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화 〉 #58. 기적 (6)
* * *
허억! 허억! 허억!
격하게 뛰는 심장고동 소리.
신소원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 맛에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도 계속해서 뛰었다.
최관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신의 뒤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그년이 배신한 건가?’
신소원이 멍청하다고 해서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이 불리해질수록 남을 의심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남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흔히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신소원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자신도 배신 할 생각이 만만한데, 부하라고 다를 것 없다고 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신소원은 적반하장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관이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 낸 것이 부하의 배신 때문일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녀가 숨어 있었던 곳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헉! 헉헉! X 같은…년! 이럴 줄 알았지. 눈깔부터가 불손했다고! 헉헉! 이런다고 내가…순순히…허억…허억…당해줄 것 같아?”
이곳 자체가 외부로부터 숨기 위해 만든 곳이기에 탈출로도 마련을 해두었다.
그리고 이 탈출로는 오직 자신만 아는 길이었다.
그러니 부하가 자신을 배신했다 해도 이 길만큼은 안전하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빠른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은 탓에 신소원은 배신했을 조직원이 했던 말을 참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로 나가긴 해야 해.”
아마 최관은 그녀가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배신한 부하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빌어먹을, 천하의 내가 이런 꼴로 도망을 친다고?’
어릴 적, 그녀조차도 어쩔 수 없이 연약했던 시절에서나 보였을 법한 행동이다.
이후에는 보스에게 거둬졌고, 전문적으로 주먹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런 꼴사나운 짓을 한 적이 없었다.
더 멋있어지고 싶었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서 한 일이었는데 정작 그 결과가 모든 걸 잃어야 하는 상황이 오니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발시발시발시발!’
이제 자신의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뿔뿔이 흩어진 그녀의 부하들을 최관이 모두 처리할 테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전부 버리고 살 길을 찾아 도망치는 게 되는 거다.
이곳을 관리해줄 부하가 배신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게 가능할까?
신소원의 뛰는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길거리를 전전하던 어릴 적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돈이 있지 않냐고?
신소원은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단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만 생각 하고 있었기에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걔보다 못한 게 뭔데?”
신소원이 최관을 꺼려했던 것은 보스의 비호 때문이다.
보스의 신뢰를 받는지라 자연스레 보스를 따르는 조직원들이 그녀를 따랐고, 그 부분에서 신소원은 최관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소원은 주먹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온 여자인지라 자신의 실력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최관과 직접적으로 주먹을 맞대어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최관만 처리하면 보스가 살아있다 해도 무의미한 거 아닌가?’
아니면 다시 보스를 노려봐?
병실을 지키고 있을 조직원들이 많겠지만, 그 정도는 자신이 은밀하게 움직이면 가능할 수도 있다.
번잡하게 여러 명 데리고 쳐들어가는 것보다 더 승산있는 일이라고 봤다.
욕망으로 가득 찬 머릿속은 본인 스스로가 생각해도 기발하다 생각할 법한 아이디어로 가득찼다.
이대로 모든 걸 잃을 바에야 다 거머쥐겠다고.
신소원의 욕망이 위기 앞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
최관은 검붉은 피가 묻어 있는 장갑을 쓰레기봉투에 버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이미 놓쳤는데 계속 뒤져봐야 시간만 아까운 일일 테니까.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기도 하고.”
“이제 어떻게 할까요?”
“애들보고 그만 하고 돌아오라고 해. 그리고 다시 추적해야지.”
신소원이 있는 곳을 정말로 하루 만에 알아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의심하는 마음을 없앨 수 없어서 최관은 결국 신소원을 찾기 위해 흩어진 조직원들을 전부 끌어오지 않고 현장을 덮쳤다.
그게 최관의 실수였다.
‘믿었어야 했는데….’
자신의 잘못 된 판단으로 나온 결과인데 신소원을 놓친 애들한테 화를 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주먹질 하나는 정말 따라 올 자가 없는 솜씨를 가진 신소원이라는 걸 잘 아는 최관이다.
조직원들 몇 명으로 그녀를 막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신소원이 도망치는 사이에 마주친 조직원들은 모두 기절한 채로 발견이 됐다.
“기절한 애들은?”
“다행이 곧 깨어났습니다.”
“도망치느라 바빠서 손속에 사정을 뒀나보구나.”
잔인한 성격을 가진 신소원인지라 그녀에게 당했다는 조직원이 걱정 됐는데, 다행이 크게 손을 쓰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비틀
“형님!”
그때, 최관이 순간 몸을 비틀거렸다.
벌써 며칠 째 신소원과 남은 잔당들을 쫓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닌 그녀다.
부상을 입은 몸에 쉬지 않고 무리하게 돌아다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병원에 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병원은 무슨…. 내가 무슨 면목으로 거길 가겠냐. 신소원 멱을 따기 전까지 절대 못 간다.”
“그래도 신소원이랑 부딪치게 될 수도 있는데, 체력을 회복해둘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형님이 해주시지 않으면 그 괴물을 잡을 수 있는 인재가 없습니다.”
조직원의 말이 맞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최관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녀도 느끼고 있다.
자신의 몸 상태가 최악이라는 것을.
이 상태로 신소원과 싸웠다간 크게 다치든 둘 중 하나가 죽든, 좋지 않은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관은 쉽사리 몸을 휴식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신소원 땅에 묻고, 보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 전까지는 버텨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신소원은 반드시 잡아야 했다.
최관은 자신이 죽더라도 신소원만큼은 끌고 갈 것을 다짐했다.
끄으…으….
신소원에 대한 살의를 다지고 있을 무렵.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핏덩어리가 신음을 흘렸다.
꼴에 살아보겠다고 숨을 헐떡이고 있다.
최관은 발로 툭! 핏덩어리를 쳐서 한 바퀴 굴리고는 말했다.
“이거 치워.”
“예!”
몇 시간동안 이어진 고문에 아는 것을 전부 토해내고 쓸모가 다한 신소원 측근 조직원이었다.
측근 조직원으로부터 신소원이 어디로 도망치려고 하는지도 모두 들었다.
신소원이 바보가 아니라면 측근이 불었을 것을 염두 해두고 있겠지만, 최관은 걱정하지 않았다.
길거리에 널려있는 수많은 CCTV가 그녀가 향한 곳을 쫓을 단서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급해 하지 말자. 거의 다 왔잖아.’
신소원 최측근 조직원에게 시간을 쓸 보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측근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캐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최관이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다른 조직원에게 맡길 순 없었다.
신소원이 그동안 야금야금 뒤로 갈취했던 것들 모두 보스의 재산이지 않은가?
보스가 온전하지 못한 상황이니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백억이 넘는 비자금이라면 누구나 흔들릴 테니까.’
비자금을 전부 넘길 테니 자신을 놓아달라고 한다면, 조직원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거다.
신소원이 욕심을 부려 뒤로 빼돌린 금액이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거기다가 배신자들 명단을 얻은 것도 꽤 컸고.’
성과는 그뿐만 아니었다.
뿔뿔이 흩어져서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알 수 없었던 불순분자들의 명단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누가 배신을 하고 신소원에게 붙었는지 정확히 구분을 할 수 없어 고민이 많았던 최관에게는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었다.
그때, 최관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최관입니다.”
받으셨네요. 결과가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신소원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알려 준 남자.
장담한 대로 하루 만에 결과물을 가져온 사람이었기에 결과가 영 시원찮은 현재로써는 할 말이 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네? 설마 실패했어요?
실패한 이유에 대해 변명할 거리는 많았다.
하지만 최관은 수많은 말들로 변명을 하기 보단 사과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게 최관의 성격이었다.
“예. 신소원을 잡는데 실패했습니다.”
최관은 상대방이 당연히 질책의 말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면목이 없어 절로 고개가 숙여지려는 찰나였다.
많이 다쳤어요?
“예?”
못 잡았다면서요! 그 사람, 잘 싸운다고 들었어요. 그럼 다쳤다는 거잖아요.
싸워서 져서 그녀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날 딱 한 번 본 게 전부였던 남자가 자신의 몸을 걱정한다는 게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최측근을 미끼로 두고 도망쳤습니다. 그 최측근이 알고 있는 게 많아서 제가 신소원을 잡으러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 그럼 다친 곳은 없겠군요?
“…예.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애써서 알려주신 정보인데 쓸모없게 만들었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요. 그 사람이 도망친 곳이 어딘지는 제가 바로 알아볼게요.
“그게 가능하시다는 겁니까?”
하루만 기다리라고 했고, 결과를 보여드렸잖아요. 이번에도 믿어보세요.
도대체 이 사람의 정체가 뭘까?
최관은 치솟는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해커인가? 아니면 국정원 같은 곳에 연줄이 있나?’
형부의 인맥이라는 걸 들어 알고 있기에 의심하지 않으려 했으나 의뭉스러운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믿고 있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큰 도움을 주시는 건 원하는 바가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바라는 게 뭔지 궁금합니다.”
외부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분하긴 했지만, 보스의 복수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자존심이 상하는 걸 인내할 것이다.
다만 그 도움에 대가가 필요한 것이라면,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여태까지는 그녀가 알아서 두둑하게 챙겨줄 생각이었지만, 또 다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선 고작 몇 푼으로 입을 닦을 수는 없었다.
제가 바라는 건 누구도 다치지 않고 이번 일이 해결 되는 겁니다.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해주신 바가 큰데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면 제가 큰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 일로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으면 해솔이한테 하세요. 나는 이미 걔한테 약속 받은 게 있거든요. 그러니 최관씨한테 대가를 받으면 제가 과한 보상을 받게 되는 거에요.
“…형부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저는 제 맡은 바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는 게 목표에요.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적극적으로 절 써먹으시라는 뜻이에요.
이런 말을 들어도 최관은 할 말이 없었다.
이 남자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알게 뭐란 말인가?
최관의 생각을 읽은 듯, 남자가 뒤를 이어서 계속 말했다.
오늘 같은 경우도 그래요. 저도 따라갔으면 그렇게 허무하게 그 여자를 놓치지 않았겠죠.
“이 바닥 일에 얽히면 좋을 일이 없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가 이 남자에게 정보만 받은 것은 나름 배려한 거였다.
전 이번 일이 빨리 해결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나름 생활이 있다 보니 신경을 많이 뺏기는 게 좋지만은 않아서요. 그렇다고 남의 일처럼 행동하다간 해솔이한테 받기로 한 게 있어서 안 되고요.
“일이 빨리 해결 되는 게 당신한테 도움이 됩니까?”
네.
그렇다면 최관도 더 이상 남자의 도움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번 일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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