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화 〉 #58. 기적 (2)
* * *
아아아아~♪♬ 아아아~♬ 아~~~♪
현실에 강림한 대천사의 입이 열린다.
그녀의 목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천상의 음률이 흘러나온다.
나는 그녀가 내뱉는 ‘소리’가 축복 그 자체임을 알아차렸다.
우리에게는 노래와 비슷하게 들렸지만, 아마 그녀가 내뱉고 있는 소리는 언어일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언어’를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이게…무슨…?!”
한편, 마법적인 현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 연주 누님은 크게 동요했다.
나도 뜬금없이 천사가 강림할 줄은 몰랐기에 서둘러 누님을 붙잡고 속삭였다.
“진정해요. 이상한 일 아니에요.”
“저…사람?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설마…천사인 거니?”
저 황금색 깃털을 보고 천사라는 걸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연주 누님이 무교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네. 대천사에요. 장모님한테 축복을 내려주고 있는 거에요.”
혹여 저 천사가 장모님에게 해코지를 하는 거라 오해할까봐 서둘러 덧붙였다.
“축복….”
“이제 장모님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깔끔하게 나으실 거에요. 아마 예전보다 더 건강해지실 걸요? 저 축복으로 수명이 한 20년은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반이나 비어버린 코인에 살짝 조바심이 나긴 하지만, 이럴 때 쓰려고 아껴둔 코인이었기에 아깝진 않았다.
‘코인은 부지런히 채워 넣으면 되니까.’
한동안 미뤄두었던 미션을 또 열심히 뒤적여봐야 할 것 같다.
누님과 나는 대천사라는 흔히 보기 힘든 이적을 구경했다.
구매하는데 들었던 코인 값에 비해 대천사가 강림해 있는 순간은 굉장히 짧았다.
장모님에게 축복을 끝낸 듯 빙그레 자애로운 미소를 짓더니 스르르~ 허공에서 사라진 것이다.
반 투명하던 모습이었기에 갑자기 사라지는 게 영 이상해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 둘 다 대천사가 사라진 허공을 한동안 계속해서 쳐다봤다.
“임팩트가 대단하긴 하네요.”
“천사가 정말 존재한다니….”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잠깐 코인을 지불해서 여기에 온 거죠.”
솔직히 반투명한 신체를 보면 완전히 강림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효과만큼은 탁월해서 따질 바가 아니었다.
삐빅삐빅
의미를 알 수 없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축복을 받은 장모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고, 그 안에 있던 흑색 눈동자가 바깥에 드러났다.
수술을 받고 잠들어 계셨던 장모님이 깨어난 것이다.
나는 의료진을 부르는 버튼을 눌렀다.
중환자실이라서 그런지 버튼을 누른지 얼마 되지 않아 간호사가 들이닥쳤다.
“어머니가 깨어나셨습니다.”
“모두 나가주세요.”
깨어난 장모님을 케어하기 위해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걱정이 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누님을 데리고 중환자실에서 조용히 빠져나갔다.
“…….”
“괜찮아지실 거에요.”
여전히 조금 멍해 보이는 누님.
천사를 두 눈으로 목격해서일까?
걱정스러웠던 연주 누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이 되고 있었다.
잠시 후.
중환자실로 들어갔던 의사가 바깥으로 나와 우리에게 장모님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고비를 잘 넘기셨습니다. 고령이시라 회복이 더딜 것 같아 걱정이 많았는데, 젊은 사람보다 더 회복이 뛰어나시더군요. 이렇게 빠르게 회복 되는 경우는 여태껏 본 적이 없습니다.”
대천사의 축복이 만들어낸 기적.
그것이 장모님의 몸에 제대로 영향을 끼쳤는지 의사가 엄청난 회복력을 계속해서 칭찬했다.
“혹시 모르니 내일까지는 중환자실에서 케어를 하고, 이후에 호전 되는 속도를 보고 일반실로 옮길지 말지 결정하겠습니다.”
중환자실을 나올 수 있다는 것으로 장모님이 더 이상 생사를 오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대천사를 보고도 졸이는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았는데 의사의 확인을 받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누님, 잠깐 눈이라도 붙이죠. 안색이 안 좋아요.”
장모님이 입원하면서 VIP실 하나를 빌려두었기에 그곳에서 잠을 자도 되지만, 편리한 이동 수단이 있는데 굳이 불편한 병실을 쓸 필요는 없었다.
해가 거의 뜨기 직전인 시간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나을 것 같아 연주 누님에게 제안했다.
“그래. 너도 새벽에 괜히 불려 와서 고생했다. 이제 쉬러 가렴.”
“잠깐이라도 같이 자요. 네?”
“아니…. 난 할 일이 남았어.”
“할 일이요?”
장모님이 회복 되는 것만 생각했던 나는 누님이 또 할 일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가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 말이다.
“최관! 관이씨는 어디에 있어요?”
장모님이라면 끔찍하게 여기는 그녀가 병원에 없다는 것부터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어야 했다.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것들한테 복수하러 갔어.”
“복수….”
조폭들이다.
원한에는 원한으로 갚는 것이 당연한 곳.
“어쩌시려고요?”
여태까지 집안일에 끼어들지 않았던 누님이지만, 장모님이 큰일을 당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 손으로 복수는 못해줘도 자리는 지키고 있어야지. 그래야 최관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다.”
“저도 같이 가요.”
“너 아이돌이야. 이런 일에 끼어들면 안 돼. 근처에 올 생각도 하지 마.”
연주 누님이 굉장히 강경하게 내게 경고했다.
“그럼 아이돌이 아닌 상태로 곁에 있으면 되잖아요.”
“말이 되는 소리를…으음….”
내 말에 반박을 하려던 연주 누님이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대천사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는데 뭔들 못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 거다.
실제로 나에게는 다른 신분이 하나 더 존재한다.
여태까지는 란나씨에게만 보여줬던 얼굴이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쓸 의향이 있었다.
“자세히 말해봐.”
“얼굴을 아예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어요. 누님 경호원이라고 말하고 옆에 있게 해주세요.”
“네가 내 경호원을 하겠다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면서요. 저는 뭘 믿고 누님을 보내요?”
“너 스케줄은?”
“없어요.”
스케줄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해야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이번에 출연하는 프로그램 ‘마니또’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함께 팀을 짠 후배가 의욕이 가득해서 빡세게 준비를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본의 아니게 미안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도 이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진 않았다.
연주 누님은 의심을 하면서도 내가 고집을 부릴 것을 직감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거기 가봤자 내가 따로 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저도 옆에 얌전히 있을게요.”
“…….”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한 연주 누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10분 후.
우리는 병원을 나서서 장모님이 계시는 본가로 움직였다.
? ? ?
“오셨습니까, 큰 아가씨.”
병원에도 검은 정장을 입은 떡대 좋은 조폭들이 많았는데, 집에는 그보다 더 많은 조폭들이 있었다.
“관이는?”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둘째 아가씨가 와 계십니다.”
“걔가? 하, 병원에는 얼굴 한 번 안 비추더니 온 게 여기야?”
“…근데 뒤에 계신 남자 분은 누구십니까?”
연주 누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폭이 나를 경계심 가득하게 바라본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낯선 인물의 등장을 예민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경호원이다. 어머니도 저렇게 됐는데 몸조심 해야지. 너희는 신경 쓰지 말고 없는 사람처럼 대해.”
“아가씨! 저희가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저 꼴이 되도록 만들어놓고 날 지키겠다고? 거기다가 그 망나니가 여기 왔다며. 왜 왔는지 뻔히 아는데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어떻게 알지?”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장모님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있다 보니 회복이 어렵고, 깨어난다 해도 예전처럼 정정하게 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단다.
내가 장모님을 회복시켰다는 걸 아는 건 우리 둘 뿐이었다.
“들어가자.”
연주 누님이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오랜만에 보는 최관씨와 처음 보는 둘째 아가씨 그러니까 나한테는 처제일 여성이 묘한 분위기로 대치하고 있었다.
보통 처음 보는 사람이 궁금할 테니 그쪽에 시선이 가기 마련인데, 나는 최관씨한테 더 시선이 갔다.
‘붕대….’
최관의 몸에 묶여 있는 붕대.
그것이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이다.
장모님을 습격한 상대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고 하더니,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아직 널 미는 사람이 있긴 한가 보다. 너한테 소식을 전달해주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연주 누님이 처제를 바라보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제야 최관씨에게 시선을 돌려 처제를 확인했고.
‘전혀 안 닮았네.’
두 사람이 자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두 사람이 자매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두 사람 목소리가 같았던 것이다.
“안녕, 언니. 올만.”
연주 누님의 목소리를 가진 처제는 매우 발랄한 어조로 인사를 했다.
그녀는 힐끔 나를 쳐다보곤 말했다.
“뒤에는 누구? 내가 알기로 형부는 저 얼굴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세컨드 만든 거야?”
“여전하구나.”
“그러엄~ 엄마도 포기한 나인데 변할 리가 없잖아. 아하핫!”
털털하게 웃는 처제.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전혀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여태까지 병원에 있었다면서? 나는 뒤늦게 연락 받고 허겁지겁 온 거야. 혜성 이모 아니었으면 지금도 모르고 있었을 걸?”
“혜성 이모 핑계 대지 마. 거짓말인 거 티나니까.”
“헷, 티 났어? 그나저나 엄마는 좀 어때? 살아 있어? 죽을지도 모른다며.”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고 다니는구나.”
“그냥 알려주면 될 것이지 튕기기는! 내가 거기 직접 갔으면 싫어했을 거면서.”
“시끄러워, 너랑 얘기하려고 온 거 아니니까 비켜.”
연주 누님이 소파에 앉았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소파 뒤쪽으로 가서 누님 바로 뒤에 섰다.
경호원으로 왔으니 옆에 떡하니 앉아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쟤 진짜 뭐야?”
“경호원.”
“켁! 겨엉호워어언??? 언니는 후계자에 관심 없다며. 근데 웬 경호원이야? 갑자기 엄마가 저렇게 되니까 욕심이 생긴 거야?”
“아니, 여전히 관심 없어. 다만 어머니가 자리를 비웠을 때 네가 깽판을 칠까봐 억지로 여기에 있는 거다.”
“와, 언니 진짜 나 싫어하는 구나?”
“관이 너는 병원에 가보지도 않고 여길 지키고 있었던 거니?”
“…괜찮습니다.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연주 누님이 처제의 말을 무시하고 관이씨에게 말을 걸었다.
“다치지 않기는.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으면서.”
“아직 병원에 갈 수 없습니다.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보스의 일에 얽혀 있다면 머리카락조차도 남기지 않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전부 지워버리기 전까지 전 쉴 수 없습니다.”
“!!”
이 세상에서 전부 지워버리겠다는 말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죽을래?’ 라는 말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녀가 하는 말에는 진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고, 범인이 눈앞에 있다면 씹어 먹어버릴 기세였다.
“네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야. 너를 어머니 옆에서 떼어 놓는 게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보스께서는 안전하게 보호 받으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보스 옆에 제가 있었다고 해도 이번 일은 반드시 일어났을 겁니다. 피해의 경중이 달라지긴 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내가 아는 최관씨라면 스스로 몸을 날려 장모님 대신 다쳤을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은 장모님이 아니라 최관씨가 됐을 것이다.
말하면서도 괴로움을 감추지 못하는 최관씨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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