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2화 〉 #58. 기적 (7)
* * *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습니까!!!”
“어, 어어. 잘 지냈긴 했는데…갑자기 왜 그래?”
“예? 아닙니다!! 제가 원래 예의를 잘 차리는 편이라서요!!”
처음 만났을 때 전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걸 얘도 나도 알 텐데, 참 이상한 컨셉을 잡았다.
혹시나 싶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거니?”
아직 촬영이 시작 되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시애는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으로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선배님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생겨나서 그런 겁니다!!”
“…아무튼 저번에 약속 지키지 못했던 거 미안해.”
“선배님께서 바쁘신 거 아는데 당연히 제가 맞춰야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배님!”
활동명은 ‘시애’.
본명은 안신애로, 나와 함께 TV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돼서 만나게 된 인연이다.
팀을 꾸려서 선배와 후배가 무대를 만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마니또라는 프로그램 자체의 본래 취지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친구의, 부모님의, 사랑하는 애인의 마니또가 되어 그 사람을 위해 선물이나 깜짝 축하 파티 같은 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초반에는 그 컨셉이 잘 먹혀서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지만, 시간이 흘러 인기가 식어가자 제작진은 출연진들을 일반인이 아닌 연예인들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명인의 출연은 효과가 있었다.
반복 되는 내용의 지루한 프로그램에서, 스타의 소중한 인연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출연한 횟수에서 프로그램 컨셉은 아이돌 업계에서 선배와 후배가 훈훈하게 한 무대를 꾸미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리감을 주는 건 역시 팬들 때문이겠지?’
내가 아현이와 연주 누님의 일로 바쁜 사이에 첫 촬영으로 시애씨와 내가 팀이 됐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알려진 상황이었다.
아무리 보안에 신경 써도 촬영할 때 들어가는 인력이 많다 보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몇 팀은 잘 어울린다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 가운데, 우리 팀은 안타깝게도 좋지 못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팬들이 우리 팀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남자 아이돌’이고, 시애는 ‘여자 아이돌’이기 때문.
잘 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만남이지 않은가?
‘한창 때의 남성과 여성을 붙여놨는데 불이 안 붙는 게 더 이상 한 일이지.’
그러니 양쪽 팬들이 소문을 듣고 프로그램 제작진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다.
내 아이돌의 연애.
팬들 입장에서 이보다 슬프고 분한 일이 없지 않겠는가?
사회 통념상 남자 아이돌의 연애를 예전처럼 막거나 하지는 못한다 해도 내 아이돌만은 계속 순수하게 남아주길 바라는 게 팬들의 소망인 법이었다.
아니면 연애하는 게 밝혀지지 말든가.
‘인기를 끌고 있긴 해도 아직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 그룹이라면 지금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
당사자들은 별 생각이 없다 해도 팬들이 불편하다면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탄탄한 팬덤이 있었기에 문제가 없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지 않은가?
하지만 시애의 팬덤은 아직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불면 날아가고, 밀치면 넘어지는 수준이었다.
후배가 살아보겠다고 저렇게 군기 잡힌 태도를 취하는데, 거기에다가 눈치 없이 행동할 순 없었다.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 되고, 우리는 티가 나게 어색해 하는 척을 하면서 촬영을 시작했다.
사실 실제로 어색한 게 맞기는 하다.
상대방이 나를 어색하게 대하는데,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어, 그럼 일단 그거부터 해볼까요?”
“그거요?”
“응. 우리가 부를 노래요. 각자 하고 싶은 걸로 생각해오기로 했으니까요.”
“아!! 네!! 제가 그 여기 적어왔거든요!”
시애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A4 용지를 꺼내든다.
그곳에는 빼곡하게 노래 제목이 적혀 있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종이였다.
“와~ 엄청 많이 조사했네요.”
“제가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요. 아! 물론 제가 바라는 걸로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닌데….”
“알아요. 얼핏 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거랑 겹치는 게 있네요.”
“아~ 정말요?! 무지 다행입니다!!”
시애가 내 말에 안도를 한다.
“이 듀엣곡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에요.”
오래 된 7년차 연인이 서로에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충고.
잔소리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사랑스러운 가사.
마지막에 여자가 멋지게 프러포즈를 하면서 끝이난다.
“아…맞다! 그런 곡이 있었지.”
시애는 내가 고른 곡이 별로 좋지 않았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오늘 바짝 군기 든 모습을 보여준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이제 상의해서 곡을 골라보죠. 여기 중복곡이랑, 제가 바라는 곡은 옆에 적어뒀거든요. 하나씩 들어보면서 본격적으로 상의해볼까요?”
“네!”
내가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시애가 안도하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 ? ?
곡을 상의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대를 꾸미는 것이 주된 컨텐츠이지 다른 팀과의 승부가 중요한 게 아닌 프로그램이었지만 기왕 하는 거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시애가 무대를 꾸미는 것에 엄청나게 큰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같이 팀을 이룬 이가 의욕이 없다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우리는 꽤 잘 맞았다.
무대를 꾸미는 것에 대한 의견도 굉장히 잘 맞았다.
‘아니면 얘가 나한테 맞춰주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시종일관 즐거워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억지로 꾸며낸 즐거움과 진심으로 즐기고 있어서 보이는 즐거움은 다른 법.
“이렇게만 무대를 꾸밀 수 있으면 엄청 멋질 것 같아요.”
“그렇죠? 무대 만드는 건 제작진 분들한테 맡기고, 우린 이제부터 열심히 연습하죠.”
“네!!! 선배님!”
“스케줄 좀 맞춰볼까요? 같이 연습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스케줄이 그렇게 잘 맞을 리 없으니까.”
“네, 선배님!”
이번 주는 개인 연습을 하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합을 맞춰보는 것이 우리가 결정한 스케줄이었다.
시애는 이번 주부터도 얼마든지 합동 연습을 할 수 있다고 했으나 내가 안 될 것 같아 거절했다.
‘이번 주 내로 일을 확실하게 싹 해결해야 돼.’
그래야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이 스케줄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게 된다.
초반 준비 과정만 찍고 이후에는 카메라 없이 개인 연습만 하면 됐기 때문에 오늘 이후로는 좀 더 연주 누님의 일에 신경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내가 신소원이라는 여자의 위치를 알아왔을 때, 일이 다 해결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여자가 무려 40명이 넘는 인원을 뚫고 도망쳤다는 거다.
그 여자가 쓰러트리고 간 사람의 숫자만 해도 15명이 넘는단다.
15:1의 전설도 아니고….
관이씨는 변명하지 않고 본인의 잘못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여자 하나 잡으러 가는데 40명이나 데려갔으면 다 한 거라고 본다.
연주 누님에게는 절대 현장에 나가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그런 상황을 설명 들었는데 가만히 있기가 뭐했다.
‘몸 상태가 그렇게 안 좋은데 15명을 쓰러트린 여자를 관이씨가 어떻게 이기냐고.’
신소원이라는 여자가 지금처럼 쫓기는 게 다 최관씨가 몸을 사리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범인의 부하들을 최관씨가 직접 움직여서 하나하나 조지고 다녔다.
지금의 상처는 그때 입은 부상들이었다.
장모님의 옆을 연주 누님이 지키고, 최관씨는 밖에서 흔들리는 조직을 붙잡았던 것이다.
‘내가 싸움은 못해도 현장에 있으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몇 주째 편하게 잠자지 못하는 사람이다.
일단 만나면 거의 바닥이 났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보약부터 먹일 생각이었다.
너무 빠르게 범인의 뒤를 찾아내면 개연성이 떨어지기에 적당하게 시간을 끌었다 싶은 지금 전화를 건 것이다.
바로 움직일 생각이었기에 얼굴을 미리 바꿔뒀다.
네, 최관입니다.
기다렸던 전화였는지 통화음이 길게 가지 않고 연결이 된다.
나도 곧장 용건을 꺼내기로 했다.
“위치 알아냈습니다.”
알려주십시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
“그 전에, 약속을 지켜주셔야죠. 이번에는 저도 같이 갈 겁니다.”
…안전을 장담 드리지 못합니다. 신소원을 잡으려면 신경 써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 안전은 스스로 조심하겠습니다.”
현장에서 가서 무리하게 나댈 생각은 전혀 없다.
내 신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지만 싸움을 하는 건 신체 능력과 상관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조폭 15명을 뚫고 도망친 여자라고 하지 않은가?
주먹질 한 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상대 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마주친다고 해도 내가 다칠 일은 없지.’
오히려 마주치면 일이 쉬워질 거다.
나에게는 그 범인을 손 하나 대지 않고 단숨에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었다.
“지금 범인이 있는 장소는….”
나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아이템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장모님의 피가 묻어 있는 칼의 DNA를 이용해서 다시 위치를 추적했다.
“시발!”
결과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욕설이 내뱉어졌다.
범인이 있는 장소를 보고 도저히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예?
통화음 안에서 최관씨가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당장 병원으로 와요!! 장모 아니, 당신 보스가 있는 병원으로!”
장모님을 지키기 위해 조직원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1:15로 이기고 유유자적 도망쳤다는 여포 같은 여자였기에 안심이 되지 않았다.
다행이 최관도 내 말의 의미를 금방 알아듣고 곧장 전화를 끊었다.
나는 병원에 있을 연주 누님에게 전화를 시도하며 병원으로 텔레포트 했다.
병원의 텔레포트 위치는 인적이 아주 드문 계단이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지라 어둑한 지하 계단은 인적이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시발, 깜짝이야. 너 뭐야? 어디로 들어 왔어?”
하지만 이동하자마자 눈앞에 거친 욕설을 내뱉는 여자와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여자의 외형에서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아무래도 문신이었다.
이후에는 누가 봐도 불량해 보이는,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서 진한 살기가 엿보이는 살벌한 눈빛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는 저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냐고 묻잖아, 이 새끼야!”
직접 맞닥뜨린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며칠 전 이 여자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최관씨로부터 받았었다.
‘신소원.’
장모님을 죽이려고 했고, 최관씨를 위험하게 만들었으며, 연주 누님을 고생하게 만든 여자.
그 범인이 장모님의 병원, 지하 계단에서 만났다는 것은 그 의도가 너무나도 투명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한테 또 손을 쓸 생각을 한 거겠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단 말인가?
여태까지 장모님이 그렇게 되신 것에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최관씨처럼 살의를 느낄 만큼 분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기엔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았고, 장모님을 둘러 싸고 일어나는 일들이 내게 너무 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지금은 화가 나네.’
단순히 화가 나는 것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미 한 번 당해서 죽음을 오갔던 사람을 또 다시 죽이러 온 여자이지 않은가?
이건 분노하지 않는 게 불가능한 끔찍한 짓이었다.
‘그런 짓을 저지르려고 와놓고 떳떳한 사람처럼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우스워.’
나는 사태파악 못하고 점점 위협하려고 하는 신소원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힘으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가능할 것 같다.
“흠, 남자답게 곱상하게 생긴 걸 보니 병원 방문한 일반인인 것 같은데 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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