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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93화 (393/849)

〈 393화 〉 #58. 기적 (8)

* * *

신소원은 누가 봐도 험한 일과 어울리지 않은 내 얼굴을 보고 안심을 한 듯 했다.

“대답이 없네. 쫄았냐?”

“…….”

“이 누님이 생각보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니거든? 너무 쫄지 말라고. 그리고 말이야. 개인적으로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신소원이 척척 다가오더니 내 어깨에 자기 팔을 얹는다.

여자의 팔이 묵직해봐야 얼마나 무겁겠는가?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압박을 주기 위해 팔을 얹은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누가 봐도 협박을 하려는 모양새였다.

“어려운 일 아니야. 그냥 나랑 연인인 척 하면서 어딜 좀 같이 가주기만 하면 돼. 얌전히 말 잘 들으면 문제없을 거야. 나 아무한테 부탁하고 다니는 사람 아니다? 네가 잘 생겼으니까 이런 기회도 주고 그러는 거야. 연락처 알려 줄 테니까, 나중에 연락하라고. 그때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게.”

나중에 연락을 하면 섭섭하지 않게 챙김을 받는 게 아니라 큰일을 당할 게 분명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부탁하는 사람이 가졌어야 할 감사함 대신 찐득찐득한 욕정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범인은 내게 부탁을 ‘강요’하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나는 마지막으로 범인에게 기회를 주고자 말했다.

사실 범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함이었다.

범인이 보여준 태도라면 내 기회를 단숨에 던져버릴 테니 말이다.

“병원에 온 이유가 뭡니까?”

“뭐?”

“병문안인가요?”

“병문안? 큭! 하하!! 그래, 맞지. 병문안. 살아있는지 확인을 해야 하거든.”

범인이 내 질문에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본인이 저지른 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보러 간다는데 저런 표정이라니.

죄책감이 조금도 깃들어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내 인간적인 양심이 이제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배려를 해준 것은 저 여자에게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병문안을 왔다면서 왜 칼을 챙기셨죠?”

“…뭐?”

“자켓 안에요. 칼 들어 있잖아요.”

내 어깨에 팔을 얹었을 때, 얼핏 신문지에 쌓인 칼이 보였다.

내 말을 들은 범인의 표정이 굳는 건 순식간이었다.

더욱이 아주 빠르게 내 근처에서 몸을 피했다.

나로서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거리에 새삼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여자를 가만히 내버려뒀다간 피해가 정말 컸을 거다.

“너 시발! 최관 끄나풀이었냐!? 어쩐지 갑자기 잘 생긴 남자가 나타난 것부터가 이상했는데…!!”

“엄청 빠르네요. 순식간에 멀어졌네.”

“너 이 새끼,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하나 담그는데 30초도 안 걸려!”

범인이 자켓에 손을 넣어 험한 것을 꺼내려 들었다.

나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당할 순 없는 노릇.

반응 속도라면 나도 나름 춤으로 다져진 바가 있었다.

범인이 칼을 꺼내고 있을 사이에 나도 미리 준비해둔 것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상대방을 향해 손에 든 것을 들이밀었다.

다만 칼이 내게 닿기 전에 내가 꺼내들었던 것이 더 빠르게 범인의 몸에 영향을 미쳤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그녀의 얼굴에 뿌려진 알 수 없는 무언가.

내 손에 들려 있는 스프레이와 비슷한 모양의 아이템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기 매우 적합한 효능을 갖고 있었다.

“아아아악! 아아악! 살려…아악! 살려줘!!”

내가 굳이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것도 이 아이템을 사람에게 쓴다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털썩!

범인이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템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는지 비명 소리가 잦아들었다.

쓰러져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떨림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사용한 아이템 효과가 꽤 잔인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은 또렷한데, 몸은 마비 돼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나는 바닥에 쓰러진 범인의 눈꺼풀을 손바닥으로 닫아주었다.

“그분이 경험하신 고통보단 못하겠지만 이걸로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겠죠.”

솔직히 이런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에서 이번 일은 마지막 느와르 장르가 되길 바란다.

나는 앞으로 더 큰 고통에 시달릴 범인을 씁쓸하게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최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범인, 잡았습니다.”

? ? ?

“왔어요?”

“…당황스럽군요.”

지하실 계단의 문이 열리고, 최관씨와 조직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계단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녀를 보며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아이템 효과를 받고 있는 범인, 신소원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얼핏 보면 잠들어 있는 걸로 오해 할 수 있는데, 저렇게 있어도 정신은 무척이나 또렷할 거다.

지금쯤이면 꽤 겁에 질려 있지 않을까?

‘갑자기 사지가 움직이지 않으니 무서울만도 하잖아?’

아이템 지속 효과는 정확히 30분.

연락을 받은 후 최관씨가 병원에 오기까지 15분이 걸렸으니 대충 넉넉하게 10분 정도 남았다고 보면 됐다.

‘귀찮게 굴면 다시 쓰러트리면 되는 거니까.’

“신소원을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셨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제가 운이 좋아서 마침 근처에 있었던 거죠. 많이 놀라셨죠? 갑자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눈치는 바로 챘습니다. 다만 지금 상황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설명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범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받자마자 전화를 걸었고, 전화하면서 위치를 확인하니 장모님이 계신 병원이었음을 알게 됐다.

범인이 장모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있다는 것은 그 목적이 너무 노골적인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예.”

“아, 그리고 이렇게 바로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던 거에요. 어디로 침입을 했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인적이 드문 곳에 가봤더니 문 앞에서 바로 만났지 뭐에요?”

“혼자서 제압을 하신 겁니까?”

“네.”

대수롭지 않게 한 대답이었는데, 주변에 있던 조직원들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그 얼굴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범인이 15:1도 거뜬하게 뚫고 도망친 괴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힘으로 제압한 건 아닙니다.”

“그럼…?”

“음,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어요. 불법이라서.”

조폭들이니 불법이라고 말하면 적당히 눈 감아 주지 않을까 싶어 말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내 짐작이 맞았는지 다들 순순히 고개를 주억인다.

“한 10분? 이제 한 5분 남았나? 이후에는 깨어나서 움직일 거에요. 미리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해놓는 게 모두를 위해 좋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내가 한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조직원에게 손짓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직원이 빨간색 밧줄을 들고 나타나서 쓰러져 있는 범인의 몸을 꽁꽁 묶기 시작했다.

“이건 증거품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거에요.”

나 때문인지 신소원을 향해 살의를 느끼면서도 억누르고 있는 게 보이는 최관씨에게 칼을 건냈다.

신문지에 쌓여 있는 칼을 확인한 최관씨가 결국 참지 못했는지 발을 들어올렸다.

뻐억!

“이 정도 충격에도 깨어나지 않는 걸 보니 맷집 하나는 과연 감탄스럽구나.”

제대로 맞았는데 얼굴 하나 꿈쩍 하지 않는 걸 보면서 최관씨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신체 능력이 괴물 같은 년이니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싶었나보다.

‘그런 거 아닌데.’

눈도 깜빡할 수 없게 완전히 마비 되어 있는 상태라서 아픈 것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내 아이템이 고통을 없애 주는 게 아니기에 아마 범인은 아까의 충격으로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을 것이다.

‘어우, 도저히 못 보겠다.’

폭력적인 광경을 계속 보고있기엔 피폐해질 내 정신 건강이 걱정 되었으므로, 이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범인을 잡았으니 이제 제가 할 일은 끝난 거겠죠?”

“예,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큰 도움을 받아버려서 어떻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랬겠어요? 그분을 지키는 조직원 분들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아무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일은 다 해결 된 걸로 생각하죠.”

내 말에 최관씨가 조직원에게 말했다.

“정중하게 가시는 곳까지 모셔다 드려라.”

“예, 형님.”

장모님을 구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그런 걸까?

조직원이 우렁차게 대답을 하며 내게 고개를 90도로 깍듯하게 숙였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요.”

“부디 제가 모실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부담이 될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간곡하게 말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병원 앞까지만 부탁할게요. 그 이상은 제가 부담 돼서 싫거든요.”

“감사합니다. 형님!!”

내가 왜 그쪽 형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기자.

어차피 이 얼굴은 이곳에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얼굴일 테니 말이다.

쿵!!

뻐억!!

계단에서 나와 한 발자국 걸으려던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조직원은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문을 닫고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냥 모르는 척 하십시오, 형님. 이쪽 일은 봐도 모르는 척 하는 게 낫습니다.”

“…네. 그래야죠.”

범인을 최관씨가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나와 상관없는 얘기였다.

다만 뒤늦게 몸 상태가 좋지 못한 최관씨에게 챙겨왔던 약을 주지 못했다는 게 생각났을 뿐이다.

“이거 최관씨한테 전해줄 수 있을까요?”

“이게 뭡니까, 형님?”

낯선 사람에게 아이템을 맡긴다는 게 좀 꺼려지는 일이긴 했으나 당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가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범인에 대한 취조(?)가 시작 됐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걸 나중에 주겠다고 하는 것도 좀 아니다 싶다.

아까 봤던 최관씨의 얼굴 낯빛이 많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보약이에요. 비싸게 주고 구한 거거든요. 효과가 정말 좋아서.”

“아! 보약! 그런데 이걸 왜…설마 우리 형님을 위해서 준비해주신 겁니까?!”

“네. 고생한 것 같아서 이걸 전해주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깜빡 했거든요.”

“알겠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안전하게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비장하게 말할 건 없는데….

쓸데없이 진지한 조직원의 우렁찬 대답에 나는 안도하며 물건을 넘길 수 있었다.

힘들어서 허해진 체력을 회복시키는 아이템이니 혹여나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넘어간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편안히 가십시오, 형님!!”

택시비까지 미리 선불 결제한 후, 나를 택시에 태운 조직원은 내가 출발 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나는 적당한 거리의 목적지를 얘기하고 내려서 공간 이동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1초 만에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차로 이동하라니.

나한테는 오히려 배웅해주는 게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연주 누님에게 연락을 넣었다.

“누님.”

­어, 그래. 해솔아.

“소식 들었어요?”

지은 죄가 있는데 가만히 있다가 얻어 맞으면 무지하게 아플 거다.

차라리 직접 지은 죄를 고백하고 동정심에 호소하는 게 옳았다.

‘진짜 완전 우연이었는데 어떡하라고.’

솔직히 범인을 아무런 피해 없이 잡은 건 좋은 일 아닌가?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심장이 쫄린다.

­무슨 소식 말하는 거니?

“어…아직 못 들으셨나보네요?”

관이씨가 많이 당황하긴 했나보다.

연주 누님에게 범인에 대한 얘기를 하지 못했던 걸 보면.

나한테는 다행인 일이다.

3자에게서 듣는 것보단 당사자인 내게서 듣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그래서 안심하고 말을 이으려던 순간이었다.

연주 누님의 목소리가 엄동설한처럼 귓가에 내려 꽂혔다.

­신소원이 병원에 숨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물은 거니, 아니면 네가 신소원을 직.접 잡았다는 소식을 말하는 거니?

“…쿨럭.”

일단 머리부터 박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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