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09화 (409/849)

〈 409화 〉 #61. 식사 (2)

* * *

“나는 없어.”

해맑게 여자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남은규.

“연락하는 여자들 전부 귀찮아. 깊게 사귄 적 없어. 나 하고 싶은 거 하고 다니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여자는 무슨.”

하고 싶은 거 많은 경태 형은 여자가 귀찮다고 한다.

“저는 그냥 여자인 친구들은 좀 있는데….”

기우연은 여사친이 있다며 살짝 찔린 얼굴이고.

준은 여자친구가 있다는 게 밝혀졌으므로 해야 할 말이 없었다.

제키도 “없어.”라고 짧게 대답하긴 했지만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인데….

“나는….”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결국 여자 친구가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려던 순간.

“저 형이 여자가 있을까? 맨날 잠만 자잖아.”

“그래도 여자들이 하도 달라붙어서 없지는 않을 걸?”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잘 못 다가온다던데.”

갑자기 애들이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얘네들이 평소에 나에 대해 생각한 게 꽤 많은가 보다.

“나 말 좀 해도 될까?”

“앗! 미안, 형.”

“음, 보니까 있는 눈치인데…. 표정이 되게 의미심장해.”

“맞아. 있어.”

“으와앗! 이럴 줄 알았어!”

“와! 언제부터 사귄 거야?”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

“저는 사실 눈치를 좀 채고 있었어요. 평소에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 있었잖아요. 그 사람 맞죠?”

아무래도 룸메이트이다 보니 기우연이 내 평소 생활하는 걸 지켜봐서 알았나보다.

다만 우연이가 모르는 것은 내가 평소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들은 더 자세히 말해주길 바라는 듯 했으나 나는 입을 열어봤자 곤란해질 수 있었으므로 짧게 대답했다.

“응, 맞아. 사귄지는 꽤 오래 됐어. 데뷔했을 무렵이니까.”

“헐! 그때부터 사귀고 있었다고?”

“엄청 오래 됐잖아? 그런데 아직도 안 들킨 거야?”

“나는 연애하자마자 걸렸는데….”

“너는 운이 너무 나빴어. 어떻게 사귄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덜컥 걸리냐고.”

“형한테 노하우 좀 알려달라고 해.”

준이가 솔깃했는지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내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아이템 빨이었으므로 노하우라고 알려줄 말이 딱히 없었다.

어깨를 으쓱하고 마니 그제야 기억났는지 경태 형이 말했다.

“쟤는 그 체질 덕분에 안 걸린 모양인데?”

“그거?”

“아, 맞네! 그게 있었네!”

내가 옆에 있으면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특이한 체질.

그 체질 덕분에 팬들은 요즘이 몇 년도인데 애들을 신비주의로 홍보하냐며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목격담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었던 것이다.

멤버들은 그래도 나 없이 돌아다닐 땐 목격담이 올라오는데, 나는 한 번도 목격담이 나온 적이 없었다.

쉬는 날은 항상 내 여자들과 함께하는지라 안경을 안 쓰고 나갈 수 있는 날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맞아. 그 체질 덕을 많이 봤어.”

“진짜 신기하다니까? 부러워. 나도 갖고 싶다. 아니면 잠깐씩 빌리는 건 안 되나?”

“멍청아, 될 리가 없잖아.”

“그럼 지금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제키 형, 해솔이 형, 그리고 준이인가?”

“나는 뜬금없이 왜 끼워 넣어?”

가만히 있던 제키가 날벼락 맞은 표정으로 물었다.

“솔직히 로잘린씨랑 썸 타는 중이잖아! 맨날 둘이 연락하면서! 심지어 자기 전에 전화 통화하는 거 다 들었거든? 그런데 안 사귄다고? 둘이 친구면 난 친구 없어!”

남은규의 발언에 모두가 비난의 눈초리로 제키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정말 그런 사이 아니야. 그런 사이였으면 지금 솔직하게 말 했을 거야.”

“그런 사이 아니야에 ‘아직은’이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떨어지게 돼서 그렇지, 다시 만나면 금방 서로 불 붙을 걸?”

“제키 형이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대충 사귈지도 모르는 그룹으로 옮겨놓죠!”

“기우연 너도 거기 그룹에 들어가야 하는데?”

“저는 진짜 여자 사람 친구라니깐요?!”

펄쩍 뛰는 우연이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 친구가 있는 사람 진해솔 강준을 한 그룹으로, 여자 친구가 생길 것 같은 사람인 제키와 기우연을 한 그룹으로, 솔로인 사람인 경태 형과 남은규로 그룹을 나눴다.

“본의 아니게 짝이 맞춰졌네.”

“어쩐지 내가 제일 손해보고 있는 것 같아. 연애를 해도 여기서 나이가 제일 많은 내가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나저나 얘 여자친구 나만 궁금한 거야?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은데.”

“내 여자친구를…?”

“응, 사진 있어?”

“있기야 한데….”

머뭇머뭇거리면서 고민하는 강준을 보며 은규가 덩달아 나도 먹잇감처럼 잽싸게 끌어올렸다.

“해솔 형도 보여줘!”

“나도?”

“사진 있지?”

당연히 사진이야 있다.

문제는 누구 사진을 보여주느냐다.

보통은 주아 누나를 골랐겠지만, 그녀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서 밝히는 게 어려웠다.

민영 누나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보여줄 수 없다.

복순 누나는 멤버들과 너무 잘 아는 사이였기에 역시나 밝힐 수 없다.

여파가 클 게 뻔하지 않은가?

“있기는 한데, 상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멤버들끼리만 볼 텐데?”

“야야. 그래도 상의는 해야지. 해솔이 형 여친이 누구일 줄 알고.”

“아…!”

일반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멤버들도 금방 수긍한다.

착한 멤버들이 금방 곤란하다는 걸 눈치 채고 넘어가줬지만 내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했다.

‘아현이가 나은가? 아니다. 아현이도 좀 곤란하네.’

허니 엔터의 소속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현이의 곡을 허니 엔터에서 자주 구매해주고 있다고 들었다.

일적으로 얽혀 있는데, 괜히 그녀를 내 여자친구로 소개했다가 문제가 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생각나는 사람마다 안 될 이유가 있네.’

칸나도 지금은 좋은 관계가 됐지만 한 때는 내 극성팬으로 회사 사람들 중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러니 칸나도 안 될 테고, 멜리사도 당연히 얼굴을 아는 사이이니 안 된다.

그렇다고 비앙카를 여자친구로 소개한다?

‘역시 상의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주아 누나와 정화씨의 아이디어가 필요해진 순간이었다.

? ? ?

“그래서 멤버들한테 보여줄 여자가 필요하다는 거구나.”

주아 누나에게 고민상담을 요청했고, 정화씨도 옆에 있는 상황에서 내 현재의 고민 상황을 털어놓았다.

이번 일로 멤버들끼리 여자에 관련 된 일을 밝히기로 했는데 누굴 내 여자로 소개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이다.

“스캔들로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일이 잘 해결 된 거니?”

“네, 오히려 깔끔하게 열애설을 인정하니까 진정 되더라고요. 팬들도 직접 자필 편지를 올린 이후로는 괜찮아 보이고요.”

분위기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 거다.

처음 열애설이 났을 땐 그룹이 망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각하더니, 오히려 깔끔하게 인정하고 오히려 둘의 풋풋한 사랑을 응원해 달라고 하니 대중들도 너무 심하게 물어뜯지 않았다.

회사에서 먼저 준과 여자친구의 사연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이 일은 직원이 준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일이었다.

‘지금 기자들이 원하는 건 알려지지 않은 정보야. 그러니 정보의 값어치를 내려야하는 거고.’

‘정보의 값어치를 내리는 방법은, 먼저 우리 쪽에서 알리는 거겠네요?’

‘그래, 맞아. 이쪽에서 먼저 먹고 떨어지라고 정보를 푸는 거야. 기자들은 알려진 사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거든.’

‘얼마나 풀어야 하는데요?’

‘네 사생활을 불특정 다수한테 알리는 게 싫다는 걸 알아. 하지만 대중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알리지 않으면 계속 캐내려고 들 거야. 그 여성과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사귀었는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등등 말이야.’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아요.’

결국 준은 여자친구와 상의 끝에 몇 가지 정보를 풀기로 했다.

여자친구는 준과 동갑이고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온 사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귄지는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소식까지.

회사가 직접 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자 더 빼먹을 건 없는지 기다리던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더 이상 나올 것 없는 허니 엔터에서 대기 탈 이유가 없어졌으니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떠나간 것이다.

“기자들은 그렇게 해결하긴 했는데 멤버들 모두 당분간 몸 조심하기로 했어. 한 명 건졌으니까 다른 멤버들도 혹시 있지 않을까 솔깃해 하는 기자가 있을까 싶어서. 당분간 안 보여도 기자가 따라다닌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했거든.”

“너는 상관없지 않아?”

“나는 상관없지. 그래서 지금도 누나 앞에 있는 거고.”

“흐음, 그나저나 좀 골치 아픈 상황이긴 하네.”

누구를 내 여자친구로 할 것인가.

주아 누나는 정화씨와 한참동안 상의를 하더니 말했다.

“이건 내 욕심이 맞는데, 솔직히 다른 여자를 네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럼 설마?”

“응. 멤버들한테 날 네 여자친구로 소개시켜줘. 아예 집으로 초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태양이는 어쩌고.”

“칸나씨한테 잠깐 돌봐달라고 부탁해야지.”

“엄마도 찬성이야.”

의외로 정화씨도 주아 누나의 욕심에 찬성표를 던졌다.

“정말 괜찮을까요?”

“멤버들이잖니? 큰일이 나진 않을 거야. 그리고 사실 예전부터 네가 멤버들이랑 잘 지내는지 직접 보고 싶었거든. 멤버들한테 맛있는 것도 해주고 싶었고.”

내게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걸 알고 있는 정화씨는 가끔 이렇게 나를 아들처럼 대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침대 위에서 내가 아들이 아님을 확인시켜줬지만, 여전히 그 버릇을 못 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정화씨의 말을 들은 주아 누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근데 엄마가 직접 요리할 건 아니지?”

“…나빴어.”

“하하하!”

잠깐 웃음을 터트린 나는 정말 멤버들에게 주아 누나를 소개 시키는 게 괜찮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 주아 누나 말고 다른 사람을 여자 친구로 소개하는 게

“쏘리쏘리. 아무튼 엄마가 하고 싶다는데 아예 우리 집으로 다 불러버리자!”

그동안은 막연하게 언젠가는 멤버들에게 내 여자를 소개시켜주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생각만 그렇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을 할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은연중에 내 상황을 꺼낸들 멤버들에게 좋게 이해 받기가 어렵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때가 온 것 같다.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배우인 주아 누나가 내 여자친구라는 걸 들으면 멤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그리고 멤버들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뭐야, 네가 진주아랑 사귄다고?!”

내가 보여준 사진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이런 말을 외친 건 경태 형이었다.

주아 누나는 허니 엔터 연습생이었던 적이 있어서 경태 형이 모를 수가 없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이 누나 알아. 연습생일 때 엄청 예뻐서 남자애들이 따라다니는 걸로 유명했었잖아.”

“지금은 배우로 전향해서 엄청 잘 나가고 계시고.”

“설마 드라마…아니, 데뷔할 때쯤부터 사귀었다고 했었지? 와~ 어떤 남자가 차지할지 궁금했었는데, 네가 그 남자였을 줄이야.”

“이분, 여연생들 우상이자 남연생들 국민 첫사랑 아니었나?”

“회사에서도 이분 나갈 때 엄청 아쉬워 했지.”

배우로 전향해서 잘 나가는 걸 보고 배가 많이 아팠을 거다.

허니 엔터에서도 누나한테 배우 전향 의향을 넌지시 권유했던 적이 있으니 더더욱.

“누나가 너희들 집으로 초대했어. 밥 한 번 먹자고 하는데 어떡할래?”

“당연히 가야지! 나 팬이라고!”

“네가 누나 팬이라고? 언제부터.”

“지금부터!”

하여튼 남은규 푼수 같은 너스레는 알아줘야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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