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89화 (389/849)

〈 389화 〉 #58. 기적 (4)

* * *

처제의 질문에 연주 누님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연주 누님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곧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딱 봐도 무슨 짓 하라고 판 깔아주는 거잖아.’

아군은 가까이에, 적은 더 가까이에 두라는 말이 있다.

연주 누님은 장모님이 당했던 것처럼 예상하지 못한 기습으로 현오를 위협할 처제를 미리 처리하기 위해 명분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나이가 어린 현오는 바깥으로부터 철저하게 떨어져 지내며 크고 있는 중이었기에 지키기 쉬운 편이었다.

혼자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고, 옹알이에서 벗어나서 점점 자기주장이 생기고.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서

더 자라나서 학교에 가야 할 나이가 된다면?

그때는 정말 지키기가 쉽지 않아진다.

후환을 두고 싶지 않아서 조카를 해치려고 하는 처제나 아이에게 위협이 될 동생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언니나.

둘 다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아하하!”

서로를 향해 살기 어린 시선을 주고받던 중.

돌연 처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언니도 참! 내가 조카한테 해코지 할 리가 없잖아.”

“…….”

“그냥 협박 좀 해본 거야. 언니한테 약점 잡고 큰 소리 칠 수 있는 게 흔치 않은 기회잖아.”

“…….”

“얼굴 엄청 살벌하네. 킥킥! 조카한테 해코지하면 언니는 날 죽이려고 하겠지. 나는 핏줄에 집착하는 엄마보다 아랑곳 안 하는 언니가 더 무서워. 내가 언니한테 잘못한 순간 절대 용서해주지 않을 거잖아.”

뭐가 예뻐서 용서해주겠나?

연주 누님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 그래서 절대 조카님을 못 건드리는 거야. 똑똑한 언니가 날 죽일 방법을 생각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소름이 쫙 돋는 걸? 내가 멍청하다는 건 알고 있어. 언니가 마음만 먹으면 이 판을 다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걸 안다고.”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경멸당하는 망나니라고 해도 상식은 안다며 처제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안 건드리겠다는 거야. 날 너무 경계하지 마. 최관을 밀어준다고? 언니, 쟬 그렇게 믿을 수 있겠어? 피도 안 섞였는데?”

“피 섞인 너는 협박을 하고, 피 안 섞인 관이는 현오를 지켜주겠다고 하는데 누굴 믿는 게 맞아 보이니?”

“조카를 낳아보고도 언니는 여전히 핏줄이 별 거 아닌 것 같아?”

“…….”

처제의 말에 처음으로 연주 누님의 말이 막혔다.

그리고 최관씨가 그런 처제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처제가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것 참, 관이 쟤가 내 얼굴 뚫어버릴 것처럼 노려보네.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어.”

“관이 좀 그만 괴롭혀.”

“이미 둘이 편 먹기로 결정 했다 이거지? 알았어. 치사하구만. 방해꾼은 이만 사라져줄게. 내가 있으면 둘이 얘길 못 나누잖아. 아! 물론 아예 나간다는 게 아니라 내 방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큰소리로 떠들지 마. 내가 몰래 엿들을 수도 있잖아?”

킥킥 웃으면서 처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나를 향해 찡긋 윙크를 한다.

그녀의 뒤를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 몇 명이 따르고 있었다.

처제를 후계자로 밀고 있는 조직원일 것이다.

근처에 우리밖에 없으니 그제야 최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위험한 도발을 하셨습니다. 평소에 보여주는 행동이 가볍다고 해도 보스의 교육을 꿋꿋하게 견뎌낸 분입니다. 독심이 있으세요.”

“내 동생인데 그걸 모를까. 아닌 척 하면서도 속으로 나를 씹어 먹고 싶어 한다는 건 알고 있어.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우리 두 사람이 뭉쳤으니 아마 그 마음은 더 커졌을 거야.”

“일부러 도발하신 겁니까?”

“응. 쟤가 먼저 일을 저질러줘야 내가 나설 수 있는 명분이 생길 테니까. 음습한 애니까 뒤에서 수작질을 부리는 걸 기다리기보단 아예 확 저지르게 만드는 게 좋아.”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그나저나 쟤도 나이를 먹긴 하나봐. 어릴 때는 숨기지 않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느라 바빴던 녀석이 이젠 제법 자기 속마음을 숨길 줄 아네.”

“그러게 말입니다.”

“나를 건드릴 생각이 없다고? 통하지 않을 거짓말을 해놓고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아직 멍청한 건 맞는데 말이야.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이 있는 건가?”

“작은 아가씨한테 붙은 게 누구인지 조사해보겠습니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두 여자가 너무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제 옆에 부추기는 사람이 있든 없든 중요한 건 우리 가족과 최관씨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 아닌가?

이제부터 어떤 음모에 얽힐지 모르니 보호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했다.

“두 사람 모두 위험한 상태인데, 왜 이렇게 태연한 겁니까? 제가 경호원으로 온 만큼 이 부분은 참견할 자격이 되는 것 같은데요.”

“…보호하는 인원을 늘릴 예정입니다.”

“네가 데리고 있는 조직원들 말하는 거니?”

“예.”

연주 누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 조직원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 맞아? 어머니 근처에도 프락치가 있었는데, 네 조직원들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난 못 믿겠어. 우리 애 가까이에 두고 싶지 않아. 내 안전도 마찬가지야. 내가 괜히 경호원을 따로 데려온 게 아니야.”

“이 바닥 사람을 상대하는 건 이곳 출신이 더 낫습니다.”

이 부분은 나도 누님과 의견이 같다.

관이씨는 믿지만,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현오가 머무는 집 근처 조직원들도 전부 물려줬으면 하지만,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을게. 네가 어련히 제일 믿을 사람으로 구했을 테니까. 큰마음 먹고 하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지?”

“…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복수를 미룰 순 없습니다. 그건 놈들이 바라는 일이 될 테니까요.”

혼란을 야기해서 자신들을 노리는 최관의 행보를 막는 것.

그것을 위해 수작질을 부렸는데, 고스란히 눈 뜨고 당해줄 순 없다는 게 최관의 주장이었다.

“1분 1초도 아깝습니다. 그놈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요.”

장모님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최관 밖에 없다.

그런데 그녀가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받고 장모님처럼 사경을 헤매기라도 한다면?

피비린내 나는 미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건 장모님은 멀쩡하게 돌아온다 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관이씨가 다치지 않는 게 최고인데.’

내가 도와주지 않고 혼자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까?

최관의 몸 상태는 겉으로 봐도 심각한 상태였다.

저 상태에서 몸을 사리면서 부하들에게 몸을 쓰라고 할 사람도 아니니 본격적으로 복수를 시작하면 이보다 더 다칠 게 뻔한 일.

“이렇게 합시다.”

“?”

최관은 경호원에 불과한 내가 참견하는 것이 이상했는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고, 연주 누님은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어쩌려는 거니?”

“복수하는 거, 제가 돕죠.”

“외부인이 끼어들어 좋을 일이 아닙니다.”

“그건 나도 관이랑 의견이 같다. 날 지키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네가 직접 나서서 돕는 건 동의할 수 없어.”

“직접 주먹질을 하면서 돕겠다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사람 몸 상하게 하는 거에 흥미 없습니다. 지키는 거면 모를까.”

“그럼?”

“복수하려는 대상이 숨어 있죠? 도망칠 틈을 만들려고 복잡하게 일을 벌이고 있다다면서요.

“맞습니다.”

“그걸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최관은 범인 찾겠다고 사람 풀어서 쫓다가 제대로 준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범인과 맞부딪치게 될 것이다.

본디 전쟁에서 공격하는 쪽이 방어하는 쪽보다 어렵고 피해가 큰 법.

방어를 하다가 최관을 맞이한 그들은 최고의 방비를 해놓고 있을 것이고, 공격하는 쪽인 최관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녀가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쫓겠다는 것이기에 문제가 컸다.

자기 몸을 전혀 안 돌보고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범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면 철저하게 준비를 할 수 있게 될 거야.’

준비가 된 상태에서 싸운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건 당연한 일.

내가 살짝 손을 담가서 돕기만 하면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범인이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아내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저한테 맡겨보시죠. 따로 사람을 푸는 것까지 막을 생각 없습니다. 다만 저한테도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제가 드리는 정보가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내가 백번 말한들, 연주 누님이 한 번 말해주는 것보다 신뢰가 가지 않을 것이다.

연주 누님을 바라보며 어서 호응을 해달라는 듯 바라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게 하면 관이 안전을 확실히 지킬 수 있을 테니 반대할 수가 없네. 대신 약속해라. 절대 현장에 가지 않겠다고. 정보만 제공하는 거다.”

“그럴게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어. 믿어도 돼. 애초에 아무한테 내 경호를 맡길 리가 없잖아.”

최관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연주 누님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 듯했다.

그녀가 나를 믿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범인 사진을 드리면 됩니까?”

장모님을 기습한 범인.

“어…사진 필요하죠.”

어떻게 생겼는지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상식적으로 사람을 찾으려면 인상착의가 필요한 건 당연한 거였다.

내 말에 최관씨가 범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이 범인이에요?”

“예, 직접 보스의 몸에 칼을 박아 넣은 년입니다.”

범인의 몸에는 각종 문신이 있는데, 팔뚝에는 재규어가 등에는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호랑이 문신이 있었다.

머리는 붉은색으로 염색을 했고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눈빛 자체가 굉장히 사납게 쫙 찢어져 있었다.

사람을 찾으려면 인상착의를 확인하는 게 당연했기에 필요하지 않은 사진을 일단 챙겼다.

그리고 필요 없는 사진만 챙길 순 없었기에 최관씨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요구했다.

“그럼 장모님을 찔렀던 칼에 범인 DNA가 묻어 있겠네요?”

직접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니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게 더 쉬워졌다.

“…그렇긴 하지만, 법으로 범인의 죗값을 받게 할 생각 없습니다.”

“저도 그러라고 물은 건 아닙니다. 그 칼 어디에 있습니까?”

범인이 쓴 칼이니 함부로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잘 됐네요. 그걸 잠깐 빌려주시겠습니까?”

“…….”

묻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한 번 믿기로 했기에 입을 굳게 다물고 따로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최관씨가 묵묵히 상자에서 칼을 꺼내 나에게 건넨다.

씻지 않고 보관을 해서 칼에는 짙은 피비린내가 났고,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검붉은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상자 안에 칼을 다시 넣은 나는 최관씨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루만 기다려요.”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고 있기만 한다면, 범인이 어디에 숨어 있든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장모님과 내가 살가운 사이는 아니어도 범인에게 유감이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장모님을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울 정도의 정은 있다고.’

범인이 두 다리 뻗고 자는 꼴을 보는 건 나도 싫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법.

내가 힘을 쓰기로 한 이상 범인이 달아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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