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 #58. 기적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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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금방 정상으로 돌아 올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이 모두 수습 되는 것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위험한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최관씨가 엉망이 돼서 병원에 실려 왔던 것이다.
“우리 형님 좀 살려주십시오!!”
“이건 또 무슨 난리야?!”
연주 누님과 나는 병원에 실려 온 최관씨의 모습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어쩌다가 이 꼴이 된 거야?!”
“그…시, 신소원이랑 대결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우리 형님이 이기셨어요!!”
“걔랑 대결을 했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와 누님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관씨의 외관은 정말 말 그대로 엉망 그 자체였다.
숨을 쉬고 있는 게 기적처럼 보였다.
“의사!!! 뭐하고 있는 거야! 당장 치료해!”
검은 정장의 우락부락한 조직원들이 데려와서 그런지 의사가 머뭇거리며 진료를 보지 못하고 있자 연주 누님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재촉했다.
“네, 네네! 이, 일단 호, 호흡부터….”
의사가 손을 쓰는 걸 지켜보며 나는 아이템을 준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몰골이 정상적으로 살아나는 건 힘들어 보인다.
목숨이 위험하다면 아이템을 써야 했다.
“보호자 분들은 비켜주세요!”
“상태가 어떤 겁니까? 많이 위급하나요?”
“저희도 지금 확인하는 중입니다. 기다려주세요.”
겁먹은 의사가 최관씨를 보는 사이, 제법 야무진 성격을 가진 간호사가 조직원들을 내보냈다.
“장모님께 알리진 않으실 거에요?”
“조금 있다가. 가뜩이나 겨우 회복한 사람한테 충격 받을 소식을 전해줄 순 없잖니.”
좋지 못한 예감이 든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검사를 끝냈는지 간호사가 보호자를 물어왔다.
“수술 동의서를 작성해주셔야 해서요.”
의사에 말에 따르면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내부 장기를 찢었고, 그런 상태에서 무리하게 움직이면서 장기에 상처가 엄청나게 많이 났다고 한다.
심각한 것은 장기 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안 다친 곳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경과를 봐야 알겠지만, 왼쪽 안구는 수술을 받아도 실명하실 수 있습니다.”
“허….”
엉망 그 자체인 상황.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겁니까?”
그런 큰 수술을 받는데 생명의 위험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의사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역시 아이템을 써야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수술을 받기 전에 잠깐 환자와 만날 수 있을까요?”
“환자에게는 1분 1초가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될 겁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부탁드립니다.”
vip인 우리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의사가 1분 정도만 허락하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이동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더니, 최관씨는 그 짧은 시간에 수술을 받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대천사의 축복을 최관씨에게 쓸 수는 없었다.
거대한 이펙트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일 테니까.
나는 아이템을 사용하기 위해 최관씨의 피 묻은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움찔
그리고 그때, 어렴풋이 최관씨가 정신이 들었는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와 더불어 내가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응원의 한 마디를 남기고 싶어졌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내가 해준 말로 힘을 얻어서 수술을 잘 견뎌낼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힘내서 돌아와요. 내 곁으로. 기다리고 있을 게요.”
맞잡고 있는 손에 힘이 좀 더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내 착각이었는지 손을 풀어내자 너무도 쉽게 최관씨의 손이 떨어졌다.
“…됐습니다. 수술 들어가시죠.”
“벌써 끝나셨습니까?”
“예. 잘 부탁드립니다.”
말로는 1분이라고 했지만, 진짜 1분만 딱 보고 갈 줄은 몰랐는지 의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거면 왜 보자고 했는지 궁금한가보다.
하지만 이 찰나의 마주침이 최관씨의 생사를 가르게 될 것이다.
최관씨가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
연주 누님과 나는 최관씨가 왜 저렇게 크게 다쳤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 봤다.
‘범인이랑 대결을 했다고 했던가?’
워낙 정신이 없는 와중이라 들었음에도 정확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결국 조직원을 불러와서 자초지정을 들었다.
“분명 범인을 확실하게 제압해서 보내줬다고 들었는데, 왜 저렇게 심하게 다친 겁니까?”
“형님께서 결정하신 일이었습니다. 저희들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고개 박아, 새끼야. 죄송합니다, 형님!!”
한 조직원의 설명에 다른 조직원이 변명할 것 없이 그냥 고개를 냅다 90도로 숙여버렸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탓하려는 게 아니라 무슨 상황인지 들어볼 필요가 있어서 물은 거에요. 그러니까 상황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내 말을 들은 조직원이 그제야 표정을 풀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아…그런 거였습니까?”
“네. 제가 뭐라고 여러분들한테 험한 소릴 하겠어요?”
지금 나는 진해솔로 여기에 온 거다.
그러니 이들이 나를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하늘보다 높은 보스의 사위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지위가 저들보다 높다고 해서 함부로 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예 안 얽히는 게 제일 낫고.’
어쨌든 내 말을 들은 조직원들이 그제야 편안한 얼굴로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관이씨는 굳이 잡혀 있는 신소원을 풀어주고 주먹만으로 대결을 했다고 한다.
그 대결은 당연하지만 생사결이었다.
“무협도 아니고, 생사결이라니….”
“죄송합니다. 형님!! 그치만 정말 멋지셨습니다.”
“…….”
이게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쪽 세계의 로망이라는 건가?
“바보 같은 녀석….”
연주 누님도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형님이 정당하게 이기셨거든요. 신소원 그 새끼는 치졸하게 흙을 뿌리질 않나, 도망치려고 하질 않나. 엄청 추잡스럽게 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형님은 진짜 오로지 주먹 하나로 신소원을 깔아버리셨죠! 저는 우리 형님이 너무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맞습니다! 관이 형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조직원들의 눈빛에 최관을 향한 흠모가 가득하다.
멋있으면 뭐하냐?
너희들 형님은 지금 수술실에서 죽을지 살지 다투고 있는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어머니한테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걱정 돼서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마, 많이 화내실까요?”
“당연한 소릴.”
꿀꺽
그리고 연주 누님이 예상한 바와 같은 상황이 펄쳐졌다.
‘진짜 무서웠지.’
그렇게 크고 우렁찬 호통은 생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등장 할 때면 우렁 찬 환호 소리로 반겨주는 팬들의 함성보다 장모님이 한 번 내지른 함성이 더 귀에 박힌다면 대충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수술 이후 좀 유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참고 있었던 거다.
자신이 뒤로 빠졌을 때, 조직원들이 얼마나 자립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말이다.
“당장 연락해서 싹 다 불러와!!!!”
““예, 보스!!!!””
그런데 최관씨가 입원을 했다고 하니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거다.
장모님은 일단 간부들을 병원에 집합시켜서 무릎을 꿇렸다.
나이 지긋한 조폭들이 저마다 포스를 내뿜으며 나타나 장모님 앞에서 강아지처럼 깨갱거리는 모습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연주 누님은 보지 말라고 했지만, 궁금한 걸 어쩌겠나?
결국 안경을 쓰고 존재감을 지운 채로 누님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너희들 그동안 나 없다고 살판 났다더라. 다 들었다. 변명할 필요도 없어.”
꿀꺽
“내가 후계자 자리를 두고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다. 그래서 이 사단이 난 게야. 내 잘못이니 이번만은 그냥 눈 감고 넘어가주마. 다만 또 같은 일이 벌어지게 해선 안 되니 후계자를 정해두겠다.”
후계자를 정한다고? 벌써?
우리한테는 잘 된 상황이다.
지금 후계자를 결정하겠다는 건 결국 현오를 후계자 삼겠다는 장모님의 뜻이 꺾인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입장에서 최고의 대상이 후계자로 낙점 되었다.
“후계자는 최관이다.”
“!!”
“보, 보스!! 최관이라뇨!”
“핏줄도 아닌데 어째서….”
장모님은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실감했다며, 다음 보스는 최관씨가 되는 것으로 못을 박으셨다.
간부들이 아예 반박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핏줄이 아닌 최관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선언한 장모님의 말을 못 믿는 사람도 있었고.
“죽을 뻔하고 나니 핏줄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둘째가 했던 행동을 봐라. 내가 후유증 없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나를 송장으로 만들고 내 것을 빼앗으려고 했겠지. 그런 년한테 내 유산을 넘길 생각 없다. 내 모든 유산은 최관에게 갈 거다. 불만 있는 놈은 지금 나와라.”
지금 나오면 직접 죽여주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당연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숨 막히는 침묵이 맴돌았다.
“마지막으로 기회 준다. 불만 있는 놈 말해.”
장모님이 주는 마지막 기회.
결국 불만을 갖고 있던 이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첫째 아가씨는 정말 아닌 겁니까? 이번에 큰일을 하셨습니다!”
“큰 년 핑계 대지 마! 쟤는 줘도 안 가지는 년이야! 싫다는 사람한테 유산 물려주는 건 나도 싫다! 최관이 뭐가 부족하냐? 걔가 못한 게 있어? 내 복수도 관이가 했고, 동요하는 조직원들을 다독인 것도 관이가 했다. 능력을 증명했으니 합당한 보상을 줘야지.”
다들 이리떼처럼 장모님의 재산을 뜯어먹어 보려고 난리칠 때, 최관 만큼은 복수를 하겠다고 눈이 뒤집어져서 다녔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충성도 증명했고, 능력도 증명했다.
장모님의 선언에 결국 간부들이 굴복하고 보스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관이가 알아서 잘하겠다만은, 주제도 모르고 딴 짓하려고 하면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게. 나 아직 안 죽었어! 자네들 앞에 시퍼렇게 눈 뜨고 있다고!”
간부들이 서슬 퍼런 장모님의 벼락과도 같은 호통에 깨갱하고 물러났다.
고개 숙인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불만의 기색이 꺾이지 않은 이들이 있기는 했으나 지금 나설 용기는 없는 듯 했다.
“왜 대답이 없어. 다들 동의하는 거지?”
“예, 보스.”
“예!”
“인정하겠습니다.”
“그 말 똑똑히 머릿속에 새겨두라고들. 이제 가봐.”
최관씨가 후계자가 된다면 더 이상 현오가 이쪽 일에 얽혀서 힘들어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니 저들이 최관씨를 반대하면 곤란해진다.
안경을 쓰고 있었던 지라 저쪽은 여전히 내 존재를 모르는 상황.
나는 슬그머니 그들의 뒤를 밟았다.
“보스는 예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으이.”
아이템이 장모님의 부상을 회복시킨 것으로 효과가 끝나지 않고 회춘까지 시켜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글렀어. 그냥 납작 엎드리자고.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온 사람을 어떻게 이기냐고.”
“에잉, 둘째는 너무 허벌이라 걱정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최관이 되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고. 다들 걔가 까탈부리면 얼마나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지? 간부 대접은 눈곱만큼도 안 해준다고!”
“슬슬 우리도 은퇴를 해야 할 때가 온 거야. 새파랗게 어린 녀석한테 고개 숙이고 싶은 사람 있나?”
“그런 짓은 못하지. 가오 상하게 말이야.”
“그러니까 다들 후계자들이나 잘 세워두자고.”
“그 행동대장이었나? 최관이 엄청 잔인하게 죽였다던데.”
“죽을 때까지 주먹으로 팼다더군. 아니, 죽었는데도 계속 때렸다던데?”
“성정이 그리 잔인해서야….”
“지랄하는구만. 너는 왕년에 회 뜨듯이 사람 살 뜨던 년이면서.”
이후로는 쓸데없는 대화라서 관심을 껐다.
그나저나 간부들의 대화에서 의외의 사실을 알아버렸다.
‘역시 죽었구나.’
범인 신소원이 죽었다는 소식 말이다.
찰나에 불과했던 만남이었지만 그 소름 돋는 인상의 여자는 내 기억 속에 확실하게 박혀 있었다.
그런 무서운 여자를 최관씨가 패 죽였다니….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사람의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살아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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