.

아현이의 재능은 일시적인 게 아니라 영구적인 일이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네가 잘 조절해야 돼. 그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이렇게 무리하다가 쓰러져서 병원 실려 오고 그럴 거야?”

“아니야! 영양제 잘 챙겨먹고, 밥도 잘 챙겨먹으면서 일할 거야.”

“믿어도 되겠어? 곡 쓰다가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음악이 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해?”

“아니! 네가 제일 중요해.”

착실하게 대답을 잘 한다.

앞으로 계속 그런 감각을 느끼며 지내야 하는 아현이기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당부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배달시킨 음식이 올 때까지 아현이를 붙잡아두고 건강을 챙기는 것을 약속 받으며 증거품으로 입술 도장을 쿵쿵 찍어주었다.

“작곡한다고 며칠 째 내 메시지 씹은 건 알아?”

“헉!”

“한 달간 꼬박꼬박 하루 세 번 이상 연락해. 이것도 벌이야.”

“그게 벌이야?”

“응.”

“나한텐 상인 것 같은데…. 히히히! 알았어!”

끝난 줄 알았던 아현이의 예상치 못한 돌발 사건에 마음고생을 좀 해야 했지만, 이 정도면 잘 해결이 된 것 같았다.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으로부터 바로 몇 시간 후.

또 다른 일이 나를 찾아왔다.

? ? ?

새벽 4시.

♩~♩♪~♪♬~

고요를 뚫고 핸드폰이 울렸다.

아현이가 깰까 싶어 깜짝 놀란 나는 전화를 받고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누님?”

­해솔아.

“목소리가 왜 그래요?”

연주 누님이 새벽에 전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일이었는데 목소리까지 정상적이지 않았다.

­도와줘, 해솔아.

“어디에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깨어나서 내가 없는 걸 보고 놀랄 아현이에게 쪽지를 남기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연주 누님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이번에도 병원이었다.

아현이의 일로 한 번 다녀갔는데, 또 다시 병원이라니.

제대로 마가 낀 날이다.

‘여기구나.’

병원으로 이동해서 누님이 알려준 곳으로 움직였다.

복도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잘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언젠가 한 번 본적 있었던 얼굴들이 복도에 서 있는 게 보였던 것이다.

워낙 눈에 띄는 사람들인지라 그들을 힐끔거리며 보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됐다.

분위기가 험악했기에 호기심으로 건드려보는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안경을 끼고 나왔기에 내가 조폭들 사이를 가로질러 누님에게로 가는 내내 붙잡는 이가 없었다.

“누님!”

“빨리 왔구나. 자고 있었을 텐데 미안하다.”

“다치신 거에요? 병원은 왜 왔어요? 저쪽에 그때 집에서 뵀던 분들 있던데 혹시….”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는 못했다.

누님의 본가에서 뵀던 분들이 병원에 있다는 것은 병원에 온 이유가 장모님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관씨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한동안 경호 일을 하지 못한다고 했던 게 불길함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으셨다.”

역시나.

누님이 병원에 있는 이유는 장모님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님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안색이 무척 창백해서 자칫 잘못하다간 누님도 쓰러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수술 중이신 거에요?”

“방금 수술 끝나서 중환자실로 들어갔어.”

수술을 했다면 시간이 오래 지난 일이라는 뜻이 된다.

수술이 끝나고서야 나를 부른 것이 못내 서운해졌다.

“왜 지금 불렀어요? 밤새 여길 혼자서 지킨 거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안색이 창백하죠.”

“스케줄하고 피곤해서 자고 있을 사람을 불러서 뭐하겠니. 네가 온다고 해도 수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고.”

“아무리 그래도 불렀어야죠!! 혼자서 힘들어 할 게 아니라요.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됐잖아요. 속상해라. 몸은 또 왜 이렇게 얼음장이에요?”

장모님도 걱정 되지만, 몸이 찬 연주 누님도 걱정이 됐다.

병원에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마음 조리며 초조하게 기다렸을까.

태평하게 자지 말고 누님의 옆에서 위로를 해줬어야 했다.

나는 누님의 몸을 꼭 끌어안아주었다.

내 온기로 누님의 몸이 녹기를 바랐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결과가 좋았다면 누님이 나를 불렀을 리 없다.

나는 좋지 못한 소식을 들을 것을 예감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의사가 뭐라고 했어요?”

잠시간 침묵 끝에 각오하고 물었다.

그러자 연주 누님이 내 예상과 다르지 않게 말했다.

“부탁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네 능력이 필요해. 간신히 목숨은 붙여놨다는데 나이가 있다 보니 경과가 좋지 않다고 하셔.”

“!!”

질끈 눈을 감았다.

품에 안겨 있는 누님의 몸이 옅게 떨리고 있다.

이 떨림의 원인이 단순히 추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장모님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분명하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연주 누님의 연약한 모습에 보호 본능이 솟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이런 부탁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하다.”

“자꾸 서운한 말 하실 거에요? 가족이잖아요. 얼마든지 부탁하셔도 돼요.”

장모님의 건강 회복.

그것이 누님이 나에게 바라는 부탁이었다.

“상태가 많이 심각해요? 어디가 다쳐서 수술을 받으신 거에요?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물건을 구해오기가 편하거든요.”

아이템도 종류가 다양하고, 생명이 위험한 이유도 다양한 법이다.

상황에 맞춘 아이템을 구매해야 효과가 좋을 것은 당연하다.

“아니, 네가 따로 돈을 쓸 필요는 없어.”

“네?”

“네가 나한테 줬던 걸 어머니한테 먹여도 괜찮은지, 그걸 물은 거였다. 네게 더 큰 부담을 주진 않을 거야.”

“제가 줬던 거라면 설마 영양제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래. 어머니가 회복할 체력이 필요하신데, 네가 줬던 영양제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아니….”

내가 가진 능력은 코인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람도 1분 안에 살릴 수 있었다.

생명이 위독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장모님?

내가 코인을 쓴다면 어렵지 않게 일으킬 수 있었다.

평소에 나는 가족 중 누군가가 뜻하지 않게 다치거나 병을 앓을 수 있다는 생각에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코인 대부분을 아껴두고 있었다.

그러니 장모님을 위해 쓸 코인은 충분했다.

그런데 누님이 바라는 건 고작 자기가 먹는 영양제를 장모님에게 양보하는 것이었다.

일을 할 때는 야무지고 똑똑한 여자가 어째 자기 일에는 멍청하고 순하게 구니 환장하겠다.

“그건 누님이 드세요. 누님 건강 챙기라고 드린 거잖아요. 그리고 장모님 회복을 도울 만한 건 제가 따로 드릴게요.”

“절대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이잖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아뇨. 장모님이 건강하게 회복하실 수 있게 도울 거에요. 저 사위잖아요.”

“…….”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선뜻 말을 잇지 못하는 누님에게 말했다.

“그냥 고맙다고 해주세요. 사실 고마울 것도 없는 일이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당장 장모님 면회는 안 되는 거죠?”

“안 될 게 뭐가 있겠니. 당장 가능해.”

병원의 원칙 상 그러면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했더니 VIP는 사정이 좀 달랐던 모양이다.

“오래는 안 됩니다. 환자분 몸은 절대 건드리시면 안 되고요.”

“알겠습니다.”

연주 누님이 의사에게 말하니 우리를 중환자실로 안내해주었다.

병원의 묘한 공기가 중환자실에 가까워지자 더 심해진다.

연주 누님과 나는 옷을 갈아입고 몸을 소독한 후 중환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

“…….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잠들어 계신 어머님의 모습을 본 우리들은 충격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받았다는 걸 말로만 들었을 땐 확 와 닿지 않았는데, 직접 두 눈으로 장모님의 모습을 보니 현실로 느껴진 것이다.

연주 누님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한참 가만히 장모님을 내려다 보다가 돌아섰다.

다만 나는 장모님의 몸 상태를 확인해야 해서 바로 돌아서지 못했다.

‘폭행…인가?’

수술 부위만 문제가 아니었다.

장모님의 몸에는 자상이 굉장히 많았다.

시퍼렇게 멍들고, 무언가에 다쳤는지 몰라도 붕대를 감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붕대를 감지 않은 부위를 찾는 게 더 나을 정도였던 것이다.

누워 계신 장모님을 보니 왜 연주 누님이 그토록 현오를 장모님과 가까이에 두고 싶지 않아 했는지 알겠다.

장모님이 이렇게 당한 것처럼 현오도 같은 일을 당할까봐 걱정이 됐던 거다.

‘이런 걸 봤는데 어떻게 허락하겠어.'

장모님이 누워 있는 것처럼 현오가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다?

상상만 해도 혈압이 오르고 눈이 뒤집어지는 일이었다.

그 꼴을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있나 생각해보면 절대 아니었다.

나라면 모든 힘을 다 사용해서라도 현오를 그렇게 만든 놈들에게 보복을 할 것이다.

'아예 이럴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최고지.'

앞으로 나도 누님이 강경하게 반대를 하는 것에 의견을 더할 것 같았다.

현오가 굳이 이런 험한 일을 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할 수 있겠니?"

내가 잠시 현오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연주 누님이 내 정신을 일깨웠다.

"네. 할 수 있어요."

아무 말 안 하고 있어서 걱정 됐던 모양이다.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아까 했던 말이잖아요. 충분하니까 더 안 해도 돼요."

나는 곧장 상점을 열었다.

[대천사의 주기도문]

­대천사의 축복 기도가 담겨 있는 주기도문이다. 원하는 기적을 선사해준다.

다소 이상한, 두루뭉술한 설명.

하지만 ‘대천사’라는 설명에 집중해야 한다.

천사라는 종족은 치유, 회복에 특화 되어 있어서 그들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장모님을 예전보다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마 대천사의 축복을 받으면 몸 상태가 회복을 넘어서서 젊음을 되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은 누님이랑 사이가 좋지 않아서 딱히 혜택을 나눠 줄 이유가 없었지만….’

장모님에게 큰일이 생겼을 때, 누님이 보여주었던 반응은 그동안 보여줬던 냉정한 관계라 볼 수 없었다.

대천사라는 이름값이 결코 값싸지 않았지만 기꺼이 코인을 지불하고 구매했다.

“누님.”

“응….”

"시작할게요."

"그래."

누님에게 말한 뒤 곧장 아이템을 사용했다.

대천사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주기도문을 장모님에게 적용시킨다.

사용방법이 적혀 있었고, 적용시키는 것은 무척 간단했다.

그저 장모님의 이마 위에 아이템을 살짝 올려 놓기만 하면 됐으니 말이다.

그 이후, 바라는 바를 속으로 생각했다.

'장모님께서 건강을 되찾기를.'

내 소원이 제대로 접수 되었는지 아이템에서 번쩍이는 황금색의 빛이 퍼져 나온다.

은은하고 따듯한 바람이 흘러나온다.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이상한 냄새가 사라지고 산 속에 있는 것처럼 상쾌한 향기가 퍼졌다.

황금색 빛은 어느새 투명한 천사가 되어 우리의 앞에 드러났다.

대천사의 축복이 담긴 주기도문이라고 하더니, 정말 천사를 이 자리에 강림 시켜 버린 것이다.

허공에서 황금색 날개를 펄럭이던 대천사가 누워 있는 장모님을 따스하게 바라본다.

대천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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