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 #61. 식사 (6)
* * *
“사이가 좋다고 들었는데 진짜 좋네.”
“남자애들끼리 뭉쳐서 꽁냥대는 걸 보고 있으려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네. 보기 좋아. 상큼하다.”
정화씨와 주아 누나의 때 아닌 주책에 멤버들이 수줍어한다.
그나저나 나 상큼하다는 소릴 들은 거야, 방금?
‘남자한테 상큼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
하지만 이건 나만의 생각일 뿐.
다른 녀석들은 상큼하다는 말을 듣는 걸 순수하게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주아 누나네와 멤버들 사이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나이다 보니 대부분의 이야기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그 과정에서 애들이 나를 생각보다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나 앞이라고 내 얼굴에 금칠해준 거야? 너무 칭찬을 해주니까 머쓱해질 지경인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가 그동안 이렇게 터놓고 말을 했던 적이 없잖아.”
“맞아요!”
순조롭게 주아 누나를 소개시키고 밥을 먹인 후 우리는 곧바로 술자리가 차려졌다.
사실 밥을 먹으면서 이미 3시간이 흘렀을 정도로 수다를 많이 떤 상태였는데도 아직 멤버들은 할 이야기가 많았는지 아쉬움을 표했고, 결국 술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미성년자가 있어서 멤버들끼리는 술자리를 만든 적이 없었다.
그나마 술을 마실 때가 있다면 스태프들과 전체 회식을 할 때 뿐.
그래서 그런가?
멤버들은 평소 자기 주량보다 더 많이 마시면서 이 자리를 즐겼다.
“그나저나 어머님이랑 되게 친한 것 같더라?”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제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왔다.
정화씨와 나 사이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술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정화씨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이제와서 호칭을 바꾸는 것도 이상했기에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정화씨랑 친한 게 이상해?”
“음, 이상할 건 없긴 한데….”
“누나를 낳아주신 고마우신 분이잖아. 당연히 내가 잘해야지. 나한테는 가족이나 다름 없어.”
“아~!”
내가 가족이 없는 고아라는 사실을 멤버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 부분을 말하니 제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라도 넘어 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직 얘네들한테 정화씨랑 내 사이를 납득시키는 건 무리지.’
아무리 대범한 사람이라도 우리 관계를 이상하게 볼 것이다.
“우리가 친한 게 이상해 보여요?”
그때, 정화씨가 주방에서 안주를 가져오며 물었다.
아무래도 주방에서 제키가 물어본 걸 들었던 것 같다.
“아!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정화씨는 아예 제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차분하게 우리 관계를 좀 더 풀어서 설명했다.
본의 아니게 딸의 남자를 훔쳐 먹은 그녀는 우리 두 사람을 위해 기꺼이 첩을 자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멤버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가만히 내버려둘 사람이 아닌 것이다.
“해솔이가 저한테 정말 잘 해요. 제가 아이를 혼자 키워서 삭막한 집에 해솔이처럼 화사한 아이가 들어오니 들뜨게 되더라고요. 주책을 많이 부렸는데도 해솔이가 다 받아주니 어느새 이렇게 친해져버렸네요.”
“정말 젊어 보이세요. 아까 선배님 친언니시냐고 물었던 것도 진심이었습니다.”
제키의 말대로 정화씨는 이대로 혼자 살기엔 너무 아까운 여자다.
주아 누나의 엄마이니 미모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내가 낼름 먹었으니 천만다행이지.’
다른 사람에게 정화씨를 빼앗길 수도 있었다니.
다시 상상해봐도 아찔해지는 일이었다.
‘정화씨 친아버지는 정말 연락이 없나? 한 번도 물어보질 않아서 모르겠네.’
정화씨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금 정화씨의 모습은 화사하게 피어오른 장미 꽃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애들 앞에 나타났을 때, 너무 야한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킨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안주가 맛있으니까 술이 술술 들어가는 것 같아요.”
술자리는 좀 더 무르익어서 어느새 애들 모두 거하게 취해 볼이 발그레해졌다.
정화씨에 대한 관심도 잠깐이었을 뿐, 멤버들은 다시 나에 대한 일로 대화꽃을 피웠다.
“저는 형이 누굴 만날지 정말 궁금했어요.”
“내가 만나는 사람을 네가 왜 궁금해 해?”
“형이 여자한테 관심을 안 보였으니까.”
“내가?”
“얘가?”
“정말?”
제키의 말에 나, 주아 누나, 그리고 정화씨까지 모두 동시에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내 여자가 몇 명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 과하게 반응을 했다.
다행히 멤버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이어서 말했다.
“네, 오히려 형은 여자들이 접근하는 걸 되게 차갑게 내치는 편이에요. 저희라면 마음이 좀 흔들릴 것 같은 대단한 사람도 형은 끄떡 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여자에 완전히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흠흠흠.”
얘네들이 오늘 내 기를 살려주려고 작정을 했나보다.
내가 만나는 여자가 몇 명인지 알다 보니 주아 누나는 은연중에 말하지 않고 숨겨두고 있는 여자들이 더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여자가 있어서 반박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주아 누나는 아마 내가 오는 여자 안 잡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치마만 두르면 다 좋은 수준은 뗀지 오래라고.’
여자나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뭘까?
기존에 만나고 있던 애인이 익숙해지면서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의 종류는 다양하다.
단순히 성적인 의미만 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익숙함은 지루함을 낳고, 사람인 이상 지루함을 기피하게 되기 마련이 아니겠나?
그런데 여기서 나는 좀 상황이 다르다.
뭣도 모르는 주제에 고른 여자들이 하나 같이 모두 착하고 야물딱진 여자들이었다.
또한 내 능력으로 언제든지 최고의 쾌락을 즐길 수가 있었다.
아름다운 미인, 항상 최고의 쾌락을 선사해주는 섹스….
우리가 다툼이 없는 이유에는 그녀들을 모두 만족 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는 덕분인 것이다.
부족함이 없는,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애인들이 있는데 굳이 다른 여자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건 당연한 거지. 그렇게접근하는 사람들 전부 몸을 노리고 온 사람들이잖아. 그런 사람이랑 내가 왜 만나?”
“에이~ 형! 내가 아는 게 있는데 거짓말을 하냐?정말순수하게 호감을 표하면서 좋은 만남 가져보고 싶다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잖아.”
“그런 적이 있었어?”
주아 누나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는 듯 눈을 반짝인다.
나는 주아 누나를 알기에 저 눈빛에서 살기를 읽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주아 누나를 알지 못했기에 눈치 채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말을 이었다.
“엄청 예쁘시고 유명한 가수 선배님이셨어요. 그런데 해솔이 형이 완전 정색하면서 거절했거든요. 그때 보고 저 형은 여자한테 관심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어머~ 기특해라. 그런 귀여운 짓을 해놓고 아무 말이 없었단 말이지? 저는 그런 얘길 못 들어봤거든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을 거에요. 저희가 장담해요.”
“맞아요. 형이 여자한테 관심을 가지는 걸 본 적 없어요.”
“그거 보고 도대체 저 형은 나중에 누굴 만날까 궁금했었는데, 그게 주아 선배님이실 줄은 몰랐어요.”
“지금 두 사람이 다정하게 있는 거 보면서 무지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저 형이 여자한테 저렇게 다정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주아 누나는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내 허벅지에 손을 가져다댔다.
물론 멤버들한테는 보이지 않는 사각이었기에 한 대범한 짓이었다.
“왜 얘기 안 했어?”
“누나가 물어보지도 않은 걸 왜 내가 말을 해. 그런 거 알아봤자 하나도 좋을 거 없는데.”
“나도 이 업계 사람인데 여자들이 잘 생긴 남자한테 추파 보내는 게 하루 이틀 얘기 아닌 거 다 알아.”
“알지만, 직접적으로 얘기를 듣는 건 다른 일이잖아.”
“앗…! 저희가 괜한 소릴 한 건가요?”
내 말에 멤버들이 그제야 찔끔한 표정이 된다.
나는 괜찮다는 듯 멤버들에게 웃어보였다.
“너희들이 나 철벽 잘 친다고 칭찬해준 거잖아. 괜찮아. 너희들 덕분에 오늘 누나한테 내가 점수를 많이 따네.”
“정말 도움 되는 거 맞지?”
“어.”
“아! 이 말로 오해 하시면 안 돼요. 저희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탠 거에요! 진짜 형 철벽 잘 쳐요.”
“네. 말해줘서 고마워요. 말 안 해줬으면 계속 몰랐을 거에요. 그나저나 내가 선배님은 아니지 않아요? 내가 데뷔를 더 늦게 했을 텐데.”
“그러고 보니 너희들 왜 누나를 선배님이라고 불러?”
“어…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
“형수님이라고 불러야지.”
“엑! 형수님?!”
“응.”
“뭔가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라 어색해서 입에 안 나오네.”
“한두 번 보고 끝낼 거야?”
“아니!”
“거봐. 아니니까 형수님이라고 착실하게 불러.”
“그…선배님도 괜찮으신 거에요? 호칭?”
멤버들이 조심스럽게 주아 누나의 눈치를 살핀다.
이게 눈치 볼 일이냐고!
당연히 좋아하지 안 좋아 하겠어?
“그렇게 불러주면 저야 고맙죠.”
“형수님!!”
기우연이 가장 먼저 선수를 쳐서 주아 누나를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형수님이라 부르며 수줍어한다.
도대체 형수님이라는 단어에 수줍어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놈들, 아무래도 주아 누나한테 홀딱 빠진 것 같은데.’
정화씨에 대한 관심도 엄청난 걸 보면, 확실히 애들한테 콧바람이 든 게 분명했다.
평소에는 여자에 관심이 없어서 돌처럼 보던 애들도 준이가 연애를 시작하고, 나도 이렇게 애인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다.
‘연주 누님한테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둬야 할까?’
나도 연애를 하는데 애들 연애를 막을 순 없는 일.
결국 나는 비즈니스보다 의리를 선택하고 눈을 감아주기로 했다.
? ? ?
멤버들에게 주아 누나를 소개시켜줬던 일은 여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이슈로 떠올랐다.
역시 정실이라서 다르긴 하구나 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 사람 마음인 것이다.
나는 아쉬움을 표하는 여자들에게 어쩔 수 없었음을 설득시키면서도 열심히 몸을 굴려서 서운해 하는 마음을 풀도록 노력했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멤버들 앞에 나서기 어렵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알았기에 오랫동안 서운한 마음을 표하는 여자는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내 여자들을 단속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겨우 시간을 내서 시애와 약속을 잡았다.
‘잘 지내고는 있다는데, 두 눈으로 확인해보지 않으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단 말이지.’
계약을 통해 잠시 기억을 잃은 시애.
완전히 기억을 지우지 않았으니 부작용이 크진 않겠지만,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차라리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확인을 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선택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바쁘게 스케줄을 도는 시애에게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애는 활동하고 있는 현재가 바빴고, 나는 본격적으로 컴백 준비에 들어가기 전에 일을 해결해야 했기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만날 필요가 있었다.
아마 내가 바빠질 무렵에는 시애가 비활동기가 되어서 시간이 널널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못 할 게 뭐가 있겠어.’
나는 바쁜 시애의 시간을 쪼개서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러 가겠다고 했고, 결국 그녀의 회사 근처를 약속 장소로 잡았다.
시애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신을 만나겠다고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 했지만, 온갖 핑계를 대서 겨우겨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시애는 내가 매달려서 만나는 상황을 은근히 아니, 대놓고 즐기는 눈치였다.
“하~ 선배님, 저 좋아하시면 안 돼요. 선배님은 아이돌, 저도 아이돌! 아이돌과 아이돌의 만남은 비극을 만들어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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