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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10화 (410/849)

〈 410화 〉 #61. 식사 (3)

* * *

“얘들아, 휴가 끝났으니까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으아아아~”

“으으으으!!”

주아 누나를 애들에게 당장 소개 시켜 줄 수는 없었다.

누나와 정화씨도 준비가 필요하지만,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 재개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컴백인 거에요?”

“실컷 쉬었잖아. 왜 앓는 소리들이야?”

“그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계속 일할 때는 몰랐는데 한 번 쉬기 시작하니까 그게 좋은 거라는 걸 깨달았달까요?”

“그런 나태한 생각하면 안 되지. 너희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보통 멤버들이라면 컴백을 기뻐했겠지만, 오랜만에 맛본 휴가의 맛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난 2년간 쉬는 날 없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이름을 알리고 다녔으니 오랜만에 맛본 휴가가 무척 달기는 했다.

‘휴가 진짜 재밌었는데.’

또 가고 싶다.

회사에서 준 정확한 휴가 기간은 이주였지만, 미리 융통성을 발휘해서 미리미리 스케줄을 줄여줬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보낸 휴가 기간은 한 달에 가까웠다.

그렇게 푹 쉬었다 보니,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 낯설만도 하지 않은가.

“흐아암~ 우리 이번에 뭐해요?”

절로 나오는 나른한 하품.

전염 되듯이 멤버들의 눈빛도 나른해진다.

그때, 직원이 말했다.

“바로 그거야!”

“넹?”

“뭐가 그거에요?”

“나른함! 어른미! 섹시! 퇴폐!”

“!!”

“이번에 너희가 소화해야 할 컨셉이야.”

우리는 서로를 번갈아 바라봤다.

나른함?

그 정도는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알 것 같다.

어른미….

어른미라면 못 할 것 없기는 한데.

‘좀 식상한 걸. 더군다나 우연이랑은 안 어울리는 컨셉이잖아.’

우리가 이와 비슷한 컨셉의 무대를 해본 적 없는 것도 아니다.

우연이도 이제 성인이니 컨셉을 어른미 쪽으로 잡아서 이미지 변신을 주려는 의도인 것 같기는한데….

‘일단 얘는 생김새부터가 아직 애기라고.’

가뜩이나 나이가 우리들 중 가장 어린데, 얼굴도 동안이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뺨은 토동토동하게 살이 올라와 있었다.

눈도 동글동글하니 마냥 귀여운데 이런 애를 데리고 어른미에 퇴폐, 섹시?

“음, 그 컨셉이 확실하게 잡힌 건 아니죠?”

“이번 앨범은 솔직하게 얘기하면 국내 팬들보다는 해외 팬들을 겨냥한 거야. 서양 쪽 애들이 귀여운 컨셉은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해외 팬들을 겨냥한 거라고 하니 이해는 된다.

사실 지난 2년간 해외 활동에 주력하면서 우리가 내는 앨범의 중심이 해외 팬덤들을 중심으로 바뀐지 오래 됐다.

국내 팬들이 서운해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활동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해외 팬들을 겨냥한 컨셉을 하겠다는 거네요.”

“다른 의견이 있니? 아직 컨셉이 확정 된 건 아니야. 너희들이랑 다 같이 컨셉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국내 팬들이 많이 서운해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죠? 우리가 그동안 계속 해외에서 활동했잖아요. 2년이 넘도록요. 저는 이번에는 중심을 좀 다 잡고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국내 활동을 하자는 거야?”

“국내 활동을 하자는 게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컨셉을 잡자는 거에요. 페이에서 차이가 나는데 국내 활동만 하자고 우길 생각은 없어요.”

우리가 국내 활동을 하면 팬들은 좋아할 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

이후에는 아마 그런 생각이 들 거다.

‘왜 국내만 활동해요? 이제 해외는 안 나가나요?’

‘애들 잘 나가는 거 아니었나? 왜 국내만 스케줄이 있지?’

그리고 팬이 아닌 사람은 더 나아가서 우리를 조롱할 거다.

‘얘네 해외 안 나가네? 불러주질 않나?’

‘하긴, 슬슬 시들해질 때 됐어.’

‘내 저럴 줄 알았다. 쯧쯧!’

사람의 악의라는 게 참 그렇다.

순수한 호의를 호의로 돌려주지 않는다.

국내 팬들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한들 그게 변명이 되어주진 않을 터.

“초심? 초심…초심이라….”

내 의견에 멤버들이 눈을 반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초심이라고 하니 각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나보다.

“초심에서 좀 더 나아가면 복고를 떠올려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제키의 의견에 다들 좋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휴, 알았어. 그럼 시간을 좀 줄 테니까 컨셉 회의 전까지 아이디어 생각해와.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네!”

“저는 노래 만들어가도 돼요?”

“벌써부터 타이틀 곡 노리는 거야?”

“실컷 쉬었으니 부지런히 일해야죠. 형도 나한테 붙어.”

제키가 작곡이 가능한 나를 놔줄 생각 없다는 듯 나를 찜한다.

“앗! 아이디어 뱅크를 뺏겼다!”

멤버들 모두 제키의 재빠른 행동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기발한 아이디어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던 나인지라 이런 일이 있으면 제일 인기가 많아지는 게 바로 나였다.

코인으로 올려 둔 능력이 이런 쪽으로도 영향을 줘서 본의 아니게 천재 코스프레 중이다.

멤버들은 나를 이리저리 찔러보면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는 자판기로 보고 있었고 말이다.

“다들 아이디어만 잘 골라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줄 테니까.”

“땡큐!”

“그나저나 조만간 또 엄청 바빠지겠네.”

“다시 연습실 지박령이 되어야 할 듯.”

“미래의 나에게 애도를 보내놓자….”

“그리고 은규 너! 살 빼야 되는 거 알고 있지?”

“윽!”

준이 때문에 묻혀서 직원한테 혼이 안 났는데, 본격적으로 컴백 얘기가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은규가 직원의 눈에 들어왔다.

“너는 당장 오늘부터 식단 관리 들어가야 돼.”

“에에엑! 저만요?! 안 돼요!”

멤버들의 얼굴이 사악해진다.

“흐흐흐.”

“저희가 잘 관리시키겠습니다!”

멤버의 작은 불행은 다른 멤버들의 즐거움인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절망하는 남은규의 얼굴이 워낙 재밌어서 이 재미를 놓치지가 쉽지 않기도 했다.

“아, 그리고 해솔이랑 경태는 라디오 스케줄 있는 거 알고 있지? 그거 취소 안 됐어. 그러니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휴가 기간이 끝나자마자 스케줄이라니!

그나저나 그 스케줄이 라디오가 될 줄은 몰랐다.

더욱이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요즘 라디오는 출연하기가 꺼려진다.

“그거 나가도 되는 거에요?”

조심스럽게 직원에게 물으니 고개를 끄덕여온다.

“일이 생각보다 훨씬 잘 수습 돼서 괜찮을 것 같아. 발빠르게 인정했던 게 사람들한텐 좋게 느껴졌나봐.”

하긴, 사귀는 거 뻔히 보이는데 친한 오빠 동생 사이라고 변명하는 걸 보면 어이가 없을 때가 있긴 하다.

그렇게 변명하지 않고 쿨하게 맞다고 인정한 점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초대해온 상대가 상대인지라 무시하기가 좀 그렇네?”

“그건 그렇죠. 경태 형이 물어온 거잖아요.”

“사실 밥 한 번 먹자! 같은 느낌으로 물으셔서 나도 넵! 섭외주시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라고 한 거였는데 진짜 초대해주실 줄 몰랐어.”

이번 라디오 스케줄은 경태 형이 방송국에서 친분을 쌓은 가수 송소원 선배님의 초대로 받게 된 스케줄이었다.

송소원 선배님은 한 때 시대를 풍미 했던 대가수이기도 하거니와 라디오 MC로 오랫동안 사랑 받아 온 스타였다.

그만큼 연예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해서 초대 받은 걸 거절하기가 참 뭐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는 해주실 거라 생각하지만, 역시 초대를 거절하는 것보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해주는 모습이 더 예뻐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차라리 잘 됐어. 괜히 미안해질 일 만들지 않는 게 좋지. 그리고 솔직히 경태 형도 나가고 싶어 했었잖아.”

송소원 선배님이 하는 라디오에 초대 받았다는 건 그만큼 경태 형을 그분이 좋게 봐줬다는 뜻이 되지 않는가?

그래서 경태 형은 스케줄 잡힌 걸 보고 좋아했었다.

거기에 내가 왜 끼냐고 묻는다면, 혼자는 심심할 테니 멤버 중에 아무나 한 명 더 데려오라는 말에 나를 선택한 건 형이었다.

“그건 그렇지. 송소원 선배님은 존경 할 만한 분이시니까.”

준이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회사에서 취소할지 말지 고민을 하게 됐는데 수습이 생각보다 잘 돼서 나가는 걸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수습이 아무리 잘 되었다고 해도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다.

‘지금 라디오에 출연하면 분탕들이 많을 것 같은데.’

거긴 실시간 댓글이 달리고, 그걸 확인하면서 진행해야 하는 라디오가 아닌가?

분명 분탕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진행하는 MC 송소원 선배님에게 양해를 구해둬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쪽에선 뭐래요? 우리 출연해도 괜찮다고 해요? 분탕들 많이 들어올 거잖아요.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텐데 양해를 구해놔야 하지 않을까요?”

“아…그 부분은 내가 신경을 못 썼네. 알았어. 그쪽에 연락해서 양해 구해볼게. 설마 안 된다고는 않겠지.”

양해를 안 해준다고 하면 스케줄을 안 나가면 되는 거다.

직원이 멤버들에게 전할 말을 다 하고 사라지자 우리들은 라디오 일을 뒤로하고, 다이어트를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될 남은규를 쿡쿡 찌르면서 놀렸다.

“어? 그럼 은규 형은 해솔이 형이 초대했던 거기 가서도 아무것도 못 먹는 거에요?”

“어라, 진짜 그러네?”

“우와~ 어떡하냐, 남은규 불쌍하네.”

“야야야! 그건 아니지! 기껏 초대해주셨는데 내가 거기서 닭가슴살이나 먹고 있으면 그게 예의겠냐고!”

하여튼 놀리는 맛(?)이 있는 남은규였다.

열애설 스캔들이 터지면서 침울해져 있던 강준도 지금만큼은 깨발랄하게 남은규를 놀리는 걸 즐기고 있었다.

차라리 이때 라디오 스케줄이 취소 됐다면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라디오 스케줄을 하러 방송국에 갔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절대 숨겼어야 할 치명적인 비밀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 ? ?

나는 어둑한 비품실 창고 안에서 정확하게 마주쳐버린 여자를 확인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라디오 스케줄이 있는 오늘.

전날에 집에 다녀왔기에 매니저 누나의 차를 타지 않고 개인적으로 방송국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이건 너무 빼박으로 걸린 거라 아닌 척 시치미를 뗄 수도 없었다.

“서, 서, 선배님? 바,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미치겠네.”

안일했던 자신에 대한 창피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살짝 억울함도 밀려온다.

지금까지 잘만 사용했던 비밀 장소에 사람이 있을 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당황한 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인지라 자기가 뭘 본 건가 의심하며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갑자기 나타난 내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지, 진짜 선배님이네?방금 갑자기 슉! 하고 나타나셨어요!! 마술…? 아니 마법이잖아요!! 어떻게 하신 거에요? 이거 몰래 카메라에요?!”

주변을 돌아보며 카메라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그녀.

일단 비밀을 들킨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좀 다행이다.

아니,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죄책감 없이 아이템으로 기억을 지우면 됐으니 안 된 일이려나?

“시애,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여기 아무것도 없는 창고잖아.”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너무 오래 돼서 버려진 방송 용품들이다.

쾌쾌한 냄새가 나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의.

그래서 내가 이곳을 이동하는 장소로 썼던 것이다.

병원에서 한 번 누군가와 마주쳐서 들킬 뻔 했던 이후로 조금 더 주의해서 능력을 썼던 나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이런 사고를 당할 줄은 몰랐다.

“어…그게….”

내 물음에 시애가 눈을 도르륵 굴린다.

손에 쥐어져 있는 핸드폰을 본 나는 상황을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남자친구랑 통화하려고 했던 거야?”

“아, 아니에요! 저 남자친구 없어욧!!”

시애의 찰진 반응에 평소라면 웃음이 나왔을 텐데 지금은 영 웃음이 안 나온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막막해서 그랬다.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선배님 마법사였어요?! 대에바악! 완전 신기해! 카메라가 없는 걸 보면 분명 선배님, 마법 쓰는 거 저한테 들키신 거잖아요!역시! 사실저는 믿었거든요! 산타클로스가 진짜 존재한다는 걸요!! 근데 저는 한 번도 선물을 못 받아본 걸까요? 내가 너무 자주 울어서 그런가?”

남은 지금 심각해 죽겠는데, 시애는 들떠서 난리가 났다.

한참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던 시애가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봤다.

대충 봐도 나한테 질문할 게 많아 보이는 눈치였다.

허참, 얘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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