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08화 (408/849)

〈 408화 〉 #61. 식사 (1)

* * *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터지면서 휴가 도중에 멤버들이 뭉쳤다.

“잘 지냈어, 형?”

“응. 잘 놀았지.”

“형은 진짜 잘 놀았나보다. 얼굴이 반질반질해.”

“이 형은 원래부터 반질거렸잖아.”

“그건 그렇지.”

인사하듯이 내 얼굴에 대한 짧은 관람 평을 듣고 난 이후 휴가를 보내며 있었던 일을 떠들어댔다.

누가 보면 큰일이 났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태평한 태도들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준이를 위한 매너일 것이다.

겉으로는 태연해보여도 속은 그렇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엄마가 잔뜩 먹여서 살 엄청 쪘어. 이걸 어떻게 빼지?”

“빡세게 운동해야죠. 저두 살 엄청 쪘어요.”

“매번 말하는 거지만, 네 볼살은 젖살이야.”

“저도 이제 어른이거든요?!”

“아무튼 준이 너. 왜 말이 없어? 너는 휴가 어떻게 보냈는지 말해줘야지.”

멤버들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준이를 향해 쏠렸다.

모두가 조심스럽게 준이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여자 친구랑 여행…다녀왔어.”

“오오오올~!!!”

“이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그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니깐.”

“여자 친구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사진 보니까 우리가 아는 사람은 아니던데.”

“사실 그 애는 내 소꿉친구야.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였어.”

“헉!! 소꿉친구!!”

“오오오~ 흥미진진하네.”

찰진 멤버들의 리액션.

준은 부정적이지 않은 분위기에 힘을 받았는지 조금 더 강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응, 근데 꽤 오랫동안 친구사이였어. 사귄 지는 얼마 안 됐고. 내가 바빠지고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니까 그쪽에서 조금 초조해졌나봐.”

“고백 받았구나?”

“으응….”

부끄러웠는지 자꾸만 목소리가 작아진다.

나는 그 귀엽고 순진한 반응이 킥킥 웃다가 말했다.

“사귄지 얼마 안 됐는데 걸린 거네?”

“그렇게 쉽게 걸릴 줄 상상도 못했어. 나름 엄청 조심하면서 다녔거든. 거기에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 줄은….”

“스캔들 터트린 기자가 질이 안 좋은 것 같더라. 굳이 그 사진을 올릴 필요없었을 텐데, 그런 자극적인 사진을 썼다는 게 의도가 보이잖아.”

키스를 하는 걸 몰래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소름 끼치는데, 그 사진을 기사로 쓰기까지 했다.

준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다는 악의를 갖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기사보고 진짜 기분 나빴겠다. 소름끼쳐.”

“그게 어떻게 기자야? 스토커지.”

“스토커로 신고 할 순 없는 건가?”

준이는 우리들이 떠드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나는 다들 화낼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조심성 없이 다녀서 중요한 때에 스캔들이 났으니까.”

“화를 내긴 누가 내. 너희들 중에 이번 일로 화난 사람있어?”

“아니!”

“없어.”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연애는 적극적으로 찬성이라고. 아티스트가 사랑을 몰라서 되겠냐? 그리고 만약 이런 일로 화를 낼 거였으면 나한테 불만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잖아.”

우리 앞에서 여자(멜리사)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적 있으며, 아직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엑몬 작곡가인 로잘린과 좋은 관계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인 제키의 말이었다.

“아니야! 그런 거 없어, 형!”

당연하지만 준이가 펄쩍 뛰며 고개를 젓는다.

나는 제키에게 잘했다는 듯 엄지를 치켜 세워주고 준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너한테 유감인 사람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어깨부터 피고 앉아. 그러고 있으면 들어오려던 복도 달아나겠다.”

“으응. 고마워, 형. 다들 고맙다.”

“아무튼 그래서 소꿉친구랑 사귀게 된 게 맞는 거지?”

“응. 회사에는 상황 전달 해놨어.”

우리가 지금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게 그거였다.

회사에서 어떤 대처를 보여주는지.

“어떻게 할 거라고 전달 받은 건 없어?”

“응, 아직 아무 말씀도 안 해주시네.”

“걱정 많이 되겠다.”

“이러다가 헤어지라고 하면 어쩌지 싶어.”

“에이~ 그건 아니지!”

“소속사가 그렇게 할 리도 없거니와, 정말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가 전부 반대해줄게.”

“고마워.”

대화를 하면서도 모두가 은근하게 초조해하며 기다리길 몇 시간.

드디어 회사 쪽에서 우리를 불러들였다.

“너희들은 왜 다 모였어? 휴가잖아.”

“준이 형이 곤란한데 쉬고 있을 순 없죠!”

기우연이 직원을 경계하며 준이 편을 들 준비를 했다.

직원도 우리들의 우려를 읽었는지 귀엽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그룹은 불화설은 평생 없을 것 같아서 좋네.”

“어떻게 됐어요?”

“공식 기사 나갔어요?”

“응, 방금 나갔어. 준이가 원했던 대로 인정하는 쪽으로 가기로 했고. 그리고 사진은 빠르게 내려갈 거야. 그런 사진을 사전에 통보도 없이 썼으니 각오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알아보니까 신입이 저지른 실수라고 하더라.”

“신입이 저지른 실수요?”

“그쪽에서 그러더라고. 우리 신입이 사진을 찍고 너무 흥분해서 뭣도 모르고 그런 사진을 써서 기사를 썼다고. 바로 내리겠다고 말이야.”

“그걸 믿으세요?”

“당연히 안 믿지! 개새끼들….”

직원이 이를 바드득 갈면서 욕을 내뱉었다.

“양아치 새끼들이야. 사진 내리고 싶으면 법적인 일로 얽히지 말자는 거지.”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거에요?”

“고구마 먹은 것 같아!”

“이대로 그냥 봐주는 건 싫어요!”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는데 처벌을 못하는 거에요?”

“기자가 벼슬인가? 완전 소름끼쳐.”

멤버들의 거센 항의에 직원이 말했다.

“그런 양아치한테 당할 정도로 우리 회사가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거니? 당연히 그딴 딜을 받았을 리 없잖아. 신입기자한테는 안 된 일이겠지만, 아주 제대로 밟아줄 예정이야. 더불어서 그 회사도 블랙리스트에 명단 넣어뒀고. 앞으로 그 회사 소속 기자들은 어딜 가도 제대로 된 취재는 못하게 될 걸?”

기자와 엔터는 서로가 가깝고도 먼 존재이다.

소속 가수의 복귀 홍보를 위해 기자와 가까이 지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이번 일처럼 소속 가수들의 치명적인 스캔들을 알리는 것 또한 기자들이었다.

때문에 허니 엔터 정도의 큰 회사에서는 우호적인 기자들을 많이 만들어서 소속 가수들을 보호하는데 사용한다.

왜 많은 아이돌 지망생들이 큰 회사를 원하겠는가?

그리고 영세한 회사에서는 왜 아이돌을 데뷔시키고도 끝내 성공시키지 못하고 해체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이 바로 ‘홍보’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 ‘홍보’의 힘은 관리하는 기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말이다.

“회사가 큰 곳이에요?”

“만들어진지는 꽤 됐는데, 폐업하기 직전일 정도로 쓰레기 회사야. 아마 그래서 이번에 무리수를 뒀던 것 같아.”

“그럼 회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둬도 소용없는 거 아니에요?”

“당연히 그 회사 출신 기자들 목록 싹 다 넣었지.”

과거 언론 회사는 직접 신문을 출판해야 했기에 만들기 어려웠지만, 기사를 쓰는 공간이 신문에서 인터넷으로 변화하게 되면서 제대로 검증 받지 못한 언론 회사들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졌다.

‘그럼 과거 언론사들은 정상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인터넷 언론들은 복잡한 법적 문제가 얽히게 되면 폐업을 하고 달아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래놓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름만 바꿔서 또 같은 짓을 하고 다닐 것이다.

온라인 언론사 창업 설립 절차를 점차 어렵게 만든다고는 하는데, 아직까진 썩 효과적이어 보이지는 않는다.

허니 엔터 직원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고, 때문에 회사에 대한 응징은 응징대로 하고 기자들의 목록도 꼼꼼하게 챙겼다.

“그런 애들이 또 강약약강이거든. 우리가 빠꾸없이 나가니까 바로 꼬리 말고 사진 내리더라.”

그런 사진을 올린 기자 처리 부분은 회사에서 알아서 잘 처리한 것 같아 다행인데….

“저는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에요?”

준이가 마침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별 거 없어. 당분간 기자들 피해서 휴식하는 게 할 일이야.”

“또 쉰다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요? 팬들한테라도 사과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연애하는 게 죄가 아니잖아. 그 부분을 사과할 필요는 없지.”

“맞아, 그리고 지금은 팬카페에 들어가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준이는 팬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 팬카페에 들어가보는 것은 나도 반대하는 일이었다.

준이의 열애 인정 기사에 동요하지 않을 팬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 지금 팬카페가 잔뜩 뒤집어져 있을 것이다.

그걸 보는 건 준이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야.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숙소에 얌전히 있어줬으면 좋겠어. 당분간 너희들 뒤를 기자들이 따라다닐 게 분명하거든.”

“네, 알겠어요.”

“그럼 이게 끝인 거에요? 저는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준이는 찜찜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자꾸만 할 일이 없는지 되물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럼 편지를 써보는 게 어때?”

“편지?”

“아~ 그래. 편지 괜찮네. 근데 올리기 전에 우리한테 허락 받아야 해. 네가 쓴 글은 아마 기사로 뜰 텐데, 팬들이 아닌 사람들은 분명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거야. 그러니 검증이 필요해.”

의외로 직원은 준이가 편지를 쓰는 것에 긍정적이었다.

준이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는지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팬들한테 편지 쓸게요! 많이 놀랐을 테니까…. 형 말처럼 나도 연애를 하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건 알아. 그런데 내가 미안해서 사과하고 싶어. 나 때문에 다들 엄청 놀랐을 거잖아?”

준이의 말을 들으니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은규가 슬쩍 준이에게 물었다.

“내가 도와줄까?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같이 항의하는 게 혼자 쓰는 것보단 낫잖아.”

“…네가?”

“왜, 싫으냐?”

항상 둘이서 투닥거리던데, 이런 일이 생기니 제일 신경을 많이 써주는 건 은규였다.

평소 두 사람 사이를 생각해보면 준이가 거절할 만도 할 텐데, 의외로 순순히 은규에게 도움을 받겠다고 했다.

“아니. 도와줘.”

준이가 아무래도 풀이 많이 죽은 것 같았다.

“나도 도와줄게.”

“저도요, 형!”

“그냥 다 같이 상의해! 어차피 이거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다는데.”

그렇게 어쩌다 보니 멤버들 모두가 준이의 편지에 도움을 주게 됐다.

그리고 일단 준은 자신이 팬들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적어내려갔다.

솔직한 준이의 심정을 담는 게 팬들에게도 좋게 보일 거라 생각했기에 모두들 입을 꾹 다물고 준이가 1차적으로 편지를 완성시키길 기다렸다.

“야. 너무 길어.”

물론 그것도 편지가 2장을 넘어가기 시작하니 나서지 않을 수가 없어졌지만 말이다.

“팬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았어?”

“…긴 건가?”

“완전 길지. 한 장으로 줄여야 돼. 지금은 너무 구구절절하다. 여기 앞쪽에 썼던 말이 뒤쪽에도 나오고 막 그러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으니까 이제 정리해보자.”

멤버들 모두가 편지에 매달려서 완성시키고 직원에게 보여줘서 단숨에 합격을 받았다.

직원이 올려준 준이의 편지는 예상했던 것처럼 팬들의 관심을 받음과 동시에 기자들의 기사로 이곳저곳에 널리 퍼져나갔다.

“그나저나 상황이 이래서 하는 소린데, 준이 말고 연애하는 사람 있으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어때?”

준이의 편지를 읽고도 여전히 화가 나 있는 팬들이 있었지만, 꽤 많은 팬들이 당황스러운 감정을 추스르고 사랑을 시작한 것을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됐다.

때문에 나는 준이의 스캔들이 이렇게 무난하게 해결이 됐구나 하고 안도했다.

경태 형이 한 말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여기서 사생활이 밝혀지면 가장 큰 문제가 될 사람은 바로 나였다.

하지만 나는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만약 그런 돌발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지켜줄 든든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근데 그걸 멤버들은 모르잖아.’

그게 문제인 거다.

여기서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밝힐 때가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평생 가족들을 숨기고 살 생각은 없어.’

언젠가는 내 가족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알릴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경태 형의 저 발언을 거짓말로 모면할 수가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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