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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97화 (397/849)

〈 397화 〉 #59. 후배 시애 (1)

* * *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정신을 되찾아간다.

최관은 침대가 마치 자신을 땅 깊숙한 곳까지 끌어당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꺼풀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었나 싶다가도 천천히 되돌아오는 정신에 어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고 몸을 재촉했다.

‘일어나야 돼.’

최관은 기억이 끊겼던 순간을 확실하게 기억한다.

신소원과 무아지경으로 싸웠던 그 순간들을.

‘어떻게 됐지? 신소원은.’

마지막에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승기를 잡았던 것 같은데….

“으으…으….”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환자분, 성함 말씀해보시겠어요?”

아릿한 고통 속에서 몽롱하던 정신이 일깨워지고, 처음 들린 목소리는 간호사의 묵직한 목소리였다.

“시인…ㅅ….”

“예? 환자분, 성함 다시 한 번 말씀해보시겠어요?”

“신…소…워…ㄴ…은…어…디….”

“환자분, 성함이 신소원씨라고요?”

되도 않은 간호사의 오해에 최관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고통을 참으며 최대한 또렷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애들…불러…주십…시오.”

“네?”

“그놈의…이름…필요…없으니까…어서….”

최관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자 간호사가 힉! 하고 겁에 질려서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간호사는 침대에 누워 있는 VIP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병원에서 난리가 난 조폭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 이사장님과 친분이 있는 것인지 경찰에는 절대 신고하지 못하게 하고 입막음도 철저하게 해놨다.

그런 인맥을 가진 사람이 보호자를 불러달라는데 무시할 순 없었다.

간호사가 보호자를 부르러 간 사이, 의사가 들어와서 최관의 상태를 확인하고 갔다.

의사는 최관의 이곳저곳을 심각한 표정으로 확인하더니,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잘 회복 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얼마…나 기다려야…퇴원…할 수 있…습니까?”

의사는 최관의 물음에 어처구니없어 하며 대답했다.

“후유증 없이 나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정상 생활이 가능할지부터 걱정하시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후유…증이라…고?”

“살아난 게 기적입니다. 수술을 했지만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퇴원보다는 재활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회복을 하려면 좀 더 주무셔야 할 것 같네요.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으니 푹 주무십시오.”

냉정한 현실을 알려준 의사가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약들을 추가시키고 병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최관은 멍하니 흰색 천장을 올려다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수술을 했다고 했었나?’

손목에 달려 있는 링거.

입고 있는 옷은 환자복.

복부에 연결 되어 진 피 주머니 등등.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가르고 들어왔던 흔적이 가득했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고….’

신소원의 주먹질 한 번 한 번이 굉장히 묵직하기는 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내지른 주먹이니 오죽할까.

그 고통을 참아내고 기어코 신소원을 바닥에 눕혀서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던 기억이 났다.

‘그래, 분명 숨이 끊긴 걸 확인했어.’

신소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쓰러질 수 있었다.

신소원에게 패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선은 결국 해냈다.

하지만 막 깨어나서 그런지 비몽사몽한 정신이 그때 당시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을 하려면 조직원에게 물어 볼 필요가 있었다.

드르륵­

그때, 병실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관아!!”

그녀가 모를 수 없는 목소리.

병실문을 열고 들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보스였다.

조직원이 들어 올 줄 알고 있었던 최관은 갑자기 들리는 보스의 목소리에 놀라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곧장 밀려오는 엄청난 고통에 최관이 신음을 흘렸다.

“쯧쯧! 일어나지 마라. 그 꼴을 해서 인사는 무슨.”

“보, 보스…여긴 어떻게…오셨습니까. 몸은…괜찮으신 겁니까?”

“어떻게는! 네가 보고 있는 대로 멀쩡하다! 네가 쓰러지고 며칠이나 지난 줄 아느냐! 나는 이미 다 회복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말 보스는 정정해 보이셨다.

오히려 힘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건 자신이었다.

“면목이…없습…니다. 죄…송…합니다…보스.”

이런 모습으로 보스를 만날 생각이 없었기에 최관은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제대로 복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부족할 판에 다쳐서 입원하고 수술까지 받았다니….

“너는 어째 나보다 회복력이 안 좋니? 수술 받았으면 재깍재깍 회복하고 일어났었어야지! 젊은 것이 말이야. 너 수술 받고 사흘째 안 일어나고 있었다. 너보다 심한 상처 입고도 나는 다음날 바로 벌떡 일어났었다고.”

“…죄송…합니다.”

“이런 애를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길지…. 에잉! 쓸데없이 사과하지 말고 빨리 일어날 생각이나 해라!”

“예…알…겠습…니다.”

보스는 냉정하게 쓴 소리를 뱉은 이후에서야 슬슬 본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많이 아프냐?”

“아…닙…니다. 끄떡…없습니다.”

“끄떡없기는! 골골 대고 있으면서. 편하게 쉬어라. 조직은 잘 수습 됐다. 이제 남은 건 네가 잘 회복해서 돌아오는 것밖에 없어.”

“예…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둘 다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다. 이게 얼마나 모양 빠지는 일이냐? 어서 회복해서 조직원들 앞에 떡하니 나서야 한다. 그래야 그놈들이 딴 생각을 안 한다 이 말이야.”

보스의 말에 최관은 울컥 눈물이 났다.

예나 지금이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는 쓸모없는 자신을 보듬어주는 사람은 보스밖에 없었다.

스르르­

그리고 보스가 다정하진 않지만 충분한 위로를 해줘서 일까?

아니면 의사가 놓아준 약이 효과를 보였던 걸까?

최관의 눈이 다시 감겼다.

졸음은 그녀가 반항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 ? ?

“선배님!!!!! 정말 대박인 것 같아요. 너무 멋있었어요, 우리!!”

후배인 시애와 함께 준비한 무대 준비가 끝나가고 있다.

결과물은 내가 봐도 매우 훌륭했다.

워낙 정신없는 사건이 맞물리면서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남에도 불구하고 이런 퀄리티가 될 수 있었던 건 후배인 시애의 덕이 컸다.

“고생 많았어. 네가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줘서 무대가 이렇게 잘 만들어진 거야.”

“아하핫! 과찬이세요!! 선배님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제가 많이 귀찮게 해드렸죠?”

“아니야. 네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의견 내준 덕분에 이런 무대를 만들 수 있게 된 거잖아. 내가 너한테 업혀 가는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하고 고맙네.”

사실 이 부분은 좀 찔리는 게 많다.

만약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후배인 시애에게 엄청나게 많은 욕을 들어 먹었을 정도로 연습에 적극적이게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연습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할 때도 많았고, 연습 시간에 무대 연습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갑자기 수술에 들어간다는 연락이 오는데, 어떻게 무대 연습에 매달려 있어?’

연주 누님이 부르면서 후배인 시애와 첫 연습 날을 펑크냈고, 이후에도 자잘자잘하게 자리를 비운 적이 많았다.

다행인 것은 무대 연습을 할 때 항상 틀리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시애였고, 체력이 다해서 연습을 끝내자고 말하는 사람도 시애였다는 거다.

아마 내가 시애였다면 참 많이 억울했을 것 같다.

연습 시간도 잘 안 지키고, 핸드폰을 보며 딴 짓을 할 때도 있는데다 대뜸 30분씩 자리를 비우기도 하는 선배.

그런데 나보다 더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부른다면?

체력도 엄청 좋아서 빡세게 연습하다가도 결국 백기를 드는 건 자신.

‘뭐랄까, 재능러 천재 1등을 보는 2등 노력형 수재의 억울함? 화가 안 날 수가 없었을 텐데 내색 한 번을 안 했지.’

나한테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가왔고, 씩씩한 모습만을 보여줬다.

‘얘는 싫을지 모르겠지만, 친한 동생 같이 연락하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워낙 못 해준 게 많다 보니 먼저 연락하고 지내자는 말을 못하겠다.

다만 나도 변명할 건 있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시기이지 않았나?

내가 여자나 친구와 히히덕거리려고 연습실을 비운 게 아니다 보니 시애가 많이 억울해 하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내 사정을 말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과를 하기엔 쟤가 먼저 잘못을 따진 적이 없으니 말이다.

‘뜬금없이 사과하는 것도 좀 웃긴 일이니까.’

그래도 무대가 얼마 남지 않은 현재에는 나도 빡세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장모님과 최관씨의 일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에, 이제 정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덕분이었다.

시애는 지금이라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진작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좀 더 믿음직스러운 선배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으니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례지만, 바쁘지 않으시면 딱 한 번만 더 해볼까요? 제가 긴장이 돼서….”

시애가 매우 송구스럽다는 듯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 오늘 시간 많아. 날 샐 때까지 춰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

“정말요?! 진짜 그래도 돼요?”

“응응.”

“제가 잔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라서요. 연습을 보통보다 훨씬 많이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무대를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선배님이 바쁘시면 어쩔 수 없이 혼자서라도 하려고 했는데요….”

주절주절 내놓는 변명들.

여태까지 티를 내진 않았지만 나 때문에 속앓이를 한 건 사실인 것 같았다.

“미안. 내가 시간을 많이 못 내줬지?”

“아, 아니에요! 제가 너무 성가신 성격이라서 문제죠. 선배님은 이미 잘 하시는데 저 때문에 계속 시간 내주시는 거였잖아요. 사실 우리 그룹이 막 실력이 대단하고 그런 그룹이 아니에요. 그런데 실력파 그룹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게 연습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덕분이었거든요.”

연습하는 내내 잔 실수 없이 완벽하게 무대를 해내는 나와 달리 시애는 실수가 굉장히 많았다.

지금조차도 삐끗하면 실수를 하는 게 시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건 다 뒤에 숨겨진 엄청난 노력 덕분이었다.

천재라서 실력파 아이돌 그룹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엄청난 끈기와 노력으로 연습을 해서 얻은 실력으로 인정을 받은 그룹인 것이다.

‘진짜 성격 좋네.’

이러니 내가 안 미안 할 수가 없는 거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 너무도 쉽게 춤과 노래를 익히는 나를 질투하기보다는 본인의 실력을 어떻게 해서든 나에 맞춰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보이니 말이다.

‘잘 해주고 싶었는데 일이 다 해결 되니까 끝무렵이 되버렸어.’

개인적으로 시애와 꾸미게 된 무대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애를 도우며 무대를 연습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대단한 무대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시애는 오늘 하루종일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럼 쉴 만큼 다 쉬었으니까 다시 한 번 해볼까요, 선배님?”

“그래.”

등과 이마 겨드랑이에 땀이 흠뻑 젖은 시애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헤실헤실 웃으며 음악을 틀었다.

시애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나 또한 진지하게 연습에 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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