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화 〉 #61. 식사 (4)
* * *
“시애야, 너 지금 이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내가 진짜 마법사라면 너는 지금 내 정체를 알아버린 거잖아?”
“???”
그게 뭐 어때서? 라는 표정.
“너 지금 알면 안 되는 걸 알아버린 거야. 나는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고.”
“!?”
나는 엄청난 걸 깨달은 마냥 눈이 커다래진 시애를 서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여기는 동화 속이나 어린이 만화 세계가 아니다.
정체가 들킨 마법소녀, 혹은 가면라이더는 정의로운 영웅이라 그냥 봐줬을지 몰라도 나는 그럴 수 없다는 뜻이다.
내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시애가 말을 더듬는다.
“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저 선배님이 연애하시는 것도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심지어 가족들한테도요!!!”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기특하네. 근데 이건 그 문제랑은 많이 달라.”
여자 문제는 누군가에게 들킨다 해도 수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상황이 다르다.
내가 아이템을 사용하는 걸 알 수 있는 존재는 ‘내 여자’들에게 한정 되어 있다.
그런데 시애는 내 여자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내 여자로 만들어버리면 상관은 없어지지만….’
시애는 개인적으로 귀여운 동생처럼 여기는 아이다.
그런 아이를 내 여자로 만든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만약 비밀을 숨겨준다는 시애를 믿고 방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은 별다른 제재를 가하고 있지 않지만,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니다.
계약으로 묶여서 얻은 능력이고, 그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빼앗길 수 있었다.
‘그쪽이 쓰는 능력들은 워낙 해괴해서 짐작이 불가능하다고.’
이 능력을 나에게 준 존재.
그리고 ‘내 여자’에 한해서 능력을 밝힐 수 있는 권한을 줬던 칠리라는 포니의 상사.
포니는 만만한 녀석이라 어떻게든 구슬리면 될 수도 있지만, 녀석의 상사인 칠리라는 녀석은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자주 오지도 않고, 내 문제에 과하게 참견도 받지 않고 있지만….’
언제 와서 꼬투리를 잡을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더 아쉬운 소리 하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거다.
그쪽에 아쉬운 포지션이 되어버리면 어떤 것을 강요받게 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당황해서 덥썩 그렇다고 해버린 것도 문제야. 아닌 척 시치미를 뗐으면 대충 넘어가도 됐을 텐데.’
나도 당황한 탓에 내가 고민에 빠진 눈치를 보이자 시애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설마 도망치려고?
어림도 없지.
그녀가 물러서는 것의 한 발작을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에 당황한 시애가 점점 더 다급하게 뒷걸음질을 했고, 미처 보지 못한 벽에 기어코 등이 닿았다.
“학!”
등에 닿는 딱딱한 벽의 감촉에 놀란 시애가 소스라친다.
나는 여전히 도망칠 곳을 찾는 시애의 양 옆에 팔을 뻗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명 벽치기라고나 할까?
“도망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도망치려고 하면 내가 쫓아갈 수밖에 없잖아.”
“서, 선배니임….”
시애가 울상을 짓는다.
“쫓고 쫓기는 상황이 되면 누가 더 불리할까?”
내가 시애였다면 성별을 따지는 것보단 특별한 능력을 더 우선시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울상이던 시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슬슬 상황파악이 되나보다.
나는 무거운 분위기를 풀지 않은 채로 이어서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니?”
“그건 그렇지만…그래도 비밀을 지켜드린다고 했는데….”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비밀이라고 생각해?”
“…그으거언.”
내 말에 반박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도망칠 곳을 찾고 있는 건가?’
나는 한 발작 더 디디며 그녀의 코끝이 내 가슴에 닿을 정도의 거리를 두었다.
“서, 선배님 너무 가까워요오…!”
“네가 도망칠 생각을 안 하면 조금 떨어질 수도 있겠지.”
“그, 그걸 어떻게….”
“내가 마법사잖아. 네 속마음 읽는 것쯤이야 쉽지.”
“!!!!”
시애는 내 거짓말이 진짜인 줄 알았는지 표정에 경악이 서린다.
“마, 마, 마음 속도 읽으세요?!”
“그럼~ 네가 상상도 못할 것들을 다 할 수 있어. 사람 하나 감쪽같이 실종시켜도 문제없을 걸?”
내 협박이 많이 무서웠나보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이 눈가에 물기가 서린다.
어째 뭉개진 찐빵 같아서 겨우 웃음을 참아냈다.
“시애야….”
“힉!”
“내가…아직도 네 선배로 보이니?”
“끼야야아아웁!”
“어유, 깜짝이야.”
무서움이 선을 넘어버렸던 걸까?
냅다 소리를 질러버리는 시애 때문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우우우웁! 우웁웁우무무뭄!!! 우우웁우우움우무무우무무뭄웅!!!!!!!!!”
각종 기괴한 소리를 내뱉으며 살려달라고 발버둥까지 친다.
적당히 놀렸어야 했는데 반응이 너무 재밌다보니 조절을 제대로 못했다!
“쉿쉿! 미안미안! 장난이었어! 장난!”
“!!!!!”
“잘못했어! 사과할게. 제발 소리 좀 그만질러. 누가 와서 보겠어! 지금 우리 걸리면 딱 봐도 밀회현장이다?”
“…하웁!!”
시애가 내 다급한 사과의 외침에 그제야 비명을 멈췄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 있었고, 아직 불안함이 다 가시지 않았는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소리 안지를 거지?”
끄덕끄덕
“손 놔줄 거야. 그럼 얌전히 있어야 한다?”
끄덕!
천천히 시애의 입에서 손을 떼어냈다.
손바닥에 묻은 흥건한 침에 허허 웃으며 시애의 옷에 닦아냈다.
시애도 자신이 흘린 침을 손등으로 머쓱하게 닦아내며 물었다.
“쓰읍 정말 장난이었던 거 맞죠? 표정이 완전 진심이었는데….”
“진심 아니었어. 여자애가 왜 이렇게 겁이 많아?”
한 80% 정도는 진짜 장난으로 한 거였다.
“윽! 그, 그건 제가 당황을 해서….”
나는 이 세계가 남녀역전 세계임을 감사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시애가 창피해졌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선배님이 너무 무섭게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절 어디로 납치해서 감금시키는 줄 알았다고요! 그게 아니라면 선배님이 절 개구리로 만들 수도 있었겠죠!”
“개구리라….”
귀여운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시애의 머릿속이 꽃밭인 게 맞나보다.
그런 순진한 말을 하다니.
내가 그녀에게 할 짓은 개구리로 만드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이었다.
멜리사를 통해 기억에 관련 된 부분을 건드리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또 다시 이런 일을 하려고 하니 내키지가 않는다.
강제로 기억을 삭제시켜야 하는 내 입장도 썩 좋은 기분이 아니라는 거다.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처럼 지내면 안 될까요? 우리 되게 잘 지냈잖아요. 선배로써, 후배로써요. 헤헤.”
시애는 본능적으로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순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육식동물의 입안에 갇혀 있음에도 어떻게든 살아나가 보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 소동물 같았다.
“내가 장난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아예 장난이 아닌 부분도 분명 있었어.”
80%는 장난이었고, 나머지 20%는 진심이었다.
꿀꺽
긴장을 했는지 시애가 침을 소리가 날 정도로 삼킨다.
“일단 너를….”
“저를…?”
“강제할 거야.”
“가, 강제요?!”
시애가 자신의 가슴을 두 팔로 교차해서 가린다.
그런다고 몸이 보호 될 리 없는데도 불구하고.
“함부로 내 비밀을 말 할 수 없게 할 거라는 뜻이야. 네가 동의하지 않아도 강제로 말이야.”
“비밀은 지킬 거에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해요! 덕구한테도 말 안 했어요!”
덕구?
“덕구가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돼.”
“덕구는 제 비밀을 전부 알고 있는 비밀 친구…!”
쓸데없는 소릴 하는 시애의 말을 끊고 이어서 말했다.
“이건 네 안전을 위해서인 것도 있어.”
“네에?! 제 안전이요? 제가 왜요? 저 위험해요? 뭐 큰일 당해요?”
“당할지도 모르지. 네가 내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내가 아니라 네가 위험해.”
그 존재들은 내가 최대한 많이 번식을 하길 바란다.
그래야 현저하게 남자가 부족한 이 세계가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명 나비효과.
큰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했던 행동이 나중에 구르고 굴러서 엄청나게 큰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
그쪽 존재가 바라는 것이 바로 나의 작은 날갯짓이었다.
바뀐 미래를 바라는 그들은 내가 날갯짓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나를 많은 여자들과 붙이려고 하는 거다.
‘어느 순간부터는 미션의 80%가 여자와 관련 된 내용이 됐을 정도로 노골적이지.’
만약 시애가 내 비밀을 알았고, 그걸 다른 외부자에게 실수로라도 말을 한다면?
건수를 잡았는데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그러니까 시애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말도 마냥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지.’
분명 그 존재들은 내가 선택하기 어려워 할 어려운 조건을 붙여올 것이다.
시애를 임신시킬지, 아니면 손해를 볼 것인지.
내가 나를 잘 알기에 어떤 선택을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것으로 손해를 메꾸려하기 보단 시애를 내 여자로 만드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게 나한테 더 이득이니까.’
시애에게 호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동생처럼 귀여워하는 아이다.
여사친도 여자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귀여운 여동생이 여자 친구 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계약을 하는 거야. 너랑 나랑.”
“계약….”
다만 그렇게까지 가기 전에 수습을 할 수 있다면 해보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 마법 계약인가요!?”
“…그래. 마법 계약이야. 만약 어기면 큰일이 나는 거고.”
“저 할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기면 큰일이 나는 계약이야. 내가 괜히 강제로 계약을 맺겠다고 한 게 아니라고. 지금 이 상황이 장난처럼 느껴지는 거니?”
시애는 아까 전의 일로 날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보여주었던 순간이동이 그녀에게 큰 환상을 만들어준 것 같았다.
더군다나 계약이라는 의미심장한 단어까지 나왔으니….
“장난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전 선배님 비밀을 누구한테도 말할 생각이 없는 걸요? 그러니까 계약을 해도 무섭지 않은 거에요.”
“…….”
정말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얘기였다.
그녀가 계약을 잘 지켜준다면 나도 굳이 그녀의 기억에 손을 댈 필요가 없어진다.
‘차라리 지금 기억을 지우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얘가 만약 기억을 삭제시킨 후유증에 큰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한단 말인가?
멜리사는 당시에 본인이 정신병에 걸린 줄 알았을 정도로 큰 후유증을 앓았었다.
그런데 시애는 나와 자주 만나는 게 아니다 보니 기억을 지우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신 문제를 나한테 상담할 리도 없고 말이야.’
그렇기에 기억을 건드리기 꺼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꼼수.
나는 상점에서 후다닥 계약서를 구매해서 꺼내들었다.
내가 허공에서 계약서를 꺼내니 시애가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줬다.
“우와아아!!! 갑자기 허공에서 물건이 뿅하고 나타났어요!!”
“그래그래. 이게 계약서야. 여기다가 서명하면 돼.”
시애가 은은하게 금빛으로 빛나는 계약서를 반짝반짝한 눈동자로 구경했다.
“정말 신기해요. 여기다가 서명하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내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지.”
“그냥 입으로 약속하는 거랑 이 계약서로 약속하는 거랑 다른 점이 있지 않나요?”
“당연히 있지. 이건 너한테 강제력을 주는 거야.”
시애는 강제력이라는 두루뭉술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강제력이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자면 단순히 입으로 약속하는 건 네가 그걸 지킬지 말지를 선택하는 일이지만, 계약을 하게 되면 네가 어기고 싶어도 어길 수가 없어지는 거야.”
“오호~! 신기하네요.”
“정말 해도 괜찮겠어?”
계약을 너무 선뜻 하겠다고 하니 사기 계약하는 악덕 업주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안 하겠다고 말하면 골치 아파진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네!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이번에도 시애는 순진한 표정으로 아니, 나에 대한 믿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계약을 하겠다고 말해왔다.
나는 더 이상 빼지 않고 계약서를 사용했다.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줬으니 양심 아파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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