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화 〉 #58. 기적 (5)
* * *
“시이바알!!! 그러고 끊으면 다야?! 받아!! 전화 받으라고!!!!!!”
콰앙!
쨍그랑!
콰장창!!
요란한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힉!”
엄청난 괴력을 가진 신소원인지라 가구를 번쩍번쩍 들어서 냅다 던져버리니 주변이 난리가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가구를 부시면서 분노하고 있는 여자의 이름은 신소원.
보스의 몸에 칼빵을 한 범인이기도 하다.
어릴 적 길거리를 전전하며 주먹질로 먹고 살았던 그녀.
보스에게 거둬져 조직의 행동대장이 되어 과거의 구질구질했던 삶을 바꾼 그녀는 오랜만에 경험하는 위기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런 위기는 보스에게 거둬진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피를 보았지만 신소원에게 그 전투들은 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부를 늘려줄 ‘일’ 혹은 ‘수단’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시발,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보스한테 가서 냅다 엎드려야 되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벌게진 눈동자를 한 신소원이 초조하게 방안을 돌아다닌다.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음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녀를 보며 조직원이 질끈 눈을 감았다.
신소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솔직하게 얘기했다간 바로 주먹부터 날아 올 게 뻔했다.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은 행동인 것이다.
“혹시 이거 거짓말 치는 거 아니냐?”
“거짓말이요?”
“애초에 시발, 말이 안 되잖아. 그 나이 노인네가 그 칼빵을 맞았는데 멀쩡하게 회복한다고? 내가 칼빵 놓은 횟수가 몇 번인데 실수를 했겠어! 난 분명 정확히 장기를 찔렀단 말이다! 애초에 손맛이 다르단 말이야!!”
그런 말을 자랑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도 조직원은 착실하게 반응을 했다.
“당연하죠. 형님이 잘못하신 거 없습니다. 그런 실수를 하실 분이 아니시니까요. 그저 운이 나빴던 것뿐입니다.”
“시발!!! XXXXXXXXX!!!”
입에 담기 힘든 저열한 욕설이 쏟아진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신소원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뭘 해야 하는지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침묵을 지키던 조직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보스께서 죽지 않았으니 다시 일을 도모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확실히 이번이 기회가 좋기는 했다.
보스의 곁에서 두 눈 부릅뜨고 호위를 하고 있는 최관이 자리를 비우는 게 어디 쉽게 오는 기회였겠나?
다만 당분간 다른 곳에 있을 거라는 걸 들었음에도 섣불리 일을 저지른 부분에서 신소원의 잘못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불가능? 불가능하다고? 시발! 노친네 명줄, 내가 끊어놓으면 되잖아!! 문제 없다고!!”
“최관이 버티고 있습니다. 일이 어려워졌어요.”
“그래봤자 보스는 가죽만 남은 이빨 빠진 호랑이야. 최관은 너희들이 붙잡고 있고, 내가 다시 가서 노친네 명줄 끊어놓고 오면 돼!”
아직도 보스가 가죽만 남은 이빨 빠진 호랑이로 보이나?
몸에 수십 번 칼이 박혔는데도 죽지 않고 기어코 살아난 보스다.
그 독기는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는 게 확인 됐다.
그러니 그들과 말을 맞추던 이들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발을 빼지 않았는가?
‘최관이 없을 때도 일이 이렇게 됐는데, 최관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보스를 처리한다고? 불가능해. 그걸 두고 볼 최관이 아니야.’
근처에 알짱거리면 바로 붙잡혀서 드럼통에 담길 것이다.
신소원이 일을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바람에 저쪽은 이미 발을 완전히 빼버린 상황이었다.
모든 죄는 신소원이 전부 떠넘겨진 채였다.
“최관 형님을 막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문 냈잖아! 노친네 죽을 둥 살 둥 한다는 거! 네가 그러라며!”
“예, 그래서 시간을 벌었죠.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다만 그게 공격이 아니라 후퇴여야 하는 거고요.”
“후퇴에? 후퇴에?!? 나보고 지금 꽁지가 빠져라 튀라는 거냐?! 나 신소원이?!”
“형님, 최관 형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기지 못할 싸움입니다.”
“내가 걔를 왜 못 이겨!! 이길 수 있어!!”
쩌렁쩌렁 목소리를 키운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신소원이 무서워하는 사람 두 명이 바로 보스와 최관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조직원도 신소원이 최관을 두려워한다는 걸 잘 알았다.
이대로 오냐오냐 해주다간 자신도 그녀와 함께 드럼통에 들어갈 것이 분명한 일.
한 대 맞는다 해도 쓴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조직원들이 전부 형님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최관 형님은 더 그러시겠죠. 최관 형님이 형님을 찾아서 사지를 뜯어버리려고 할 겁니다.”
짜악!
신소원의 손이 번쩍 들어 올려지고, 조직원의 뺨에 휘둘러졌다.
사실 짜악! 보다는 퍼억!이 더 비슷할 법한 소리가 났다.
조직원이 엄청난 힘에 몸이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애초에 이 조직원은 몸으로 조직 생활을 하는 조직원이 아니었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여태까지 계속 당해 본 폭력이었던 지라 눈 깜짝 할 사이에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계속 흐트러진 채로 있으면 신소원이 더 심하게 조직원을 때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손으로 치지만, 쓰러진 채로 있으면 신소원은 발을 사용한다.
‘잘못 맞아 뒤진 새끼가 한 둘이 아니라고.’
식은땀을 흘리며 조직원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나보고 그냥 가서 뒤지라고?”
“그, 쿨럭!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시간을 벌어서 돈을 모두 회수했으니 잠시 타국으로 몸을 피해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 드리려던 겁니다.”
“해외? 해외 어디.”
“어디든 최관 형님이 찾지 못할 곳으로 가야죠.”
“흐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최관과 끝을 보겠다고 하던 신소원이 조직원의 말에 솔깃해 한다.
‘시발, 저럴 거면서 괜히….’
아마 도망치자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으면 할 때까지 패지 않았을까?
속으로 신소원을 욕하는 조직원의 상황을 모르는 그녀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라스바이거나 갈까?”
라스바이거.
도박으로 유명한 도시다.
신소원이 자주 드나들었던 여행 장소이기도 하고.
그녀를 찾기 위해 분명 그쪽 나라를 이 잡듯이 뒤질 게 분명한 장소인 것이다.
‘이 상황에서 도박할 생각이 나냐?’
도망치는 건데 놀고 먹을 생각부터 하다니.
조직원은 신소원의 멍청함에 경의를 보내며 겉으로는 티내지 않고 말했다.
“형님, 거긴 안 됩니다. 최대한 최관 형님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자주 들리셨던 여행지는 피하셔야 합니다.”
“시발, 그럼 어딜 가라는 건데!!”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은 가지 말라고 하니 짜증이 났나보다.
“동남아 쪽은 어떠십니까?”
“동남아? 시발…거긴 멀어서 싫은데.”
“거기가 그래도 달러를 최고로 쳐줘서 생활하기 편하실 겁니다.”
“거기 카지노 있냐?”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후, 그래. 카지노 있으면 거기로 가자. 나 신소원, 이대로는 못 죽는다.”
“잠깐 후퇴하는 겁니다. 다시 재정비해서 돌아오시죠.”
“그래. 잠깐의 후퇴는 있을 수 있지. 병법? 뭐 그런 거에도 후퇴하는 게 있다며.”
“예, 맞습니다.”
삼국지는 읽어보지도 않은 년이 아는 척은.
사실 어딜 가도 최관 형님은 신소원을 쫓아와 죽일 것이다.
‘그냥 라스바이거에 가라고 할 걸 그랬나? 동남아에서 죽으나 라스바이거에서 죽으나 그게 그거일 텐데.’
차라리 목을 깨끗하게 씻고 기다리는 게 좀 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도망을 쳤으니 신소원은 추하게 끌려나와서 최관의 손에 죽게 되리라.
“나는 거기에 간다 치고,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냐?”
“예? 저희요?”
“어. 너희들 말이야. 여기서 잘 숨어 있을 수 있겠어? 내가 잠깐 자리를 피한 사이에 너희들은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해야 할 거 아니냐.”
시발년이. 지금 지 혼자 도망치겠다는 거야?
당연히 자신은 신소원과 함께 해외로 갈 줄 알았다.
애초에 저 년은 자신이 아니면 돈을 찾는 것도 혼자 못하는 멍청한 년이 아닌가?
“저는 형님을 따라갈 생각입니다.”
“너도 온다고? 그럼 여긴 누가 관리하는데.”
“다들 뿔뿔이 흩어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뿔뿔이 흩어지게 둔다고? 그럼 나중에 걔들을 어떻게 다시 모으는데?”
나중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일을 도모하기 전에 모든 게 끝날 테니까.
이 사실을 대놓고 말할 순 없었기에 조직원이 입에 바른 소리를 했다.
“그건 제게 맡겨주십시오. 형님을 따르는 아이들입니다.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걔들이 여기서 이목을 끌어줘야 형님께서 더 안전하십니다.”
“그럼 너도 그냥 여기 있는 게 낫지 않겠냐?”
“…저도 말입니까?”
“그래, 네가 여기에 있어야 내가 마음 놓고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신소원의 최측근이라는 것을 최관 형님이 모르지 않으니 자기 대신 남아서 최관의 분노를 받아내라는 말이라는 걸 어찌 모를까.
조직원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미묘한 신경전을 중단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쾅!! 콰앙!! 쾅!!
으악!
“이건 또 뭔 소리야?”
“자, 잠시만요. 확인해보겠습니다.”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났는지 거친 소리가 위층에까지 올라온 것이다.
조직원이 창문으로 아래를 확인했다.
“떠, 떳습니다! 최관입니다!”
마침 건물 아래에서 위층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최관과 조직원의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란 조직원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고, 신소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년이 여길 어떻게 알고 와!!?”
“도, 도망쳐야 합니다! 이대로는 다 죽습니다!”
콰앙! 쾅쾅쾅!!!
아아아악!!
사, 살려줘!
아래에 애들이 있긴 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최관이 데려 온 조직원의 숫자가 얼핏봐도 배는 넘어 보였다.
조직원이 도망치자며 신소원을 바라본 순간.
그녀는 텅 빈 자리를 발견하게 됐다.
언제 열렸는지 모를 문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어정쩡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뭐야? 설마 혼자 튄 거야?”
조직원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토해냈다.
“이 개새끼야!!!”
형님이라고 깍듯하게 대우를 해줬는데도 자신을 미끼로 내놓고 혼자 도망치다니….
애초에 각자의 욕망을 위해 함께 다니던 사이였으니 새삼스러울 게 없기는 했다.
하지만 당한 게 자신이다 보니 억울하고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소원에 대한 원망은 원망이고, 조직원은 살 길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콰앙!
그때, 아래층에 있던 최관이 어정쩡하게 열려 있던 문을 발로 차서 안으로 들어왔다.
최관이 방 안을 쭉 훑더니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조직원에게 말했다.
“신소원은 어딨지?”
“혼자 도망쳤습니다.”
“어디로?”
“모르겠습니다. 같이 도망치자고 하려는데 절 여기에 버리고 도망쳤거든요. 자기가 도망치려고 절 미끼로 삼은 거겠죠.”
“상관없어. 바깥으로 가는 문은 전부 애들을 깔아뒀으니까.”
“애들 몇 명으로는 형님 못 막습니다. 무지막지하게 힘이 센 분이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겠군. 순순히 항복할 건가?”
“살려주신다고 약속해주신다면요.”
조직원의 말에 최관이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숨 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신소원 비자금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새끼 손가락 내어놓겠습니다.”
새끼 손가락을 내놓는다는 뜻은 은퇴를 한다는 뜻이었다.
신소원의 비자금도 준다고 했으니 정말 목숨만 겨우 챙기겠다는 뜻.
하지만 최관은 어림없다는 듯 칼을 꺼내들었다.
“빨리 들어와라. 널 죽이고 신소원 그 년도 죽이러 가야 하니까.”
“시발….”
조직원은 자신의 미래를 직감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이래서 최관이 무서운 거다.
그녀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흔들려야 할 욕구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니까.
조폭을 하기엔 너무 꼿꼿한 사람.
그래서 신소원에게 붙은 거였다.
저 꼿꼿한 여자의 몸에 더러운 오물을 묻혀서 조폭 주제에 왜 깨끗한 척을 하냐고 비웃고 싶었다.
뭐, 이젠 망상에 불과해진 바램일 뿐이지만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