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01화 (401/849)

〈 401화 〉 #59. 후배 시애 (5)

* * *

즐거운 촬영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촬영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던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시애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사이.

나는 먼저 옷을 갈아입고 촬영장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솔씨~ 오늘 정말 멋지시네요. 포즈를 이런 식으로 취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호호호! 긴장하지 말아요. 알려드리는 거에요. 내가 다년간 화보를 찍어봤으니까아~”

촬영을 주도 하고 있는 포토그래퍼님 아니, 포토그래퍼가 나에게 은밀한 터치를 하기 시작했다.

터치 자체는 포즈를 가르쳐주는 상황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포토그래퍼는 이런 상황이 무척 익숙해 보인다.

‘내가 참아 줄 수 있는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는 건가?’

손버릇이 아주 나쁜 사람 같다.

지금까지 은근하게 내 몸을 터치해오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다들 대놓고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아서 주변 혹은 내 눈치를 보면서 수작질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포토그래퍼는 자기가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니 이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으냐는 식으로 내 몸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나름 포즈를 연구하긴 했는지 그녀가 가르쳐주는 포즈는 내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 해솔씨는?”

“작가님이 이런 포즈를 원하신다면 그래야겠죠.”

아마 여기서 내가 반발을 하면 친절하게 포즈를 가르쳐주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다며 싸가지가 없다고 할 거다.

그뿐인가?

촬영하는 내내 내가 취하는 포즈를 지적하며 불만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르쳐주겠다고 할 때 잘 듣지 그랬냐고 비아냥댈 수도 있다.

이 바닥 사람들은 입에 가시를 패시브처럼 두르고 있었다.

‘잠깐 참고 편하게 촬영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번잡하게 싹 다 뒤집어버리고 나중에 다시 촬영하러 오는 게 맞을까.’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뚫을 만큼 불쾌감이 크다면 어쩔 수 없이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내가 아무 말 없이 포토그래퍼를 바라고 있자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는지 조금 더 대담해지며 더 좋은 포즈를 알려주겠다고 해왔다.

살짝살짝 터치만 하던 손길이 내 허리 쪽으로 움직인 순간.

시애가 옷을 갈아입고 왔다가 우리의 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를 질렀다.

“어어어어??????”

“악! 까, 깜짝이야. 뭐, 뭐에요?!”

포토그래퍼가 찔리는지 화들짝 놀라더니 시애에게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내 어깨로 향하던 손은 잽싸게 등 뒤에 감춘 후였다.

“어…그게 두 분이 너무 가까이에 붙어 계셔서요.”

시애의 눈치 없는 지적에 포토그래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찔리는 게 없으면 모를까, 찔리는 게 잔뜩 있는 상황에서 지적을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 나, 나는 그냥 포즈를 좀 알려주려고 그런 거에요!! 시애씨는 사람이 좀 무례하네? 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잖아!”

“네? 이상한 사람이라뇨. 그게 아니라 저는 작가님께서 선배님이랑너무 가깝게 서 계셔서….”

“포즈!! 포즈 알려주려고 한 거라니깐?!”

“포즈를 그렇게 가깝게 달라붙어서 알려준다고요? 그럴 이유가 없는데….”

불쾌한 행동을 한 가해자가 큰소리를 친다.

똥강아지도 자기 영역에선 목소리를 높이는 법.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곤 포토그래퍼의 스탭뿐이니 더 그랬다.

가재는 게 편이 아니겠는가?

시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포토그래퍼의 목소리는 기세를 몰아 시애를 압박한다.

시애를 향하는 시선이 뾰족해져가는 가운데, 여기서 더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기에 나서기로 했다.

“포즈는 이만 알려주셔도 될 것 같네요.저도 나름 화보를 자주 찍어봐서요. 작가님께 페 끼치지 않을 정도는 될 겁니다.”

여기서 포즈를 더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건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넌지시 말하니 포토그래퍼가 앗! 뜨거라! 하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호호호! 내가 너무 오지랖을 부렸나? 우리 해솔씨 대단한 거야 잘 알죠.”

“그럼 촬영 시작할까요?”

“흠흠, 그럴까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마냥 능청스럽게 상황을 모면한다.

시애는 입술이 삐죽 나와서는 불퉁한 얼굴로 다가와 속닥였다.

“저분이 불쾌하게 접근하신 거 맞죠?”

“그러려고 간 보긴 하더라. 손버릇 나쁜 사람인가 봐.”

“아휴! 하도 당당해서 전 제가 잘못 본 줄 알았어요. 어쩜 저렇게 뻔뻔하게 아닌 척을 할 수 있지?”

“알게 됐으니 이제부터 조심하면 되지. 이제 집중하자. 우리가 잘못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을 거야.”

“절대 그런 소리 못하게 잘 할게요!”

“그래. 파이팅 하자. 하하.”

의욕이 가득해진 시애와 내가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간다.

컨셉은 말했다시피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미묘한 관계’ ‘무언가를 시작할까 말까 하는 관계’ 들이다.

우리는 서로 친남매처럼 친했다가도 서로를 낯설어하고, 누군가는 무심했다가 누군가는 설레어하는 모습으로 촬영을 했다.

상황에 따라 우리들이 입은 옷이 매번 달라져서 갈아입는데도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포토그래퍼는 자신의 일(?)을 방해한 시애가 못 마땅했는지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포토그래퍼가 뭐라 하기 전에 내가 나서서 시애가 부족한 부분을 커버 해줬기에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을 같이 두고 찍어보니까 안타깝네. 두 사람은 얼굴 합이 잘 안 맞는다. 한 쪽으로 너무 쏠려. 보정을 얼마나 세게 해야 하는 거람? 어휴, 이렇게 차이가 크다는 걸 미리 말을 해줬으면 돈을 더 받았을 텐데.”

“네,네? 저요?”

시애에게 한 마디를 꼭 해서 복수하고 싶었는지 저렇게 말을 한 것이다.

타고 난 얼굴을 바꿀 순 없으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하...!"

시애는 너무 모욕적인 말을 면전에서 들은 지라 두꺼운 화장을 뚫고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포토그래퍼가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아는 것 같았다.

“작가님, 본인 실력 부족을 저희 얼굴 탓으로 돌리시면 곤란합니다.이번 일이 본인 능력에 벅찰 것 같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놓는 것도 방법입니다. 괜히 무리하게 의뢰 받았다가 망치면 여러모로 손해 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

"뭐, 뭐라고요? 지, 지금 나한테 한 말이에요? 나는 해솔씨가 아니라 시애씨를 말한 거였는데...!"

“알고 있습니다. 누가 됐든 작가님이 하신 말씀은 무척 실례되는 말이었습니다. 이번 일을 맡겨주신 분들한테도요. 저희 둘이 친 남매 케미로 TV에서 좋은 모습 보여줘서 이번 화보가 계획 된 겁니다. 우리가 잘 안 맞아 보이는 건 작가님만의 생각인 거죠. 아니면 실력이 부족하셔서 그렇게 보이게 찍으셨던가요.”

“내,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솔씨! 내가 누군지 알아?! 저쪽에 보면 내가 받은 상만해도 빼곡하다고! 두 사람이 안 어울려서 안 어울린다고 한 것 뿐인데, 그걸 내 실력 탓으로 몰아가면 안 되지!!”

“제가 보기엔 작가님이 부족하신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한 행동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서 남한테 화풀이하시고 계시잖습니까.”

부끄러운 걸 알면 하질 말았어야지.

포토그래퍼도 내가 뭘 지적한 것인지 모르지 않았다.

원래 찔리는 사람이 더 펄쩍 뛰는 법 아니겠는가?

웅성웅성­

포토그래퍼는 얌전한 모습을 보이던 내가 이렇게 돌변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당황하며 입을 벙긋댔다.

그와 동시에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되나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아까부터 시애를 계속 공격했던 것도 나 정도 되는 스타는 상대하기 부담스럽다는 걸 알고 하는 행동 아니겠나?

그런 주제에 욕망에는 솔직해서 나한테 성희롱을 하려고 했던 것이 우스웠다.

“너무하네, 정말. 아까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이러는 것 같은데,나는 호의로 가르쳐주려고 한 거야. 여태까지 나랑 작업한 사람들도 그렇게 나한테 배우고 갔어요. 두 사람이 유난히 예민한 거야. 본인들이 예민한 건데, 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면 곤란하지. 더군다나해솔씨가 분명 그랬잖아. 포즈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제가 감사하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작가님께서 그 포즈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을 뿐인데요.”

내 몸을 만지고 싶어서 접근한 사람한테 감사 인사를 했을 리가.

그런데 그녀는 자기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내가 포즈를 가르쳐줘서 고마워하는 줄 알았나보다.

만약 거기서 시애가 막지 않았다면 좀 더 과감하게 나를 터치했겠지.

그땐 나도 절대 참지 않았을 거다.

차라리 시애가 막지 않았다면 일을 좀 더 쉽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지금...이게 무슨 일일까요..? 혹시 우리 아티스트랑 싸우시는 겁니까?”

그리고 촬영장의 소란을 듣고 뒤늦게 매니저 누나가 나타났다.

아직 사태파악을 하지 못했는지 표정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

“잠깐 화장실 다녀왔더니 이게 무슨….”

하필 오늘 매니저 누나가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계속 들락 날락 거렸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배가 아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포토그래퍼도 그 사실을 알아서 잠깐 틈을 보인 사이에 나한테 그런 못된 짓을 한 것이었다.

매니저까지 등장하자 포토그래퍼는 다급해졌는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좀 의견 차이가 있었어요. 촬영하다가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잖아요?”

“의견 차이요? 우리 애가 뭔가 잘못했나요?”

“그건 아티스트끼리 얘기 해야 할 일인 것 같네요. 매니저 분은 끼어들 일이 아니에요.그렇죠, 해솔씨?”

포토그래퍼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지 간절한 눈빛으로 말해온다.

시애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잠시 의견 충돌이 좀 있었어요. 작가님이 저희가 별로 안 어울린다고 하시더라고요.”

“아…!그런 거야?”

매니저 누나는 그런 문제라면 기분이 나쁘긴 해도 깊게 참견을 하지 못하기에 난감한 표정이 됐다.

“근데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마니또를 봐주신 분들은 저희가 친 남매처럼 잘 어울리고 좋게 보이니까 이런 기회도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음~ 그건 네 말이 맞지. 작가님, 혹시 마니또 보셨습니까? 거기서 두 사람이 정말 흐뭇하게 잘 나왔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의뢰를 맡긴 제작사 쪽도 그 케미를 바라고 해솔이랑 시애씨를 섭외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렇긴 하죠. 제가 마니또를 안 봐서 잘못 생각했던 것 같네요. 다시 보니까 두 사람, 참 잘 어울려요. 다정한 오누이처럼."

포토그래퍼는 내가 예민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자 안도하는 듯 했다.

‘전형적인 강약 약강 스타일이구나.’

포토그래퍼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번 일이 커지면서 자신이 저지른 ‘성희롱’이 거론 되는 것일 거다.

더군다나 내 소속사는 허니 엔터.

잘 나가는 엔터와 척을 질 생각을 하는 건 포토그래퍼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연예계 쪽으로 의뢰를 받아 일하는 포토그래퍼이지 않은가?

‘사실로 밝혀지든 밝혀지지 않든 상관없이 성희롱을 했다는 프레임이 붙으면 의뢰가 뚝 끊어질 거야.’

그걸 알면서도 못된 손버릇은 왜 갖고 있는 걸까?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 이해가 안 된다.

걸리면 큰일 난 다는 것을 알면서도저지르고 본다.

뒷감당을 할 배짱도 없으면서 말이다.

나는 매니저 누나가 들리지 않을 크기의 목소리로 작가님에게 말했다.

“미수에 그친 게 아쉽네요. 제대로 걸리셨으면 이렇게 어중간하게 안 놔줬을 텐데.”

“!!!”

내 말에 포토그래퍼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내 근처에 있던 시애도 내가 속삭이는 말을 모두 들었는지 덩달아 경악을 한다.

‘너는 왜 놀래?’

하여튼 순진하기는.

내가 왜 가만히 있었겠는가?

다 증거를 만들기 위함이다.

오늘처럼 어중간하게 시도가 멈추면 지금처럼 제대로 된 보복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잠깐 휴식할까요?”

“그, 그, 그러죠.”

자신이 나락 갈 뻔했다가 시애 덕분에 살아났다는 걸 깨달은 포토그래퍼는 멘탈이 아예 나갔는지 잠깐 휴식하자고 말을 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나도 휴식을 위해 대기실로 이동했다.

내 뒤를 졸졸 따라온 시애가 말했다.

“선배님, 이대로 끝내도 괜찮으신 거에요?”

“응, 어쩔 수 없잖아. 증거가 없는 걸. 미수이기도 하고. 저 상태로는 저 사람 나락으로 못 보내.”

“헉! 나, 나락이요?”

“나한테 성희롱 하려다가 딱 걸렸으면 바로 나락이지 뭐. 그나저나 저 사람운이 좋네? 시애 덕분에 살았으니까?”

“윽, 그건 좀 별론데. 그나저나저 엄청 걱정했어요! 당하고 계신 줄로만 알았다구요!”

“하하, 나도 이 바닥에서 몇 년을 일했는데. 저런 사람 하나를 못 다룰까.”

“그래도 그런 행동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일부러 당해주다뇨! 복수는 할 수 있어도 선배님이 성희롱 당한 건 사라지지 않잖아요! 아예 사전에 차단을 하시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음, 그런가? 나는 잠깐 참고 복수해서 나락 보내버리는 게 속이 더 시원해서 그런 건데….”

“안 돼요!! 몸을 소중히 하셔야 해요!!”

시애가 우렁차게 주장한다.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 기특한지라 슥슥 시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론 촬영 때문에 함부로 만지진 못하고 시늉만 했다는 뜻이다.

“아이고~ 나 걱정해주는 건 시애밖에 없네? 고마워서 어떡하지?”

“더군다나 선배님은 애인도 있으시잖아요! 애인 분이 아시면 슬퍼하실 거에요!”

애인?

나는 시애의 말에 반사적으로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뒤늦게 내 핸드폰에서 태양이의 저장 번호인 ‘내꺼’를 봤던 것이 생각나 차분해진다.

반면 시애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자기 손으로 입을 턱! 하고 막았다.

“흡!”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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