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00화 (400/849)

〈 400화 〉 #59. 후배 시애 (4)

* * *

무대 아래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무대 위에까지 끌고 오는 사람은 없었다.

시애는 언제 어색하게 자리를 피했냐는 듯 무대 위에서 나와 환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내게 받은 사탕으로 각성이라도 했는지 시애가 무대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흥이 돋은 시애가 너무 과하게 혼자서 치고 나가자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녀의 템포에 맞춰서 움직였다.

당황스러운 돌발 상황이었지만, 관객들은 폭주하는 시애와 그에 맞추는 내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환호성을 내질렀다.

관객들이 무대를 한껏 즐기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시애가 폭주하듯이 달리는 것을 뭐라 할 수 없어졌다.

실력이 안 돼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주 가곤했던 카페에 네가 보이면~♪”

“모든 건 달라지고 있어~♪ 내 안과 밖 모두가~♪”

“너는 무심한 남자~♪”

“나는 쉬운 남자~♪ 조금만 애태우고 다가갈래~♪ 기다려줄래~♬”

“이건 우리의 연애 전 이야기~♪↗↗↗”

시애는 자기도 너무 흥에 취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내가 문제없이 음을 맞춰가자 안도하며 다시 한 번 흥을 폭발시켰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 고음.

그 아래를 내가 단단한 목소리로 잡아줬다.

‘사탕 효과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실력을 올려주진 못할 텐데.’

지금 시애가 보여주는 실력은 사탕의 효과가 아니었다.

실력을 지금처럼 올려준다면 사탕의 값은 지금보다 훨씬 비쌌어야 한다.

‘시애는 실전 타입이었구나. 연습을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실전에서 실력이 늘었어.’

쟤는 본인이 굉장히 둔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그렇게 독하게 연습할 끈기를 가진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이 더하고 더해져서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가?

본인의 실력이 늘었다는 걸 알고 있는 우리는 무대 위에서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통통 튀는 음에 맞춰 몸을 흔든다.

한 편의 뮤지컬처럼 가사 속 상황을 그려내는 댄스에 흥이 오른다.

‘재밌다.’

난데없이 아이돌을 하게 된 나지만, 무대에 올랐을 때 즐거움을 잘 알고 있다.

관객과 호흡하고, 환호성을 들으며 연습실에서 주구장창 추던 춤을 출 때면 음악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연습을 하면서 지겨울 정도로 추던 춤이 어떻게 재밌을 수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렇다.

연습실에서 추는 춤과 무대 위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추는 춤은 달랐다.

무대는 점점 하이라이트에 다다른다.

나는 시애를 유혹하듯 몸을 가까이 가져갔다가 휙하니 도도하게 거리를 벌리고, 시애는 닿을 듯 닿지 않은 나를 보며 애 타는 마음을 열심히 춤으로 표현했다.

오오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관객석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났는데, 순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내가 인이어를 끼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이거다.

나는 관객들이 보여주는 반응을 고스란히 느끼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닿을 듯 말 듯 애를 태우던 나는 언제 애를 태웠냐는 듯 시애의 품으로 뛰어든다.

마지막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스캔들이 날까봐 팬들이 뾰족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의 무대를 만드는 게 부담이긴 했어.’

제대로 못하면 쌍방에서 욕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사실 잘 할 자신이 있어서 그랬던 거다.

‘팬들이 걱정하고 있는 부분에 정면으로 달려든 거지.’

연습하는 내내 우리는 ‘여자’와 ‘남자’보단 ‘선배’와 ‘후배’의 느낌이 강했다.

시애도 나를 선배님으로 깍듯하게 대했고, 나는 시애를 후배로 귀여워 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이런 무대를 꾸밀 수 있었지.’

꿀릴 게 없으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이 무대는 시애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거다.

논란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군인처럼 딱딱한 말투로 거리감을 뒀으면서 과감하고 앙큼한 제안을 하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더라.

‘소속사에서 시켜서 나한테 거리감을 두긴 하지만,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걸 은연중에 표현한 거지.’

시애의 마음이 이해가 됐기에 흔쾌히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우리의 무대는 도발적이고 섹시하다.

사랑하고 싶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유혹하고 있는 내용이니 오죽할까?

그리고 애 태우는 밀당의 순간을 넘어 사랑이 이뤄진 순간 춤은 절정에 오른다.

우리는 군무를 추는 것처럼 척척 호흡을 맞춰나갔다.

연습하는데 썼던 시간이 비로소 지금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대 장치가 펑펑! 소리를 내며 폭죽을 터트린다.

와아아아!!

흥이 오른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상황.

영원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끝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안무의 마무리가 다가오고 우뚝 제자리에 섰다.

시애의 뒤에 선 내가 그녀의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는 마무리 엔딩이었다.

꺄아아악!!!

안 돼에~!

잘 어울려요!!!

꺄악! 너무 섹시해!

터져버릴 듯 뛰는 심장과 헐떡이는 몸과는 달리 짜릿한 쾌감이 몰려든다.

아마 아드레날린이 붐비 돼서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무대를 하고 있을 때도 좋지만, 끝나고 나서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는 이 순간도 마약처럼 달콤하다.

“와아~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정말 화끈한 무대를 꾸며주셨습니다.”

프로그램의 MC가 우리의 무대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대가 끝났으니 이제 인터뷰를 할 때였다.

MC는 우선 출연진들에게 무대의 감상을 물어봤다.

“무대 어떻게 보셨나요?”

“해솔 선배님도 훌륭하셨지만, 저는 시애씨가 눈에 띄더라고요.”

“시애씨가 정말 잘하셨죠?”

“무대 위에서 다양한 매력을 다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섹시할 때도 있고, 귀여울 때도 있었고, 청량할 때도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 다양한 매력을 다 보여주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해내셨어요.”

“시애씨가 데뷔한지 얼마나 됐죠? 2년도 채 안 되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세상에, 요즘 신인들 정말 무섭다. 어쩜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죠?”

시애를 향한 칭찬이 쏟아진다.

시애는 기쁨에 어쩔 줄 몰라하며 이러다가 입이 찢어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웃어댔다.

기분이 정말 좋은가 보다.

모든 출연진들이 시애가 저렇게 잘 하는 줄 몰랐다는 평이 많았다.

당연하지만 나에 대한 칭찬도 쏟아졌다.

“해솔씨는 역시 최고의 인기 그룹다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요. 뭐랄까, 명불허전이라고 할까요?”

“정말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어쩜 그렇게 춤을 잘 추시는지….”

“진해솔 선배님의 무대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어요.”

그렇게 훈훈한 인터뷰가 마무리 되고.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시애는 무대 위에 있었던 꿈같은 시간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사실 기분이 붕 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무대를

“저 너무 행복해요, 선배님.”

“정말 잘 했어요. 고생 많았어.”

“흐이잉~ 눈물 날 것 같아요.”

쏟아지는 칭찬에 행복함을 느끼는 시애가 내 팔에 매달려 동동 발을 굴렀다.

“전부 선배님 덕분이에요. 제 인생에서 오늘이 최고로 행복한 날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실력이 확 늘은 거 본인도 느꼈죠?”

“네!!”

뭐든 배우기 시작한 초반에는 실력이 쭉쭉 늘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들면 실력 향상이 더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이번 무대에서 표가 날 만큼 실력이 쑥 늘어났지 않은가?

그러니 좋아 죽으려고 할 수밖에.

사탕이 계기가 되어주긴 했지만,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기특한 마음에 시애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 지었던 미소가 태양이나 현오, 지현이에게 지었던 미소와 비슷했던 걸까?

내 모습을 카메라가 촬영을 했고, 이후에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찐아빠 미소라며 우리 조합에 아빠와 딸이라는 황당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이는 훗날에 벌어지는 일이고, 나는 시애의 등을 두들기며 그동안 고생했다며 연신 칭찬을 해주었다.

? ? ?

[찐 남매 케미를 넘어선 찐아빠딸 케미를 보여준 진해솔, 시애.]

[동시간대 시청률 1위 달성! 마니또, 다시 부활하나?]

[선후배의 훈훈한 비하인드 영상에 흐뭇한 미소 절로 나와.]

[무대 위에서는 보지 못했던 스타들의 구슬땀 흘리는 시간 전격 공개!]

우리가 나왔던 촬영 분은 빠르게 편집 되어 방송을 탔다.

의외로 제작진이 연습 과정을 많이 활용해서 내보냈는데, 신기하게도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통했다.

우리 입장에선 꾀죄죄한 몰골로 땀 흘리면서 힘들어하는 걸 보고 왜 좋아할까 의아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프로그램이 잘 된 만큼 여파는 섭외로 이어졌다.

그 프로그램 이후 따로 연락하지 않으면 만나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시애와 나를 함께 섭외해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던 것이다.

동반 출연 요청이었기에 마냥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시애는 스케줄 하나하나가 소중한 신인이었다.

마니또 프로그램을 끝내고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지라 나는 시애에게 양해를 구하고 단 두 개의 스케줄만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일단 첫 번째 스케줄은 시애와 내가 함께 촬영하는 커플 화보였다.

화보의 컨셉은 ‘미묘한 관계’.

찐 남매 같은 모습, 연인 같은 모습, 소꿉친구 같은 모습 등등.

시애와 나의 다양한 관계를 촬영하게 될 예정이다.

[귀여운 시애 : 저희가 비주얼 그룹이 아니라서 화보 촬영은 잘 들어오지 않거든요. 선배님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해보네요! ㅇ(〉▽〈)ㅇ]

두 번째 스케줄은 CF다.

시애가 가장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CF.

두둑하게 돈을 얹어 주는 스케줄이었기에 나도 굳이 어렵게 굴지 않고 받아들였다.

[나 : 요즘 전국을 다 돌아다닌다던데 괜찮아?]

[귀여운 시애 : 흐흐흐, 덕분에 돈방석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로그램의 성공은 자연스레 출연진들의 인기로 이어졌고, 시애와 우리 그룹 모두 그 수혜를 받고 있었다.

다만 시애와 우리 그룹의 다른 점이 있다면 단가가 너무 비싼 우리는 스케줄이 들어와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솔직한 말로 국내 스케줄 뛸 바에야 해외 스케줄 뛰러 가는 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미 잡혀 있는 스케줄을 뛰고, 새롭게 잡힌 시애와의 스케줄까지 모두 끝내야 여행을 갈 수 있었다.

나는 스케줄을 최대한 빨리 잡기를 바랐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스케줄을 하겠다고 배려해준 날 위해 시애가 촉박한 시간을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덕분에 우리가 다시 재회하게 된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애는 1년 만에 본 사람처럼 나를 반겨주었다.

“안녕, 시애야. 잘 지냈어?”

“네! 선배님은 여전히 반짝반짝 하시네요. 헤헷!”

“내가 반짝반짝 하다고?”

“네에…너무 잘 생기셨어요.”

“하하하. 고마워.”

“화보 촬영한다고 해서 저도 막 팩도 하고 그랬거든요. 피부과 가서 관리도 받았어요! 그런데도 선배님 옆에 서려니까 무슨 소용인가 싶네요.”

“에이, 작가님이 잘 만져주실 거야. 너무 걱정 하지 마.”

내 옆에 선 사람 중에서 만져(?)지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몇 없다.

그나마 가능한 사람을 꼽자면 우리 멤버들 정도랄까?

당연하지만 시애라고 그걸 피해갈 순 없을 것이기에 입에 바른 소리보다는 도움이 되는 말로 위로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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