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04화 (404/849)

〈 404화 〉 #60. 가족 여행 (2)

* * *

우리들이 이번에 가기로 한 여행지는 칸나의 적극적인 의견에 따라 해외로 결정 됐다.

해외에서 우리 가족이 머무를 장소는 호텔이었다.

무려 칸나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라고 한다.

비앙카의 도움을 받아 점점 집안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칸나는 가문의 것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그 과정에서 칸나가 한 일은 별로 없었지만, 바뀌는 상황은 마음에 드는지 나름 즐기는 눈치였다.

언니가 자기 눈치를 볼 때마다 짜릿하다던가?

비앙카가 자기 가문의 곳간을 야금야금 뜯어 먹고 있어도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눈치였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본인이 그쪽 가문 사람이 아니라 나 진해솔의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핍박만 하던 가문보단 자신을 받아주고 가족처럼 여겨주는 우리 쪽에 더 정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비앙카가 준비한 전용기를 타고 칸나의 가문이 운영하는 호텔로 이동했다.

가족들은 그동안 크게 와 닿지 않았던 재벌 출신 메이드들의 압도적인 재력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이렇게 잘난 사람이 왜 여기서 궂은일을 하고 있어요?”

“해솔씨가 그만큼 매력적인 분인 거죠.”

비앙카는 내숭을 떨면서 얌전하게 대답했고.

“저는 제가 먼저 반해서 따라다녔어요.”

멜리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살짝 각색해서 서로 첫 눈에 반해 이뤄진 로맨스 소설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저는 이렇게 지내는 게 훨씬 행복해요! 그리고 제가 잘나서 얻은 재력이 아니에요. 그냥 운이 좋게 재벌 가문에서 태어난 거죠. 해솔씨를 만난 것도 그렇구요. 헤헤.”

칸나는 나름 솔직하게 내게 은혜를 입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들 나에게 호의가 가득한지라 은근히 걱정을 하던 가족들이 안심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다들 잘 지내고 있네.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여기서 가장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내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연주 누님조차도 ‘육아’라는 공통 된 관심사에 푹 빠져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좋구나!’

전용기라서 남의 눈치 볼 것도 없고, 안경을 계속 끼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잠을 자기도 하고, 여유롭게 간식을 먹거나 하는 등의 시간을 보냈다.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하면 체력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란, 언제 어디서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법 아니겠는가?

더욱이 애들 중 2명이 남자아이다.

‘지현이도 예뻐서 조심해야 되긴 해.’

이 세계는 딸을 낳으면 무덤덤하지만, 나한테는 그렇지가 않았다.

가족들도 이 부분에서 좀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복순 누나가 여자아이라서 실망하지 않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내 세계에서는 딸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있는지라 당연히 펄쩍 뛰었다.

그리고 복순 누나에게만 몰래 귓속말로 알려줬다.

‘자식은 역시 딸이거든.’

개인적으로 딸이 더 좋다고.

복순 누나는 내가 예의상 해준 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는데, 내가 지현이한테 하는 걸 보며 진심이었다는 걸 납득했다고 한다.

나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딸 바보가 맞다.

‘그렇다고 아들 바보가 아닌 건 아니지만!’

내 평화를 깨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아아!!!!”

우렁찬 태양이의 부름 소리.

“어~~ 아빠 갈게!”

나는 풍덩 빠져 있었던 여유로움의 파도에서서 단숨에 빠져나와 가족이 있는 곳을 향해 기꺼이 뛰어들었다.

? ? ?

“세상에, 이게 정말 칸나네 호텔이야?”

“5성급 호텔이라더니, 장난 아니긴 하다.”

호텔의 외관부터가 압도적이었다.

마치 성을 그대로 옮겨온 듯이 거대하고 화려하며 예술적인 건물이 눈앞에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면 감탄사를 감출 수가 없어진다.

화려한 샹들리에, 럭셔리한 예술품들을 지나 프론티어에 도착하기 전.

­방문을 환영합니다, 아가씨!

칸나의 얼굴을 확인했는지 호텔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우리 일행을 환영했다.

가족들의 표정이 일제히 ‘오올~’ 하는 느낌으로 변하자 칸나가 두 볼을 수줍게 붉히며 흠흠 헛기침을 하고 도도하게 말했다.

그녀가 우리 가족들한테는 그러지 않지만, 본래 망나니 모임에 참여할 만큼 성격 있는 여자였기에 제법 도도한 태가 났다.

­얘기는 다 전달 받았겠죠? 여긴 나랑 아주 친한 지인들이니까 나라고 생각하고 잘 모셔줘야 해요. 실수는 용납할 수 없어요.

­물론입니다, 아가씨.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안내해요.

칸나와 얘기를 나눈 호텔리어가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한다.

호텔 근처에 상가가 발달해 있었기에 가족들은 쇼핑부터 가자며 호들갑이다.

“쇼핑은 나중에 하는 게 낫지 않나? 짐이 많아지잖아.”

내가 의견을 피력해보았으나.

“시작할 때 한 번 가고, 돌아갈 때 한 번 가는 거지.”

“까먹고 못 챙겼던 것도 여기서 구해야 해.”

다 같이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워낙 인원수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하고 싶은 걸 위주로 그룹이 갈릴 수밖에 없었다.

쇼핑을 원하는 그룹 A와 수영을 원하는 그룹 B.

당연하지만 수영을 원하는 그룹 B는 주로 연령대가 낮게 분포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칸나와 정화씨가 자연스레 B그룹에 끼어들었고, 아현이와 민영 누나가 B그룹에 들어갔다.

나머지는 모두 A그룹으로, 쇼핑을 할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누님은 정말 호텔에 있고 싶으신 거에요?”

“응. 편하게 놀고 와.”

“모처럼 같이 온 건데, 혼자 있으면 안 되죠. 수영장에서 누워만 계세요. 호텔방에 있는 건 답답하잖아요.”

쇼핑에도 관심이 없고, 수영에도 관심이 없는 연주 누님.

누님은 휴식을 취하러 왔다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선호하지 않았다.

“호텔에 공원처럼 산책길을 만들어놓은 게 있던데 그럼 저랑 거기가실래요?”

나는 아직 어디 그룹에 따라갈 건지 결정하지 않았기에 연준 누님에게 의향을 물었다.

헌데 이번에도 연주 누님은 거절한다.

“다들 네가 같이 가줬으면 할 텐데, 내가 널 차지할 순 없지.”

“아니에요, 언니! 쟤 데려가세요.”

그런데 그때, 주아 누나가 연주 누님에게 먼저 나를 가져가라며 사양을 했다.

그러자 B그룹 리더(?)인 민영 누나도 한 손 보탠다.

“저희도 필요 없어요!”

“너무 해맑게 필요 없다고 하면 나 상처 받는데….”

“정말?”

민영 누나가 화들짝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다.

저 누나는 농담이라도 내가 걸린 문제에선 예민하게 굴기에 농담이었다고 곧장 말해주어 안심하게 했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괜히 연장자라고 양보해줄 필요 없어요.”

“어머, 여기서 연장자는 저죠.”

“아…죄송해요, 정화씨.”

“언니라고 부르면 좋을 텐데, 아직은 부담이 되는 거겠죠?”

정화씨의 자애로운 미소에 연주 누님이 살짝 미소를 보였다.

“우리들은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쉬어요. 일하느라 힘들었다면서요. 스트레스 방치하면 병 돼요. 모처럼 놀러왔으니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야죠.”

정화씨의 말까지 더해지자 연주 누님도 더 이상 사양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칸나에게 아이템들을 챙겨주며 주의를 줬다.

“알아서 잘 하겠지만, 여행 와서 애만 돌보고 있는 건 너무 아쉬우니까, 팍팍 써서 휴식해.”

“어…너무 많이 주시는 것 같은데요.”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아이템, 낯선 인물이 접근할 때 경고를 주는 아이템, 돌발 상황에서 위험한 외부 충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주는 아이템.

그 외에도 물놀이를 할 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아이템들도 많았다.

물속에 빠져도 가라앉지 않게 하는 구명조끼, 위험한 순간 밝게 빛을 내뿜는 수영복, 자동형 따라가기 튜브 등등.

안전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 기능성 아이템으로 모두를 무장시키고 나니 마음이 푹 놓였다.

“이 정도면 안전하게 놀 수 있을 거야.”

“감사해요. 덕분에 아이들이랑 노는 게 편해지겠어요.”

칸나는 소중하게 쓰겠다며 아이템을 바리바리 챙겼다.

그렇게 두 그룹이 각자 바라는 곳을 향해 움직이고, 나와 연주 누님만이 호텔방에 남게 되었다.

“뷰가 좋아서 여기에서 와인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배고프면 밥 먹고 산책할까요?”

“그럼 그럴까?”

아무리 잘 어울리고 다녔다고 해도, 성향에 맞지 않은 일인데 피곤하지 않을 순 없었을 거다.

연주 누님은 나와 둘만 남게 되자 그제야 얼굴이 편안하게 펴졌다.

불편함을 숨기려고 애쓴 것 같았는데, 진심으로 편안해진 표정을 확인하고 나니 그동안 불편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힘들었죠?”

“아니,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다.”

“하하, 드디어 말투가 평소처럼 돌아왔네요.”

여자들이랑 대화할 때 그녀들에게 맞춰주기 위함인지 편안한 말투를 쓰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었다.

“티가 났나보구나. 나름 노력한 거였는데.”

“누님을 잘 아니까 안 거죠. 아마 다른 사람은 몰랐을 거에요. 근데 저는 평소 누님 말투를 쓰셨어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알고는 있지만, 내 스스로가 자신감이 없어서 그랬다. 나는 뭔가 평범한 사람들이랑은 다르잖니. 그 사람들이랑 내가 다르다는 걸 티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조폭 출신이라는 점이 연주 누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니.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분명 평소 대범하고 멋진 분인 건 맞지만, 사람이 어디 강인한 모습만 있겠는가?

“지금 같은 상황이 누님한테 큰 부담이 되는 거에요?”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연주 누님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익숙하지 않아 어색한 거지 싫은 게 아니야. 내가 어릴 적엔 지금처럼 화기애애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적도 있으니까.”

“정말요? 누님이 그랬어요?”

“원래 사람이라는 게 갖지 못한 걸 동경하기 마련이잖니.”

그러니 절대 싫은 건 아니라는 거다.

“…인원이 많아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도 있고.”

움찔!

연주 누님의 작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삐질 땀이 났다.

“그동안은 따로따로 만나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모아두고 보니 대가족이더군.”

연주 누님이 내 소속사 사장님이시다 보니 이런 문제를 지적 받으면 난감해진다.

“크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앞으로는 좀 자제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알고는 있는 거겠지?”

“넵.”

“만나는 것 자체를 뭐라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만남은 신중할 필요가 있어. 네가 만난 사람들 모두 심성이 착한 것 같아 다행이다만, 겉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경우도 분명 있다. 네가 갖고 있는 비밀이 특별한 만큼 주의해서 만나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의 훈화 말씀 듣는 것처럼 절로 허리가 뻣뻣하게 세워지고, 몸이 바르게 펴진다.

연주 누님이 진중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면 바른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모처럼의 여행인데 내가 괜히 분위기를 흐렸구나. 심각한 일보단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나았을 텐데….”

“누님이랑 얘기 나누는 건 뭐든 좋아요.”

이렇게 위엄과 기품이 넘치시는 분이 왜 잠자리에서만큼은 거칠까?

둘 만 왔다면 지금부터 분위기를 잡았을 텐데, 가족들과 다 함께 온 여행인지라 아쉬움에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기만 했다.

그러자 연주 누님이 슬며시 내 어깨에 머리를 얹는다.

“확실히 이런 시간을 보내보니 나쁘지 않구나. 단순히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랑은 느낌이 달라.”

“이제 시작이에요. 벌써부터 만족하시면 안 됩니다. 설마다음에도 혼자 일정에서 쏙 빠지실 건 아니죠?”

“…오늘은적응 기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다음에는 꼭 참여하마.”

“믿어주셔서감사해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그렇게 몇 시간 정도를 연주 누님과 둘이서 보내다가 저녁에는 일행 모두와 합류해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누님은 나에게 약속한 대로 다음 일정부터는 기꺼이 참여를 해주셨다.

여전히 어색해 하는 눈치이긴 했으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누님이 느끼는 어색함, 낯설음도 사라지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미 상당한 시간을 외롭게 지내본 나이기에 함께 했을 때가 훨씬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을 안다.

‘나도 예전에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말하고 다녔어.’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행복보다 함께 했을 때 찾아오는 행복이 몇 배 이상으로 크고 많았다.

그걸 직접 경험해 본 나이기에 자신 있게 연주 누님에게 추천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 울타리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