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398화 (398/849)

〈 398화 〉 #59. 후배 시애 (2)

* * *

“그래서 뭔가 썸씽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고? 남자를 이 시간까지 붙잡아놓고 있었으면서?”

시애는 멤버의 물음에 시큰둥하게 고개를 저었다.

“없었지. 바쁘셔서 나랑 있을 땐 연습하기 바빴으니까.”

“멍충아! 그게 자랑이냐?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데 좀 잘 해보지 그랬어! 그래야 우리한테도 콩고물이 좀 떨어졌을 거 아냐!”

“우이씨! 팬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해보긴 뭘 해봐! 그리고 나랑 선배님이 어울리기나 하냐?”

여자들의 얼굴이 상향평준화 된 세상에서 시애와 같은 그룹 멤버들은 특출난 편이 아니었다.

그나마 시애가 멤버들 중에서 가장 괜찮은 얼굴을 갖고 있었지만, 진해솔 선배님을 옆에 두고 있으면 손색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해솔 선배님의 짝이라면 나 같은 여자보단 훨씬 멋진 여자를 만나야지.’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했음을 눈치 챈 멤버들이 울컥해져서 시애에게 말했다.

“원래 꿈은 크게 가지는 거야!”

“나는 무사히 이번 무대를 끝내는 게 목표야. 다른 생각은 없어. 선배님이랑 사적으로 얽히는 순간 우리 그룹은 나락인 거야. 멍청이들아!”

“정말 사심이 하나도 없었어?”

“어! 없어!”

“오올~”

“오오오오~”

“우리 시애, 언제 이렇게 다 컸지?”

“진짜 대견하다, 대견해!”

멤버들이 시애의 단호한 대답에 진짜 아무 일 없었음을 확인하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 수상한 반응에 시애가 눈을 흘겼다.

“뭐야? 지금 나 함정수사 한 거야?”

“흐흐, 미안. 매니저 언니가 꼭 확인해보라고 하셔서.”

“와~ 배신감 느껴져!! 너무해!”

“미안미안!”

“그치만 선배님이 잘생겨도 너무 잘생기셨으니까!”

“여자라면 넘어가지 않고는 못 베기지.”

“난 안 넘어갔거든?! 그리고 남자 사귀려고 출연한 프로그램이냐?! 우리 그룹 알리려고 출연한 곳이잖아! 내가 설마 그렇게 철이 없을까.”

시애는 입술을 삐죽이며 삐진 척을 했다.

멤버들이 삐진 시애를 달래주기 위해 우다다 달려들었다.

“아이잉~ 한 번만 봐줘!”

“으악!”

“우리가 진짜 미안하다아~~”

“살려줘! 악!”

“의심해서 미안하다구!! 얍얍!”

“아악! 사과를 왜 암바를 하면서 하는 건데에!! 항복! 항보옥!!”

멤버들과 바닥을 뒹굴면서 탭탭으로 ‘암 바(arm bar)’에서 겨우 풀려난 시애가 바닥에 축 늘어졌다.

가뜩이나 고된 연습으로 온 몸에 근육통이 왔는데 멤버들이 짓궂게 놀리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내일 긴장하지 말고 잘 해야 돼. 너 연습 정말 많이 했잖아.”

“몸만 고생했냐? 마음도 고생 많았잖아.”

여기서 말하는 마음고생은 진해솔 선배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예능에 출연해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아 온 그녀는 해솔 선배님이라면 매우 매너 있는 편인 거다.

“그건 내 잘못이니까. 익숙한 마음고생이기도 하고.”

그녀가 고생했던 건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실력이 빠르게 끌어올려지지 않아서.

척척 쉽게쉽게 해내는 선배님에 비해 자신은 연습, 또 연습으로 고생해야 하는 걸 보며 시애는 꽤 많은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연습생 때부터 독기 하나로 이 자리에까지 왔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힘들었던 것 같다.

‘비교 대상이 너무 우월했어.’

선배님이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형편없는 편인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몸도 고생했지만, 마음도 많이 고생한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멤버들이 말했다.

“무대에서 얼마나 잘하는지 두 눈 크게 뜨고 지켜 볼 거야. 오늘도 선배님은 실수 한 번도 안 하신 거야?”

“응. 한 번도 안 하셨어.”

“칫!”

“질투난다, 증말. 사람이 왜 이렇게 잘났냐.”

“다들 알지? 응원이라도 이겨야 돼!”

내일 무대를 꾸미는 시애를 응원하기 위해 멤버들이 모두 보러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선배님 그룹 멤버도 응원을 위해 참석하기로 했다고 들었기에 멤버들 의지가 대단했다.

적어도 멤버들 응원은 우리가 낫다는 평가를 받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우리가 빡세게 응원해줄게!”

“응원봉도 준비했어!”

“기대하라고!”

에어플레인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압도적으로 많은 팬들을 갖고 있었고, 반면 시애의 그룹은 신생으로 이제 막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관객 응원은 진해솔 선배님에게 쏠릴 터.

함께 무대를 서는 시애를 위해 멤버들이 온갖 준비물을 다 챙기고 있는 중이었다.

장난기가 많아서 자주 시애를 못 살게 구는 멤버들이지만, 의리 하나는 기가 막히는 녀석들이었다.

아마 무대 아래에서 주변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시애를 위해 열심히 이름을 외쳐줄 것이다.

“드디어 내일이구나.”

“너 오늘 잘 수 있겠어? 큰 무대 있는 날이면 매일 잠 설치잖아.”

“응, 괜찮아. 피곤해서 눕기만 하면 바로 잘 자신 있어. 그러려고 열심히 연습하고 온 거야.”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 싹싹 쓰고 온 게 지금이었다.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려준 멤버들에게 고마워서 침대에 눕지 않은 거지, 마음 같아서는 냅다 침대에 눕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좋았어! 그럼 바로 자자. 최고의 컨디션으로 가야지!”

후다닥!

잠을 잘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멤버들이 어화둥둥 시애를 데리고 방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시애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냅다 코를 골며 잠 속으로 빠졌다.

멤버들은 그런 시애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드디어 내일.

시애가 한동안 끙끙 앓면서 열심히 준비한 무대가 세상에 나오는 날이었다.

? ? ?

무사히 수술을 마친 최관씨는 더 이상 목숨에 지장은 없으나 재활 기간이 굉장히 길 것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최관씨가 입원한 곳을 꾸준히 찾아가서 여러 가지 조취를 취했다.

그녀의 회복을 돕는 아이템들을 이곳저곳에 배치해둔 것이다.

[회복 화초(60일)]

­아기 천사가 키운 화초. 기간 동안 신체의 회복을 돕는 향긋한 향기를 내뿜는다.

[먹지마세요 건강에 양보하세요 (60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피지 않는 봉우리 꽃. 정신적 스트레스에 큰 도움이 된다.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꽃이 피며 효과가 사라진다.

[걱정 인형(60일)]

­근심 걱정은 이제 그만! 불행한 꿈을 먹고 행복한 꿈으로 바꿔준다.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평범한 인형으로 돌아간다.

기간제라서 코인이 얼마 들지 않는데, 최관씨에게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들이 이것 외에도 꽤 많았다.

장모님에게 사용했던 아이템은 눈에 띄어서 안 되는 것도 있지만, 가격이 워낙 센 탓에 목숨에 지장이 없는 최관씨에게 쓰긴 과한 면이 있었다.

대천사의 축복은 목숨이 위험한 경우에나 쓰는 거지, 후유증을 치료하는데 쓰는 아이템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체력주머니를 이용해 꾸준히 체력을 넣어줌과 동시에 몸이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아이템들을 그녀의 병실에 가져다 놓았다.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평범한 물건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굳이 내가 귀찮게 회수를 하지 않아도 편리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템 효과 덕분이었을까?

“네가 그만하라고 했지만 역시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고맙다고 하시려고요?”

“응.”

“이번에는 왜요?”

“관이가 많이 회복했어. 일어나는데 한 달은 족히 걸릴 거라고 했는데, 오늘 일어났다고 하더구나. 아직 과한 움직임은 안 되지만, 그것만으로도 관이가 많이 좋아하고 있어.”

연주 누님은 이미 도움을 받은 것에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놓은 것들이 계속 누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고, 수시로 감사 인사를 받으며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해 누님에게 해둔 말이 있었다.

“감사 인사는 제가 뭐로 하라고 했죠?”

“…섹스로 하라고 했었지.”

“그럼 오늘 기대해도 되는 거죠?”

“!!”

요 근래 자주 얼굴을 보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님과 잠을 잤던 게 굉장히 오래 전이었다.

불뚝?

말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반응을 하려 한다.

아직 타이밍이 아니었기에 아래에 들어가는 힘을 뺀다.

“흠흠. 회사에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면 곤란해.”

연주 누님이 다소 난감한 듯 헛기침을 한다.

그러면서도 두 볼이 발그레해져 있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연주 누님도 나와의 밤을 기대하고 있음을.

그동안은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이런 부분을 어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심각한 상황에서 그걸 하자고 할 만큼 철없고 섹스에 미친 놈은 아니다.

물론 연주 누님이 아니라 다른 내 여자와 잠자리를 가져도 무방한 일이었지만, 그러지 않고 참았다.

누님은 출근해서 빠르게 일을 처리 하고 퇴근해서 장모님 병실에서 간호를 하다가 피곤한 채로 잠들고 있는데 나만 쏙 빠져서 여자랑 헤죽거리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우리 자주 만나긴 했어도 잠은 같이 못 잤잖아요. 장모님 곁을 지키느라요.”

“으음…그랬지.”

“그러니까 오늘 밤에는 찐하게 안아드릴게요. 그동안 못했던 것까지 전부 몰아서요.”

내가 이런 자극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장모님이 병원에서 퇴원을 하신 덕분이다.

병원에서 재활하시는 게 답답하셨는지 두 발로 혼자서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단호하게 퇴원을 외치셨다.

너무 빠르게 회복한 몸인지라 의사는 혹시 모를 일이 생길 수 있다며 붙잡았으나 장모님은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우기고 퇴원을 강행하셨다.

‘대천사 축복이 비싼 값을 했어.’

내가 봐도 장모님은 회춘하셨다고 봐도 될 정도로 정정해지셨다.

그렇게 장모님이 본래의 자리에 돌아간 이후에야 연주 누님은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최관씨가 아직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완전히 신경을 끊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살려주고, 해결해주고, 또 살려주고. 다 했으니까 이제 마음 편하게 쉬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연주 누님도 장모님이 퇴원하고 난 후에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는지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 그러자.”

사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이번 스케줄이 끝나면 현오랑 연주 누님과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래야 이번 일이 확실히 끝났구나 실감을 할 것 같달까?

너무 피폐한 일을 갑작스럽게 경험하다보니 힐링이 필요했다.

밤에 찐하게 안아주겠다는 말로 살짝 흥분이 돌았는지 연주 누님의 기대감 서린 눈빛이 됐다.

“그리고 현오도 이제 많이 컸으니까, 여행 가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행?”

연주 누님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네. 별로에요?”

일에 진심인 연주 누님인지라 여행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원래 아이가 생기면, 학교 들어가기 전에 자주 놀러 다니게 되는 거 아니겠나?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 시간이 안 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애들이 된다.

그래서 바쁜 스케줄 사이사이에 주아 누나와 정화씨 그리고 태양이랑 함께 나들이를 다녔다.

현오랑 지현이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클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 정도 컸으면 괜찮지 않겠나 싶었다.

원래 여행은 살짝 즉흥적이게 결정해서 가는 게 좋은 거다.

하지만 연주 누님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는지 동공이 흔들렸다.

“글쎄, 여행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보세요. 누님은 여행가고 싶지 않아요? 현오랑 같이 셋이서 엄청 재밌을 텐데….”

여행이라는 게 계획 단계에서부터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지라 나도 모르게 히죽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연주 누님이 심각하게 생각에 잠겼다.

아마 지금 일과 여행을 저울에 넣고 저울질을 하고 있으리라.

‘내 입장에선 저울질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결심을 한 듯 누님이 말했다.

“그래, 가자.”

“오! 이렇게 바로 결심하셔도 괜찮은 거에요?”

“대신 우리끼리만 가지 말고 가능한 사람들 전부 불러.”

“네?”

“네가 말하는 가족들 말이다.그 가족들이랑 다 함께 가자는 거야.”

“여행을요?진심이에요?”

연주 누님 답지 않은 결심에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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