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88화 (388/849)

〈 388화 〉 #58. 기적 (3)

* * *

“어머니를 습격한 범인, 역시 그자들이 맞았던 거니?”

“예, 짐작했던 그자였습니다. 보스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바짝 엎드리던 그년 말입니다.”

으드득­!

“애초에 보스 몰래 뒷주머니를 차고 다니던 년이었습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하는데도 보스는 자애롭게 그년을 봐주셨죠.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면서요.”

최관씨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보스께서 눈 감아 주신 뒷돈으로 프락치를 심어놓을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남들은 고등학교를 다닐 나이에 그 여자는 가출을 하고 주먹 하나로 길거리를 전전하며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모님의 눈에 띄어 조폭이 되었고, 행동대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실력이 워낙 좋아서 저지른 잘못이 있어도 너그럽게 넘어가주었는데, 그 은혜를 원수로 갚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 걔가 엄마한테 칼침 놓은 거야? 나한테는 알려달라고 해도 안 알려주더니. 언니 오니까 바로 알려주네? 너무한 거 아니야?”

“둘째 아가씨께서 굳이 알 필요 없는 일이라 설명하지 않은 겁니다. 어차피 며칠 있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년이기도 하고요.”

누군가의 죽음을 태연하게 말하는 최관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그걸 최관씨가 마침 목격했는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저 남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맞습니까?”

“응. 해솔이가 소개시켜준 사람이야. 친한 친구거든.”

“아! 형부께서요?”

내 이름이 나오자 걱정으로 구겨져 있던 최관씨의 얼굴이 펴졌다.

“뭐야! 나도 대화에 좀 끼워줘! 너 진해솔 만났어? 언니 애인? 어떻게 생겼어? 잘 생김? 하, 씨! 내가 먼저 만났어야 했는데….”

“걔는 이런 일에 얽히면 좋지 않으니 따라오겠다는 걸 겨우 말렸어. 내가 걱정 됐는지 자기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붙여준 거고.”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으셨겠죠. 이해가 됩니다. 사실 보스께서 습격을 당하셨다는 게 이미 바깥으로 퍼져나가서 위험한 상태인 게 맞기도 하고요.”

“근데 네가 왜 형부라고 부르냐? 내 형부거든? 핏줄도 안 이어진 주제에 뭔 형부야.”

“말 퍼지는 걸 왜 못 막았지?”

“그쪽에서 먼저 손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혼란을 야기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야 도망칠 겨를도 생길 테니까요. 이미 그 효과가 보이고 있습니다. 전국에 퍼져 있는 간부들이 전화 연결을 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어쩌면 이미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을 수도 있겠죠.”

이래서 후계자가 중요한 거다.

여태까지 후계자로 삼았던 둘째는 후계자에 어울리지 않은 망나니였고, 조직원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후계자로 가장 적합한 이가 최관이었으나, 장모님은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장모님이 이번 사건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돌아가기라도 하셨다면?

장모님이 전국 통일 시켰던 조직은 사분오열이 되어 각자가 모시는 보스를 따라 독립을 하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는 상상이었다.

‘장모님이 멀쩡히 살아계시는데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지.’

다만 지금 이곳에서 장모님이 회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연주 누님과 나 밖에 없었다.

좋은 소식을 최관에게 알리려고 본가에 온 것인데, 둘째 처제가 있어서 그런지 장모님의 상태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내가 누님이었다 해도 그랬을 거다.

‘지금 이 상황을 이용하면 적군 아군을 구분할 수 있지 않나?’

장모님이 열심히 관리하셨다고 했지만, 믿고 있었던 조직원에게 배신을 당하셨다.

후계자 자리에 우리 현오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위협은 언젠가 현오를 향할 것임이 분명하다.

‘원래 위기가 끝나면 기회가 오는 법 아니겠어?’

장모님이 위험한 지금, 진정으로 충성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뚜렷하게 가릴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힘싸움이 시작 되겠구나.”

“제가 최대한 막아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독립을 하려 할 겁니다. 보스가 무서워서 못하고 있었던 거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둘째한테 붙은 년들 보면 마냥 똑똑한 년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저기, 나 여기 있거든? 적어도 뒷담으로 해줄래?”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런 것들도 무시하다간 큰 코 다칠 수 있습니다. 둘째 아가씨를 허수아비로 내세워서 본가만 장악해도 뜯어먹을 게 많으니까요.”

“그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지. 네가 그 꼴을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으니까. 어머니 때문에 쟤 처리하는 게 어려우면 나한테 말해. 내가 패서 지하에 가둬둘 테니까.”

“!!”

아까부터 계속 한 사람의 말이 무시당하고 있었다.

나야 둘째 처제의 상황을 모르니 이 광경이 당황스러웠지만, 최관씨와 누님은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얼마나 망나니이기에 저런 취급인 거야?’

둘째 처제가 연주 누님의 살벌한 말을 듣고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누님의 대화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겁을 먹은 모양이다.

‘아니, 진짜 진심일지도….’

둘째 처제는 누가 봐도 장모님을 걱정해서 온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지극히 당연히 했어야 할 장모님의 안부를 묻지 않고 있지 않은가?

아예 관심도 없어 보이는 눈치다.

‘살벌하네. 살벌해.’

내가 손을 쓰지 않았으면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때, 둘째 처제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나에게 꽂혔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씨익~ 느끼한 미소를 짓더니 눈썹을 꿈틀댔다.

저 시선의 목적은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진짜 시선 더럽네.’

시선을 받는 것조차도 불쾌하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우리 쌔끈하게 생긴 귀염둥이는 이름이 뭐야? 힘들게 뒤에 서 있지 말고 내 옆으로 와서 앉아 봐. 경호원이라고 했던가? 무슨 운동 했어? 남자는 역시 운동을 해야 한다니까. 삐쩍 꼬른 건 보기 싫어. 이렇게 건강해야 만질 맛도 나고 그러거든.”

“조혜연!!”

“악!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나 귀 안 먹었거든?”

저급한 말을 던지는 둘째 처제를 연주 누님이 놓칠 리가 없었다.

“여기 술집 아니다. 그리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내 남편 친구라고. 그랬는데도 술집 접대부 다루듯이 말을 해? 혓바닥 잘리고 싶은 거냐!!”

“시발! 내가 언제 그랬어!! 나 되게 정중하고 친근하게 말 건 거거든? 긴장하지 말라고?”

그게 어디가 정중하고 친근하단 말인가?

“배려해준 거라고 나름! 뻘쭘하게 서 있는 거 보고!”

둘째 처제는 악악대며 자신의 행동을 비호했다.

물론 그런다고 변명이 효율적으로 먹혀 들어가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네 평소 생활에 관심 없다만, 내 사람한테 함부로 구는 건 절대 못 봐준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정중하게 대해.”

“싫거든?!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이런 꼴을 보기 싫었으면 데려오질 말았어야지! 그리고 저 사람도 은근 속에서는 내가 이러는 걸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내 애인 되면 경호 같은 몸 굴리는 일 따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맙소사.

“네가 쓰레기라는 건 알았지만 나날이 풍기는 악취가 심해지는구나. 뭐라도 주워 먹을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 온 것 같은데, 이만 꺼지는 게 어떻겠니? 어머니는 멀쩡하게 돌아오실 테니까. 네가 이 집에 있는 걸 보면 꽤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

“주워 먹을 게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알아서 알아보고 챙길 거니까 언니는 신경 꺼. 여태까지 내가 뭘 하고 사는지 참견한 적 없잖아?”

“왜 주워 먹을 게 생길 거라고 착각하는지 모르겠구나. 누가 보면 어머니가 죽은 줄 알겠어.”

“노친네가 평소에 건강하긴 했어도, 그 큰 수술을 받았는데 멀쩡하게 돌아 올 리가 없잖아. 나도 나름 소식통이 있다고. 깨어나도 후유증이 심할 거라며! 그럼 살아서 돌아와도 당장 후계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인 건 변하지 않는단 거잖아. 이 집에서 후계자는 나 말고 누가 더 있었나?”

처제가 어깨를 으쓱이며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올려 연주 누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가 후계자 자격이 있나? 이 집안은 지긋지긋해서 얽히기 싫다고 가출한 사람이?”

“…….”

연주 누님이 대답을 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최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니면, 최관 너한테 자격이 있었나? 피 한 방울 안 섞인 주제에?”

장모님의 성화에 억눌리지 않고 이겨 먹으면서 망나니 짓 하고 다녔다고 하더니, 진짜 성격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저런 예민한 문제를 대놓고 말하는 게 꽤 충격이었다.

‘저걸 저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거였나?’

원래 저런 예민한 얘기는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게 정상인데, 둘째 처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예민한 부분을 언급했다.

“하…! 네 말을 들어보면 이미 어머니가 죽은 줄 알겠구나. 유산만 받으면 된다 이거야?”

“나도 당연히 마음 안 좋아. 근데 잔소리 심한 노친네 아래에서 몇 십년간 고생한 값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 사방에서 엄마 재산 뜯어먹으려고 달려드는데, 내가 왜 가만히 있어야 돼?”

원래 굶주린 사람이 먹을 걸 찾으러 부지런히 움직이는 법이다.

처제는 가만히 있다가 엉뚱한 사람에게 자신의 몫이 가는 걸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언니가 가출하고 나서 혼자서 노친네 성격을 다 인내했어. 난 유산 받을 자격 있는 사람이야. 언니는 이 집안이랑 얽히고 싶지 않다고 했으면서 왜 끼어드는 거야? 뒤늦게 생각해보니까 엄마 돈이 탐나?”

“아니, 여전히 어머니가 가진 재산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 근데 네가 후계자가 되면 그 여파가 나한테까지 미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참견하는 거다. 네가 후계자가 된다고 치자. 날 아니, 우리 현오를 가만히 내버려둘 자신 있니?”

“…글쎄? 언니가 나한테 고개 숙여 부탁한다면 생각해 보겠지.”

장모님이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했던 현오.

둘째 처제 입장에선 가만히 내버려두면 나중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다.

더군다나 최관씨가 우리 현오의 대모가 되어주면서 둘째 처제의 입지가 더 좁아졌다.

그런 와중에 날치기로 권력을 손에 쥔다면?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 잡기 위해 내부를 정리하는 건 당연한 절차였다.

“나 참, 박탈감 느껴지게 똑똑하긴 오지게 똑똑하네. 이러니까 내가 서러울 수밖에 없는 거야. 언니는 다 가졌는데 나는 타고 난 게 없잖아. 엄마 유산을 물려받아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걸?”

언니는 똑똑하고 능력 있으니 엄마 유산이 필요 없겠지만, 자신은 능력이 없으니 유산이라도 아득바득 받아가야 한다는 게 처제의 주장.

“만약 어머니가 널 후계자로 삼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제서? 엄마도 그런 짓은 못할 걸? 언니 자식은 아직 어려서 후계자 못하잖아. 그렇다고 언니가 대신 후계자를 한다? 그 꼴은 내가 절대 못 보지. 엄마 유산이 언니한테 가는 꼴을 어떻게 두고 보겠어. 그렇다고 언니가 나한테 납작 엎드릴 사람이야? 그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난 관이를 밀 거다.”

“…저년을? 쟤는 엄마가 안 된다고 했어. 핏줄도 안 이어진 년인데 자격이 될 리가 없잖아. 자격 자체가 없다고.”

“현오가 클 때까지 관이가 어머니 자리를 임시로 받아서 관리를 해주는 거다.”

이 정도 됐으니 아무리 머리가 안 좋다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밖에 없다.

처제는 어처구니없는 소릴 들었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걔가 크면 보스가 되는 거고?”

“그래. 어머니가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다. 아마 이번 일로 그 생각이 더 굳건해졌을 거다.”

“와~ 울 엄마가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 칠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근데 그걸 나한테 왜 말해줘? 이거 말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잖아. 내가 조카라고 봐줄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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