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9화 〉 #59. 후배 시애 (3)
* * *
연주 누님이 이번에 다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한 이유는 나에 대한 고마움을 때문으로 보였다.
분명 성향에 맞지 않은 일이었는데도 이런 제안을 해줬다는 게 무척이나 기쁘고 고마웠다.
그리고 모처럼 이런 제안을 받았으니 정말 재밌었다는 추억이 남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 전에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내야 하겠지만 말이다.
“선배님, 기분 좋아보이세요!”
“응. 하하. 좋은 일이 있을 예정이거든.”
“어떤 좋은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무대를 앞두고 있는 후배와 나는 대기실에서 긴장을 풀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시애는 내가 기분이 좋아 보였는지 이유를 물었고, 고민하다가 이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 말했다.
“이 프로그램 끝나면 친구들이랑 여행 가기로 했거든.”
“우와! 여행! 너무너무 좋으시겠다~!”
시애는 엄청나게 큰 리액션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해외여행이에요? 아님 캠핑?”
“글쎄, 아직 그것까진 결정 못했어. 그래도 어디든 떠나는 것 자체가 좋으니까. 캠핑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열심히 일했으면 떠나야죠!! 사실 저도 여행 되게 좋아하거든요. 막 엄청 멀리 떠나는 부담스러운 여행 말고 가볍게 주말에 가볍게 다닐 수 있는 캠핑으로요.”
“캠핑 좋지.”
“맞아요! 캠핑 엄청 좋아요. 캠핑 다녀오면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거든요. 사실 엄마가 캠핑족이세요. 어릴 때는 싫다고 해도 억지로 끌고 다녀서 짜증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더라고요.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우리 같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직업군한테는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는 취미가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
스타들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닌지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정말 세심하게 관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이템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없앨 수 있기에 스트레스가 잘 안 쌓이는 편이었다.
“아, 말이 나와서 그런데 사탕 먹을래?”
“사탕이요?”
“긴장도 완화 시켜주고 입 안은 상쾌하게 해주고, 또 목 건강에도 도움 될 거야. 컨디션이 좋아지니까 스트레스도 낮아지겠지?”
“…방금 사탕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응. 사탕 맞는데.”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황당해 하는 눈치다.
상식적으로 설탕으로 만들어진 사탕이 어떻게 그런 만병통치약 같은 효과를 낼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사탕은 진짜 그런 능력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멤버들도 이 사탕만 주겠다고 하면 껌뻑 넘어갈 정도다.
“속고만 살았어? 한 번 먹어봐. 내가 못 먹을 걸 후배한테 주겠어?”
“…맛은 고를 수 있는 거에요?”
시애가 나름 반항(?)을 하겠다는 듯 맛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그래. 골라줄게. 어떤 맛이었으면 좋겠어?”
“어…저는 딸기맛이요!”
“자, 이게 딸기맛이야.”
시애가 사탕을 요모조모 살펴보다가 입에 쏙 넣었다.
“어? 맛있어요!”
“그치? 원래 몸에 안 좋은 건 맛있다는데, 이건 몸에 좋은데 맛있기까지 하거든.”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꺄르르 웃는 시애가 사탕을 먹는데 집중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기 목을 붙잡았다.
“어…선배님?”
“응?”
“목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뭐라고 해야 되지, 이걸?”
“목이 시원하지?”
“네! 근데 이건 박하 맛이 아닌데….”
“박하를 먹었을 때랑 느낌이 같진 않지. 내가 말했잖아. 목에 좋은 거라고. 다 먹고 목 살짝 풀어봐.”
“진심으로 하시는 말이에요?”
여전히 의심하는 걸 보며 어깨를 으쓱여 보이니 시애가 진짜 시도를 해보려는지 열심히 사탕을 우물우물 빨아 먹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이내 우드득 소리가 났다.
“깨물어 먹는 거야? 이빨 괜찮아?”
하긴, 아직 나이가 어리니 이빨 걱정할 시기는 아닌가?
씩씩하게 사탕을 모두 해치워버린 시애가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풀기 시작했다.
가수가 목을 푸는 걸 무척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좋지 않은 시선이나 웃긴다는 시선을 보는 사람도 많다.
가수들이 목을 풀기 위해 내뱉는 소리들이 은근히 웃긴 게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을 푸는 가수 입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어어?”
노래를 한 번 부르고 말 게 아니지 않은가?
관리를 잘 해야 오랫동안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거였다.
더불어 이 순간에 오늘 내 목 상태가 어떤지 확인도 가능하다.
오늘 목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말이다.
“선배님!! 그 사탕이 진짜 효과가 있나봐요!!”
시애의 눈이 크게 커졌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응? 진짜?”
“아이! 선배님이 그러셨잖아요. 목에 좋은 사탕이라고요!”
“하하하, 그걸 정말 믿었어? 당연히 장난이었지.”
“아니에요. 고음이 너무 쉽게 올라가요. 목이 뻥 뚫린 기분이라니까요?”
“난 잘 모르겠는데. 평소에도 이 정도로 불렀잖아.”
내가 모르쇠를 하자 시애가 답답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곡 한 번 불러봐. 자주 들어봤으니까 그걸 부르면 확 느껴지겠지.”
“네! 한 번 불러볼게요.”
곧 무대 위에서 불러야 하는 노래다.
연습했을 때보다 시원하게 뻗어 나오는 고음.
시원시원하고 우렁찬 목소리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어때요, 선배님?”
“너무 잘 부르는데?”
“저도 부르면서 깜짝 놀랐어요. 원래 이렇게 부르려면 목젖이 터지도록 힘줘야 하거든요. 근데 지금은 너무 쉽게 쑥쑥 올라갔어요! 그 사탕 어디서 구매하셨어요? 저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이런 말을 내가 어디 한 두 번 들었는가?
이럴 땐 어디서 샀다는 말을 하기 보단 이렇게 변명하는 게 최고다.
“이거 친구가 직접 만든 수제 사탕이야.”
“네? 친구가요?”
“응. 선물로 받았어.”
“아…그럼 역시 제가 느낀 건 그거일까요? 위약효과 같은 거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 아니면 진짜 이 사탕에 그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뭐든 노래만 잘 부를 수 있으면 된 거 잖아.”
물론 시애가 사탕의 효능이 위약 효과라고 생각한다 해서 효과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시애는 내 말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선배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뭐가 됐든 노래만 잘 부르면 되는 거니까요!”
시애가 발랄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자기 목을 점검했다.
잠깐의 뽀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이번에도 시원시원하게 소리가 뻗어나간다.
똑똑똑!
“누구세요?”
“우리야!”
“앗! 얘들아!”
시애가 멤버들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
너무 기쁜 마음에 주체가 되지 않았던 걸까?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멤버들을 향해 우다닥 달려든 시애가 누군가의 품에 폭하고 안긴다.
“헉!”
“허억!”
“으악! 나,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
시애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 방문한 사람이 시애의 멤버들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어어….”
“허억! 죄, 죄, 죄송합니다아아아악!!!!”
나도 이 우연한 헤프닝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가 봐도 잘 컸다고 말할 수 있는 기우연과 시애의 조합이 의외로 나쁘지 않게 여겨진 것이다.
난데없이 여자 품에 안겨(정확히 말해서 우연이가 안은 거지만.)진 우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시애는 자기가 남자를 덮쳤다는 걸 깨닫고 후다닥 뒤로 물러나서 90도로 사과를 박았다.
치마를 입고 있어서 완벽한 그랜절은 못했지만, 거의 엇비슷할 정도의 숙임이었다.
“아, 아니에요. 괘, 괜찮아요.”
기우연이 무척 수줍게 사과를 받아준다.
두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하지만 워낙 사람이 많았던 지라 그 분위기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우와아앙~ 오늘 이뿌다, 시애야~!”
“히히, 나 좀 이쁘나?”
“완전완전!”
“긴장감은 좀 어때? 잘 할 수 있지? 얼굴색은 좋은데.”
여자 아이돌답게 우르르 몰려서 재잘재잘 떠든다.
반면 우리 멤버들은 말없이 슥 다가와서 툭툭 어깨를 두드려주는 게 전부였다.
시애 그룹처럼 걱정을 한다기보다는 고생했다는 의미의 두들김이었다.
“잘 할 거지?”
“당연하지.”
“기왕 하는 거 1등해라.”
프로그램의 취지가 경쟁을 하라는 뜻이 아닌데, 시애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이기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하지만 대충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는 알고 있다.
1등을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그리고 잘 하라는 뜻인 것이다.
“그나저나 다들 잘 꾸미고 왔네.”
“어. 잠깐이지만 카메라에 담길 수 있어서 그런지 샵에 데려가더라고.”
“경태 형이 그냥 마스크에 모자 쓰고 가자고 했거든요. 그 말 듣고 실장 누나가 기겁했어요.”
부끄러운 일을 당해서 한동안 말이 없던 우연이가 시간이 흘러 회복이 됐는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잠시 각자의 멤버들끼리 뭉쳐서 대화를 나눴고, 이후에는 서로 멤버들을 소개해주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다만 다들 어색해서 자리가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 이제 자리에 앉으러 가야 돼서.”
“이따 무대 위에서 봐요, 형!”
“응, 기대하고 있어. 멋진 모습 보여줄 테니까.”
멤버들을 배웅하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시애도 멤버들을 배웅하고 왔는지 조금 힘들어 보이는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더라.
“힘들어?”
“힘들진 않은데, 멤버들이 왔다 가니까 갑자기 허전해져서요. 매일 같이 무대에 올랐잖아요.”
“확실히 혼자 무대에 오르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긴 하지.”
시애가 공감 된다는 듯 고개를 힘껏 주억였다.
♩♬♩♪♬~
그때, 내 핸도폰이 울린다.
“어! 선배님, 전화 왔어요!”
내 핸드폰이 마침 시애의 옆에 있었던 지라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서 건네주었다.
그러다가 연락처 이름을 저도 모르게 봤는지 시애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나도 순간 아차 싶더라.
핸드폰을 들어서 전화를 한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을 해보니 하필이면 태양이다.
남자 아이는 어딜 가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미리 키즈폰을 사줬는데 그걸로 나한테 전화를 건 것이다.
내가 태양이 어떻게 저장했는지 생각해보면 시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이유가 이해된다.
[내꺼]
아들이라는 의심은 되지 않은 이름이지만, ‘내꺼’라고 이름을 저장한다는 게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아마 시애는 ‘내꺼’라는 사람의 정체를 애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차라리 애인으로 생각해주는 게 다행인가?’
여기서 내가 자리를 피해 전화를 받는다면 애인이라고 오해하는 게 빼박이 될 것이다.
내가 변명 한들 그걸 진심으로 들을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저, 전화 받으세요. 저, 저는 화장실을 좀 가야 해서…헤헤.”
시애가 후다닥 대기실을 나갔다.
‘완벽하게 착각했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다.
아빠아!!
“응~ 이쁜이,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아빠아!!!!
“응, 아빠야.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오디야?
“아빠는일하는 중이지.”
할무니가 아빠 보고 싶대에~
“정말?할머니가 그랬어?”
응!
"아들은? 아들은 아빠 안 보고 싶어?"
나 아냐! 할머니가 그래써.
"아...태양이는 안 보고 싶구나?"
내가 한 말의 뜻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할 말만 열심히 하는 태양이.
내가 할머니 몰래 말해주는 거야아~
정화씨가 내가 보고 싶다고 말했고, 기특하게도 태양이가 그걸 나한테 전해주려고 전화를 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가 보다.
쑥쑥 잘 크고 있는 태양이는 이제 할머니 기분도 생각할 줄 아는 아이가 됐다.
너무 귀여운 태양이의 행동에 당장이라도 달려가 뽀뽀 세례를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알았어요~ 보고 싶다고 하니까 보러 가야지. 일 끝나고 금방 갈게.태양이도 할머니처럼 아빠 기다리고 있을 거지?”
으응~?
“아이, 왜 또 모른 척이야.”
히히, 근데 이짜나! 나 이빨 빠져써.
“이 빠졌다고? 정말? 저번에 이 빠질 때 태양이 울었잖아. 이번에는 안 울었어?”
웅? 몰라~ 안녀엉~
뚝!
"...."
내 질문에 대답도 않고 자기 할 말이 끝나니 터프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태양이.
이럴 거면 마지막에 이빨 빠졌다는 말은 왜 한 건지 모르겠다.
“하, 그래도덕분에 힘이 나긴 하네.”
태양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보약을 먹은 것 마냥 힘이 불끈불끈 솟았다.
무대를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시애한테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늘 무대를 끝내면 더 이상 시애와 만날 이유가 없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연을 끊어버리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만큼 진국인 아이였기에 고민이 됐다.
‘그냥 애인이라고 할까? 시애라면 알아도 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아들이라는 것만 모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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